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선(악기선생님, 37세)선생님은 지역아동센터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소위 외부강사다.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어 푸른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우쿨렐레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지역아동센터에는 악기 뿐 아니라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았다. 10년간 수업을 하니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보람으로 남는다. 아이들이 먼저 기억하고 알아봐주면 고맙다. 지역아동센터에서 가르치던 아이가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만나면 예전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장난치며 웃는다.
박보선강사가 가르치는 과목은 기타, 우쿨렐레, 오카리나, 핸드벨등 음악 관련한 것은 무엇이든 프로그램에 넣어 가르친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없으니 아이들이 원하고 즐거워만 한다면 정규수업 외에 공연이나 추가 수업도 해준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한걸음 더 들어간 자리...
지역아동센터에서 일을 하기 위해 정왕동에 들어왔을 때 첫 느낌은 외국인이 많은 지역이구나 라는거였다. 그리고 아파트보다 주택이 많은 것을 보고 더욱 놀란 것은 그 안에서 많은 아이들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빌라형태의 집, 원룸, 투룸에 가정을 꾸리고 사는 가족들 중, 그 좁은 공간에서 5,6명이 모여 산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면서 그 의문점이 풀렸다. 부모님들이 3교대로 일을 하러나가고 편부, 편모가정에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도 있고 다문화가정과 엄마, 아빠와 따로 떨어져 사는 아이들, 게다가 군서초등학교에는 아이 혼자 원룸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좋지 않은 길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정에서 이렇게 살기도 하는구나 라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라도 더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들이 바쁘다 보니 애정결핍인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다가가려고 한다. 공부는 좀 못해도 상관없다. 아이들의 불안정한 정서를 어루만져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학교가 끝나면, 지역아동센터에 가고 집에 가면 잠을 자고,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학교에 가는 반복되는 생활... 밤에는 일을 하러 나가는 부모로 혼자 자고,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부모가 집에 들어와 자는 이런 불안정한 가정생활은 원룸, 투룸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 생활의 반복은 사랑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부족한 사랑의 빈자리는 관심을 받기 위한 표현으로 욕설 또는 거친 말을 사용하며 과장된 행동을 한다. 나 아닌 다른 친구가 칭찬을 받으면 샘을 부려 친구를 귀찮게 한다. 그래서 아이들 하나하나 성향을 파악하고 대하려고 노력한다. 친밀감의 형성이란 관심밖에 없다.
지역아동센터에서의 프로그램이란 아이들이 원해서 하는 프로그램보다 센터에서 지정해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그래서 반은 하고 싶고 반은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 같이 어울려서 하려다보니 힘들다. 강압적으로 억지로 하다보면 서로가 지친다. 센터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관심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주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소리가 난다 정도만 가르쳐주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수업 방식을 바꿨다. 악기수업을 하되 즐겁게 재미있게 하려고 한다.
정왕본동만의 지역특성도 있기에 다르게 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인 반, 다문화인 반이 섞여 수업하고 있는 초등학교에는 중국인 아이들이 많다. 더러는 흑인아이들, 러시아, 동남아 아이들이 많다. 정착해 살지 않는 중국, 한족아이들이 문제로 드러난다. 대놓고 “저 이거 안할거예요”라고 말하는데는 대책이 없다. 관심이 없는 것은 아예 무관심한다. 온 몸으로 거부한다. 그 아이들에게 본동이란 잠시 머물다 가는 곳 일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으므로 관심이 없는거다.
예전에는 뭔가를 가르쳐준다하면 재미있겠다, 신기하다, 이런 반응이 있었는데, 요즘은 물질적으로 풍족하기에 새로운 시도에 대해 ‘귀찮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하니 학교 측에서나 센터 측에서나 늘 새로운 것을 가르치려 노력해도 정작 받아들이려는 아이들은 한정적이 되고 만다.
10분 수업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놀아주어야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지금 본동 학교의 모습이다.초등학생은 어려서 그런가보다 한다. 중학생은 사춘기라서 그런가보다 한다. 고등학생은 다를거다 생각했다. 그러나 키만 컸지, 행동은 똑같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반별로 성향이 다르기에 숨을 쉴 수 있는 타임은 있다. 수업하기 좋은 반은 원래 추구했던 방향대로 수업을 이어간다. 그러나 힘든 반은 한,두명만 이끌어가고 어떤 면에서는 포기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하는 정서
음악이 아이들한테 주는 정서적 발달은 매우 좋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말인 것 같다. 음악수업 하는데 계이름 하나 모르고 악보 볼 줄을 모른다. 알 필요성도 못 느낀다. 아니 가르쳐주려 해도 거부한다. 아이들에게 악보 따위는 필요없다. 그저 귀로 듣고 바로 따라하는, 흉내 내는 음악을 하려한다. EDM 문화에 젖어 있는 탓이다. 배우고 듣고 해석하는 음악은 하기 싫어한다. 기초부터 배워야한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장의 성과, 기타나 우쿨렐레를 잡았을 때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어떻게 하면 관심을 갖게 될까...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다. 한 공간에서 30명의 아이들이 질러대는 악기소리는 아름다운 소리가 아닌 소음이 된다. 배우고자하는 의지가 없는 반의 경우 어르고 달래서 끌고 나간다.
