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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내게 이런 선생님이 있었다면... 전병석선생의 이유있는 기다림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가슴 속 깊이 들어있던 응어리가 울컥해진 것이다. 녹취를 도와주는 딸이 옆에서 주책이여~”한다. 선생님도 당황해하셨다. 감정 이입은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나에게 만약 전병석선생님같은 스승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물지 않는 상처따위 남아있지 않았을텐데에 따른 울컥함이었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창시절, 선생님의 존재란 그렇게 큰 것이다.

 

학생을 믿고 기다리는 전병석선생의 외로운 기다림은 때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는 눈물 날 정도로 감사함이 느껴지게 한다.


전병석선생은 시화공고에 담임교사로 근무 중에 있다. 시화공고는 2000년도 그의 초임지다. 2008년까지 근무하고 군자공고에서 5년을, 그리고 다시 시화공고로 왔다. 군자공고는 예전과 달리 많은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뜰 수 있었다. 시화공고도 군자공고처럼 변화를 보이면 좋을 것 같은 바람으로 다시 왔다. 초임지여서 갖는 애착심도 한 몫 했다.

 

    


군자공고는 2017년 군자디지털과학고등학교로 학교명이 바뀌었다. 학생 중심인 학교 교육 활동은 특성화학교로서 학생들에게 직접 투여되고 활용 되는 사업이 있다. 사업의 본질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군자공고 근무 당시 교장선생님이 그와 너무 잘 맞았다. 교장은 아이들이 즐거워할 것들이 있으면 무엇이든 했다. 지역 민원이 들어오면 직접 조끼를 입고 하교 시간에 호루라기를 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학교 봉사도 선생님들이 데리고 다니며 학생들과 함께 했다. 군자동은 결속력이 강한 동네다. 거모복지관과 학교가 관계를 맺어서 지역 일에 동참했다. 자율방범대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에 한번씩 방범 활동도 했다. 교장선생님의 주문은 더 있었다. 간식을 먹여도 배부르게, 그리고 좋은 곳이 있으면 학교 안에만 있지말고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에 적극적이었으며, 혁신학교를 이룬 최초의 교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학교는 문을 열어놓았는데 정작 교사들이나 지역은 문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혁신학교를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의 도움이 필수다. 학부모와 학생의 관심은 당연히 적었다.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업무가 많아져서다. 그러나 교장의 결심은 확고했다. 직접 PPT를 만들어 학부모 설명회에서 발표를 하고, 학교는 변해야 한다는것을 강조했다. 50%도 찬성하지않은 교사들을 설득하면서 겨우 혁신학교로 선정되게 하였다. 눈물겨운 사투였다. 지금의 군자디지털과학고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시지 않았다면 저도 그대로 있었을겁니다.” 지금은 퇴직하신 윤석인 교장선생님이다. 리더로써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후임으로 교장이 된 박봉석선생님도 전임 교장과 뜻을 함께 하였기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근무할 당시 박봉석 교장선생님은 교감이었다. 양쪽 모두와 이야기가 통했기에 혁신을 일으키는데 힘이 보태진 것이다. 군자공고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변화는 눈에 띌 정도였으며 아이들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물론 취업도 사업체와 연계해서 전문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시화공고는 같은 지역에 있는 특성화고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변화를 해야 하긴 하겠는데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들 관점에서 본다면 지역 자체가 결손가정이 많은 만큼 기본적으로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에 그렇지 못하니 정서가 메말라 있다. 그러나 선생님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인 생각의 차이가 많아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원칙과 교칙대로라는 정해진 답을 놓고 결정을 해버리려하면 지칠때도 있다.  자유분방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관리할 어른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으려고 한다. 각성이 되어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정진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희망이나 목표점을 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교사들이 좀 더 힘을 내야 한다. 인격적으로 학생들이 교사를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맞는거 아닌가

 

그래서 변화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지역 가산점만 노리며 잠시 머물렀다 가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되며, 아이들도 노력하여 자랑스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아이들은 서서히 변하는데 어른들은 말 한마디 내뱉는 동시에 변하기를 바란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변화를 위해 기다려줄줄 알았으면 좋겠다.

