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가는길은 막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강화 가는길은 늘 막혔다. 답답한 마음 풀어내기 좋은 곳이 강화인가보다. 강화가 가까이 있어도 필자는 강화시장만 다녀갔다. 모처럼 좋은 날씨에 길을 나섰다. 길이 너무 막혀 먼저 식사부터 하자했다. 다소 허름해보이는 두부집이다. 문수산 옛날두부 청국장,
전통방식으로 청국장을 띄운다고 한다. 우리콩을 삶아 볏짚으로 바구니에 띄운 청국장이라는 화려한 홍보에 맞게 청국장 맛이 꽤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식사로 이미 청국장을 먹었으므로 비지찌개와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비지찌개가 썩 좋았다. 공기밥 반절을 남기고 비지찌개를 싹싹 긁어먹었다.
어머님이 주신 청국장이 떨어지면 주문해서 먹어봐야겠다. 청국장은 양념한 것으로 찌개를 끓여야 더 맛있다. 이 곳에는 양념한 청국장을 판매한다.
지난번 강화방직카페를 보고 다른 곳이 궁금하여 다시 찾은 강화스토리워크길. 시작길을 소창체험관으로 잡았으나 휴관 ㅠㅠ 용흥궁공원부터 시작했다.
강화의 역사, 산업, 종교를 한 눈에 만날 수 있는 강화 스토리워크는 강화 역사만이 아닌 대한민국 근대사와 연결돼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곳이다.
강화 과거 전성기를 느낄 수 있는 심도직물(터), 한옥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교회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을 기념한 강화 3.1 독립만세 기념비, 한국 천주교의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입한 첫 사건을 기념한 노독사목 표지석, 고려시대부터 강화읍의 한켠을 지키고 있는 700년 은행나무, 강화 직물 이야기를 소개한 이화견직 담장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방직 공장이었던 조양방직, 강화의 독립운동의 현장인 강화중앙교회, 합일초등학교 독립운동길, 강화의 전통이었던 직조산업을 오감으로 느낄수 있는 소창체험관까지 강화 스토리워크는 이렇게 이어진다.
심도직물-대한성공회강화성당-독립만세기념비-노동사목표지석-700년 은행나무-담장길-조양방직-강화중앙교회-합일초-소창체험관 두시간 정도면 족히... 그러나 조양방직과 소창체험관에 머무는 시간과 사진 찍는 시간까지를 고려하면 서,너시간은 걸릴 듯 하다.
강화성당이다. 1900년에 축성했다. 한국의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한옥으로 현존하는 교회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고려궁지 앞에는 1866년 병인양요때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으로 순교한 수많은 교인들을 기리는 순교성지기념관도 있다. 믿음을 강요받았던 시대. 탄압이 없었다면 세상살이 버틸 힘은 남아 살아질텐데...
코로나가 잠가버린 성당의 문의 야속하다.
담장밖에서만 바라보아야 하는 교회의 구석구석을 눈에 담아놓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사라지면 제일 먼저 강화성당을 다시 찾을 것이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 거처하던 용흥궁이다.
철종이 강화도에 사는 동안 혼인을 약속한 처녀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오래된 지역인만큼 개발되지않은 건물들도 모두 오래되었다. 낡은 건물, 낡은 간판, 오래된 가게등이 쉽게 눈에 띈다. 간간이 비어있는 상가들은 도시재생으로 창업을 했다가 아마도 코로나때문에 버티기 힘들어 문을 닫은게 아닌가싶다.
잠깐 골목을 벗어나 시장 쪽으로 나갔다. 청년몰을 보기위해서... 매우 핫해야 할 청년몰도 문이 닫혀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우 복작거렸을 청년몰...
강화관광플랫폼 청년몰 개벽2333 코로나때문인지 점포의 문은 모두 닫혀있었다. 개벽2333은 건국이야기의 근거지인 강화에 뿌리내린 젊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을 꽃피울 수 있는 즐겁고 활기찬 공간인 강화중앙시장 청년몰의 이름이다.
기원전 2333년 한번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올리기위해 직접 쌓았다고 전해지는 '마니산 참성단'이 있는 이 곳 강화군은 선조들의 도전과 창조, 개혁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한민족의 성지다. 푸른 의지 하나로 강화중앙시장에 뛰어든 청년상인의 열정은 건국 이야기에 담기 우리 선조의 모습처럼 전통시장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있으며 이런 의미를 담아 청년몰 '개벽 2333'이 탄생했다. 다양한 꿈을 품을 강화의 청년들이 꿈을 이루기위해 모인 이곳에서 청년 상인들은 그 옛날 선조들의 가르침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청년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홀로 청년몰을 지키는 타르트 청년
용흥궁공원에서 고려궁지 가는 방향의 길따라
강화의 역사와 상징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강화 고려궁지는 입장료가 성인기준 900원이다. 사적133호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에 위치해있으며, 고려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1232)에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하여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등을 모두 파괴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차 시에 머무는 행궁 외에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1964년에 사적 제133호로 지정되었고, 1977년 강화 전적지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등이 남아있다.
400년 된 느티나무는 조선 인조 9년(1631년)에 여러 전각과 행궁을 세울 때 심었떤 나무로 추축된다. 그러나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옛 건물들은 불에 타 소실되거나 오래되어 무너지고 지금은 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 만이 개수되어 남아있는데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이 느티나무는 영욕의 세월 속에서도 고궁터를 찾는 길손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 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이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특별하게 비단을 사용하고, 종이는 고급초주지를 사용하였으며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선을 둘러 오아실의 위엄을 더하였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의 눈을 자극한 것도 외규장각에 보관중이던 은괴 19상자와 함게 채색비단 표지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된 어람용 의궤들이었다.
병인양요는 고종3년(1866)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과 프랑스 신부11명의 처형을 구실로 프랑스 강화도를 무력 침범한 사건이며, 우리 민족이 경험한 최초의 서구 제국주의 국가와의 전쟁이었다. 강화도를 무력 점령한 프랑스 함대는 양민을 학살하고 조선의 왕실 서고였던 외규장각을 불태워 6.000여 권 이상의 책이 소실되었다. 또한 의궤를 비롯한 340연 책의 왕실 문서와 은괴 수천냥을 약탈하였다.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상륙했던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에 보관된 우리문화의 보고에 약탈의 손길을 뻗었다. 은괴 19상자와 함께 그들의 눈을 자극한 것은 채색 비단 장식에 선명한 그림이 들어있는 어람용 의궤였다.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의궤와 기타 자료를 약탈한 후 외규장각 건물을 불태워 버렸으며, 이때 약탈해간 위궤는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2011년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밖에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물품은 다음과 같다..
가철된 큰 책 300권/가철된 작은 책 9권/ 흰색 나무상장에 들어있는 작은 책 13권/소책자 18권/ 한국,중국,일본 지도1점/평면천제도 1점/여러가지 기록이 있는 족자 7점/ 한문을 기입한 회색 대리석판 3점/ 구리로 된 돌 쩌귀와 백색의 연접된 대리석판이 들어있는 작은 상자 3점/ 갑옷과 투구 3점/가면 1점
내려오면서 수제 커피전문점에서 쌍화차와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코로나이전과 이후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간간히 오는 손님들이 있어 그럭저럭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쌍화차를 타는 손길에 정성이 듬뿍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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