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생기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손이 많이 가게 된다. 지난 4월에 개장한 오이도 선사유적지가 그렇다.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마을기록가로, 인문학모임으로, 시흥의 역사공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영교씨는 선사유적지를 지키고 있는 50대 초반의 소녀다. 콧소리 가득 담은 애교섞인 목소리는 거리의 작은 들꽃 하나를 마주쳐도 “어머~ 너무 예쁘지않아요오~?”하며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마치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콧소리가 소녀미소 짓게 만든다. 그런 소녀감성을 그대로 마을에 녹여내는 박영교씨의 매일은 시흥 마을과 자신의 인생에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취업드림터를 통해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에서 근무를 하게 된 박영교씨는 창의체험학교나 시민들, 그리고 오이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문 강사와 함께 보조를 맞추며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선사유적공원은 고즈넉하면서도 하늘이 예쁜 곳이다. 공단이 눈 앞에 있어 풍경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비가 오면 오는대로 눈이 내리면 내리는대로 그저 예쁜 공원이다. 오이도선사유적공원은 주로 체험활동으로 학교에서 많이 찾아온다.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좋다고들 한다. 어부들이 바다로 나가는 길을 형상화하여 만들어 낸 억새길은 바람소리마저 운치를 더해주고 유유히 산책을 하며 신석기시대에 들어갔다 나오게 한다.
오이도선사유적지 제일 꼭대기에 가면 전망대가 있다. 카페도 개장하여 분위기 가좋다. 선베드에 누워 바다냄새를 맡으며 인천, 송도, 배곧이 한 눈에 바라볼 수도 있다.
박영교씨는 마을기록가로 처음 시흥시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2015년, 시흥아카데미에서 마을기록학교 프로그램으로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을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시흥에 산지 20년이 넘었는데 사는 곳만 안다는 것은 아니다 싶었기에 마을로 나가보자 한 것이다. “마을기록학교를 만나면서 시흥이 이렇게 넓은 곳인줄 처음 알았어요. 대야권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군자동이 안산에 있는 동네라고 생각할 정도였거든요.” 시흥은 넓은데 모르는 곳이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낯설어도 하나씩 알아가며 마을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시흥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더란다.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눈에 보이는, 발에 밟히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길가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토박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외지에서 들어 온 이들의 결여된 마을의 관심도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개발 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왔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글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해 나갔다. “내가 지금 기록하는 것들이 시흥의 역사가 되는 거잖아요. 아무도 관심을 두지않아도 또 지지해주지않아도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기에 사명감이라는 거창한 말을 하지않더라도 기록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후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기록화작업이라는 것도 활동을 통해서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마을기록학교를 수료하면서 바라지해설사로 활동을 확장했다. 시흥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고된 작업이었다. 문화관광해설사, 마을기록가들과 마을 투어를 하면서 공부를 해 나갔다. 낯선 마을을 밟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다니는 경험은 애착이 된다. 기록이나 해설이나 인문학이나 마을과 사람들에게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문학동아리에서는 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한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발제문과 논제를 나눈다. 이러한 활동들로 인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쪼개 쓰는 시간조차도 행복한 지금을 살고있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 더 깊게 알기 위해서.
마을 속에 있는 어르신들은 모두가 소중한 분들이다. 마을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뒤를 이어 마을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이 마을을 공부하고 시흥을 지켜야하지않을까 싶다. 살아있는 시흥의 역사가 사라지면 그 역사를 지켜야 할 누군가는 있어야 하니까. 그 역사를 마을기록가들이나 사진기록가, 그리고 마을활동가들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을활동가들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잘 하고 계시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을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살아온 만큼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니 지치더라도 살아오신 분들과 부둥켜안고 나누다 보면 언젠가는 꽃이 피지않을까 싶어요.”
시흥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마을로 나오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떤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마을기록학교였어요” 한다.
시흥이든 마을이든 관심을 갖게 할 그 무엇! 갇힌 생각을 열리게 하고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작은 빛이라도 보여주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에서는 마을자치를 외치면서 주민들에게 뭔가를 만들어내라고 요구한다. 요구하면 제재가 많다. 오히려 행정에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텐데도 말이다.
시흥 곳곳이 파헤쳐지는 것만큼 점점 좋아지는 시흥을 기대한다. 이익집단이 난무하는 곳이 아닌 진정 나와 나의 이웃이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는 마을을 그려나가고 마을 안에서 좋은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마을에 살고 있으니까요.”
*이 사업은 삼성꿈장학재단 지원으로 (사)더불어함께에서 진행하는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지역자원조사차원에서 제작되는 인물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