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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골목에 숨을 불어넣는 자유로운 영혼-이승희

  


이승희. 그는 카페주인이다. 그리고 클래식기타전공자다. 기타선생님이다. ‘행복이 주인이다. 그리고 자유로운영혼이다. 그러나 질서가 있는 자유를 원하는 나름 철학적 자유론 소지자다. 그는... 참 재미있다. 그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아닌 그의 독특하고 특별한 내면세계의 아우라다.

 

그의 나이 57. 남들이 봤을 때 참 멋있게 산다하지만 정작 그는 나름 질서 있는 치열함으로 삶을 살았다고 한다. 15년 맺어가고 있는 시흥과의 인연은 아프리카라고 이름 지은 카페로 유지해오고 있다.

 

그림 그리는 연주인

정왕동에 들어 온 어느 날, 우연히 옛 은사님을 만났다. 너무나 존경하던 은사님은 원룸단지에 사는 독거노인의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화가지만 벌이가 없었고, 연세가 많았다. 홀로 술 마시는 모습을 보던 그날, 그의 원룸으로 함께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던 원룸의 모습은 방바닥은 없고 침대만 무겁게 앉아있는 상태였다. 술한잔 마실 상이 없었다. 침대에 올라앉아 소주한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을 가르쳐달라 요청했다. 아마추어 목공기술을 발휘하여 조그만 공간을 화실로 꾸몄다. 은사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곁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만든 것이다. 그리고 함께 그림을 그렸다.

 

은사님에게 강의 자리를 만들어드렸다. 여성회관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다. 은사님은 서양화 강의, 이승희씨는 기타반 수업을 했다. 은사님은 그로부터 10년 동안 수업을 이어갔다. 은사님을 만나 원하던 그림공부를 하며 그릴 수 있었다. 2013년까지.

 

그림을 그리게 된 추억 한자락

서울 봉천동, 지금은 번화해졌지만 당시에는 우마차가 다니기도 했던 동네다. 7,80년대 초까지 있었던 동네는 음악을 하기에 너무나 좋은 달동네였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꿈을 키우기에 더없이 센치 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금전적 욕구에 하고 싶은 그림의 꿈을 접어야했다. 늦은 나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는 아주 우연찮은 찰나에서 솟아올랐다. 당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해외까지 들락거리며 사진을 찍어댄 적이 있었다.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간 여행지, 물안개 자욱한 물가에 아침해가 번졌다. 햇살은 바위를 타고 젖은 물기를 말려냈다. 물기가 걷어지는 과정이 카메라 렌즈를 타고 들어왔다. 문득 그 광경을 사진으로 담는 것보다 그림으로 그릴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인의 그림 욕구는 그렇게 다짐되었다.

 

그림은 음악과도 매칭이 된다. 소리와 색의 매칭이다. 슬프면 어두운 색이 들어간다. 블루계열, 화이트계열, 레드계열이 음악에도 있다. 화성과 화음이란건 미술에서는 파스텔이 된다.

    


공연과 전시는 마을에 녹아들고...

마을에서, 시에서, 전국에서 이승희씨는 전시와 음악이 있는 갤러리콘서트를 많이 한다. 수익금 중 일부는 시흥시 1%복지재단에 기부도 하고, 필요로 하는 곳에는 재능기부도 하며, 지역 안에서 작지만 문화 기반을 다지기 위해 뜻 있는 이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누었다.

 

내 인생은 폼생폼사

어차피 내인생이 폼생폼사다.”

언젠가 평생학습센터축제에서 강의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재미난 놀이에 대한 주제였는데, ‘인생 제2막 재미니스트가 되자라는 토크쇼를 준비했다. 여기서 그의 자유분방한 정신세계가 보인다.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은 한 달 수입을 어디에 쓰느냐고. 대부분이 집에 갖다준다고 했다. 난 안 갖다줘요객석은 술렁였다. 돈이 많아서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깔았다. 아이들은 다 커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가족을 위해서만 돈을 벌 수 없다. 후배 밥 한끼라도 사주려면 돈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수입의 40%는 집에 갖다 주고, 30%는 나를 위해 쓰고, 30%는 가게 운영하는데 쓴다.”고 했다. 그는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후대책, 재테크에도 관심이 없다. 그냥 오늘 먹고 내일 행복하면 된다. 불행이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을 애써 피하고 싶지는 않다. 죽는 것도 단체생활이다. 다 죽지 않는가. 오래 산다는 것은 의미 없다.

