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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학교 학생들


책보 싸고 간식거리 싸고 어디론가 향하는 여섯할머니가 있다. 어디 가시는걸까? [사단법인 더불어함께] 에서 한글과 산수를 배우는 어르신학생들이다. 달맞이학교로 등교하는 할머니학생들의 수업 현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침 국어시간이었다. 정왕고 학생선생님인 이솔양과 시화공고의 전병석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르신학생들에게 각자 자기 소개를 시켰다.


이한순 : 저는 이한순이고 죽률동 푸르지오에서 왔습니다. 나이는 65세입니다. 막내입니다.

백순복 : 저는 정왕동 금강아파트에 살고 이름은 백순복입니다. 나이는 44년생 76세입니다.

정태희 : 제 이름은 정태희. 정왕동 두산아파트에 살고 48년생이고 나이는 72세입니다.

조금순 : 정왕동에 살고요. 금강아파트예요, 77세고 이름은 조금순입니다.

이동함 : 이동함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왕동 대우아파트 살아요. 나이는 77세예요.

김영희 : 제 이름은 김영희입니다. 정왕동 주공아파트 삽니다. 나이는 74세입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입술도 빨갛게 바르고 옷 색깔도 화려하게 갖춰입고 오셨다. 평상시처럼 하고 왔다고 하지만 아닌거 다 보인다. 무슨 말을 해야 해? 어떻게 해야 해? 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평소 수업하던대로 하면 된다고 하니 수업시간보다 삼천포로 빠지는 시간이 더 많다. 전병석선생님은 어르신학생들의 수업 중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를 만담이라 표현했다.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수업 시간 내내 지켜보았다. 배움을 하러 온 할머니학생들의 공부와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전병석 : 우리 태희어머니가 평상시에는 말을 무지 잘하는데 누가 나타나거나 뭔가를 시킬려고 하면 말이 쑥 들어가~

 

잠시 정적이 흐르고 공책을 편다. 연필심 끝에 침을 바르고 꾹꾹 몇글자를 눌러쓴다. 글씨가 참 예쁘다. 글씨를 보고 힐링이 되어보긴 처음이다.

 

이한순 : 내가 글씨 받침이 틀려서 그렇지, ~ 아예 모르지는 않거든. 하기는 다 하는데, 안 배웠으니까 같이 어울리지 못하게 되더라고.

백순복 : 그거하고 뭔 상관이냐고.

전병석 : 그런게 있을 수 있어 괜히. 어울릴 수는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거를 보여주기 싫은 게 있어.

이동함 :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 생각이 머릿 속에 떠올라요, 솔직히 말해서.

전병석 :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데..

김영희 : 내 자격지심이야.

이동함 : 그래서 옛날에는 이렇게 아침에 운동하고 한바퀴 돌고 들어가면 할머니들이 앉아 있잖아.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는데, 그 위에는 옆집도 모르고 살아요.

백순복 : 내가 사물을 하면서, 공연도 하고 이런데 저런데 돌아다녀보니까 사람을 접대를 하잖아,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배운 사람이나 안배운 사람이나. 나 멍청하나 그 사람 똑똑하나 별거 아니더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왜냐면, 건강하게만 내 모습만 건강하게 살면 돼.

조금순 : 그래서 하는 말이, 늙으면 배운 놈이나 안배운 놈이나 똑같애.

전병석 : 맞어~ 많이 배워서 가진거 많으면 뭐해, 몸이 안좋아가지고 일찍 죽으면 뭐...

조금순 : 근데, 내가 배우고 싶은 마음을 가진게 언제부터냐면, 봉지미역이라고 쓴다는게 봉지미역에 동글뱅이를 안했어. 어디 좀 갔다오니까, ‘엄마 이게 뭐예요, 이거 이름이 뭐예요?’ 하는데 허허허~ 아주 애들한테 얼마나 챙피했는지 몰라요.

 

알아들을 수 없는 잡담이 사담으로 번져 진짜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전병석 : 매일 두시간 이렇게 얘기하고 떠들고 말하고, 이게 정신건강에 엄청나게 좋은거야.

김영희 : 치매예방엔 수다가 최고지. 치매 오면 안돼! 곱게 살다 가야지.

백순복 : 우리는 참 재밌게 살어. 우리 공연도 하거든. 양로원.. 노인들 아픈데 거기가서 같이 놀아주고 공연하고 와.

백순복 : 사물도 늦게 배우면 안돼. 최대한 젊어서 배워야해. 체력이 안 따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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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금없이 어떤 선생님 이름과 생일을 공지한다. 약간의 혼란스런 상황이 계속되다 갑자기 영정사진 이야기가 나온다.

 

전병석 : .. 영정사진,,, 내가 제일 좋을 때, 그럴 때 찍어 놔야해.

조금순 : 그런데 40대에 찍어놓으니까 그건 좀..

전병석 : 그때는 좀 그렇지!

이동함 : 그런데, 아들이 이제 사진도 찍어 주지도 않고....

백순복 : 나는 수원가서 영정사진 찍어가지고 왔어.

김영희 : 나는 60대에 찍어놨어. 우리 영감 환갑 때, 온김에 찍어 놨어. 성당에서도 찍어줘, 영정사진. 작년에도 와서 찍어줬어.

이한순 : 젊었을 때 사진 하나 찍어놓은거 요만한거 있거든, 근데 그게..

백순복 : 그거 확대해서 둘려고? 너무 젊어보여도 안돼.

김영희 : 요번에 우리 성당에서 초상났었거든, 근데 할머니가 팔십육이었대. 가서 영정사진 이렇게 앞에 놓은걸 보니까 너무 젊은거야. 50대 조금 넘은 사진인거야. 그래서, 아유~ 너무 젊은 사람이 아깝구나, 아깝게 돌아가셨구나 이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팔십육세라는거야. 그런데, 그냥 우리가 나이 모르고 사진 봤을 때는 그 사람이 너무 젊으니까 안타까워 보이잖아. 그래서 내가, 아유~ 나 이거 찍어놓으면 안되겠구나, 다시 찍어야 되겠다 이 생각 했어.

백순복 : 난 올해 찍을려고 했지.

조금순 : 나도 올해 찍긴 찍었어. 저 동사무소에서 찍어준다 그래서 찍었는데..

이동함 : 난 아직 안찍었어.


