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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국민영화 ‘엄마 없는 하늘아래’출연했던 김영호씨를 만나다.




1977, 전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엄마 없는 하늘아래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엄마 없는 하늘 아래는 이원세 감독, 김문엽 각본, 염재만 원작으로 제작된 대한민국의 극영화지요. 대강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13세의 김영출군은 어머니가 막내 동생 철호를 낳자마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것이 재발되어 정신착란까지 일으키게 되자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지는 소년가장이 된다.

 

내 동생 철호가 배고파 웁니다. 철호가 울면 나는 …… 돌아가신 엄마 생각을 합니다. 철호를 어찌할까. 먹을 것이 없는데 어찌할까. 하다가 나도 같이 웁니다. ”

 

어린 영출군이 쓴 일기장을 모자 보건원 여직원이 보고 군청에 지원을 요청했고, 서울신문사의 기자가 이것을 보도하여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가 소설 [1] 로 출판되었다.

 

영화는 같은 이름의 아동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진흥업에서 제작하여 1977623일 대한극장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고 감동을 받아 전국 국민학교에 단체관람을 시켰으며, 개발도상국의 가난하던 시대를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우한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였다. 1편의 흥행에 힘입어 같은 해 속편이 제작되었고, 그 이듬해인 1978년에 3편이 제작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1회 충무로 국제영화제(200710)에 추억의 영화로 매진 상영될 정도로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중 하나이다.] -위키백과 펌

 

영화의 배경지는 군자염전이다. 당시 군자염전이 있던 돌주리(지금의 옥구공원), 일본식 목조주택인 관사가 주인공의 집으로 설정되고, 어린 영출의 친구들이 대거 나오는데 그 아이들이 지금은 50대 중반이 된 군서초등학교(일부 옥터초등학교) 학생들이다. 김영호(정왕본동 54)씨도 출연했던 학생 중 한명이다.

    


김영호씨는 정왕본동 토박이다. 정왕역 자리가 예전에는 군자역이었다. 그곳에 태어나 엄마 없는 하늘 아래영화에 출연한 나이는 군서초 6학년 재학 중일 때다. 영화 속 영출의 반 친구로 출연하게 된 김영호씨는 지금도 그때 출연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이야기꽃을 피운다. 50여명 되는 반 친구들은 그저 카메라가 신기하고 영화에 출연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신이 나서 재미나게 촬영에 응했다고 한다.

 

감독이 뛰어가라고 하면 뛰어가고, 가시롱차에 타라면 탔다. 교실에서도 찍고 운동장에서 공차고 노는 모습도 찍었다. 본동에서 옥구로 넘어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거리가 꽤 멀었다. 큰 버스를 타고 가는데 경치가 좋았다. 버스 타고 가다 잠시 쉬는 시간에 영출이가 공을 갖고 놀았는데 그만 공이 저수지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을 친구가 들어가서 건져주었다. 시골아이들이고 바다에서 늘 놀아 수영을 잘했다. 배우 박근형씨나 스텝들도 염전에 호기심을 가졌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온 영출(이경태 분)이에게 잘해주었다. 그때가 1976. 영화는 다음해인 1977년에 개봉했다.

영화 보면 가시롱차 타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래도 내 얼굴이 앞에서 제일 크게 나왔어하는 김영호씨. 가시롱차는 소금을 실어 나르던 운송수단이다. 사람을 태울 수 없지만 큰 짐이 있을 때는 타기도 했다. 옆집 사는 아저씨가 운전수여서 김영호씨는 자주 얻어 탔다. 군자역전에 세워져있는 가시롱차는 놀이터였다. 영화 관계자들의 숙소는 군자역전에 있는 여인숙이었다. 군자역 주변에는 시골치고는 드물게 있을 건 다 있었다. 식당, 중국집(태평관이라고 기억한다), 다방등등... 한 가지씩 필요한 것은 거의 다 있었으며 군자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다.

 

2천여 명 정도 되는 염전 종사자들이 한달동안 고생해서 받은 월급날이 되면 군자역으로 모였다. 그 날의 밤은 휘황찬란했다. 군자역에는 정기적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천막극장이 들어와 입장료를 받고 영화를  상영했다. 김영호씨는 컴컴한 틈을 타 개구멍을 통해 들어갔다. 들키면 이놈들아~~!!” 소리에 놀라 도망가기도 했다. 천막극장이 들어서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영화 개봉 후 단체관람을 했다. 다음해에 개봉했으니 군자중학교 들어가서 보게 되었다. 근처 중학교는 모두 다 관람했다. 당시 정부차원에서 전국적으로 단체관람을 권장하던 때여서 학생들은 마을회관에서 반별로 보았다. 지금의 도일아지타트다. 그곳에서 한 반씩 돌아가며 보았다.

 

관람하던 친구들이 신기해했다. 처음에 믿지 않았던 친구들이 화면에 얼굴이 크게 나오니 ~ 영호 나왔다!!”하며 웃고 떠들고 하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서는 영화를 찍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오십이 넘은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나왔다며? 너 얼굴 나왔다며?”로 시작하는 친구들과의 추억은 식지 않는 화젯거리다. 그럼 김영호씨는 너스레를 떤다. 나 유명한 배우야~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으니 영화배우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