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마루표지석]
장곡도은 진마루 마을이 있던 자리다. 1636년에 벌어진 병자호란 이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전해져 4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주택단지로 개발되기 전까지 마을의 이름은 진마루였다. [진마루표지석 내용 발췌]
7월 1일 토요일. 후덥지근한 날씨...
내가 사는 장곡동을 시작으로 시흥시 17개동의 투어를 시작했다.
기록은 1인칭으로 적어내려간다.
길 따라 가는 시간의 역사...
내 시선에서의 풍경을 소소하게 담아내려고 한다.
집 뒷편으로 나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측백나무다.
개발로 인해 사라질 뻔 했던 측백나무를 장곡주민들이 지켜냈다.
길방나무라고도 하는 측백나무는 400년 되었다고 한다.
대대로 살아 온 토박이 어르신은 500년은 족히 되었을거라고 추정한다.
서기 1636년 후 금(청)이 전쟁(병자호란)을 일으켜 피난을 하던 중 길방(측백)나무 옆 숲속에 적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터전을 잡게 되었다는 옛 어른들의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 길방나무는 당시 전쟁터였던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이며 나라에 재앙이 있는 해에는 길방나무가 고사 직전까지 가다가 태평성대시에는 그 잎에 생기가 나고 가지가 번창하는 등 영험을 나타내는 신비로운 나무로 전해진다. [2010. 9. 1 전주이씨 영응대군과 장곡종친회]
[장현택지개발지구공사현장]
장곡동은 사면이 개발로 둘러싸여 공사현장의 중심에서 생활하고 있다.
잠시의 불편함은 영원한 삶의 윤택함을 위해 참을 수 있어야함을...
장곡동 삼환한진아파트 뒷 문,
일방통행길을 건너 작은 굴다리를 건너가면 나오는 좁은 길은 막힌듯, 더 있는 듯,
길 따라 가면 소소한 볼거리들이 펼쳐진다.
장곡성당은 장곡주민들 3/2가 다닌다고 한다.
좀 과장해서~
시골의 작은 성당. 정겨워보인다.
성당앞 외길 걸어가니 붉은 연꽃이 수줍은 자태 드러내어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만보아도 좋은 초록의 논과 연꽃은, 위태한 자리에 서서 보게 되는 현실에서 휘청이는 슬라브 다리를 튼튼한 연꽃다리를 만들어 안전하게 넘나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은 자연 앞에 운영되고 있는 '책보고 놀자 어린이집'도 오랜 세월 장곡동 한켠을 지키고 있는 자연 놀이터다. 어린이집 옆 투박한 꽃 정원을 지나 정돈되지않은 숲길 걸어들어가면 백년초가 한 가득하다.
그 앞에서 노부부를 만났다. 정갈한 텃밭의 소유주이면서 부천시민인 노부부는 매일 이곳에 와서 대추나무를 손보고 고추를 따고 상추를 딴다. 한마디 두마디 나눌 때마다 친해짐의 깊이가 더해가니 주렁주렁 열린 고추 한웅큼 따 내 가방 안에 넣어준다.
눈앞의 연꽃이 이쁘고 갯골생태공원의 자연이 좋은 부부는 시흥이 좋아 시흥에 매일 와서 자연을 벗삼고 서로를 벗삼아 이렇게 사는걸 즐긴다고 한다.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아무 말 없이 그저 눈만 뻐끔거리며 바라보는 눈 앞의 풍경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홀로 걸어다니는 지금... 지금이 그러하다.
바다우물
그렇게 지나다녀도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지난날...
오늘만큼은 들어가보리라 다짐하며 기웃거렸다.
커피, 차 한잔에 300원. 그것도 셀프다.
재미있다.
익숙한것이 눈에 들어와 보니 시흥아카데미에서 수업한 꽃차학교의 꽃차들이 보인다.
바로 옆 주차장에서 주인을 만났다.
정돈 되어있지않은 실내를 굳이 '바빠서...'
라고 말하는 주인장.
오히려 이 정돈되지않은 실내가 자연과 어울려 더 편한 느낌이 든다.
아무사람 없어도 부담없이 들어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 한 잔, 차 한 잔 마시는거,
비싼 가구에 정돈 된 공간이면 부담되어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 같다.
이 공간은 누구나 와서 사용할 수 있는 '문화살롱'이라고 한다. 주인장이 끓여주는 자스민 차와 시원한 아카시아음료를 마시며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서로가 아는 사이였다.