전병석 : 영정사진 이렇게 이쁘게 찍었잖아. 근데, 그거를 고이 간직한다고 잘 넣어놔. 근데 자식들이 몰라. 그러니까, 그런거는 잘 알려줘야돼. 어디에다 내가 뭘 해놨다. 자식들이 서운해 할까봐 얘기 못할 수도 있잖아. 근데, 하지말아야 될건 있어. .. 자식들 돈 들어 갈까봐 삼베로 다 해놓잖아. 다 쓸모 없어 그런거... 자식들 생각해서 아, 내가 뭐 해놔야지 이런거는 생각하지 말고..


영정사진 같은 경우는 내가 젊었을 때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을 때, 웃을 수 있는 표정, 몸이 아프고 찡그려진 상태에서 찍으면 안 이쁘게 나오잖아. 근데 사람이 나와서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는건 순리야. 그거는 거부할 필요도 없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는거야.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뭐 내가 이런 얘기 하면 안되지만, 내가 먼저 갈지 어떻게 알아. 아무도 몰라.


김영희 : 그건 아무도 몰라요~ 가는 순서는 없는 거예요.

전병석 : 그래서, 어짜피 이렇게 준비해놓은거라던지 이런 것들은 자식들이 알아야 돼.

 

결론은 적당히 나이 먹었을 때 찍어두는게 좋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뜬금없이 달맞이학교 학생들과 가르칠 선생님을 모집하란다. 홍보위원장이 백순복할머니인데 직무유기인가보다. 그래서 또 한바탕 웃었다.

    


백순복 : 우리가 공부가 늘었어.

조금순 : 무엇보다 받아쓰기 하면요, 제일로..

백순복 : 제일로 백점 받고..

 

서로서로 점수 받은 자랑들을 한다. 공부가 안된다, 못한다, 공부 안했다 하면서도 받아쓰기를 할라치면 무척이나 진지해지고 받침 하나 틀리는 것에 큰일난 듯 난리법석이다. 백점을 맞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앓는소리를 해도 할머니학생들의 이구동성 일치된 말은 다 잘해요~”.

 

백순복 : 공부 안 하면 떨어져

조금순 : 머리 차이겠지요, 머리 차이~

김영희 : 산수는 아직 잘 안되더라고, 어저께 첨 나와서 했는데 산수 참 못하겠더라고.

전병석 : 돈으로 물건 사는거로 하면 잘하잖아.

김영희 : 근데 그게 글씨로 하려니까 잘 안된다니까, 선생님!

조금순 : 그러니까 방식을, 방식을 몰라요, 분명히 숫자도 아는데 그걸 갖다가 찍어 붙이는 짓을 몰라 가지고. 가르쳐주면 잊어버리고, 가르쳐주면 잊어버려..


김영희 : 어저께 이걸 갖고 하라고 했는데, 난 하나도 안해서 빵점이야

전병석 : 못나오셨잖아, 그동안..

김영희 : 제가 한 5개월을 딱 빠졌어요, 수술해가지고...

백순복 : 양 다리를 다 수술 했어.

전병석 : 동함어머님만 늦게 들어오셨는데 너무 잘하셔.

이동함 : 아니야.. 공부 못해요, 진짜 못해.


전병석 : 그런데 사실, ... 제가 여름방학 끝나고 나서 한동안 뭐 때문에 못 오다가 주말에 와서 받아쓰기를 했는데, 글씨를 너무 이쁘게, 글씨체도 너무 이쁘고. 그리고 맞춤법 이런 것들을 너무 잘 하시는 거예요. 제가 너무 놀래가지고 사진 찍어서 선생님들 방에 올렸어요. 너무 예뻐서. 그런데 국어공부는 너무 잘하는데 수학만 나가면 막.. 머리에..

조금순 : 쥐가나서~ 머리에 쥐가 나서~

전병석 : 백순복!! 반성!!! 어떻게 그렇게....

백순복 : 아니 진짜 지금도 구구단을 못 외워.

전병석 : 어떻게 해야 산수 공부를 잘 할수 있을까?

김영희 : 잘하시던데 요새. 어제보니까 잘하던데


전병석 : 이렇게 막 얘기하다가, 수학 들어간다고 하면 그때부터 아무 얘기를 안해.

김영희 : 그거는 계산하느라 말을 안 하는거지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죠.

백순복 : 그건 모르는게 아니지, 기가 팍죽어서 그르지.

김영희 : 기가죽어? 형님이 기죽을 날이 있어?

백순복 : 기죽어서 안돼.

전병석 : 아유.. 수학만 들어가면 기죽어.

조금순 : 저는요.. 이게 이게.. 수학은, 숫자는 여기서 접했어요.


백순복 : 저도 수학은 여기서 터득했고, 국어는 복지관에서 쪼금. 5년 다녔죠. 5년 다녔는데, 책 한 권 가지고 배우다가 선생님이 가르쳐주면 가방 픽 내버려두고 다른데 돌아다니고 다른거 해. 공부를 안했어. 공부를 못했지. 그래서 공부가 영 안 늘었어. 근데 여기와서 선생님이 가르쳐주고 이렇게 받아쓰기를 하니까, 이거를 내주니까 공부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어.


안하면 여기와서 빵점 맞거든. 그래서 해야 돼. 전에 여기서 다니던 양반이, 초등학교 졸업해서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졸업증까지 여기서 땄어. 저 미장원 그 사람 누군지 이름을 모르겠네. 그 분이 좀 와서 학교.. 여기와서 좀 살리라고 그러더라고.

조금순 : 그분이 하필 마지막에 그 분 혼자 남게 생겼었어요.

백순복 : 이 학교 살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김영희 : 우리는 주위에서 사람들한테 얘기 듣고 여기를 와 보니까 그양반이 공부하고 있더라고. 그분이 우리 4층 아는 언니하고 이분(조금순)하고 알아서....


김영희 : 저는 처음에 한글을 딸이 데려와서 넣어줘서 알았어요. 우리 큰 딸이, 엄마 복지관에 이런게 있으니까 엄마 나랑 가서 접수 해줄게 엄마 다녀봐 그래갖고 이 한글을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이제 복지관을 다니다가 오니까는 모르겠는데 처음에는 제가 서울에서 다녔어요. 하기는 10년도 넘었어요. 내가 이 한글공부를 시작한지는. 한 십년도 넘어서 서울에서 한 6개월을 다니다가 근데 또 방학이니까 지금 여기 마냥 방학을 하고나면 똑같이 몰라지는거야.


