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본동행정복지센터의 원래 청사는 지금의 정왕어린이도서관이었다. 5개로 나뉜 정왕동 전체를 관리하던 정왕동주민센터였다. 장재철의원이 처음 시의원을 시작할 때인 2006년에는 정왕본동, 정왕1동, 정왕2동, 3개 동청사가 신축계획에 있었고, 정왕1동과 정왕2동은 지어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정왕본동은 공사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지역의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왕본동 동장에게 깊은 고민이 있는 것 같으니 찾아가 뵙고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어 보라는 내용이었다. 동장의 고민은 동 청사 건립에 관한 것이었다.
주민센터 신축건립에서 정왕1동과 정왕2동은 바닥 180평으로 지었는데, 정왕본동은 140평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40평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 공사를 반대하고 있었다. 민원을 처리하는 동 청사는 180평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동장의 말이었다.
당시 동장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하면 새 청사에서 근무하며 정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주민센터는 한번 지으면 20년 이상을 사용하여야하므로 그렇게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자동의 군자도서관과 동시에 정왕본동 신청사 짓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장재철의원은 시에 동 청사 역할의 기능에 문제점이 있다고 제기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부딪혀 싸워야했다. 시에서는 예정대로 140평을 주장하며 강행하려고 했다. 대신 한 개층을 더 올려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동장은 민원인을 대해야하는 동청사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닥 평수가 넓어야한다면서 반대의견을 냈고, 이에 당시 회계과장에게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길고 답답한 싸움은 그로부터 1년 반에 걸쳐 지속됐다.
140평, 180평... 의미가 뭘까? 시유지로 4000여 평의 땅이 있었다고 한다. 자연녹지지역이어서 건폐율 20%인데, 시가 700평으로 분할하는 바람에 바닥평수가 140평밖에 안 되는 거였다. 더 크게 900평으로 분할했다면 180평이 된다. 청사를 짓기 위해 700평으로 분할 한게 문제였다. 정왕1동과 정왕2동은 대지여서 건폐률이 60%였기에 180평이 되었는데, 정왕본동은 자연녹지지역이어서 건폐률이 20%인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140평으로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40평으로 강행해야한다는 시의 주장은,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5년이내에는 변경 할 수 없다는 법조항의 이행이다. 도시계획시설 결정이 1년밖에 되지 않아 안된다는 것인데, 천석만 당시 의회도시환경자문위원의 자문을 받아 법조항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예외조항이 있었다. 주민의 요구에 의해서 변경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정왕본동 주민의 요구에 의해 변경신청을 요구했다. 900평으로 변경하고 바닥 180평의 조건을 맞추자는 내용의 요구였다.
그러나 당시 담당과장은 법조항에 나온 주민의 요구에 의해서 변경가능....이라고 적시된 ‘주민’과 ‘정왕본동주민’은 틀리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법조항에 나와 있는 주민이 이 주민이지, 그 주민이 이 주민이 아니냐?’는 어처구니없는 논쟁을 벌여야했다. 전문위원에게 다시 물었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주민’과 ‘이 주민’이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담당과장은 계속 부정적이었다. ‘주민이 틀리다’를 고수하던 차에 도시계획시설결정이 3년 만에 변경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개인 소유의 땅이었던 군자배곧신도시 입구 주유소와 충전소가 지어진 부지가 도시계획시설결정 3년 만에 변경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따져 물었다.
“이거는 왜 3년 만에 해줬느냐? 개인 땅인데! 개인은 주민이고, 조항에 나온 주민은 주민이 아니냐?”며 문제를 삼았다. 그럼에도 저항이 심했다. 할 수없이 당시 이연수시장에게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했다. “공무원이 너무 세게 나온다.” 했더니 호출시켰다. 이연수시장은 옳다 하는 것에 있어서는 남자답게 결단하는 추진력은 있었다. 담당과장은 이만저만해서 안 된다고 또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주유소 문제를 거론했다. 옆에 있던 담당국장은 주유소건을 왜 자꾸 거론하냐며 따졌다. 같은 말의 되풀이를 또 해야했다.
충분히 가능한 것인데 하지 않으려는 업무태도가 답답했다. 지루한 논쟁 끝에 180평으로 추후에 맞춰가며 공사해주겠다 해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국장과 차를 마시며 다시 한번 다짐을 받고 일단락 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경과를 물어보니 “공무원이 어떻게 불법을 합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초선의원의 열정에 동직원이나 주민불편이 분명한 동청사 건립을 위한 일에, 말을 뒤집는 공무원의 태도에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고 싸웠다.
그 후로 변경하여 무사히 동청사가 세워졌다. 그러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정말 지겨울 정도로 싸웠다. 정작 건물은 3,4개월이면 짓는다. 행정에서 도시계획설정까지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허름하고 낡아 비가 새는 주민센터에서 벗어나 새로 짓는 건물에서 동장도 근무하고 싶었을거다. 정년 전에 완성되었으면 잠시나마 근무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신청사에서 근무 한번 못해보고 정년을 보내버렸다. 당시 정왕본동동장의 시민을 아끼는 마음, 시흥을 사랑하는 마음에 지금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정왕본동 구청사는 정왕어린이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해서 아이들에게 돌려주었다.
매번 그랬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만나면 일사천리로 일이 풀린다. 그러나 일을 하지않는 직원을 만나면 다툼이 생기고 시간만 보내게 된다. 군자성당 앞 도로를 낼 때도, 군자도서관을 지을 때도, 신길온천역 가는 길을 낼 때도 산들공원을 지을 때도 매번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멱살을 잡기도 하고 시에 들어가 공무원들의 책상을 걷어차기도 했다. 그러다 일하는 직원으로 바뀌면 일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정왕본동은 넓직하게 민원인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고, 청사 뒤 동산은 생태공원으로 가꾸게 되었다.
장재철의원도 이주단지에 살았다. 그는 군자면 토박이다. 결혼하고 시화교회 옆 3층짜리 주택에서 큰아들이 5살이 될 때까지 살고, 막내딸을 낳았다. 장사를 하던 때였다. 당시에는 외국인이 없었다.
개발로 인해 본동의 모습은 안산 원곡동과 공단이 연결되며 많은 부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원룸단지가 늘어나면서 1인가구의 수와 건물주들의 교체도 이루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이주해오는 주민들과의 소통과 교류다. 본동의 많은 활동가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면서 주민 한사람, 한사람을 모으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야할 것 같다. 그들도 노력을 하고 있으니 시흥사람들도 노력을 함께 하면 좋겠다. 소통과 어울림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은 문화로 다가가거나 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소통하여 교류하고 만남의 장을 만들어야한다. 꾸준한 문화생활,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하면 주민의식이 높아지지 않을까 한다.
정왕본동은 다른 동보다 마음이 힘든 이들이 많다. 문화를 접할 기회도 없다. 행사를 하면 누가 나오겠느냐 하지만 북적거리면 나오지 않을까... 예산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거다. 그게 바로 주민 복지다. 투자를 해서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한다. 동에서 적극적으로 청년활력공간을 개방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게 바로 적극적 행정인 것이다.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서 어렵게 살고 있다. 외국인들이 몰려다니면 무서운가? 그들은 오히려 한국 사람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몰려다닌다. 사람은 다 똑같다. 토박이의 장점도 있지만 토박이니까 외지인을 보듬어 안는 아량과 배려를 보여야한다. 나쁜 시각이 아닌 좋은 시각으로 보면 좋겠고, ‘더불어함께’ 활동하는 자리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본동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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