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기운이 허공을 떠돌아다니던 어느 흐린 겨울 날, 그루터기 지역아동센터 안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치고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는 대 여섯 선생님들은 분주했다. 주방 쪽 딸린 작은 방에서 따뜻한 물 한 컵 놓고 차갑게 식을 때까지 이어진 인터뷰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나 말 할 줄 모르는데....”하던 정한나센터장은 말문이 트이니 잠시도 쉬지 않고 내달린다. 어느덧 그녀가 던져주는 이야기들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꼼꼼히 담았다.
정한나(그루터기지역아동센터, 46세)센터장은 안산에서 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위해 정왕본동에서 시작하여 하중동을 거쳐 다시 정왕1동으로 와 지역아동센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10년 세월은 시흥에서 제일 열악한 정왕본동에 남게 했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어떤 이유를 만들어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낸 하루하루, 피곤함으로 마무리해도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다시 새 세상을 맞이하는 것처럼 자연정화가 된다. 어릴 때부터 유독 아이들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한 길로 오게 된 것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친정식구들의 영향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주일학교 봉사를 계기로 시작하게 된 아이들을 위한 일은 천직이 되어 버렸다. 사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든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지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정한나센터장은 큰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 내려놓음은 지금의 아이들을 마음으로 품어 안게 하였다. 아이도 어리고 자신도 어려서 아이의 사춘기 시절 내내 함께 성장하며 겪어냈다.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성향이라는게 있는데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강요하는 부분,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이와 부모가 같이 힘든 점에 많은 시간을 괴로워했다고 전한다.
멀어진 아들과의 사이에서 너무 아픈 시간들을 보내고나니 다른 아이들의 사춘기도가 눈에 들어왔다. 친정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내 아이의 사춘기를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아이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친구를 사귈 때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좋은 친구 사귀라고... 아이의 답은,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부모도 똑같이 생각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의 말이 맞았던 거다. 아이의 마음 수준에서 내려놓지 못하다보니 이기적인 건 엄마였다. 바뀌었다. 물론 마음의 상처는 깊었고 수많은 시간동안 내적 싸움을 벌어야했지만, 아이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싶었다. 부모가 잘못을 하면 정식으로 사과하고 사과에 이은 신뢰성을 보여야 아이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연다는 교육을 통해 용기를 내어 사과를 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엄마가 이기적이었다는 진심은 전해졌고 아이는 변화되었다. 무뚝뚝하고 엄마와 거리를 두었던 아이는 군대에 가서도 매일 전화를 한다. 수다장이가 되었다. 동생을 아끼고 가족의 중요성을 아는 아이가 되었다. 너무 감사하다. 그런 심정으로 다른 아이들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자식처럼 와 닿는다.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 세계에서는 나름의 문화가 있다. 인정하고 믿음을 주는 마음 전달이 중요하단 것을 뼈아픈 댓가를 치르면서 얻어낸 것이다.
가정의 부재 속에 마음이 허한 아이들은 여러 증상으로 표출된다고 한다. 빈항아리 속에 곡물을 꽉 채워주듯 아이가 어릴 때부터 조금씩 채워주면 아이는 엄마한테 의지하지 않는다. 독립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존중해주고 믿어주는 것은 채워주는 것의 필수요건이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문제가 없다. 아이들이 문제아로 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되어있을 뿐이다.
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어른들은 미안해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노력으로 점점 나아지고 있는 부모와 아이를 보게 될 때는 고마움마저 느낀다. 아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다가오고 그 아이 마음에 들어있는 응어리를 풀어내면 관계는 분명 좋아진다. 짜증나던 일상이 편한 상태가 된다. 공감이 주는 힘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통해 정한나센터장은 제2의 엄마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 했다. 모두가 다 내 아이 같으니 엄마로서 따뜻한 사랑을 주어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건전하게 생활하는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 허함을 채워주고 싶어한다. 공부를 잘해서 직업적으로 성공할지라도 허한 마음을 한쪽에 담은채로 커간다면 그 허했던 마음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된다. 그렇기에 외형적으로 아이들을 보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심과 소통으로 아이들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범위를 확장시켜주는 일, 어른들의 몫이다.
그래서 그루터기지역아동센터는 25명 정원이 꽉 차고 대기자까지 있을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놀이를 통한 학습의 중요성을 알기에 나름의 교육방침으로 운영하며 부모들에게도 신뢰를 얻고 있다. 힘들지만 한명, 한명 아이들에게 내면의 힘을 채워주기 위해 에너지를 쏟은 결과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것. 아이가 원할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을 바라보는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치열함을 견뎌내며 아이에게 다가간 것은 정말 잘 한 일이 되어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명심해야할 것은 아이의 기준과 부모의 기준은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엄마나 교사는 노력하지 않고 아이에게만 노력하라고 하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엄마도 노력해야하고 교사도 노력해서 같이 성장해야 한다.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성장한 아이가 있다. 7살 때 센터에 왔던 아이는 지금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엄마는 없었고 아버지는 희귀병에 걸렸다. 위로 형은 있지만 공감성에 있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의지해 살았는데 유일하게 의지했던 할머니는 초등4년 때 돌아가셨다. 울타리가 사라졌다. 그 아이는 눈이오나 비가 오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센터에 왔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느낌으로 그 아이에게 센터란 울타리고 엄마였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신경을 써주었다. 아침에 밥을 챙겨주고 집안을 청소하고 그런 가운데 센터로 아이를 보내주어 우선 순위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정한나센터장에게 그 아이는 제2의 아들이었다. 산만하고 말썽을 부려 늘 챙겨야만 했던 아이. 그 무뚝뚝하고 말썽만 부리던 아이가 6학년이 되던 어느 날, “선생님! 저 국어 몇 점 맞고 수학 몇 점 맞았어요”했다. 놀라웠다. 그 성적이 나올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성적은 늘 바닥이었고, 멘토링을 연결해주어도 아무리 가르치려 노력해도 안 되던 아이였다. 그런데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성적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자기 때문에 선생님이 힘든걸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선생님 힘들게 하면 안되는 거구나, 선생님이 나 때문에 힘드셨구나” 이 생각이 들어 스스로 바꾼 것이다. 아이는 노력했고 과학자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과학점수는 항상 높고 책도 과학 관련한 책만 본다. 그 아이는 센터를 지켜준 힘이었다.
내면의 힘과 자존감. 이 두 가지는 꼭 찾아주고 싶어하는 정한나센터장은, 문화 속에서 더 빠르게 찾아질거라고 한다.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아쉬움을 별다방이나 공동체놀이등을 지역에서 많이 제공해주어 감사하고 세상과 부딪히는 계기가 되니 더욱 좋다. 다양한 문화의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동기부여가 된다면 그것은 미래의 꿈으로 연결되니 큰 효과라 볼 수 있겠다.
삼성꿈네트워크를 통해서 하는 사업들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꿈틀거리고 있으니 솟아오르기만 하면 된다. 모두가 지역 안에서 하나 된 뜻을 가지고 움직여준다면 정왕본동이야말로 내면의 힘이 강해져 스스로 최고의 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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