이게 방학을 하면 확실히 몰라지더라고요. 그게 왜냐면 집에서 우리 학생들 마냥 공부를 하면 그걸 안 잊어 먹는데 방학 때는 책 놔두고 다 딴 일만 하다 보니까 오면 똑같이 되풀이되는거야 이게 자꾸. 숙제 같은건 없으니까.


백순복 : 아니 내줘도 우리는 학생들이랑 틀리잖아요. 집안 일이 있고 자식들 돌봐야되고 할 일도 있고 김치도 담그고 새끼들 먹을 것도 해줘야 되고, 그리고 일이 많아요. 솔직히 말해서 집에 가면 일이 많아. 자식들이.. 나는 넷이나 되니까 이 자식 들다봐야되고 저 자식 들다봐야되고 요놈도 들다 봐야되고... 그리고 또 밭농사도 쫌 짓고...


애들은 그래요, 어머니만 위해서 그냥 공부도 하고 그러고 살지 왜 그러냐고 그러는데 그렇게 안돼요. 아니 그래도 반찬 고런거는 해서 새끼들 갖다 주면 새끼들이 맛있게 먹으니까 맛있게 손주들도 먹으니까 그런거 볼려고 일하지.


조금순 : 이게 늦게 공부하고 싶긴 한데, 집에 가믄 뭐하든지 바뻐가지고 들여다볼 시간도 없고 도우미를 둘 수도 없고.

백순복 : 그래서 잊어버려.

조금순 : 볼 시간이 없어요 집에가면요. 도라지도 까고, 콩도 까고...



전병석 : 그런데 봐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두 시간, 여기서 공부하잖아, 매일. 그리고 시험볼려고 여기 조금 일찍 와서 막 연습하고 시험 보는거 아냐. 그러면 두 시간 반, 이 정도 공부해서... 솔이, 하루에 몇시간 공부해?


이 솔 : ... 두시간 반 하고 그러고나서,... 그러고 나면 피곤해요.

전병석 : 그치, 애들도 두시간 반이상 잘 공부 안 해. 대걔 많이 하는거야.

이한순 : 그런데 애들은 젊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


김영희 : 근데.. 제가 해보니까.. 한계가 있어요. 어느 정도가 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머릿 속에 안 들어가요. 수업까지 들어갈 뇌가 없나봐요. 그냥 이렇게 슥 보면은 받침이 안 되는거예요. 국어가 쓰는 게, 그냥 책을 읽는 거는 읽겠는데 쓰라고 그러면 제가.. 이제 애들이 저한테 그래요. 엄마 그러지 말고 편지를 써봐요. 그래서 제가 가끔 걔들한테 편지를 써주면은 내가 말하는 글씨로는 다 맞다는거야. 근데 받침이 하나도 안 맞았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안되니까 우리가 나가서, 저는 은행 같은데서 막 쓰려고 하면, 어휴 사람들이 보는데 한글을 몰라서 못 쓰는거 아니냐고, 그럼 주눅이 들어서 밖에 나가서 글이 안돼요.

백순복 : 쓸라고 하면 손이 떨려.


김영희 : 집에서 써보면 예쁜데, 나가서 쓰면 삐뚤빼뚤 지렁이가 기어가는거 같애.

전병석 : 우리 영희어머님은 한 다섯 달 정도 중간에 못 나오셨잖아. 못 나오시는 동안에 남아서 다섯달 동안 쭉 해오신 분들은 제가 느낄 정도예요. 글씨를 쓰는거라던지 어, 지금 보면 받침 있는 것도 잘 쓰시잖아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거는 의사 소통만 되면 되요. 우리가 어디가서 드러낼거예요? 예전 생각을 해봐, 읽지도 못하고 쓰는 거는 언감생심이었지. 지금은 웬만한 건 다 읽잖아. 그러니까 대걔 잘하고 있는 거야.


김영희 : 이게 매일 하니까 아무래도 좀 많이 늘어요. 왜냐면, 복지관 같은데서는 일주일에 한, 두 번 많이할 땐 세 번 하는데 여기 와서 매일 하다 보면은 아무래도 더 늘겠죠, 공부가.전병석 : 예전에 이제 아픈 상처가 있는데, 사실 이게 검정고시 준비하시는 중등 중학교, 그 분들이 위주였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이렇게 왔는데, 그 검정고시 준비하시는 분들이 선생님 달라붙어서 하고, 사실 어머니들은 곁가지야 곁가지. 곁가지였어. 좀 방치되다시피해서 또 수업도 잘 안되고. 그런데 이제, 제가 좀 약간 화가 나서 어찌됐든 이게 아닌거 같아서 이 분들이 더 중하고 그 분들은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데서 할 수도 있고 중심을 어머니들한테, 읽고 쓰고 계산 하는 게 더 급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이게 주가 되야 될거 같아서, 그래서 제가 교통정리를 했어요.

백순복 : 선생님이 애를 썼지.


전병석 : 여기 수업하러 오신 선생님들도 서로 몰라요. 학생들도 선생님을 처음 봤지. 저는 시간도 배당해주고 온전히 선생님들이 학생들하고 시간표 정해주면 그 시간에 와서 수업을, 정해진 수업을 하고 그 수업 내용을 선생님들 카톡방에 올려요. 그러면 그 다음 분이 그걸 보고 아, 내가 다음 번에 가서 수업을 어떻게 해야 되는구나 이런 식으로.. 제가 교무회의를 소집해서 그렇게 정리를 하고... 수업을 하려고 오셨는데 선생님이 안오신거야. 그게 이제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거지. 그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회의소집해서 할머니들 위주로 모든 기준을 바꾸고 하면서... 성적도 많이 올랐죠? 그쵸?

조금순 : 쪼끔은 나아진거 같아요.



전병석 : ... 여기에 마을 현직에 있는 선생님이 아홉분? 마을 활동가로 수업도.. 선생님이 참여하는 분 한 분해서, 어른 선생님은 열명. 학생선생님은 스무명.