 

적당히 좋은 나이에 약간의 벌이를 가지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주변사람들과 어울려 살면 좋은거다.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여럿 있을 줄 알았더니 다 나를 이상하게 보더라고.” 허허 웃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오 있는 보헤미안이었다. "왜 쉽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는 그를 어떻게 이해할까...

 

카페 아프리카

카페이름이 아프리카. 왜 아프리카라고 지었을까?

인류문명의 시작이기도하고, 그림 공부하다보면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림의 원료가 아프리카에서 오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그림도 초창기에는 아프리카 문화였다. 제일 힘들고 못사는 나라, 연민은 다크브라운 계열의 색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유니세프도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 공연 수입이 생기면 기부도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라고 지었다.

 

아프리카는 자주 문을 닫는다. 그리고 예약을 해야 풍성한 핸드드립의 깊은 커피향을 맡을 수 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자유로움 속에 질서가 있다는 그의 철학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동네사랑방이다. 손님의 대부분이 4,50대 중년인데, 좋은 분들이 카페에서 동네걱정을 하고, 공간 활용을 하면 좋겠다.

 

가장 소중한 시간, ‘행복이와의 산책

아프리카의 2시는 그가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이며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행복이와의 산책 시간이기 때문이다. 행복이의 산책은 곧 그의 건강도 함께 지켜준다.

    


어린 새싹의 자유로운 영혼

그가 그렇게 살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그는 대번에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원래 타고나기를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다만, 어릴 적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보고 성향을 확인한 적은 있었다. 명화 빠삐용의 마지막 탈출장면이다. 번번이 탈출을 시도하다 걸려 고초를 겪는 두 주인공, 한사람은 편하게 섬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을 택했지만 한사람은 자유를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둘 중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서 이승희씨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스티브 매퀸처럼 뛰어내리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갇혀 지내는 편한 삶이 아니라, 성공이든, 실패든 난 뛰어나갈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뭔가가 있다. 한때 꿈이었던 노숙자. 그가 생각하는 노숙자란 가장 완벽한 자유다. 우리나라를 보면 신용불량자나,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이 노숙자로 전락하는데 그가 생각하는 노숙자는 다르다. 노숙자는 술한잔하고 대리기사를 부를 필요도 없고, 집에 몇 시까지 들어간다는 보고를 할 필요도 없으며, 누우면 침대고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난 세계의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창피해서 못하겠더라. 아는 사람도 많고 제자들이 많아서 참 개구진 결론을 내린다.

 

따뜻한 나라, 스페인으로 가서 노숙자 생활을 할까도 생각했다. 스페인에서 공부한 스페인 기타 전공자니 스페인 가서 기타치며 버스킹을 한다면... 부정적 이미지의 한국과 달리 미국의 노숙자들은 멋있다. 관광객들이 요청하면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며 사진을 찍어준다. 그들 중에는 대학박사도 있고, 집도 있다. 그러나 재산에 우선하는 자유가 그들에게는 있다. 사람들의 지나는 길 가운데 자유롭게 벌이는 일들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무절제한건 용서 못한다. 기본에는 충실해야한다. 폼 나는 노숙자, 즐기는 노숙자는 아직까지 꿈으로만 남아있다.

 

골목에 불어넣고 싶은 문화의 숨

아프리카의 문을 열면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골목을 만들고 싶다. 멋진 유럽의 골목만이 문화가 아니다. 원룸단지의 골목도 얼마든지 예술 골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걷고싶은거리로 꾸며진 골목은 소규모의 공원도 있다. 갤러리를 넣고 공연을 하고 사람이 드나들면 문화가 정착이 될 것이다. 정왕동에 갔더니 이런 골목이 있고 이런 거리가 있다는 것을 해보고 싶은거다.

 

마을과 문화를 잇기 위해 더불어함께와 손을 잡았다. 정왕역 주변에서의 버스킹 공연이 그것이다. 버스킹 공연을 제안했지만 컨셉을 다시 잡아야한다. 문화에 생소한 이들에게 메니아층만 보게 되는 버스킹은 시도의 중요성에만 값을 매겨야했다.

 

버스킹은 노래가 아니라 연주다. 열악한 공연환경을 보완하고 좀 더 자유롭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건물 청소하는 이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하고 여름에는 얼음 띄운 아이스커피와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를 내려 소리없이 손에 쥐어주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 총 든 백인보다 활 쏘는 인디언이 되고 싶은 독특한 사람, 그래도 연주하는 이승희씨는 천상 연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