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코뮤지엄 썸네일형 리스트형 [호조벌사람들] 대를 이은 호조의 家 거모동의 전씨 집성촌에서 나와 터를 잡았던 할아버지는 5대를 잇는 자손을 시흥의 땅, 호조벌에 정착시켰다. 당시 주소는 부천군 소래면 미산리. 아버지에게, 아들에게, 딸에게, 손주에게, 호조벌은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가 되었다. 전영준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매우 빠른 속도로 사진이 전송되어왔다. 패다. 「경기도 부천군 전숙도 귀하는 모범 독농가로서 영농 개선과 농가 소득증대에 이바지한 공로가 현저하므로 이에 감사드리고 계속 농촌 근대화에 기여하여 주시기를 바라면서 이 패를 드립니다. 1971. 5. 15. 농림부장관 김보현」 호조벌의 기상이 찬란한 아침 햇살을 몰고 와 무던히도 울어 젖히던 아기 영준, 그래서 목청이 그리도 큰 것인가! 어린 영준은 호조벌을 바라보면서 여름에는 헤엄치고 물.. 더보기 [호조벌사람들] 400년 토박이, 미산동에 뿌리를 잇다. 400년 토박이, 미산동에 뿌리를 잇다.아련한 인생이 녹아있는 나의 고향, 나의 동네 어린 만종과 동생은 깊이 판 도랑 안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머리 위로 흙이 떨어지고 포탄이 터졌다. 땅 위는 온통 불바다였다. 집들이 불에 타고 호조벌도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미산 마을에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자비한 전쟁국민학교 2학년에 해방을 맞은 어린 만종은 9남매 중 다섯째다. 누구랄 것도 없이 먹고 살기 어려웠던 때 설상가상 전쟁까지 치러야 했다. 평택으로 피난을 갔을 때는 많은 식구가 어느 집 외양간에서 신세를 져야 했다. 전쟁상황은 예측할 수 없었고 아군의 활약으로 수복이 된다 해도 당장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폭격기에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주인집 할머니가 인심이 좋았다. .. 더보기 김면수가 그리는 애증의 매화동 마을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주민자치라는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활동 범위 안에 들어왔다. 마을에 관심을 두니 마을만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애정하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애증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발전이 더딘 매화동’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또 정착시키기까지 들였던 수많은 시간, 어쩌면 고립된 상태에서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매화동을 제외한 주변 지역, 장현지구나 은계지구, 목감지구 등이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매화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발전을 원하는 한편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지울 수 없다. 매화동에 얽혀있는 어떤 요인에 제약이 있기 때문일까? 주거단지가 들어오는 다른 지역과 달리 산업단지가 들어온 순간부터 바라는 마을의 모습은 회색빛으로 점점 짙어져 간다. .. 더보기 이보우작가의 두꺼비와의 첫 만남 두꺼비 한 마리가 그물망을 기어올라 건너편으로 간다. 느릿한 걸음이다. 다행히 차들이 피해주었다. 살았다. 안도의 숨이 뱉어진다. 두꺼비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두꺼비를 만난 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 오는 날, 카페 앞에 주먹만 한 것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두꺼비였다. 산에서 내려 온 두꺼비는 알을 낳기 위해 건너편 연꽃테마파크 습지로 이동한다. 그러나 도로를 질주하는 차에 두꺼비들이 죽는다. 차에 치여 내장이 터지는 소리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 알에서 깨어나 두꺼비의 형태가 잡힌 새끼들이 무리를 지어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도로를 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목숨을 건 긴 여정길에 새끼들은 떼로 차에 깔려 죽는..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