2016년 군자동 도일시장 활성화사업으로 진행했던 도일문화마당, 벼룩시장에 참여부스로 들어왔던 연 판매전문가 진상연씨였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두잔의 차를 다 마실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게 앞의 붉은 연꽃을 키우는 사람, 연 재배와 연으로 만든 모든 음식들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 바다우물 주인, 그리고 가업을 잇고 있는 든든한 두 아들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한가지 바람을 이야기한다.
하천 따라 갯골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는 것이다. 마을계획가이기도 하니 먼저 눈에 들어온 터이기도 했다. 장곡성당부터 갯골공원의 차도가 나오는 곳까지 꽃길이 조성 되어 걷는 길 한걸음한걸음 꽃길만 걷게되는 기분도 좋을것이라 생각하며...
걷기에 좋은 자원을 활용하여 자투리공간에도 개선을 유도한다면 눈에 닿는 자연의 풍광이 한층 더 풍성해질것이다.
장곡동오수중계펌프장을 지나 갯골공원으로 들어가는 인도를 터벅터벅 걷는다.
날씨가 참 덥다.
등줄기를 타고 땀 한줄기 스으윽 타고 내려간다.
입구에 알록달록 갯골생태공원 캐릭터와 꽃들이 화사하게 반겨준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갯골생태공원.
볼거없다, 편의시설 없다하지만, 자연그대로가 볼거리요 주저앉는곳이 편히 쉬는 곳이려니..
갯골생태공원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가족단위로 아이들을 위해 해수풀장을 찾은 이들은
시흥, 안산, 부천시민등으로... 이름난듯 다양하다.
해수풀장은 지금 쉬는 시간이다.
잠시의 쉬는 시간마저도 지루한 아이는 언제 다시 물에 들어갈 수 있나 하염없이 바라본다.
안산에서 왔다는 가족은 느릿한 안락함을 세상 행복하게 누리고 있다.
엄마품이란 그저 함께 있는것만으로도 좋은 존재라는것을 표정에서 알 수 있음이다.
건강한 걷기를 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은 맨발로 잔디를 걸으며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무성한 억새사이로 느릿하게 걸어가는 세친구는 시간을 엮고 세월을 엮는다.
아들의 신호로 갯골의 아름다운 모습과 바람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서로 지탱해주고 있다.
"저도 찍어도 될까요?" 다시 포즈를 취해주는 이들의 여유있는 멈춤이 흐뭇하다.
한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살아왔을 이들은 다정하게 얹어진 손 만큼이나 또 그렇게 다정한 시선 나란히 바라보겠지... 갯골을 바라보며 앉아 세월을 낚고 있으면 느껴지는 마음의 여유. 갯골만큼만 살아도 좋을 이 넉넉한 마음은 그대로 정박되어 어떤 흔들림에도 끄떡없으면 좋겠다.
자전거와 달려 누가 더 빠를까 내기라도 하듯 필사적으로 달리는 아이들은 "빨리 달려!"를 외치는 자전거인들의 말에 와- 소리지르며 더 빨리 내달린다.
뜨거운 태양아래 소금밭은 잘도 익어간다. 시흥 염전의 흔적, 그 역사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갯골염전은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또 사랑받고 있다. 준비 중에 있는 갯골축제에서 아이들의 염전체험이 가득할것이다. (제12회 갯골축제 9월 22일~24일)
그저 바라만보아도 좋은 갯골생태공원.
사랑받아 마땅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연자원이다.
갯골의 부는 바람따라 한바퀴 휘몰아 다니다 다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장곡동 시내 뒤편을 올라 노루우물을 보려하니 풀들로 가득차 가렸다.
마르지않는 우물. 노루우물
그 옛날, 장곡에 터를 잡은 이들에게 식수를 제공해주고 빨래를 하고 멱도 감고 농수로도 사용했던 우물.
측백나무와 더불어 우물을 없애려던 이들에게 맞서 장곡주민들은 노루우물도 지켜냈다.
우물 주위에는 공원이 조성된다. 공원이 넓어지고 아파트가 적어야하는데 아파트가 더 지어지고 노루우물 주변 공원은 6/1정도로 줄어든다고 하니 참 씁쓸하다.