 

전병석선생은 올해 모든 보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방향성을 잃었다고 한다. 힘이 들어서다. 그러다 최근 아시아스쿨을 알게 되면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우선 학교라는 곳은 즐거운 공간이 되어야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품어줄 수 있어야한다. 자기 철학이 있는 담임교사들의 프라이드에 관여하는 것은 힘든 일이나 개별적 성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고등학교 1,2학년의 민감한 시기에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생이 바뀐다. 적어도 그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학생부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너무 행복하다. 담임은 전병석선생의 존재의 이유다. “처음에 경계를 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제 흉내를 내고 이해해 주려하고 때론 애들이 내일 학교 안나가도 되요?라는 말로 협박도 하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은 제 말에 따라주지요.” 교사가 업무로만 학교 생활을 하다보면 아이들과의 교감은 얻어낼 수 없다.


    


전병석선생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장문으로 보내온 한 학생의 문자를 보여준다. “제 눈에는 귀엽게만 보이는데 다른 선생님들 눈에는 경계의 대상이죠.” 씩 웃는 모습이 인자하고 다소 여유마저 느껴진다. 기다리는 법을 아는 자의 여유랄까.. 체벌보다 중요한건 아이들에게 변할 수 있는 시간적 정서적 기다림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 말 한마디에 아이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는건데 기다려줘야죠.”

 

그래서 매 학기 첫시간이 되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삼인행(三仁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떠나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뜻이다. “그 세 사람이라는건 한 가운데에 를 두고 양쪽의 두 사람은 남녀노소, 선한사람, 악한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라 여기며, 직접적이진 않지만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나의 행동 어딘가에서 일깨움이 주어진다면 스승이라는 거지요.” 가르치는 선생은 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인정이 없으면 스승이 될 수 없고, 아이들도 학생일 수 있지만 제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참뜻이 공유되었을 때 비로소 스승과 제자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저는 사실 읍소형 선생이예요하며 살짝 개구지게 웃는다. 군자공고 2년차 시절, 경기도 인권조례 발표된 해에 학생부장을 맡게 되었다. 기다림과 읍소형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처음 운동장에 아이들을 집합시킨 적이 있었다. 줄 세우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아이들을 불렀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 너네가 제일 힘들게 해. 너넨 어차피 놀거잖아. 선생님, 불쌍하지않아? ‘한번만 도와줘라고 했더니 30분이 줄고 그 다음은 10분으로 줄고 나중엔 마이크를 들고 얘기하면 아이들이 듣는거예요. 군자공고에서는 혁명적인 일이었죠.” 아이들이 내 얘기를 듣는구나하며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러면서 지역활동을 함께 했다. 복지회관과 연대하여 지역과 주민과 관계를 맺고 그것이 좋아 승진의 기회가 왔어도 받아들이지않고 학생부장을 계속 맡아했다. 작은 변화를 보는 것이 더 좋은 이유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을 보면서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걸 배웠어요. 제가 학교다닐 때는 지적 능력보다 선생님의 말과 수업 분위기, 행동등이 아이들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주거든요.” 실제로도 그렇다. 특히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는 자그마한 관심으로 충분히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선생과 제자. 의사 소통이 되는 영역에서 상호 신뢰관계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선생님한테 얘기하면 잘 될 수 있을거야라는 인식의 신뢰말이다. 가야할 길에서 헤메고 있는 아이들에게 지금 너 때문에 많이 힘들지만 기다려줄거야.”

라는 말은 일정한 시점이 되면 교사가 생각하는 틀 안으로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것을 믿는다.

 

시화공고에서 혼자 뭘 한다고 달라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시아스쿨을 알게 되었고, 지역에서 요구하는 바가 학교에 영향을 미쳐 지역에서 대신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할 참이다. “저는 교실만 들어가도 기분이 좋아요. ‘너희들이 아무래도 내게는 비타민인거 같다.’ 이렇게 말하면 애들이 저를 안쓰러워해요.” 아이들에게 거창한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면 언젠가는 마음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 뿐이다.

 

시화공고에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것은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다. 마을활동가들과의 워크샵에서 한마디 했다. ‘시화공고를 보내고 싶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관심을 갖고 학교에 요구를 해야한다. 자꾸 요구하다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나는 그것에 희망을 건다라는.

 

한 학교에 오래 머물수 없는 직업이기에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 빠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마을에 기대치가 큰 것이다. 리더와 관리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이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시화공고는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얘기하고 들어주고 방법을 찾아주고 그건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아요.” 머릿 속에 온통 학생들로 가득차 있는 듯한 복잡한 눈빛은 시화공고를 밝은 빛으로 안내하려는 자의 강단으로 비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