기억나는 아이들, 기쁨과 안타까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기특한 아이도 있다. 기타수업에서 늘 E를 맞았던 학생인데 어차피 잘해도 E를 맞을건데 왜 하냐며 포기를 했었다. 그러나 그대로 포기하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 달래서 시험을 보게 했다. B를 받았다고 한다. 그 아이는 다음 학년에 올라가서 너무나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었다. ‘선생님덕분에 기타를 치게 됐고 B를 받게 됐다, 감사하다’라고 말한 그 학생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반대로 신경 쓰이던 아이도 있었다. 중국은 한국과 교육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계이름을 도레미로 배우지만 중국은 계이름이 없어 1,2,3으로 배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중국아이인지 일본 아이인지 한국 아이인지 몰랐다. 시험기간이 다가왔는데 중국 아이인거다. 본인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맥이 풀렸다. “나는 이 아이한테 뭘 가르쳐준거지?”하는 마음에 너무 속상했다. 초등학교에서는 서로가 잘 어울려 논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중국아이들이 대장노릇도 하며 기선제압을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숨긴다. 본인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창피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데 숨기니까 안타깝다. 또 신체적인 조건이 안되는 아이들도 있다. 손가락이 짧다든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다. 한 반에 지적장애 아이들이 한명씩은 있다. 도움반 아이들의 경우인데, 그런 아이들은 더 봐주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 케어 하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다. 어느 선생님은 강사가 두 명 있어야 한다는데 강사가 두 명이든, 세 명이든 그것은 중요한 거 같지 않다. 교감하는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아이들
오랫동안 수업을 하다 보니 웬만하면 아이들의 성향이 파악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두고 보면 다 불쌍하고 안타깝고 마음 쓰이는 애들이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이 한 반에 30명이다. 케어 할 수가 없다. 한 명, 한 명 다 끌어안고 가기위해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고 달래가며 해도 결국 지치는건 교사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내려놓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르쳐주려고 하면 ‘내 자유시간에 와서 왜 억압하려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부모에게 가서 말한다. 민원이 발생한다.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속상하다.
악기란, 돈 주고 배우면 비싼 교육이다. 예산을 받아서 좋은 수업을 하고 있는거다. 그런 민원은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하여금 자괴감에 들게 한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놀아가며 해야 좋은 수업이다. 집중해서 뭔가를 가르치려 하면 결코 좋은 수업이 아니다. 통제하고 억압하면 싫은 선생님이다. 그러면 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시간만 때우다 가는 수업을 하게 된다. 좋은 취지의 수업이 퇴색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도 난감할 것이다. 배움과 가르침의 중요성으로 최선을 다하려해도 살살해달라, 다 끌고 갈 수 없다, 되는 애들만 해라 이러니,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 혼란이 오는 건 사실이다.
선생으로서 가르쳐야 할 의무를 다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다고 아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 관심과 사랑, 그리고 칭찬... 힘든 일이지만 30명의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으니 민원이 들어와도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연을 하면 아이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 한 곡 정도의 발표회 수준밖에는 안되지만 아이들은 배운 것을 발표하는 그 시간동안 많은 성장을 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성장한다. 공연 후 아이들은 기타 잘 치는 아이로 칭찬을 받기에 뿌듯해한다.
무대에 올랐던 아이들은 다음 학기에 만나면 “이번에는 무슨 곡으로 공연할거예요?” 라고 묻는다. 그럴 때는 “아, 얘네들이 컸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악기 배우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성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새로운 악기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악기를 훌륭하게 연주하기보다는 이런 악기가 있더라, 이런 악기에는 이런 소리가 나네? 하는 정도로만 알아도 좋겠다. 후에 성년이 됐을 때 중, 고등학교 시절 배운 악기로 한 곡 정도 연주할 수 있는 정도의 기억을 하면 더욱 좋겠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지역이 아이들에게
아이가 갖는 관심분야에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소통이 더 빨라지게 된다.
결국 즐거운 수업이란, ‘아이들과의 교감으로 이루어진 수업이다’란 것을 새삼 느낀다. 아이들이 악기수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음악 이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음악을 통한 교감이 이루어져야 안정된 정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악기에서 나는 소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이들의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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