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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본동상인회의 소박한 꿈


김운용(정왕본동상인회,71)씨는 본인의 사업장인 당구장에서 한가롭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평일 한낮의 망중한은 가쁘게 살 것 없는 그의 나이처럼 느긋했다. 뿌연 담배연기, 당구다마 퍽퍽거리는 소리 안에서 인터뷰마저 느릿했다.



아버님이 일정 때 평안북도에서 피난을 왔다. 정왕역전 일대가 평안촌이었다. 그의 고향은 정왕본동이다. 고향이 되어버렸다.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대부도 제방 끝부터 죽율동까지 정왕동 일대가 염전이었다는 사실을. 정왕시장 통로 모두가 벌판이었다. 오이도역부터 제방끝까지 버스길이 중간에 있었다. 비포장도로였다. 산 밑이 모두 염전이고 집 몇 채가 있었다. 염전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4개 있었다. 일본인들이 지은 이름도 있다. 오이도 역전 앞이 1구저수지, 돌주리라고 불리우던 옥구공원 앞은 2구저수지. 제방 끝 앞이 고주리-3구저수지, 정왕동에 하나 4구저수지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염전저수지에는 망둥이, 새우, 모시조개, 잡어들이 많았다. 얕아서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라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다.


당시 팍팍했던 살림 보태려 소금을 훔쳐 내다 파는 집들이 많았다.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으로 보면 절도지만 당시에는 훔쳐다 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집집마다 훔쳐다 팔아먹어도 워낙 물량이 많이 나와 감시감독자들도 슬쩍슬쩍 넘어가곤 했다. 다 동네사람이니까 눈감아준 것이다. 그 수입의 정도는 소금한말과 쌀한말을 맞바꿀 정도라고 한다.

 

밤에 훔친 소금은 등짐 져다 인천으로 가지고가서 팔고, 협괘열차 타고 인천 송도 지나 소금짝을 떨어뜨려 놓으면 매매가 이루어졌다.

 

염전은 자다 말고 비가 오면 나가야한다. 염전판에 소금물이 있는데 비를 맞으면 염도가 떨어져서 버려야한다. 그래서 기상의 변화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염부들에게는 오침이라는게 있었다. 시원할 때 소금을 걷고 한 낮 더울 때는 잠을 잤다. 겨울에는 소금 생산을 못하니 놀기만 했다. 월급도 없이 지내는 겨울은 야심한 밤에 창고에 있는 소금을 훔쳐다 팔게 했다. 일거리가 없어 힘든 시기다.

 

당시 인부들은 거의 군자면 사람들이었다. 죽율동, 봉우재, 함줄, 평안촌, 돌주리, 오이도.. 평안골 인부들은 꽤 많았다. 당시 평안골에 대략 60호정도 들어와 산 것 같다. 한꺼번에 이주해 온 것이 아니라 평안촌이 있으니 드문드문 들어와 산거다. 이북에서 염전 다니던 사람들이 군자염전이 있으니, 또 평안촌이 있으니 소문 듣고 들어온 것이다. 평안촌은 개발단지가 조성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불과 25년 전의 일이다. 몇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때를 그리워한다.

 

수영복 없이 벌거벗고 저수지에서 수영하고 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던 그 때. 그 자리에서 그는 당구장을 운영하며 본동을 지키고 있다.


   


군서상인회에서 본동상인회로 이름이 바뀐 것은 정왕시장이 전통시장으로 등록 될 무렵부터였다. 현 이광재정왕시장 상인회장이 초대회장을 맡게 되면서 본동상인회 회장으로 이름 올린 1년 반. 김운용씨는 시장 활성화를 위한 꿈을 꾼다.



61블록 이주단지 전체가 상점가, 본동상인회인데 규모는 정왕시장 A동과 B동을 합친 정도다. 시에서 상권특화거리로 지정을 하여 교육지원은 받고 있지만, 실제적 변화를 위한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상가밀집지역은 전통시장 지정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체적인 움직임으로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있다. 오토바이 배달사업의 보전과 중앙통로에 야시장을 유치하는 것이 제일 큰 꿈이다.

야시장에는 외부상인들이 들어 올 것이다. 기존 상인들의 반발은 우려하지 않는다. 이해를 시켜야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이 찾아야 활성화가 됨을 알기에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먹거리, 볼거리를 겸해야하는데 정왕본동은 전혀 내놓을 꺼리가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시장활성화 콘텐츠다.

 

전통시장으로 등록되지 못하는 조건이지만, 상권특화거리로서 가능한 것들을 순차적으로 실현 해가고 있다. 추진 중에 있는 제일 큰 사업으로는 중앙로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일이다. 간판이 화려하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둡다. 400m나 되는 거리는 처음에 집 지을 때 설치해놓은 외등이 몇 개 있을 뿐이었다. 볼품없고, 흉물스럽게 변한 등은 시와의 절충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또 외국인 경로당을 만들게 되었다. 한국인 노인과 외국인 노인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해 추진한 것이다. 예산확보와 시의 의지, 그리고 상인과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으로 짓게 된 경로당은 정왕시장 안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상징물이 될 것이다.

 

중앙로를 일방통행으로 만들어 사람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싶다. 현재 정왕시장 상점가 거리, 중앙통로의 주말, 휴일은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하다. 인도도 없다. 일방통로를 만들어 사람들이 편히 다니고 차도 한쪽으로 다니게 하여 중앙통을 다닐 수 있게 하면 좋겠다.

 

현재 본동 상점가 시장은 외부인들에게 이용해 달라 말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이 시장다워야 이용해달라 할텐데 갖춰진 것이 없으니 소극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민들을 위해서도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현재 본동상인회에서 하는 일은 ‘3사랑밥터운영이 전부다. 7년 정도 해오고 있는 3사랑밥터는 최근 다문화가정지원센터 1층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임대의 부담감을 덜게 되었다.

    

  


3대가 한 건물에 살고 여유있는 삶으로 시장과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김운용 본동상인회장은 느릿하지만 뚜렷한 소신으로 시장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어두워지고 있는 상점가 400m거리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낮과는 다른 활기찬 밤의 시장. 어둠이 깊어갈수록 시장을 채워가는 상인들과 주민들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그려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