백순복 : 지금 다 몰라요. 공부나 엎어져서 하나라도 더 배울라고 눈을 까대고 하는데 선생님 얼굴을 제대로 못 쳐다봐. 진짜여. 몰라. 대화도 잘 안하고 그냥 책만 들여다보니까 시간이 가는게 아까워서 한자라도 배울라고. 옆에서 가르쳐주면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봐. 헤어지면 그만이야. 선생님 얼굴도 어디가서 만나도 몰라.

 

조금순 : 학생선생님들은 더 잘해요. 피곤한데도 같이 해주고, 그러는거보면 뭐 미안하죠.

백순복 : 나도 솔직히 말하지만 뭐, 손주도 있고 또 이렇게 학생 손주도 있고, 우리 애들을 쳐다보고 이 학생들 쳐다보면 안쓰럽고 짠해. 와서 공부 가르쳐주는거 보면.. 집에서는 어리광부리고 엄마한테는 애기처럼 멋부리지... 여기 와서는 선생노릇을 하고 가잖아. 그러니까 너무 짠하고 안쓰럽더라고.

조금순 : 그래도 괜찮지 선생님 소리들으니까, 그치?

백순복 : 우리 손녀 딸 오면 그래요, 할머니 나~ 그러는데 그런 어리광부리고 사는 사람들이 여기와서 선생 노릇하고 갈려면은 쫌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좀 짠한 마음이 들더라고.

김영희 : 학생선생님들도 경험 쌓는거예요, 이거. 그쵸? 지혜를 얻어가는 거야, 선생님들도.

백순복 : 자기집에서는 어리광부리고 그런거 있을텐데 여기와서는 선생노릇...

전병석 : 우리어머님들이 이렇게 말씀을 되게 잘하셔요.

 

손주 얘기가 나오니까 대화가 끝이 나지않는다. 웅얼웅얼, 수다수다 굉장하다. 선생님 복 터진 여섯할머니학생이다.

 

이동함 : 우리 살아가는 인생에, 모든 것을 자식한테 넘겨주고 싶은 것 보다도 내가 이리이리 하고 살아왔다, 자식한테 그거를 내가 말로는 표현이 안되잖아요. , 말도 할 수도 없고. 근데 이제, 그 편지를 쓰면 편지를 쓰고 죽고 난 뒤에 애들이 보면 참, 이 엄마가 얼마나 인생이 고달프게 살아 왔다는거, 그거를 알 수 있겠나. 몰라도 괜찮겠지만은 그래도 알리고 싶어, 왜그러냐면은 어려서부터 평생을 이 나이 들어..


참 병원생활을 오래 했더랬는데 오빠들은 다, 세 사람 다 떠나버렸지, 인제 동생이 동생 셋 밖에 안 남았어. 근데 내가 여자라서 그렇지 밑에 동생이 셋이 있어요. 그런데 동생도 하나가 작년에 죽었지. 그러다 보니까 동생이 둘 밖에 없는거야. 둘하고 나 밖에 없는거야. 그러다 보니까 나는 사연이 참 많아요.


그래서.. 이거 쓸줄만 알면, 이거 편지 한장을 쓸 수 있으면 내가 책을 낼 정도로.. 정말로.. 자식한테 다 물려주고 싶어. 그것 뿐이지, 뭐 돈을 물려주고 이런 것도 아니고, 이제는 뭐 할 필요도 없고 자식한테 신경 쓸 일도 없고, 마음 편해요. 편한데 내가 요놈 배우지 못해. 다른거는 보면 되는데 이거는 그, 어찌 이리 안들어가는지, 머리가 돌아서면 잊어버려.. 그게 제일 한이 맺혀요. 한이 맺히고..


조금순 : 우리는 6.25 전쟁 때, 1학년, 3개월 되가지고 6.25 전쟁난다고 선생님이 오지 말라고 그러더라고. 그 뒤론 학교 발 못디뎠어요.

    


전쟁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때로 기억들이 소환되는 듯 눈동자가 마구 움직인다. 회상하면 어렵고 무섭고 끔찍했던 그때 그시절... 해방 후 6.25 사변을 겪었던 나이는 초등 저학년 시절이었겠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먹고 사느라 고된 삶을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조금순 : 3개월하고 나니까 북한에서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 내일부터 학교 오지 말아라 하는데 얼마나 겁이 나는지., 진짜 빨갱이가 무슨 동물인줄 알고, 언니가 있는 사람들은 동생들 업고 가는데 나는 언니도 없고 동생도 없고 제일 외로웠거든요. 외동이야. 그러니까 나혼자 오줌을 질질싸면서 막 도망을 갔어. 그래가지고 엄마엄마!!! 북한에서 빨갱이라는 동물이 내려들어온다고 오지 말랬어. 우리 엄마가 껄껄 웃으면서 야. 빨갱이가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다, 걔 북한 사람이다 그렇게 살았어요, 그때 우리가.


전병석 : 저기... 한순이어머니,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공부를 안했잖아. 그 얘기좀 해줘.

백순복 : 여기는 자기가 학교를 안가서 안댕긴거죠. 부모는 가르쳐줄라 했는데.

이한순 : 근데 사람들이 못 살아서 공부를 안했다고 하잖아요. 근데 나는 내가 안해서 안간거야. 그냥 뭐... ... 별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 뒤로 학교를 안갔어요. 뭐 근데 그게 옛날에 어릴 때니까 국민학교 들어가서 1학년 정도 됐는데 아주 시골에 교감선생님이 있는데 혼자 살았어요. 그 교감선생님이 친구들하고 같이 집에 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 친구는 뭐 사러 보내고 같이 보내야 되는데 애 혼자가면 무서울거 아니예, 뭐 사러 가면. 근데 혼자 있는데, 선생님이 이상하게... 그래서 그 뒤로부터는 겁이나서 학교를 안갔어요.

백순복 : 그래서 학교를 안갔어..


전병석 : 그런 일이 있었어?

이한순 : 우리 시골에서는 사는거는 괜찮게 잘 살았는데 엄마, 아부지는 학교를 안가니까 또 보낼라고 애를 쓰고, 또 집어 넣었는데 며칠 지났는데 안가버리고. 시골이니까 학교가 없잖아요. 이십리 밖에 넘어가야 있고 하니까. 그래서 안갔는데 결국은 나는 안갔어. 안갔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다른 애가 또 그런 일을... 했나봐요. 그래서 그때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 선생님이 교감선생님인데 그때 연세도 많은, 지금 보면 엄청 많았는데 할아버지 같았는데 다른데 전근갔다 그러더라고. 또 내가 그런 이야기를 엄마 아버지한테 하지도 않았어. 그냥 무조건 안간거야.


