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길 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는 일이 즐거우면 삶이 온전히 행복한가? 적어도 박현숙선생님은 인생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만큼 8년간의 에어로빅댄스 중심센터를 맡을 때도,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발견하게 된 트라이에슬론이 그렇다. ‘인류 최후의 스포츠’라는 거창한 광고에 이끌려 무조건 들어가게 된 철인3종경기 입문은 보기와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좋은 분위기에서 마시는 술 한잔의 낭만도 아는... 멋진 사람이다.
그러나 혁신학교를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다. 혁신학교는 근무외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퇴근 후에 마을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하고 주말에는 학교 관련된 일이 많아 쉬는 날이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타고난 좋은 체력에 스트레스도 잘 받지 않아서 할 수 있었던 혁신학교는 그다지 어렵지않게 추진할 수 있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자리에서 풀어내는 성격이라 “나랑 감정이 안좋으면 그 사람만 손해다. 왜냐면 나는 금방 잊어버리니까” 후회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러운 성격이다.
신입교사의 패기와 혁신
박현숙선생님은 사범대가 아닌 인문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따라서 교직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면서부터 큰 고민으로 다가온 것이 있었다. 교과서가 너무 이상해서다. 학교는 비민주적이었고, 교과서는 편향적이었다. 옳지 않은걸 못보는 성격 탓에 교과서의 이상한 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교과서대로 배우다가는 정권의 신하 밖에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완 자료를 만들어 읽기 수업을 했다. 비판적인 사고와 생각의 크기가 커져가는 아이들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밤새 만든 자료였다. 연천에 있는 학교였는데 권위적인 학교의 모습에서 오히려 비정상이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학교의 문제는 그렇게 자극이 되었다.
학생 박현숙은 학교다닐 때는 공부만 하는 아이였다. 노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교사가 되어보니 놀아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겼다. 소풍을 가면 놀아야하는데 놀 줄 모르니 아이들이 심심해했다. 놀이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받으면서 놀이수업의 필요성을 잔뜩 안고 왔다.
당시에는 고교평준화가 아니어서 아이들이 입시 때문에 힘들어 했다. 클럽 활동을 원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그래서 놀이반을 만들어 보았다. 수업에 놀이를 접목시켜 조금씩 시도했는데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달라지는게 보였다. 배려와 공동체에 익숙해져있었고, 그 안에는 교사의 철학도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학급 운영에서 좋은 활용이 되었다.
수업에서 목표와 활동이 다르면 학교에서는 싫어한다. 매일 교장실에 불려갔다. 왜 국어시간에 노래부르고, 그림그리고, 돌아다니냐며 야단을 맞았다. 황량한 겨울 나뭇가지를 보고 봄시를 쓰라고 하면 시상이 떠오르지 않듯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학교 화단에 꽃이 피고 푸른 잎이라도 나야 그 감성에 젖어 시를 쓸 수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 교과서는 봄시를 쓰라 하면서 황량한 겨울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희곡 수업에서 연극을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요구되는 것을 충족하기 위해 관련 된 것들을 찾아 공부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다. 연극을 하기 위해 캐릭터를 분석하고 무대를 만들고 대본리딩을 하면 아이들은 과정에서 성장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반에서 놀이공원으로 소풍갈 때 대학로로 연극을 보러 가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게 혁신학교다. 이것이 혁신수업이었던거다.
“학교가 아무리 불러다 야단을 치고 혼을 내도 나는 수업이 행복했다.” 교사는 수업에서 행복하면 상처를 받지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놀이수업을 하니 아이들이 쑥쑥 크는게 보였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도 정말 잘했다. 예전 수업 방식에서 야단만 맞던 아이가 혁신학교수업을 받고 나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좋았던 의기투합
장곡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그런 형태의 수업을 계속 했다. 2007년, 장곡중이 혁신학교가 아니었을 때는 장곡중은 교육청에서 괴로운 대상이었다. 그러나 2010년, 혁신학교를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장곡중은 혁신수업으로 성공했고 학생자치나 다른 분야로 뻗어나갔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 문화를 민주적으로 엮어나갔다. 함께 배워야 민주적이고 그래야 아이들도 교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지식적인 측면만이 아닌 배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깨치는 것은 교사의 배움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기까지 장곡중은 실로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교사의 권위는 있어야 하는데 내가 내세우면 권력이 되고, 애들이 믿고 따르면 권위가 된다.” 권력과 권위는 아이들도 구분할 줄 안다. 장곡중 교사들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동반자처럼 그렇게 해나갔다. 그렇게 교사들이 바뀌어나갔다. 그러니 아이들이 바뀌었다. 아이들과 교사간의 신뢰가 돈독해졌다. 그런 수업들과 학생간의 신뢰도에서 혁신학교의 효과는 있다고 믿었고 그리하여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시흥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지자체의 돈들이 200억 넘게 교육 경비로 쓰이는데 주목을 했다. 경비는 주로 건물에 쓰였다. 학교건물을 보수하고 필요한 시설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족한 소프트웨어 쪽에 투자할 필요성이 다분했다. 계획서를 쓰고 도에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하는데, 당시 시에서는 교육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전 시장이 교사들에게 대신 써달라고 요청했고 6명의 교육 관계자들이 같이 계획서를 작성했다.
