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제8화 여자라서(가칭)

평생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말, 죽어서야 고쳐지는 병. 남편이자 아빠인 동만은 68세의 나이에 그렇게 병마의 고통 속에 눈을 감았다. 정희는 목놓아 울었다. “아빠! 고쳐주지 못해서 미안해! 살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그것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20살까지 지속해왔던 친아버지에 의한 성추행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목적인 일종의 훼이크였다. 그저 정상적인 집안에서 자란 딸로 각인됐으면 하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되지. 내가 평생 묻으면 되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영임은 눈물조차 짓지 않았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놀음과 주먹질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결혼하고 죽을 때까지 살았던 40여년이 너무도 처절하고 끔찍해서 이제 자유롭게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속에서 얻은 병을 평생 안고 살며 하루도 약을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것처럼 고통스러워도 40여년만에 얻은 자유는 그야말로 행복이었다. 직전까지 다녀야했던 건물 청소부일도 이제 하지 않아도 되니 비록 작은 평수의 임대아파트에 기거하는 형편이긴 하나 영임은 결혼 후 처음으로 느끼는 생활 속 안도감과 편안함을 누렸다.

 

엄마 그거 기억 나? 예전에 나 어릴적에 엄마가 나한테 주전자 하나 주면서 술 받아오라고. 할머니랑 둘이 마셨잖아. 오빠랑 나는 안주 먹고. 그때 좋았다? 근데 지금 엄마랑 나랑 그렇게 하고 있네?”

영임도 그때 일이 떠올려졌는제 허공에 희미한 눈빛을 고정시켰다.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서 술 한잔하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만약 술을 좋아했다면 아마도 알콜중독자가 됐을거야.”

 

그랬다. 정희가 기억하는 엄마의 주량은 그리 센편도 아니었고 그저 소주 석잔이나 막걸리 두,세잔이 전부였다. 오히려 할머니인 인순이 주량이 상당했다. 그래봐야 큰 노란주전자 반절도 안되는 정도의 양이었지만 일주일이면 이,삼일은 그렇게 늦은 밤 술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맨날 나만 심부름 시켰어? 오빠는 안시키고? 캄캄한 밤에 얼마나 무서웠으면 쓰리기더미가 사람이 웅크리는걸로 보이고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미친년 머리로 보이고 얼마나 무서웠으면 노래를 집에 올때까지 가슴 졸이며 노래만 불러댔을까..” 낮이고 밤이고 남자인 오빠보다 어린 계집아이인 정희만 심부름을 보내는게 내내 서러워 사무쳤던 정희였다. 또 외출을 하게 되면 오빠인 정헌만 손잡고 데리고 다니고 정희는 집에 혼자 있거나 아빠인 동만과 함께 있어야했다. 엄마가 집에 없고 아빠만 집에 있는 날에는 여지없이 추행을 당하던 정희였다. 아니, 아빠 동만은 좁디좁은 단칸방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붙어있을때도 이불 속에서 마수의 손길을 정희에게 뻗어더랬다. 정희의 영글지않은 그곳에 손가락을 넣고 정희의 솟아나지않은 젖꼭지를 빨고 혼자 흥분하면 정희의 작은손을 가져다 자신의 고추를 잡고 흔들게 했다. 정희는 속으로 울면서 아빠가 하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을 하거나 거부하면 애먼 엄마에게 그 화가 다 돌아가기 때문이다. 동만의 손찌검과 화는 자식들에게 향하지는 않았다. 그저 모든 화살이 영임에게로만 향하고 꽂혔다. 밖에서 좋지 않은 일을 당해도 정희가 아빠의 손길을 거부해도 영임을 향한 주먹질은 주저함이 없었다.

 

통금시간이 지나도 주먹이 날아갔다. 또 돈을 제법 벌어 상당한 현금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남을 위해 술을 사거나 끼니를 해결해주거나 집이 없어 나 않게 된다면 월세방 보증금까지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살림 살 돈이 없으니 달라고 하면 살림을 못한다며 헤프다며 주먹이 날아갔다. 영임은 후회된다고 했다. 청혼을 거절해 배 타고 나가 죽은 그 남자한테 그냥 시집갔다면 적어도 매는 맞지않고 살았을거라고. 또 후회했다. 첫 번째 주먹질할 때 단호하게 막아서야 했는데 그러지못했던 것이. 그것이 습관이 되버릴줄은 몰랐으니. 새벽에 투닥거리는 소리가 나 눈을 떠보면 서슬퍼런 동만의 옹골진 주먹이 엄마 영임의 얼굴을 연신 강타하고 있었고 흘러내는 피는 뭉쳐져 수건 가득 물든 피를 세수대야에 담가 빨때면 어린 정희는 이를 앙다물고 다짐하기도 했다. ‘내가 크면 엄마 데리고 집 나가버릴거야.’ 그 마음은 정헌도 마찬가지였다.

