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본동체육회장,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주민참여예산위원, 통장, 선거관리위원장.
전영옥(정왕본동, 61세)씨의 타이틀이다. 자원이 없어 겸직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바쁘다. 바쁜만큼 보람은 있다. 즐겁다. 1인 1세대가 많은 본동에서는 한 명, 한 명의 자원이 소중하다. 2002년부터 시작한 통장은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대표적 봉사다.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기에 그들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너무 좋아요” 처음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건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정왕동이 하나였다. 복지관도 없었고 유용한 시설 하나 없던 때였다. 그만큼 모든 것이 열악한 시기였다. 도움 받은 이들이 고맙다는 표현을 하니 그게 좋아서 더 하게 된 봉사활동은 1993년도부터 시작됐다.
인천에서 살다 결혼을 하면서 정왕동으로 이사왔다. 그때가 1981년. 시골이었다. 오이도에서 안양까지 30번 버스 한 대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었다. 협괘열차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 다녔는데, 수원, 인천, 송도로 가는 사람들이 이용했다.
“이 자리가 염전저수지였고, 이 옆으로 염전이 있었고, 저기에 저수지가 또 있었고... 완전 시골이었어요.” 지난 12월 28일 개소한 아시아스쿨 건물 자리를 말함이다.
“처음에 왔을 때는 삭막했죠.” 광활한 염전 땅. ‘이런데서도 사람이 사나’ 할 정도로 사방은 염전 아니면 저수지였고, 마을은 조그만 산 아래 옹기종기 붙어있는 정도였다. 문화시설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때의 모습을 알기에 지금 나는 시흥이 많이 발전되어서 너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잘 갖춰진 곳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시흥이 아직 멀었다, 살기 힘들다하지만 전영옥씨에게는 개발되기 이전부터 살았기에, 또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기에 너무 좋은 시흥이고 정왕동이어서 행복한 지금의 삶이다.
복합적인 벌집형태의 동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수자원공사에서 한 세대 당 70평 기준으로 대터해 주었다. 빌라를 지으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이왕 짓는거 좋게 짓자’해서 이주민단지만 4층짜리를 짓게 된 것이다. 택지분양지역은 3층까지다. 하나 둘씩 집이 생기고 이주민단지와 상권이 들어섰다. 시장이 만들어졌다. 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제일 좋은 점이다.
현재 원주민은 많이 떠나 있는 상태다. 주택이 먼저 들어서고 약 7년 후 시장이 형성되면서 건물을 팔고 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군자역은 사라지고 정왕역이 들어섰다. 당시 염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일은 고되지만 금전적인 융통성이 있었다. 개발로 염전이 사라지면서 땅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보상을 받고 이주되어 나오니 여유가 생겼다.
시골 사람들이 건물을 관리하기란 힘든 일이다. 살기 편한 아파트로 옮긴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남아서 관리하며 사는 일부 원주민들은 임대료를 받으며 사는 지금에 만족해하며 남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시골에서 도시로 환경이 바뀌니 적응을 못해서 떠나는 원주민들이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로 남는다. 정왕본동이 유독 쓰레기라든지 치안, 주차문제가 심각한 이유도 건물주 대부분이 외지인이고 외국인등, 많은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해 왔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국인들이 건물을 사면서 교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살기가 아무리 퍽퍽하고 복잡하다 하여도 그래도 지금이 낫다고 전영옥씨는 말한다. 화물트럭이 많아 트럭사무실이 있으니 다방이 많았던 옛 정왕동은 물갈이가 되어 건물이 들어서고 노래방이 생기며 상가가 형성된 지금, 중국사람들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흥정을 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습성으로 매매는 손쉽게 이루어지거나 임대가 되어 차이나타운처럼 자리가 잡힌 건 당연한 현상이다.
현재 중국인들은 40%정도 된다. 중국인이라고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한다면 그들도 인간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은 모두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일원으로 활동을 하던, 먹고 사는 장소로만 머물던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본동의 주민들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성을 가진 다문화인들이 정착이 되면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은 달라졌고 정왕본동은 과도기에 있다. 스스로 노력하면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한달에 한번씩 통장협의회의 교육에서 정왕본동의 문제점과 좋은점을 적는 시간이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문제점보다 좋은점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교육을 받고나서 우리 동을 다시한번 뒤돌아보니까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걸 다시한번 느끼게 됐어요.” 색안경 끼고 보면 나쁜동네, 좋은 쪽으로 보면 좋은 동네다.
마을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사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앞으로 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그녀는 소녀처럼 맑은 목소리로 외친다.
"정왕본동에 사는 것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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