안선영, 남궁경, 이성, 김남연, 이권수, 그리고 박현숙. 6인은 시흥혁신교육지구사업 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통과가 되어 혁신교육의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인식은 그리 좋지못했다. 72개 학교를 신청했는데 전체 혁신학교의 바람은 이루지 못했다. 연성지구 학교를 혁신으로 묶어서 사업을 진행했다. 안좋았던 인식은 결과가 좋으니 학부모들이 시·도의원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그래서 시즌2에서는 전체적으로 진행했고 지방선거로 인해 수장이 바뀌면 잘 만들어놓은 지구가 선거 결과에 따라 없어질 수 도 있으니 유지할 수 있게 시스템으로 만들어야했다. 다행히 현 시장이 혁신교육의 가치를 알아보고 예산은 비록 줄었지만 연장하여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뭐...?!
시청에 들어와 혁신교육지구사업을 진행할 때,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해야만 할 일이라 생각해서 했는데 간혹 오해를 하는 부분들이 생겨 살짝 재미 없어질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수석교사였고 비교적 많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교사여서 부르는 곳이 많았다.
혼자 가지고 있는 것보다 풀어내는게 지역과 또 교육계를 위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나름의 장소에서 나름의 일을 하고 있는데, 연봉을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을 안한다거나 일을 쉽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쉬운 일을 선택해서 왔다, 이익을 찾아서 왔다, 시청의 입장만 내세운다, 기타등등의 오해들은 참 재미없는 반응들이다.
주민으로서 우리 마을에 있는 아이들의 삶이 교육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얘기하는데 이런 오해들은 실소를 짓게 한다. 제일 오해가 심했을 때는 교육자치를 드러낼 때였다. 교육청은 학생만 보자고 한다. 학생은 시간의 흐름을 잘랐을 때 학생인거고 전체를 염두에 두면 시민이다. 따라서 교육청의 시간 단절 부분은 맞지 않다는 주장을 내비쳤다. ‘왜 교사가 공무원의 입장을 지지하는가, 그들의 논리를 왜 더 단단하게 해주는가’ 이런 오해들은 그냥 놔두려고 한다. 어차피 담당이 바뀌면 또 반복되는 오해들일테니까. 흐름은 흐름대로 두고 언젠가는 알게될 것이므로 특별히 설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또 뭐?!
마을교육자치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는 이들에게 좋은 점과 필요한 점을 부각시키며 어쨌든 만들어냈다. 그런데 어느날 회의에서 시흥시의회 모의원이 ‘실패’라는 말을 했다. 여기저기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극단적인 표현과 함께 잘못된 지식과 그릇된 사실을 사실화하거나 왜곡화하면 안되겠다 싶어 정확하게 응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며 따져물었다. 모의원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나온 결과를 부정하며 엉터리라고 큰소리를 쳐댔다. 고성이 오가고 유치한 말싸움도 오갔다. 후에 들은 얘기로 그 의원이 교사 채용에 대한 엄청난 질문을 했다고 한다. 데이터로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명확한 제시도 없이 ‘엉터리’라는 말 한마디로 ‘실패’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주장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보면 의원 입장에서는 봉변을 당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뒤에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전화하고 뒤끝있는 체신을 하는 것이 의원이 할 태도는 아닐텐데 하는 안쓰런 마음이 들었다. 이 사건은 마을교육자치를 하는 지역사회에서 적잖은 파장으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이런 말이 정착되기 시작됐다. 공부하는 의원을 선호하자!
마을자치의 연결
혁신교육지구사업은 지역의 아이들을 지역이 키우는데 그 의미가 있다. 마을강사들을 키워낼 수 있는 체계와 필요성을 만들어 놓았고, 학교교육과정에 지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자체가 알게 했다. 그리고 교육자치를 함께 만든 것, 시스템의 구축이 되었으니 누가 들어오던 그 사람의 잘하는 점이 발휘되어 정체되지않게 발현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박현숙선생님은 올 3월 1일자로 다시 교사로 돌아간다. 수석교사에서 교사로 발령을 기다린다. 불행히도 후임으로 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시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난감해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교육지구사업은 유지 또는 미래형교육으로 나아갈 것이고 채워지게 되는 누군가의 재능으로 빈 틈에 꽃이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
교육의 법이란 것이 자기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법률 제도로 갖춰졌으면 좋겠고 그시작이 시흥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박현숙선생님. 다양한 특색이 있는 도시에서 마을교육자치회가 거기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끼지않게 잘 된 모델을 만들면 확산될 수 있으니 이것은 시흥 뿐아니라 전국에서도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내 아이를 위한 교육의 도시에서 미래를 꿈꾸고, 마을교사들도 더불어 행복해지는 마을을 만들어낸다.”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사)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는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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