 

영임은 오빠인 정헌을 끔찍이 위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을 타게 했다. 하지만 정희는 내다놓은 자식처럼 막 키워댔다. 남아선호사상이란 것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비로소 속내를 털어놓은 엄마 영임은 해명했다. “정헌이는 마음이 약해서 내가 눈에만 안보여도 막 울고 찾아다니고 했지만 너는 혼자 놔둬도 잘 지냈어. 넌 어디에 내놔도 잘 얻어먹고 밝게 잘 지냈어. 그런데 오빠는 돌봐주지않으면 자꾸 다치고 마음 둘 곳을 몰랐어.” 엄마가 되고보니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아들과 딸의 차별이 심해 그 마음이 상처가 아직도 마음 속 깊숙이 유착되어있는 자신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어릴적 기억의 엄마는 무서웠다. 영임은 늘 정희에게 화만 냈고 엄하게 대했다. 하지만 오빠 정헌이에게는 무척이나 헌신적이었다. 정희의 기억 속에 아빠 동만은 남에게는 호인이요, 가족에게는 가혹했으며 특히 정희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이었다. 정희는 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집이 싫었다. 없는 살림에 방 하나 따로 주지않으면 집 나갈거라며 엄마 가슴에 못을 박고, 없는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고 싶어 술집 서빙이라도 하겠다 했더니 술집 다녀도 그런 애들이 시집은 더 잘가더라 라는 말을 할때는 친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매정함을 느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림에 보태쓰라고 하면 그땐 환하게 웃으며 밥상 위의 음식이 달라져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정희는 일찍부터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직종을 가리지않고 했다. 작은 제조회사부터 기관의 매점 서빙까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집에서는 채용하지 않았다. 아직 미성년의 딱지를 떼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고 그만큼 예쁘지도 않아서다.

 

