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시대의 흐름을 품고 가는 정왕본동-이형수

1인 미디어 2018. 1. 8. 22:05

 


장가들기 싫어 서울로 도망친 적도 있던 이형수선생님은 엄한 아버님을 거역할 수 없어 어머니와 함께 색시가 있는 곳으로 갔다. 4km를 어머니와 함께 걸어 선을 보러 간 곳은 정왕동. 농사를 지어야 하니 튼튼한 색시를 바랐다. 그러나 너무 날씬했다. 선을 보면서 딱 한마디 주고받았다. ‘학교 어디 다녔느냐?’. ‘군서초등학교 다녔다그리고 아무 말도 안했다.

 

돌아오는 길, 걱정스런 마음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새미마을로 들어오는 한길 가에 주저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의 걱정은 이대로 돌아가 장가를 들지 않겠다고 하면 아버님한테 쫒겨나는 것 이었다. 덩치도 크고 엄격했던 아버님을 거역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17살 차이가 났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면 꼼짝을 못했다. 무릎을 꿇고 장가갈게요했다. 그때 나이 19. 조랑말을 타고 색시가 있는 정왕동까지 가서 가마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아내는 마른 체격에 비해 일을 정말 잘했다. 생활력도 강하고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아내는 농사를 짓고 이형수선생님은 정왕동에서 오이도까지 나무등짐을 지며 힘들게 살았다. 나무를 베어 땔감을 팔고 12km 거리를 걸어다닐 때 누가 신고를 하여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시흥시 최초로 양송이재배를 하고 또 포도농사도 지으면서 농촌살리기운동을 했다. 농촌일을 열심히 하니 조합장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군자면사무소의 마지막 면장이자 군자동주민센터의 초대동장을 역임하게 됐다.

    


시흥군 군자면 당시 정왕동 일대는 전부 염전이었다. 자연이 유지되어 있던 옛 군자면 정왕리는 거대 염전이었다. 염전이 있어 평안도 사람들이 넘어와 자연스럽게 부락이 형성됐다. 평안촌이라 불리웠다. 지금의 정왕역(당시 군자역) 자리가 옛 평안촌 자리다.

 

봉우재, 함줄(자연부락), 오이도 모두가 정왕동이었으며 염전땅이었다. 군자면 사람들 대부분이 염부였던 군자염전은 개발과 함께 모두 메꿔졌다. 바다를 메꾸고 염전을 메꾸었다. 사라진 것은 염전만이 아니었다. 사람들도 흩어지고 정왕동에 있던 봉화산도 사라졌다. 시화공단을 만들기 위해 깍은 것이다. 반대도 많았으나 막지 못했다. 동네사람들이 순진했다. 완강했으면 지킬 수도 있었다. 산을 없앤다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고, 또한 봉화산은 역사적으로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산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중요한 역할을 한 산이기 때문이다. 군자봉보다 컸던 봉화산을 모두 퍼갔으니 대단한 것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산이 통째로 없어졌으니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아파트와 시화공단의 바닥에는... 봉화산이 깔려있다.

 

시화공단이 들어서고 빌라촌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토박이들은 사라지고 외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구의 유입으로 정왕동은 5개동으로 나뉘고 본동에는 외국인들이 대거 들어왔다. 그럼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로 행정이나 주민들의 정서가 메말라졌다. 그러나 이형수선생님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왕본동에 이주민들이 많이 들어와 힘들다고 하는데 너무 그럴 필요 없어 무슨 뜻일까?

집값이 싸서 들어오든 공단이 근처에 있어 오든 모든 것은 세월의 흐름이야라고 한다. 시대의 흐름을 억지로 막을 방법은 없다. 받아들이면서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를 위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그 흐름대로 사람은 달라질 것이며 사는 환경이나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라는 뜻이다. 정왕본동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그래서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 사라진 지금 이전의 모습은 기록 속에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온 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지금의 모습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이들은 지금 정왕본동에서 살며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지역활동가들의 몫에 달려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며, 움직이고 있는 재생사업과 미래비전이 담긴 개발의 창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시대의 흐름은 변화를 품고 간다. 역사는 미래를 안고 가는 소중한 자산이다. 정왕본동은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