전병석 : 그러니.. 그 기억이 얼마나...

백순복 : 그 사람은 평생 그거를 지고 살잖아, 그러니까 얼마나 거시기 하겠어.

이한순 : 근데 그렇다고 내가 뭐 당한거는 아닌데, 지금 보니까... 애들 뭐 성폭행이잖아요. 좌우지간 교감이 바지를 벗길려고 애를 써서 그렇게 싸우다가 결국은 친구가 왔지. 그래서 그 뒤로는 안간거지. 내가 뭐 지금 그거 말한다고 내가 나쁜것도 아니고, 또 단지 내가 학교를 못갔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가만히 안있었겠죠? 옛날에는 그랬어요.


김영희 : 몰랐었으니까. 그래도 부모님 한테 얘기를..

백순복 : 옛날에는 나만 알고 넘어갔겠지. 너무 옛날이었으니까 놀라기도 하고.. 여덟살, 아홉 살인데 감당할 나이가 안됐지. 무서울 뿐이야.


전병석 : 지난 번에 이 얘기는 안했잖아요. 학교를 안갔다 했지. 아유~ 껌좀 씹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

백순복 : 이 사람 보니까 껌 씹을 사람은 아니여. 착해.

전병석 : 저기, 연예인 태희언니는 공부를 못하셨을까? 얼지말구, 말만 시키면~ 시키지 말라고 협박이나 하시고! 빨리 얘기해!


백순복 : . 6.25.. 내가 해방되고 그 난리통에.. .. 뭐 잡아다가 죽이고 그랬잖아. 학교는 무슨.. 좀 있다가 스무살 먹어서 일찌감찌 시집갔어.


조금순 : 난 혼자 컸으니까 뭐, 남자가 무슨 존재인지도 모르고 그냥.. 집이 쬐끄매. 동생이 열 살이 먹도록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 없으니까 동생 키울려고 그 옆으로 갔는데 가보니까 차라리 동생 빼놓고 혼자 살걸 싶더라고. 남의 새끼 안 거둬주더라고.

 

이동함 : 6.25사변 때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위에 오빠가 세명이나 있는데, 남자는 가르쳐야 되고 여자는 학교를 가면 무슨... 오빠가 셋이 있고, 셋 다 교수질 하고 있고, 그 정도로 다 배우고... 부모들이 지금 생각하면 돌아가시고 없지만은 너무 원망스러워. 6.25 전쟁이 나도 집에서 어떻게 숨어가지고.. 나는 그 어리니깐 업고서 댕기고 뭐 피난가고 방공부대인가 거기도 들어가보고, 그리고 전쟁이 났지, 태어났기를 그럴 때 태어났기 때문에 6.25를 다 겪고 보니까는 아들은.. 오빠는 대구에서 교수까지 하는 사람이예요.


오빠 셋은 다.. 그래도 우리 큰오빠는 교수생활 해가지고 참 괜찮은 사람이었고, 둘째 오빠는 또, 선생님질 하다가 이래 됐는데, 그러다보니 나이 스물일곱살 때 병들고, 내가 몸이 참.. 어렸을 때 병치레 많이 했어요. 죽었다고.. 죽었다고 보자기에 쌌다고 하더라고. , 그 무슨 병이야.. 그 옛날에 염병인가? 그런거 걸려가지고 보자기에 싸놔놓고 그래놓고 죽었다고 내를 밀어놨대요. 밀어놨는데, 그 이튿날 컥컥 그랬대. 그때가....한 다섯 살쯤? 네 살이나 다섯 살쯤. 어려서 그랬어요. 내가 아홉 살 안되서 전쟁이 나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전쟁나고 가다보니 오빠들은 6.25사변 때 피난 다 가고 거제도라고 하는데 왔어요. 거제도에 와 갖고 좀 더 살다가 부산으로 갔어. 오빠들은 전부 다 쭉쭉 다 갈라진거야. 갈라져갖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은 부모가.. 내 밑으로 또 7남매여. 밑에 남동생이 셋이 있고 오빠가 셋 있으니까 나는 외동딸이었어요.


딱 중간에 있었는데, 근데 오빠들이 다 흩어져갖고 성공을 해갖고 잘 되었고, 나는 그 참 나쁜 병에 걸리다 보니깐 평생에 그카고서리, 그럴땐 학교가 어떤건지도 모르고 먹고 살기 어렵다 보니까는 부모가...

백순복 : 딸은 뭐 안가르쳤어 옛날에.


이동함 : 딸은 뭐 학교란건 문 앞도 몰랐어. 그런데 나는 그리 6.25사변 때 전쟁나고 이리 끝내고 와서 이리 살고 있어. 부모가 데리고 있다가 못사니까 시집이라도 보내야 되겠다고 시집을 보냈나봐요. 근데 그때만 해도 철이 너무 없었어. 나이 스물 여섯 살이 됐는데...

    


시집 가는 나이에 대한 이야기로 또 한동안 말들이 섞인다. 누구는 몇 살에 갔고 누구는 몇 살에 갔다는 자기의 이야기 끝에 스물 여섯 살에 갔어? 늦게 가셨네...

 

이동함 : 아주 농촌으로 갔는데 그 전에 아픈게 많아서 죽을 고비를 몇을 넘겼어요. 누구 말대로 옛날에 귀신 걸렸다 할 정도로 내가 몸이 안좋았어요. 평생을 몸치장만 이렇게 하고 살았어요. 남동생들은 셋 다 공부 많이 못하고, 오빠 셋만 공부를 그리 잘해갖고.. 다 각각으로 나가고.. 6.25 사변 때 피난나서 같이 살았는데, 큰 오빠는 서울에 살고 작은 오빠는 대구가서... 갈라져서 살았어요.