정희는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았다. 외할아버지가 된 동만은 외손녀들을 무척 아꼈다. 아이들의 까르르 거리는 웃음을 아꼈고 날이 갈수록 잘 성장하고 있는 손녀들을 아꼈다. 아내인 영임에게만 모질게 할 뿐 다른 이들에게는 무척 잘했다. 특히 외손녀들에게는 철마다 옷을 해 입히고 종류별로 예쁜 신발들을 사주었으며 인형도 똑같이 사주었다. 먹고 싶다는 것은 뭐든 다 사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희는 불안한 시선에 집중했다. 혹시라도 부대끼며 놀다가 어린 두 손녀들에게도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작은 터치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다행히 손녀들에게 마수의 손길은 뻗지 않았다. 동만 사후 5년이 지날 무렵 스마트폰의 막강한 정보력에서 발견한 친족간 성관견 사건, 사고들을 접하면서 자신이 어릴적 친아빠에게 당했던 것이 성추행이며 성폭력 미수였으며 중대범죄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희가 그랬던것처럼 친아빠에 대한 성추행은 어릴때부터 시작됐으며 거부하게되면 그 화가 엄마에게 가는 것이 일치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결혼하면서 알게된 섹스라는 용어에 해당되는 행위가 그때 아빠 동만이 시도했던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정희의 그것에 동만의 그것이 삽입되지않아 실패한 후로 다시 어린 딸 배 위에 올라타지는 않았다. 그저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가슴을 만지고 사춘기가 지나 가슴이 봉긋 솟을 때 물고 빨고 할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스마트폰 속의 친족간 성폭력 및 성추행은 끔찍했다. 어린 딸의 성장하는 내내 친아빠라는 사람은 딸을 임신시키고 임신중절을 시키고, 믿고 의지해야할 아빠로부터 당할 수 밖에 없는 딸은 평생의 한과 상처를 안으며 자살을 하거나 혹은 용기를 내어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 지금 같으면, 만약 지금이었다면 어땠을까? 정희는 야멸차게 그러지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이 사실을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언급을 했음에도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않은 태도에 설 곳을 잃어 집을 나가 혼자 살았을지도 모를일이다. 우연히 TV를 보다 어느 유명상담사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정희와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상당히 많으며 이것을 털어놓고 상담을 통해 해소하지않고 안고 있다면 상처는 아물지않을 것이며 앙금으로 사무칠 것이라고. 타고난 밝음과 외향적인 성격, 자체 필터링이 있다는 것에 자부하는 정희가 문득문득 보이는 어두운 얼굴은 해소되지않은 그 일이 깊은 상처로 남아 미칠것같은 답답함이 나타나서일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정희는 두얼굴을 지니고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어린시절을, 성장과정에서의 어려움마저도 감히 상상못할 정도의 활발함과 밝음을 보여왔으니. 그렇다면 정희는 배우의 기질이 다분한듯도 하다. 타고난 성품이 힘듦을 자체 필터링할 수 있는 능력에 적극적이고 밝은 기운을 가지고 있으니. 반면 오빠인 정헌은 꾸준하고 성실한 품성그대로 한 길만 걷는 인생을 살기는 하나 마음이 여리고 우유분단하며 폭력적인 아빠 동만이 끔찍이도 싫고 아빠같은 사람은 되지 않으리라 했지만 아빠의 폭력적인 성향이 그대로 닮아있었다. 다만, 아내에게는 아빠처럼 손찌검을 하지는 않았다. 아빠처럼 자식에게 어두운 손길을 태우지않았으며 아내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않았다. 월급은 타는 족족이 아내에게 갔으며 남보다는 가족을 더 위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언행은 닮았으며 아빠 동만이 했던 것처럼 엄마 영임에게 그대로 가했다. 어느날 영임이 정희에게 전화를 해 하소연을 했다. “어떻게보면 아빠보다 더 해.” 엄마에게 주먹질만 하지 않았지, 폭력적 언행은 아무리 자식이라해도 끔찍하고 힘들다고. 알콜중독이 된것도 닮지않았다. 술을 잔뜩 마시고 난 다음날 고봉의 밥을 헤치우는 것은 닮았으되 동만은 알콜중독까지는 아니었다. 술을 좋아하나 그저 사람들고 아울려 놀며 술 한잔하고 고스톱을 치는 정도였다. 물론 고스톱으로 집안살림을 거덜내는 도박은 했다. 정헌은 화투에 취미가 없었다. 아빠 동만이 아내 영임에게 했던 폭력적 언행을 엄마 영임에게 그대로 하는 것을 보고 정희는 화가 나 견딜수가 없었다. 가끔 전화를 해 엄마, 자주 들여다봐라, 전화해 봐라, 엄마 아픈 것 같다, 라는 말을 하면 화가 나 견딜수가 없었다.

 

어릴적, 귀하디귀하게 자란 아들보다 천대받으며 막 키운 딸이 더 엄마를 위하며 빠듯한 살림에 한푼이라도 보태줄 요량으로 쪼개어 나누고 마음을 보듬어주면 오빠라는 작자는 그 애씀을 홀라당 다 까먹고 말로만 엄마를 위하는 척 한다. 아마도 엄마가 죽으면 못견딜 사람은 정희보다는 정헌일것이라는 것도 안다. 정헌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세상의 전부일테니까. 하지만 정희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세사의 전부는 아니었다. 다만 부모 자식간의 효를 다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은 할 것이다. 여자로 보면 불쌍한 삶을 산건 인정하니까. 그리고 엄마니까! 정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다짐한 것이 있다. 적어도 엄마처럼 자식에게 힘든 짐을 지우지는 않으리라는 것! 그저 혼자 힘들면 그만이지. 오십평생 끊이지않고 따라붙는 힘듦을 자식들에게는 절대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다짐이 강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성실하고 알뜰한 남편과 달리 정희는 친정으로부터 주어진 짐이 전혀 해소가 되지않으니 결혼을 잘못했다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다.

