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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시흥 人!

거울보고 익힌 도장 기술, 어려운 이들에게 돌려주는 인정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하는데 이발사가 왼손잡이인거여요. 왼손잡이인데도 가위질을 잘 하네? 하고 보니까 오른손으로 하더라고요. ‘저거네! 내가 저걸 몰랐네하고 와서 글씨를 써놓고 거울을 보니까 한문이 거꾸로 보이는거여요. 그렇게 한문도장을 파기 시작했어요.”

    


도장만 28년을 판 김규복(대야동, 68) 할아버지는 먹고 사는게 힘들어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도장가게를 처음 시작했을 때 도장 팝니다라는 간판도 옆 사람이 써주었다.




17살에 처음 들어간 양말공장부터 메리야쓰공장, 생선장사와 과일장사등 안 해본 것이 없는 일들은 모두 이름자라도 쓸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먹고 사는게 우선이라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하는 도장가게에 들러 하루에 도장을 60개 정도 파는 것을 보고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나 친구는 외면했다. 다행히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 3일안에 익혀가지고 오겠노라 장담하고 직접 칼을 만들어 글자를 보고 파는 연습을 했다. 결과는 숙련된 도장공이 볼 때 놀랄 정도의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글을 모르니 손님이 써주는대로 보고 팠다. 그러나 한문은 달랐다. 이발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울의 원리로 터득하게 된 거꾸로 보는 한문은 한달 후에는 거없이도 팔 수 있게 되었다

 

도장 파는 일이 신났던 것은 글자의 깨침이 있었기 때문도 한몫했다. 한글을 파니 김씨, 박씨, 최씨등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한문을 보니 또 김씨, 박씨, 최씨등의 한자가 보였다.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 이름자 하나 쓸 줄 몰랐던 김규복 할아버지는 도장을 파면서 자연스레 한글을 깨쳤고 지금은 신문도 읽고 글자도 쓴다.



비록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이 기술 덕에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요즘은 도장은 싸인으로, 열쇠는 번호키로 바뀌어 예전처럼 일이 많지 않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만족하며 살기 때문에 안사람과 함께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없이 살다보니까 없는 사람들 형편을 잘 안다. 어느 날은 한 할아버지가 잠긴 집 문을 따 달라고 해서 갔는데 출장비 만오천원이 없어 꼬깃한 오천원짜리 한 장 어렵게 내미는것이다. 80세 된 할아버지였는데 차마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할아버지 용돈 쓰시라고 하고 나왔다. “그걸 어떻게 받어...” 영세민이나 독거노인들은 가게 문 열고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안다는 할아버지는 그들에게는 도저히 값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인정인지 측은지심인지....



버려진 우산이나 양산도 주워다가 고쳐서 가게 문 앞에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간다. 우산을 고치는 기술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정교하게 고치기 위한 연구를 했다. 손재주가 있다 보니까 가능한 것이다.



부천에 살다가 미산동 사시는 부모님 곁으로 시흥 대야동으로 이사 와 자리를 잡은지 28.

10평 남짓한 상가 점포 안에서 판대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을 꾸며 살고 가게를 하니 세금이 많이 나와 좀 힘든거 빼고는 즐겁게 살고 있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주변 청소를 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여요, 자랑거리 아니여요라며 손사레를 친다.

 

가게에 있으면 한 번씩 가게를 거쳐간 사람들은 꼭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인사를 받을라 그러는게 아니라 배움이 없어도 이 정도 인사를 받는다면 잘 산거 아녀요?” 라고 말하는 속에 해맑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