옛날에는 먹고 살 때 비지밥을 먹고 살았어요. 비지에 뭐 정말로 별 희한한 밥을 먹고 살았어. 6,7년 만에 오빠를 만나게 됐어요. 나를 이제 보낸다고 보냈는데 참 가는데 마침 외동아들한테 가게 됐어요. 그 사람한테 왜 갔냐면은, 그 사람한테 가면 내가 산대요. 옛날에는 점하는데도 많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부모님이 날 살리기 위해서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그러니깐 이리저리 다 다니면서 물었는데, 거기다 시집을 보내면 산대. 나는요, 시집 가 갖고 아들을 시집가자마자 둘을 낳았어요. 둘을 낳고, 그쪽이 외동아들이 4대 외동아들이예요. 가는데 참 사는 거는 괜찮게 잘 살더라고. 잘 살고 그러는데, 그저 어른들 시키면 시키는대로 살고 참 여자처럼 살림만 살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살다가 내가 가야될건데 남편이 십년도 못 살다가 떠나버렸어요.


그리되다 보니까 평생을 내가 고생을, 시어른들하고 같이 살게 되었어요. 그래가지고...

전병석 : 기회를 안준거야...


이동함 :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게, 공부란 글자도 몰랐고 이거 생각도 해볼 여유가 없었어요.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까는. 다리를 작년에 수술을 했었어요. 양쪽 다리에 관절로. 수술을 하고 나서 집에 누워있으니깐 답답하고 처음에 아플 때는 그런 생각도 없었는데 몸이 조금씩 낫고 집에 혼자 있으니깐 답답해 못견디겠고, 이리.. 이것도 모르게 살아 왔어요, 나는요.


그리 살아 왔기 때문에 모르고 밖에 나가면, 뭐 정말 낮선 사람이 길에 다니면 아줌마들하고 그저 앉아서 얘기나 몇마디 하고.. 그러다 보니까 아줌마들이 어디 가자고 하면 나도 어디 따라 갈 수 있으면 따라 가보자 해서 이리 따라 갔어요. 그런데 여기에 두달도 안된, 전에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복지관에. 그 선생님이 그렇게 답답하신데 취미생활을 해요라고 하더라고. 취미생활을 내가 뭘 하겠노 싶은 생각에 내가 죽기 전에 편지 하나라도 적어놓고 죽어야 안되겠나. 그게 머릿 속에 떠오르더라고요, 아플 적에.


그래서 내가 , 그러면 나 어디가면 배울 수 있어요? 학교는 못 다녔고, 어디가면 배울 수 있을까요?’ 그러니깐 여기 복지관이란데 가서 처음에, 처음에는 노래교실에 가려고 했어요, 마음이 답답하고 정말로 너무 그러니깐..


김영희 : 뭐 가르치던 선생님이예요, 거기 살았어요?

이동함 : 아니, 그런데 내가 여기 이사온지가, 이사 왔거든요. 원래 내가 안동이 고향이야. 근데 여기 이사와 가지고, 여기 온지 17년 됐거든요. 되기는 오래 되어도 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그래서 세상을 모르고 살았어요. 모르고 살다가, 진짜 몰라요.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아들이 장가를 가고, 이러다보니 손자가 생겼잖아요. 손자가 오면, ‘뭐 이,이는 사.’ 그러는거예요. ‘너 뭐하니?’ 그러니까 애가 구구단 외워요!’ 이러대! 그러면은 나도 좀 가르쳐줘, 그러니깐 할머니! 나한테 돈주면!’ 그래서 그때 배웠는게 머리에 있었나봐요. 지금 조금 하는거 보니까...


김영희 : 그럼 구구단은 다 알아??

 

구구단을 다 외운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을까, 부러움이었을까... 구구단이 주제가 되어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마디씩 한다.

    

이동함 : 그래갖고서리.. 배웠는데, 하다보니까는 어떻게 되더라고요. 여기에 그런데 복지관에 이 언니(백순복)가 나를 여기에 공부하러 가자고 해.. 그래서 처음 소개를 했어요.


백순복 : 내가 꼬셨지, 여기 오라고.


이동함 : 그래갖고 복지관에 가자마자 그 이튿날에 여기에 왔어요. 그리 왔는데 정말 너무 고맙고, 근데 배울 기회는 솔직히 말해서 이게.. 하나도 몰라요. 이런거는 집에 가져가서 연습이라도 해보잖아요. 근데 부르는건 한 자도 못써요. 정말로. 그런데 산수는, 이게 단순히 좀 있어도 풀겠더라고요, 내 자신이 혼자서. 분수도 어느 정도 풀겠고, 곱하기도 어느 정도, 빼기도... 근데 그거는 하는데 이거는 한 글자도 몰라요. 한 자도 몰라요.


전병석 : 아냐, 잘했어.

백순복 : 잘해. 그런데 뭘 몰린다 그려.

조금순 : 가진 놈이 죽는소리 더 하는 거야.

김영희 : 원래 아는 사람이 더 죽는소리 하는 거야.

이동함 : 괜히 올려주느라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잘 몰라요.

전병석 : 아니야, 잘 하시는거야.


이동함 : 그래서 지금 몇 번 쳐서 이런 것도 하니까는, 아 내가 다른거는 다 별 생각 없고 이 글자를 알아서 쓸 줄만 알고 하면, 편지 한 장이라도 써놓고 죽으면 자식한테 유언을 하듯 해놓고 죽어봐야 되겠다 싶은 그 마음이 생겨져 갖고 이걸 하게 됐어요.

 

모두들 일제히 박수를 친다.

김영희 : 근데 그게, 집안에 배운걸 좀 이렇게 붙여놓고 하고 싶어도, 솔직히 사위들이랑 이렇게 오면 챙피해서 못 붙이겠어. 딸은 노트도 사다주고, 책도 사다주고 다 해요. 그런데 내가 그냥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하지.

 

자식 얘기가 나오니 또 서로 수다삼매경이다. 만담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잠시 기다린다.

 

김영희 : 내가 여기 들어온지가 10년 됐거든요? 근데 그 동안에 내가 손주들을 봐주느라고 이런 거를 손을 떼고 있었던거야. 서울에서 이제 좀 배우다가, 그땐 진짜 너무 재밌더라고요. 처음에 배울 때는 머릿 속에 쏙쏙 들어가고. 그때만 해도 내가.. 육십이 안 됐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한해한해가 달라. 진짜 틀려요. 지금 2학년짜리를 내가 여섯 살 때, 다섯 살 때는 애들 그 동화책 같은거를 읽어주면 애가 할머니 같이 읽지 말구, 엄마 같이 읽어 달라고 하는거예요. 할머니는 엄마같이 읽어주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는 거야. 공부를 못한게 너무 가난하다 보니까..


