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의 깊이를 다루는 다큐
라텍스 고무 안에서 와글와글거리는 공기덩어리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창하여 마지막 한 번의 입김으로 터져버렸다. 시흥의 혁신교육사업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시흥이 운이 좋다거나 어쩌다 전국에서 앞서가는 선두적 위치에 서 있다 말하는데 깨어있는 누군가가 터지기 일보직전의 고무를 뻥 하고 터뜨리지 않았다면, 그저 부풀어오른 상태에서 머물렀을 것이란 얘기다. 그 안에는 ‘여러 시민활동가들, 학교교사들, 마을강사들, 그 외 다수의 인적자원들 그리고 마을과 학교, 학습 된 공무원들이 버무려놓은 공기덩어리들을 그들의 뜻을 안 시장 및 단체장등등 여럿이 건드려 터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의 사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진심을 다해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으면서 박히고 이해가 되었다. 적어도 영상을 찍으면서는.
어떤 일을 만들어내는 건 대중이 아닌 깨어있는 리더 한 사람의 힘이 작용해서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 교육청에 있었고, 마을교육자치회에 있었고, 학교 현장에 있었다. 재미있고 유쾌한 그들이 마을, 학교, 시청 등에서 열정과 능력을 발휘하여 의기투합되어 폭발했고, 혁신교육의 토대가 동력이 되어 계속 이어왔다.
지난 컨퍼런스 때 ABC홀에서 선보인 19분짜리 영상은 교육관계자들의 1년을 기록한 감동의 서사였다. 편집과정이 쉬워보이지 않았다. 지방자치의 경우 시간 순으로 편집을 하는데, 순서대로 붙여나가는 전체 그림에 큰 가닥을 잡고 큐시트를 짠다. 러프하게 인트로를 잡고, 바디 원, 투, 쓰리를 설치하여 찍어내고, 엔딩과 에필로그, 중간 중간 들어가는 브릿지등을 콘티화하여 거기에 효과를 넣는다. 효과음과 자막, 육성등을 만들어 넣으려면 꼬박 일주일을 소요하게 된다. 물론 하루 두어시간 잘 경우다.
김태은PD와의 만남
김태은PD와는 시흥시청 시흥방송국에서 처음 보았다. 김태은PD는 영상팀의 PD였고 필자는 뷰티플시흥 시민필진팀이었다. 영상팀과 필진팀이어서 함께 작업할 일은 없었지만, 아카이브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되니 익숙한 얼굴이라 반가웠다. 김태은PD와 늦은 저녁 카페에 앉아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 인터뷰와 인터뷰이로 만났는데 둘간의 수다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더 허락되거나 인터뷰 자리가 아니었다면 서,너시간은 훌쩍 넘겼을지도 모른다.
흐름대로 살아낸 청춘
아나운서의 꿈을 꾸었던 김태은PD는 대학시절, 대전 극동방송에서 지인의 추천으로 리포터를 했다. 크리스천이어서 가능했던 자리였는데 자원봉사였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악명높은 PD의 프로그램에서 한 코너를 맡아 진행했을 때는 재능을 인정해주어 한시간 짜리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극동방송의 메인프로로 밤10시부터 하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었다. 한시간만 진행하던 것은 메인PD가 나가고 두시간을 맡아 하게 되었다. 웃음소리가 특이해 그 웃음소리를 좋아하던 광팬이 있었다. KBS의 이종태 아나운서였는데 그도 크리스찬이어서 겸사겸사 팬이 된것이다.
이종태 아나운서와의 인연으로, 공주방송국 리포터로 KBS에 첫 발을 딛게 되고, 그 인연은 다시 울릉도로 이어졌다. 대구총국 산하 KBS울릉중계소에 아나운서 자리가 공석이 되었는데 그 자리를 맡을 사람을 절박하게 찾고 있었다. 이종태 아나운서부장이 한 사람을 추천했다. 김태은PD였다. 2002년도.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할 때인 이십대 후반 27살, 울릉도에서 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큐에 눈을 뜨다
울릉도라는 특수한 상황의 환경에서 매일 50분씩 라디오 로컬 프로그램 제작과 뉴스 취재, TV 교양프로그램의 리포터 일까지 병행하며 바쁘게 일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본사에서 있었던 영상 편집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에 눈을 뜨게 되었다. 라디오 진행과 TV 출연에 이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녀가 처음 영상으로 담아낸 것은 89세 최고령 울릉도 해녀 할머니의 스토리였다.
기획안은 흔쾌히 허락으로 내려졌고 예산도 받아냈다. 그리고 1년 동안 45분짜리 다큐를 만들었다. 대구에 있는 VJ를 불러다 찍고 김태은PD는 6mm로 찍었다. 사진 구도는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었고, 스토리텔링 차원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큐 한편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김태은PD의 첫 작품이 되었다.