 

때로는 그 힘듦이 버거울 때 급 우울해지거나 낯빛이 어두워지고는 하나 우울증의 무서움을 알기에 하고 싶은 것들, 운동이나 취미생활로 어둠을 털어낸다. 그런 정희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듯 다행히 두 딸들은 세상 밝고 긍적적이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청년으로 성장했다. 힘든 삶은 내 대에서 끝내자라는 강한 다짐의 결과라고 자부하고 있다. 정희는 엄마의 생활력에 불만을 갖기도 했다. 아직 사회에 나가 모진 세상과 맞서며 치열하게 돈을 벌어야했던, 아직 어린 정희이고보면 평생을 돈벌러 나가는 엄마 영임을 보지 못한 탓이다. 정희는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물어보았다. “엄마는 왜 돈을 안벌었어? 아빠가 그 모양이면 엄마라도 나가서 돈 벌어서 자식들 교육 시키고 밥 먹이고 해야하는거 아냐?” 그때 알았다. 엄마가 돈을 벌지 않으려한게 아니고 돈을 벌기 나가기만 하면 귀신같이 찾아내 쫓아가 난리를 치며 데리고 나온 아빠때문이란걸. 다만 집에서 하는 부업을 하게했다. 정희는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들을 그 말에 미안함이 들었다. 엄마 영임은 생활력이 없는게 아니라 강제로 집에 있어야했다는걸. 그곳에서 생활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채로 살림을 했으니 그 속이야 오죽했을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생활을 해보니 그 힘듦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은 돈이라도 월급을 봉투채 쥐어주거나 퇴직금 정산을 해서 주거나 아르바이를 해서 푼돈이라고 갖다주면 그렇게 화색이 돌고 좋아했구나 싶었다. 아마도 엄마 평생에 목돈을 만진 것은 많지않은 퇴직정산금 삼백이 전부였을 것이다.

 

정희는 포기하기로 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뭐라도 했을 것 같다, 친정의 짐이 두 어깨에 잔뜩 짊어져있다, 이것은 아마도 죽어서야 짐이 내려질 것이다. 라는 무당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희는 이번 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보다하고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뿐이다. 물론 남편의 상당한 도움도 있었지만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은 문득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러다 빚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보자! 라며 이를 악물때면 이것은 엄마가 오빠가 죽으면 해소된다! 라는 몹쓸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럴때면 또 죄스런 마음으로 더욱 두 사람에게 말 한마디라도 잘하게 한다. 소위 뭐한 해준것도 없이... 라는 말이 적절한 아빠 동만이 죽어가면서도 놓지못한 직계가족에 대한 괴롭힘은 죽어서까지도 이어지게 해 엄마 영임도 오빠 정헌도 정희도 풀어내지 못하는 고통을 사후 십년에 이르러서까지도 지속하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엄마 영임이나 오빠 정헌이나 정희마저도 눈을 감아서야 풀어낼 고통의 숙제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희는 죽고나서 그 고통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몹쓸 생각이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오빠의 죽음으로 그동안 혼자 감당해야했던 모든 고통을 처리하고 죽고 싶을 뿐이다. 어느 날 정희는 딸아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삼촌에게 보증을 서 준 일이야. 그래서 아빠한테도 미안하고 나도 너무 힘들어넋두리처럼 말했지만 참 철없는 말이었다. 굳이 딸들에게 왜. 정희는 그 말을 엄마 영임에게도 했다. 그리고 서러움에 사무쳐 마구 퍼부어댔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아? 엄마는 그저 오빠밖에 없지? 뭘해도 오빠가 뭐 할 줄 아는게 있냐? 오빠가 무슨 돈이 있냐? 오빠는 마음이 약하지않냐? 나도 힘들어! 나도 돈 없어! 오빠 빚을 내가 다 대출받아서 갚아줬으니 오빤 편하겠지! 근데 난? 왜 내가 그걸 다 감당해야 돼? 몸 아프다면서 며느리 시키면 되지, 왜 그렇게 감싸? 난 엄마 힘들까봐 밥도 하지말하고하고 배달시켜먹고 없는 살림에 장도 봐주는데 왜 오빠는 지극정성 밥 차려줘? 김서방이 밥먹으러 온다고 하면 힘든데 뭘 해주냐는 말만 하고!” 나중에 들었지만 정희의 가시돋힌 말들을 들은 영임은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 말에 정희는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어쩌면 지금 정희가 엄마 영임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죽어서 후회되지않게 하려는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이기적이고 나쁜 마음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 영임의 삶은 불쌍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문득 화가 치미는 건 어쩌면 어릴적 오빠와 차별과 친아빠로부터 받은 성적학대에 적극적 해결이나 보듬어주지않은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이 남아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마음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교차되면서 정희도 건전함을 위장하며 살고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울때가 더러 있었다.

 

-----------------------------------------------------------------------------

 

눈발이 세차게 날리는 새벽녘.

간간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서행하는 차들을 옆으로 두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이가 있다. 곧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영임이다.

 

《8화 끝》 연재: 매주 금요일 업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