양평이 고향인데 형제가 5남매예요. 딸 넷에 오빠 하나... 오빠가 난리를 겪고 와서 이렇게 있었는데 오빠가 한 얘기는, 그 겪은 경험은 나는 모르는데 그 난리통에 왜 옛날에 산에 같은데 가면 피난 겪고 나서 그.. 그 뭐 터진다고 그랬지? 우리 왜, 총알같은거 터지는거 있잖아요, 그걸.. 지뢰가 터진다고...


그런데 이제 오빠가 친구들하고 네 명이 산에 올라갔었던가봐요, 양평에서. 올라갔는데 집에서 이제 엄마가 들으니까 뭐가 펑! 터지는 소리가 났더래요. 엄마가 집에서 점심을 잡수다 말고 들으니까.. 그랬는데 조금 있다가 보니까 애들이 산에 올라가서 뭘 밟아가지고 애들이 다 죽었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엄마도 이제, 오빠가 있으니까, 그 자리에 없으니까 쫓아갔었을거 아니예요. 쫓아갔는데, 세명은 아주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엄마가 올라갈 때는 헬기가 내려와서 싣고 갔대요. 아주 죽은 사람은 놔두고 오빠하고 오빠 친구하나 하고는 숨이 붙어있었던 거야. 그랬는데 엄마가 제일 먼저 거길 뛰어간 거예요.


그러니깐 헬기가 내려와서 미군이 내려와서 엄마를 같이 싣고 가버린거야. 그러니 뭐 말이 통할줄 알어, 뭐 옛날에 전화가 있어.. 그렇다고 엄마가 한글을 알으니 편지를 쓸 수가 있어요..


그래갖고 한 3년 동안을 아예 소식이 없이 살았대요. 그러니까 우린 엄마도 죽은 줄 알고 오빠도 죽은 줄 알고 다 죽은줄 알고 살은거야.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미치신거야, 반 실성을 하셨던거 같아요, 친정 아버지가. 그냥 남의 나라에서 있는거니까 엄마는.. 그 자리에서 태워서 간게 서로 소식을 모르고 살은거지.


오빠는 병원에서 누워 있고, 엄마는 거기에 가서 그.. 빨래 같은거 해주면서 얻어잡수다시피 하고 이러고는, 2년을 그렇게 사셨대요, 엄마가. 돌아올 때는 데려다줬대, 헬기가. 엄마랑 오빠가 어느 정도 나으니까 데려다 주더래. 병원에서 치료를 해준거지, 미국에서.


그래가지고 오빠가, 자기 창자가 다 안되서 이식을 했었대요. 그래갖고 우리 친정 오빠가 한 열여섯 살 때까지는 오줌을 잘 못 가렸어요. 지렸었어요. 그래서 오빠도 학교란 거는 못 가봤어요. 오줌을 지리는거야, 바지에다가. 그걸 못참아서.. 엄마가 와서 보니까 식구가 다 거지같더랬지.


아부지는 그냥 이상하게 실릉실릉 해가면서 다니지.. 뭐 언니 둘은 남의 집에 다니면서 얻어 먹으면서 그냥 나 데리고 이렇게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사는게 오죽했겠어요. 큰집에서는 큰 올케가 우리 밥을 안줬대요. 작은집이니까 뭐 엄마도 없지 그러니까 내가 왜 저 군식구를 맡나 이런 식이었겠죠.


엄마가 들어오니까 아주 본 척을 안하는 거야, 엄마가 왔는데도. 이게 짐을 더 받게 생겼으니까 그랬겠지. 그러니까 우리 친정어머니가 내가 너한테 밥 안얻어 먹고 너 옆에서 신세 안지겠다 그러고 우리를 데리고 강원도 횡성이라는데를 갔어. 횡성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둔내라는데가 있어요, 둔내. 횡성에서 70리 더 들어가요, 시골로. 거기 가서 엄마가 밥도 얻어다 먹이고 뭐 별짓 다 했겠지.


그러면서 우리를 길렀는데 아버지는 결국 이걸로 인해서 둔내와서 한 삼년? 동생하나 더 낳고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살기 힘든데 공부 가르치겠어요? 먹을 것도 없는 입장에서.


그러는 바람에 저도 학교 마당이라는 거 자체도 못 가보고. 언니들은 아까 선생님 말대로 열 여섯살에 시집을 보내버리고, 엄마가 한 입이라도 던다고 보내버리고. 엄마가 남의 집에 괜히 애들도 봐주고 돌리다 보면은 그 집에 머스매 애들도 건드려 놓으면 괜히 애만 버리니까 아예 짝을 지어 줘야 된다고 해서 둘째 언니는 열 일곱 살인가, 시집을 갔어요.

 

이솔 학생선생님은 열여덟살이다...

 

김영희 : 그러고나서 이제, 서울을 갔었는데 가니까 경찰집이더라고요. 그 집에 아들만 둘이예요. 그러니까 제가 복이 없는 거예요. 그때 4.19 혁명인가, 그게 나가지고 나 거기 서울가서 한 3개월 됐는데, 그게 일어나서.. 진짜 나가서 뭐 총을 쏘고 난리인거야, 데모를 하고 길에서. 그러다보니까 그 경찰이 짤려버렸어요. 짤리니까 자기네 식구도 못 먹고 사는데 학교 안가르치고, 맨 식모마냥 일을 시키는거야. 빨래해야지. 물길어와야지. 밥해먹여야되지 그런데도 저 같은 경우에는 , 이번에는 엄마오면 얘기해야지 꼭 따라가야지그럼 이제 엄마가 일년에 한 두 번씩은 왔었어요, 날보러.

 

그때가 떠올랐는지 끅끅대며 운다. 굵은 눈물방울이 마구 쏟아진다.

백순복 : 울라면 그만해!! 맘아픈 얘기는 그만해!


김영희 : 그러다 보니깐 공부라는거는 전혀 할 수 없었고... 진짜 전 부모 원망 엄청했었어요. 엄마한테 가르쳐주지 못할 새끼를 뭐하러 낳았냐고, 전 엄마한테 막 대들었었어요,

조금순 : 넌 있어서 원망해? 나는 없어서 원망했는데...