주인공 해녀 할머니를 찍으면서 김태은PD는 거의 손녀가 되어갔다. “나만 보면 시집가라, 맨날 일만 해서 뭐하냐, 엄마 아빠 속도 생각해야지”는 잔소리가 되었다. 울릉도 해녀할머니는 큰아들을 바다에 잃고 작은아들은 몸이 불편해서 육지에 사는 아픈 사연이 많은 할머니였다. 그러나 울릉도 해녀할머니의 일생은 너무나 가치롭고 아름다웠다. 사는게 힘들고, 몸이 힘들고, 마음에 상처도 깊었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고 있지만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갔다. 그럼에도 수확한 것들을 나눌 줄 아는 삶, 마지막 힘을 내서 물질하는 끄트머리의 모습을 찍은거라 가슴에 두고두고 남는 아름다운 분이다. ‘여든 아홉, 그녀의 바다’ 울릉도 해녀할머니의 일생은 그렇게 눈이 부셨다.
그 작품은 설 특집으로 전국 방송에 나가고 상도 받았다. 재미도 있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이게 나의 길인가?’ 하는 생각은 한 편 더 만들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2008년에 한 편, 2009년에 ‘바람의 아이들’ 이라는 제목으로 울릉도 청소년 이야기를 2부작으로 만들었다. PD와 작가 한명씩을 붙여주어 공동기획으로 1년 가까이 만들었다. 그 작품은 후에 우수프로그램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상을 받을 때 김태은PD는 없었다.
이후 울릉도KBS는 비정규직 법으로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청춘을 보낸 울릉도에서의 생활, 김태은PD는 삼십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한사람의 깊이를 새기는 휴먼다큐,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6개월 정도 어학연수 후 지역의 작은 대학에서 다큐 프로덕션 1년 과정을 수료했다. 안되는 영어로 수업을 들어가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올 A를 받았다. 어마어마한 학비가 들어갔지만 시대를 아우르는 좋은 다큐를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제대로 배웠다.
정말 좋은 다큐는 어떤 대상을 만나고, 영상을 완성하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 피사체가 카메라와 다큐멘터리스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주인공이 카메라를 완벽히 잊어버린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만큼 다큐 제작자와 깊은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것은 1년이 걸리고 또 어떤 것은 10년도 걸린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진실한 다큐는, 사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준다. 죽기 전에 한편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다큐는 이렇게 사람과 깊이있게 소통하며 선한 영향력과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작업이기에 육체적으로는 고강도 노동에 가깝지만 행위 자체는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다.
경산에서 시흥으로
시흥과의 인연은 전혀 없을 것 같은 김태은PD는 캐나다에서 잠시 귀국하여 부모님과 함께 있을때 예고됐다. 어느 날,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을 해보겠다고 알아보다가 영상 관련 모집 공고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 그때는 경산에 살았을 때다. 시흥이란 이름은 듣지도 알지도 못한 도시였다.
잠시 머물기 위해 왔던 시흥, 캐나다로 다시 나가면 눌러앉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엄마는 반대를 하던 차였다. 어차피 떨어질 수 도 있으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이력서를 냈는데 붙어버렸다. 방송 시절 공무원 체계에 엄청 비평을 했었는데 공무원이 된거다. “인생이 참 드라마틱하구나, 한치 앞을 모르는구나‘라는 것을 그때 느꼈다. 그렇게 2013년 5월부터 3년여정도 시흥방송국에서 PD로 일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시흥방송국이라는게 시흥 이야기를 담는건 극히 일부고, 시정 홍보영상을 주로 담았다. 그저 시정홍보영상만을 담으라고 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텐데 시민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시흥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독려하고 끌어주는 영상, 본인이 추구하는 철학등을 담아 찍으라는 영상을 원해서 충실하게 했다.
시흥의 마을이나 시민의 삶을 담는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예쁜 시흥의 모습을 에세이로 담는 일을 간간이 하면서 시에서 원하는 시정뉴스등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했다. 다행히 당시 시민소통담당관실의 우정욱담당관이 전체 편성권을 주어서 기본으로 해야하는 영상은 밑바닥에 깔아놓고 시흥의 좋은 곳들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즐겁게 했다.
다시 시작하는 포즈
3년여간 시흥을 누비던 김태은PD는 개인적인 사유로 소통실을 그만두고 다시 울릉도로 건너갔다. 아버지를 도와 1년여간 카페를 운영했다. 카페이름이 ‘포즈’다. 사업자명도 ‘포즈’다. 영상도 삶도 잠깐 멈추는 시간, 잠시의 여백이 있는, 거기에서 얻어지는 큰 의미가 좋은 포즈. 2018년 6월경 사업자를 내고 시흥방송국 PD로 일하면서 알음알음 알던 공무원들이 소식을 알고 PPT 제작을 의뢰해왔다. 활동을 하니 소문이 조금씩 났다. PPT만이 아닌 영상제작 의뢰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영상의 길목
더디가더라도, 눈을 감는 순간까지 꾸준히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영상 제작자, 혹은 다큐멘터리스트로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빛의 통로'가 되고 싶다는 김태은PD는, 매일 수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피로도가 누적된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때론 포근하게, 또 때론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그런 선한 영상을 선물하고 싶어한다. 기왕이면 이 길을 같이 걸어갈 좋은 동역자들을 많이 만나 시너지를 내고, 비슷한 꿈을 가진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믿음직한 선배가 되고 싶은 바람도 있다.
"영상이란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 많은 도구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파급력이 있고 매우 효과가 큰 괜찮은 도구다. 영상작업은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평생동안 할 것 같다" 그리고 오늘도 ‘컷’을 외친다. ‘사람’을 담아내기 위한 김태은PD의 외마디다.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사)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는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