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스쿨 2층에서 오카리나를 불고 내려와 작고 가느다란 바늘로 십자수를 놓는 모습이 천상 여자다. 1번, 2번, 3번, 4번 들락거리는 것이 십자수 장인처럼 느껴지는 건 오랜 시간동안 해 온 연륜의 솜씨인가보다. 수줍은듯 구수한 입담은 사랑방에 앉아 도란거리는 여인네의 편안한 삶의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십자수. 1mm의 네모 난 작품. 그의 손에서 탄생되는 작품들은 다양함을 넘어 그림이 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과 함께 살림만 하는 것은 꽤 심심한 일이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질때문이라나? 돋보기에 의지해야할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섬세한 바느질 솜씨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그대로 변하지않고 있다. 분명 결혼 전에는 활달하면서도 고운 아가씨였을 것 같다. 박점숙씨의 어머니는 어린 딸들에게 손수 옷을 만들어 입힐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손으로 하는건 뭐든 잘 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십자수는 20년동안 변치않는 재미진 취미생활이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살아생전 하신 말씀이 항상 사람 사는 집에는 사람이 끌어야한다고 했다. 친정엄마도 음식으로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늘 집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 영향탓인지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집과 교회를 오가며 나눔활동을 하던 차에 주어진 사회공헌활동가의 기회는 아시아스쿨로 연결되었다. 또 다른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좋아하는 수를 놓으면서 내방하는 이들에게 맛있는 차를 내가고 사무실을 안내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또 프로그램 안내를 하니 아시아스쿨이 이제는 꼭 자신의 사무실만 같단다.
박점숙씨는 수요일만 빼고 매일 아시아스쿨에 머문다. 수요일은 다니는 교회 마당에서 천연비누를 만들어 무료 나눔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가느다랗고 길다란 색색의 실을 감아 정리하는데만도 수시간이 걸려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5년전 대구에 있을 때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아 수술을 하고 시흥으로 와서 더불어 얻은 삶을 사는 '지금' 이 시간이 그에게는 더없이 값진 시간이다.
“집에 혼자만 있었는데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아요” 좋아서 하는 일은 가치와 행복을 ‘자신’에게 의미를 둔다. 오랜 시간 텅 빈 공간 속에 홀로 있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공간을 채우니 활력이 생겼다. 그것은 작품으로, 사람으로, 정으로 매일매일 채워져갔다.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소소한 재미도 붙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 나오는 재미로 살아요. 사람만나는 것도 재밌고...” 매일의 일상이 감사하고 즐거운 그녀다.
“집에 있으면 시간을 죽이는거잖아요. 내 시간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아요”
그래서 사회공헌활동 시간이 끝나도 계속 나올 생각이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그렇게 통하는 마을사람들이 마을에서 나눔을 하니 지역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서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걸 누군가에 알려주는게 큰 기쁨이고, 또 오는 분들은 남한테 뭘 배운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예요.” 오는 한 분, 한 분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아시아스쿨에서 누구를 가르치는건 봉사라고 생각하고 왔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재료값은 벌어요”라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미소짓게 만든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건 진정한 행복을 하는 자들만의 특권인 것 같다. ‘때론 원하지 않은 일을 할 때도 있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박점숙씨는 20여년을 한결같이 수를 놓으면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도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필요한 사람을 만나며 또 만들어간다.
정왕본동은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적 특성이 있기에 청년활동가들에게 재료를 주어서 학생들과 함께 해보라고 했다. 아시아스쿨을 찾는 청소년들이 청년들과 가깝게 지내기에 옆에서 도와만 주면 가능한 수업이 되니 그 또한 좋은 일 아닌가. “꼭 내가 가르칠 필요는 없는거잖아요” 참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수를 놓으면 시간도 잘 가지만 생각이 비워져요. 속상한 일이 있을때 실을 감고 있으면 마음에 평정이 생기고 또 꽃, 과일등을 만들어가면서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갖곤 하죠” 만들어 낸 작품을 누군가 예쁘다고 말해주면 그 칭찬이 그렇게 좋다. 그러면 선물로 건네진다. 베푼다는 것은 마음을 풍요롭게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게 쉽지 않잖아요, 특히 주부들은요. 자녀들이나 남편을 위해 살림을 하니까 내 시간이 없는건 당연해요.” 자녀들의 성취는 자녀들의 몫이고 남편의 성취는 남편의 몫이다. 그렇다면 주부들의 성취는 무엇일까? 하나라도 취미를 갖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한땀한땀 수놓은 작품을 완성하여 걸어놓으면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여기에 있는 시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예요. 여러분도 나를 위해 투자하세요”
‘이 사업은 삼성꿈장학재단 지원으로 (사)더불어함께에서 진행하는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지역자원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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