노루우물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노루우물을 이야기하는 지역의 토박이 어르신은 노루우물이 500년이 되었는지 천년이 되었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않는 우물에 한 여름 그 온도마저 차다고 하니 없어졌다면 마을로서는 대단히 좋지않은 역사적 사건이 되었을법하다.
노루우물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장곡동 매꼴마을 노루우물가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그 욕심이 과하여 성질마저 고약했다고 한다.
하루는 고명한 스님이 왔다는 소문에 욕심쟁이 부자는 스님을 불러 어찌하면 우리 집에 동냥아치나 구걸뱅이가 오지 않겠느냐 물었다.
이에 스님은, "당신네 뜰 앞에 있는 노루바위를 깨뜨려 버리면 다시는 거령뱅이가 오지 않을것이요"했다.
욕심쟁이 부자는 그 길로 큰 망치를 들고 가서 노루의 목을 쳐서 떨어져나가게 했는데 그때 목에서 선혈이 뻗어올랐다고 한다.
그 후 그 집은 차차 망했다는 이야기...
한편, 목에서 피가 그치지않고 계속 뻗어 나와 우물자리에 절을 짓고 정성을 다하니 피가 멈추었다.
지금도 그 부잣집 터에는 옛날 기왓장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1950년대 어떤 사람이 옛 절터에 '대안사'란 절을 짓기도 했다는데....
현재도 노루의 일부라고 하는 쑥돌의 일부가 우물 속 깊이 박혀있으며, 그 노루우물은 1970년대 초에 복원하였다. [시흥문화원발췌]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 이웃이 되어야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설화가 아닐까싶다.
다시 올라갔던 길을 내려왔다.
중앙병원으로 마을안의 유일한 준 종합병원이었는데 적자에 시달리다 폐원한지 여러 해.
시흥한도병원으로 재 개원을 위해 공사중이다.
어서 빨리 열어 피부과, 안과, 정형외과까지 들어오면 좋겠다는 바람 가져본다.
장곡동의 중심상가로 들어왔다.
장곡동의 명동!
오케이마트 앞이라 말하면 다 통하는 길이다.
장곡동에서 제일 번화한 곳의 마트, 바로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양방향, 마트 손님들의 정차차량으로 인해 정체현상이 심하게 빚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며가며 마주치는 차량들과 사람들로 인해 위험한 구간이기도 한데 일방통행의 간절한 주민들의 목소리는 허공에만 떠돌고 오늘도 우리는 위험한 곡예하듯 차와 사람을 피해 지나간다.
장곡동은 작은 섬이다.
그래도 학교는 많다.
진말초등학교, 장곡초등학교, 장곡중학교, 응곡중학교, 장곡고등학교.
아이들은 이 사거리를 참 많이 다닌다.
이 곳에서 벌어지는 청소년들만의 축제인 노루마루축제는 차를 막고 도로 위를 맘놓고 다닐 수 있는 신나는 시간이 된다.
오늘의 투어 중 새로 생긴 가게가 있어 찍어보았다.
며칠안에 가면 사라지고 생기는 가게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올리브영이 생겼다.
어린 학생들로 북적인다.
[장곡문화체육센터 시흥시 인선길 52]
주민들을 위한 장곡문화체육센터가 우뚝 서 있다.
이 안에는 장곡도서관, 문화프로그램 교육장, 야외공연장, 탁구, 배구, 배드민턴, 농구, 배구등을 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들어있다.
열린 진로상담을 하는 선생님들의 반가운 얼굴을 보며 음료도 얻어마시고
잠시지만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기도했다.
좁은길, 사람과 차가 뒤엉키는 장곡동의 명동거리.
운전자들이여~
불법주.정차를 하기 위해 빈 공간 찾아 골목을 뺑뺑 몇바퀴 도는 기름값을 생각하면 공영주차장에 당당히 주차하고 500원 내는 것을 선택하는것이 훨씬 엣지있지 않겠는가!
장곡동의 명동거리에는 장곡어린이공원이 있다.
여름이면 아이들과 바닥분수가 한 몸이 되는 곳.
한 달에 한 번 벼룩시장이 열리고
여름이면 어르신들의 휴식공간이 되는 곳.
그리고 노점 할머니들이 소일거리 하듯 나와 야채를 파는 곳이기도 하다.
가끔 경쟁하듯 손님(?)을 유치하는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명동거리에서 소소하게 장보는 재미도 준다.
이곳은 장곡동의 홍대라고 칭할까?