김영희 : 그러고나서 이제 제가 좀 커서 엄마가 왔길래 엄마한테 얘기를 했어요. ‘사실 나 엄마, 이 집에서 솔직히 나 배 곯고 산다, 근데 엄마한테 정말 내가 가면 내가 밥 한그릇이라도 축낼까봐 엄마한테 난 안간다라고 말한거지, 사실 나 배 엄청 곯으면서 살았다...


저 진짜 배 엄청 곯으면서 살았어요 그 집에서. 옛날에는 청계천이나 이런데 가면, 지금도 뭐 이런 시장 같은데 가면 배추차 같은거 들어오잖아요. 그럼 그 밑에 들어가서 배추 우거지 주워다가 삶아서 밥 해먹고 그랬었어요, 저 열두살 때. 지금은 행복한거예요. 진짜 너무 행복해요. 아이들도 다 잘 커서 다 결혼해줬고...

 

분위기를 바꿔 학생선생님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솔이 : 저는 평소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맨날 공부하고 학교에만 있으니깐, 공부하기 싫다 맨날 이런 생각하고 노는데, 여기오면은 다 공부 너무 하고 싶어하시고, 그러니까 제 모습도 되돌아보게 되고, 이렇게 한글을 저한테 좋은 얘기도 해주시고. 그래서..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제가 더 많이 힘을 얻는 것 같아요.

 

한바탕 이야기를 풀어내니 쉬하고 와도 되냐부터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자고 하자신다. 가방안에 뭘 그리고 꾸역꾸역 넣어가지고 왔는지 쉴새없이 먹거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섯 인생이 쏟아진다. 밤새 들어도 끝나지 않을 한 많은 인생 들. 그렇게 힘든 시절을 살아냈기에 지금 자식들은 훌륭하게 성장했고, 인생(배움)과 맞바꾼 어머님들의 한은 자랑스럽게 주름으로 보여지고 있다. 튼 손과 갈라진 손톱은 오로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생채기이니 그 누가 그들에게 못배웠노라 말할 수 있을까... 돈 주고도 살 수 없고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를 우리는 어머님들에게서 배워야하나 감히 따라갈 수가 없다.

 

달맞이학교 할머니학생들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에 임할까? 한마디씩의 마음가짐을 들어보았다.

 

이한순 : 그냥, 뭐 일단은 열심히 하는거죠. 선생님들께 고맙고 미안하고. 어쨌든 이런 좋은 일이 있어서 행복해요.

백순복 : 저는 그냥 힘 닿는데 까지는 해야죠. 숨 떨어질 때 까지는 다닐래요. 이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숨 떨어질 때까지 여기 다닐려고.

전병석 : 아니, 자꾸 나만 얘기하면 다른 선생님들 나중에 나오면 어떡하려고~

백순복 : 그 선생님 있으면 그 선생님 한테 말하고~

정태희 : 저는 한글 깨우칠 때까지 배워야죠. 학생선생님들한테도 맨날 고맙지. 우리 맨날 이렇게 가르치느라고..


백순복 : 그럼요, 학생선생님들한테 고마워요.

김영희 : 공부를 우리가 뺏는거잖아, 솔직히 말하면.

정태희 : 그럼~ 시간을 뺏고 조금이라도 공부해야 되는데 못하니까, 우리가 미안하죠.


조금순 : 나는 뭐 와 봐도 머리에 녹이 슬어가지고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러는데, 난 이리 배우는데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이 도와주실라고 이렇게 비가 와도 오시잖아요. 어떨 때는 난 천식이 있어가지고 조금 가면 숨이 차요. 그런데 우리는 공부라도 좀 얻으러 가지만은 선생님들은 아무 도움도 안되는데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는건데, 날이 궂어서 선생님 오시는데 내가 이러면 안되지 막 어떨 때는 몸이 아파 힘들 때도 그 생각 하면서 억지로 버티고 올 때가 있어요. 몸이 너무 안 좋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이 들어...


이동함 : 저도 그래요. 하는데까지 해보려고 애를 써요. 애는 쓰는데, 그게 제대로 되면 다행인데, 안되면.. 실망이겠지만, 하는데까지 해볼려고 애써요.

전병석 : 편지, 장문의 편지를 아들한테 남겨줘야지.


이동함 : 최선을 다해 한번... 그리고 참, 솔직히 말해서 고맙기는 제일 고마워요. 내가 이런데를 어떻게 알겠어요. 근데 여기를 알려 줘 갖고, 마음속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마음 속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 와보니까, 선생님들도.. 선생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선생님이 계시다, 학생이 계시다 이런거를 알게 되니까는 너무 또 고맙고...


, 손자 같은 사람한테 공부를 배우고 있으니까 너무 고맙고.. 나도 내 손자가 있지만은 내 손자 한테 그 얘기를 했어요. 지금 벌써 고등학생 3학년입니다. 그러다가 얘기를 했어요. 느그들 이러이러하다~ 하니까 그 선생님들한테 잘해~ 할머니 잘하세요~’ 하더라만!


백순복 : 아니, 공부보다도 안 아픈게 첫째! 결석 안하는게 좋지.

이동함 : 배우지 못했어도 여기 와서 이 얘기도 듣고 저 얘기도 듣고 최선으로 나와갖고 해볼라고 애는 쓰고 있어요. 근데 사람 일이란건 모르잖아요. 그래서, 장담은 못하지만 배워갖고 성공만 할 수 있다 하면 한이 없어요.


조금순 : 이게 영광이야. 우리는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이, 아니 고등학교 선생님들께 지도를 받으니까 얼마나 영광이예요. 그쵸? 큰 영광을 얻은거야.

전병석 : 영광인줄 알어~ 영광인줄~


김영희 : 저도 이 배움의 길이란 것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과연 내가 나가서 그거를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많이 주춤주춤 했었어요. 그런데, 이게 다니다 보니까 용기도 생기고, 나도 내가 열심히 하다보면은 끝이 있겠지, 끝없는 일은 없겠지 싶은 생각으로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선생님들한테 너무 감사하고, 학생 선생님들한테 너무 고마워요.


이 솔 : 자꾸 저한테 감사하다고 하시는데, 제가 더 감사하고, 저 이거 하면서 많이 배우니까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하고 싶으셨던 공부 끝까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는 달맞이학교 파이팅을 외치며 그 날의 수다 수업을 마쳤다.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