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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손에 손잡고...마을과 학교의 맞손-오경순


나의 고향은 경기도 평택이다. 결혼 후 서울에서 살다 남편의 사업 때문에 시흥으로 왔다. 큰아들이 7살 때였다. 정왕동에서 8년 째 거주중이다. 큰아들은 현재 15살이 되어 군서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작은 아이는 군서초등학교 5학년이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학부모총회에 가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녹색어머니가 되고 보람교사를 했다. 3학년 때는 녹색어머니회장을 맡았다. 현재 군서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회장, 군서중학교에서는 폴리스맘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활동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니 빠져나올 수가 없다. 활동하는 엄마들이 없기 때문이다.

 

폴리스맘이 하는 일은 학교 급식시간에 교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관리감독하는 것이다.

학부모회장은 3년째 하고 있다. 보통 2년 임기인데, 할 사람이 없어 학교에서 부탁하여 1년을 더 연장했다. 학부모회원은 군서초의 경우 다문화가정과 반반이다. 1학년 ~ 6학년대표, 부대표, 회장, 부회장, 감사, 폴리스회장, 녹색회장, 부회장 이렇게 구성된다.

 

보통 1학년 엄마들이 많이 오는데 올해는 거의 없다. 다문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맞벌이 여파로 인해 학부모총회조차도 참여가 저조하다.

 

그래서 학부모회에서 어떤 일을 거창하게 벌일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적 제약도 있지만, 참석인원의 수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지역과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 교육을 받아보자 했다. 한번 배웠을 때 계속 활동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했다. 행사시 가장 인기가 많은 풍선아트를 선택했다.

 

우리는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평만 생긴다. 복지시설과 학부모예산 지원으로 10명 정도가 교육을 받았다.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무대 풍선장식을 학부모회에서 직접 하면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다. 정왕마을축제에서 부스를 맡아 풍선을 열심히 불어준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에 힘입어 페이스페인팅에도 도전했다. 축제에서 풍선아트에 이어 페이스페인팅 부스도 운영했다. 과정에서 한 가지 숙제가 생겼다. 다문화 가정 엄마들과의 어울림이다. 다문화 엄마들 중 3명이 그림을 너무 잘 그렸다. 그들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학부모회장으로서 풀어야 할 숙제다.

 

축제에서 자신감을 얻은 엄마들은 풍선장식을 하고 난 후의 뿌듯함을 손끝에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연습을 하기로 했다. 연습만의 목적은 아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마을이야기를 하는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이다.

 

시키는 일만 잘했던 성격에서 이제는 일부러 학교나 교육청을 다니며 의견을 주고받는다. 엄마들은 학교에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마을에 함께 참여했을 때의 요구가 당당할거라고 생각했다. 마을의 쓰레기문제가 심각해서 2주에 한 번씩 토요일 아침에 돌아다니며 청소를 실시했다. 정왕본동행정복지센터에서도 참여했다. 참여의 강제는 없으나 학교의 동참은 의미가 크다. 이 마을에 살고 있고 마을에 같이 동참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선 나부터 해야 다른 사람도 한다. 마을축제를 같이 함으로서 마을에 더 관심을 갖게도 된다. 순찰을 돌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마을은 어느 순간, 하나의 마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올해 정왕본동 학교군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건 학군개정안이었다. 배곧신도시가 생기면서 학군개정안을 발표한 것인데, 군서로, 마유로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눠서 군서중, 시흥중, 정왕중 세 곳, 초등학교는 생금초, 시화초, 군서초, 신천초... 각 학교 학부모회장단과 반대운동을 벌였다. 인위적으로 학군을 나누어 강제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주민자치위원회에 들어갔다. 학군개정안이 이유였다. 학교 일만이 아니라 마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하나가 없어질 수 도 있고 존폐위기가 있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학부모를 떠나서 주민으로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관심이 없었다. 마을 주민의 대표자격으로 자치활동을 하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관과 마을사람들과의 중간적 소통 역할을 하길 바랐다. 학군개정안은 철회되었다.

  

내가 여기 살고 있고 학교일도 마을에 속해 있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학교와 마을은 같은 선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학교가 참 힘들다. 아이들도 힘들다. 학교가 폐쇄적인 이유는 교장선생님의 잔여 임기기간 탓이 크다. 임기 안에 뭔가를 벌인다는 자체가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발전이 없었다. 군서중은 아파트단지에서 볼 때 그 학교는 문제가 많다, 아이들이 다문화아이들만 있다... 그런 시선이 있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바뀌었다.” 학교가 열린 것이다.

 

마을과 연계해서 자유롭게 마을과 소통될 수 있는 학교로 바뀌었다. 같이 공감하고 아이나 학교가 그리고 학부모들이 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한 것이 그동안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기관이나 시청, 교육청등으로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찾아다닌다. 아이들만의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숲을 정화하는 시도가 이젠 학부모들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을에서 학교의 위치는 정말 중요하다. 밝고 어두운 것은 전적으로 학교에 달려있다고 본다. 학교도 마을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주변이 정화될 수 없다. 유해환경의 있고 없음은 학교와 마을의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서로간에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거다. 학부모들의 목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잘 키워내는 것이다. 마을도 남들이 봤을 때 잘살고 좋은 마을이면 좋겠다.

 

군서초가 시화초와 함께 다문화국제학교로 지정받았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 않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잘 지낸다. 언어의 불편은 있으나 지혜롭게 풀어나갈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처럼 밝고 순수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공부가 중요하지만 당장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바심 낼 일은 아니다. 동기부여가 아직 없기 때문일뿐이다.

 

마을이 아이의 마음을 알고 다잡아 주면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집에서 케어를 못 받은 어느 아이는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사랑을 못 받았구나생각했다. 나를 보고 도망을 가는데 정말 잘 뛰었다. 그런데 학교 달리기 시합에 나오지 않았다. 많이 마주쳤는데 늘 도망갔다. 3년 정도 지나서야 겨우 인사를 받아주었다. 말을 걸면 대답도 해주었다. 무엇을 주면 받기도 한다. 마음을 연 것이다.


학부모회장으로서 엄마들한테 얘기하는 것이 있다. 학교, 반에 가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라고. 반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잘 키우려면 주변아이들이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가 행복하다. 내 아이만 잘 키워서는 행복할 수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했다. 그러나 바뀌었다. 이제는 바르게 살라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을사람들과 학교아이들이 함께 더불어서 소통하면 좋겠다. 먼저 손 내밀고 찾아가는 마을과 학교, 주민과 학부모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