젊은이들이 밤이면 술 한잔 활기차게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골목이다.
아직 나는 가보지 않아서 한번쯤은 가볼까도 생각하고 있다.
장곡동에서 가장 핫한 신가네 꼼장어집은 오래 앉아있으면 안될 것 같은 무언의 압박감이 밀려오는 곳이다.
오픈하는 시간부터 파장하는 시간까지 꽉꽉 들어차는 가게는 술자리치고는 비교적 빠른 회전율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 때문이다.
한가지 팁을 준다면, 6시 30분 예약을 하라는 것이다. 그 이후는 예약을 받지않으며, 예약한 시간으로부터 10분이 경과하면 다른 손님에게로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
장곡중학교 앞이다. 장곡주유소는 개발에 밀려 문을 닫았다. 차 앞유리에 붙여진 노란 딱지, 깔끔하게 서비스로 떼어주고 폼세차 깨끗하게 해주던 곳이었는데, 개발이란 누군가에게는 좋은것이나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한숨만 쉬던 주유소 사장님의 초첨흐린 눈빛이 떠올려진다.
진말초를 지나가는 만남의거리다. 18년전 이사올때만해도 그늘을 만들어내지못했던 나무들은 어느새 큰 그늘을 만들어내는 어른 나무로 성장했다. 돈들여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그늘막보다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자연그늘이 더 시원하고 보기에도 좋은것은 사실이다.
보이는 곳 반대뱡향에서 들어오면 너무 좋은 짧은 드라이브코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밤샘주차단속이라는 현수막이 무색하게 밤이 되면 양방향 주차로 인해 가운데 주행하는 차는 무척 조심스럽다. 어두운 차 사이로 튀어나오는 어두운 사람의 그림자를 볼라치면 심장은 그래도 무너진다.
마주치는 차는 서로 눈치작전을 펼친다.
내가 피해? 네가 피해~
이 길을 가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흙이 위대한걸까, 사람이 대단한걸까....
작물은 잘 자란다.
장곡동주민센터 임시청사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뒤로 이어가면 응곡중학교가 있고 학교 담벼락에는 이렇듯 큰 차량들이 보란듯이 서 있다.
사업용차량 밤샘주차 상시 집중단속 구간이 무색한...
그리고 장곡동의 치안을 책임지고있는 든든한 장곡지구대와 바로 옆에 우체국이 보인다.
그 앞에는 인선역사공원인 매꾤공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전년도에 이어 올해도 두번째 인선왕후축제가 펼쳐졌다.
궁중복 입기 체험도 장곡 명품프로그램의 하나로 역사교육과 함께 열리기도 한다.
인선왕후축제는 2014년 갯골축제에서 처음 인선왕후 퍼레이드로 시작되었다.
호평 속에 인선왕후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된 뿌듯한 순간이다.
인선왕후에 대한 기록이나 정보는 많으나 왕후의 아버지(신풍부원군)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한것같아 나는 장유선생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적는다.
장유(張 流) 1587년(선조12년)~1638년(인조16년)
가을에 계곡 장유가 우산의 계상을 찾아왔다.
당시 장공이 암행어사가 되어 우산선생을 찾아와 선생이 이르기를 국가가 유신해야 할 때를 맞아 깊고 원대한 정책이 때에 맞게 강구되지 않을 수 없으니 인심을 수습하고 군병을 훈련시키는 것이 오늘의 급선무가 아니겠는가. 바라건대 공은 조정에 돌아가 재상들과 대책을 강구하여 실행 하도록 하십시오 하니, 계곡이 시를 지어 대답하였다.
십년 전, 이별의 추억을 생각하며 하늘 끝 숨어 사는 곳을 찾으니 김츨 골에 시냇물 소리 고요하고 아담한 지벵 등불 그림자 공허하네. 나라를 위한 마음은 열렬하고 교우르 논하느라 수염이 성기네. 한 평생 무릎을 감싸고 있는 뜻을 새글에 나타내는데 아끼지 마오. -후손 장경태
장곡동투어를 마쳤다. 걸어다니니 보이는 것들이 소소하고 예뻤다. 사람들도 좋았고 만나는 모든것이 좋았다. 다만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삼계탕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다음 투어는 좀더 깊이있게 다녀야겠다.
더 자세한 마을 이야기는 '걸뚝'(마을기록가들이 만든 기록물) 3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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