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동의 겨울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그 아래서 단아하게 할 일을 하고 있는 이선경씨의 조용한 움직임, 그러나 강렬한 인상, 본동에서의 그녀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낯설기만했던 처음의 정왕동은 하나였으며 지금의 정왕어린이도서관은 주민센터였다. 주변 건물은 띄엄띄엄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친정엄마가 방문하셨을때 ‘북한같아’라고 하시더라구요” 할 정도로 사람도 차도 없는 한산한 동네였다. 반월공단에 본사를 둔 남편을 따라 시흥에 들어와 산 20년 전의 모습이다. 시흥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대학 1학년이 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이쯤되면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싶다. 정왕동의 변화과정을 직접 겪으며 살고 있으니...
직장생활을 한 탓에 학교에 잘 가지 않는 엄마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서중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아빠를 닮아 활동적으로 학교 생활을 잘 해냈다. 학교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작은아이가 전교학생회장을 하면서부터다. 학교일은 자연스럽게 마을일로 확장되었다. 당시 군서중 교장이었던 지금의 정왕고 정종윤 교장으로부터 제안 받은 학부모회장 자리는 ‘마을활동가 이선경’으로 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 다니던 직장을 잠시 쉬고 있을 때였던터라 제안은 기쁨이었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나도 뭔가 할 일이 생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무엇이라도하여 성취감을 느끼고픈 것에 목말라하던 차에 걸려온 전화는 매우 감사함이었다.
직장을 다니느라 낯선 학교와 학부모회와는 좁혀지지않는 거리가 있었다. 엄마들 앞에서 통솔력이 요구되었는데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과정이려니 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갔다.
2017년, 본동에서 중학교 개정안 문제로 대책위가 꾸려져 정왕권 엄마들과 주민, 학생들이 집결한적이 있었다. 당시 정왕주민자치회 임정옥회장과 군서초학부모회장이던 오경순씨, 군서초,중 학부모였던 김현숙씨등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은 마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동료로 발전해나갔다. 귀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마을활동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조력자가 되었다.
학부모회장과 학폭위 위원장을 겸하면서 내 아이들만이 아닌 또 다른 ‘우리 아이’들을 보며 달라진 시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이들 자체의 문제는 사실 없다. 그저 끌어안아주어야 할 아이들만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난 광주는 대체적으로 시민의식이 좀 높은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고향이 어디예요? 하고 물어보면 자신있게 광주라고 대답을 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자신이 태어난 시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어디 가서도 시흥출신이라는 것을 자신있게 말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예요.” 시흥에는 내세울 것이 없고 학교는 물론이고 빨리 졸업하고 커서 시흥을 떠야지 하는 말이 빈번한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시흥을 변화시켜 머물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엄마 마음으로 돌아가 마을 안에서 아이들을 보듬고 또 그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의 실천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차에 오경순씨로부터 마을활동가 양성과정교육이 있다는 정보를 들어 무조건 뛰어들었다. 마을활동가 양성과정은 세 파트였다. 마을축제매니저, 마을해설가, 소식지(마을기자단).
정왕동의 역사를 알고 기록하며 해설도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선경씨는 정왕본동행정복지센터내 자원봉사센터실에서 하루 4시간 상주하며 마을소식지인 ‘본동생각’ 편집장을 맡고있다. 아직 많이 서툴지만 나름 유익한 정보를 싣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 생소함으로 자신도 없고, 컴퓨터도 잘 다루지 못하지만 배우면서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맡아버렸다. 맡아보니 욕심이 생겼다. 재미도 붙었다.
“평생교육사로 일하고 있는 신은순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하고 있는데 다행히 책을 읽거나 글 쓰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 아니라서 하고 있어요.” 첫 기사를 의뢰받았을 때 칭찬을 받아 약간의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자리를 지키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작은 일이지만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면 스스로 대견하다 칭찬한다. 그런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진다. “네가 가장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을 하면 좋겠어. 보수도 중요하지만 일한만큼 따라오지않더라도 그 일을 했을 때 만족스럽다면 '해도 될 것 같아' 라고 하지요.”
사실 돈 버는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하므로 아직까지 마을 안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왕본동이라는 곳이 열악한 환경의 주거지역이라고는 하나 아파트와는 다른 사람들간의 정이 있다. 외국인들이 많은 것도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동은 다른 동보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재원들과 콘텐츠가 많은 곳이다. 그것은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않을 뿐 활동가들에 의해 잠재된 속에서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완벽한 사람보다 내가 뭔가 도움을 줘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좋고 변화되는 본동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또 그것을 보람으로 갖는 것이 최고의 댓가이지않을까 싶어요”
지역 안에서 지역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알리고 사람을 모으고 실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 모두가 화이팅한다면 정왕의 미래는 암울이 아니라 희망의 빛으로 환하게 비춰질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을 보면 너무 밝고 맑고 예뻐요. 그래서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고싶어요.” 그것은 간절한 바람으로 활동가로서 학교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역량만큼의 활동을 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그리고 소식지를 통해 마을사람들은 물론 시흥사람들에게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고 알리는 일을 이선경씨는 하고 있다.
본동여행을 통해서는 안전하고 살기 괜찮은 마을이란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면서 “우리 역할이 그렇게 낮은 비중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정왕본동은 지낼수록 애정이 많이 가는 곳이다. 계속 머물러 마을활동가로 활동하고 싶은 곳이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과 달리 정왕동 내부에서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에 열정적이고 또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마을 안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바로 이선경씨처럼. 그녀의 존재이유는 정왕본동이다.
*이 사업은 삼성꿈장학재단 지원으로 (사)더불어함께에서 진행하는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지역자원조사차원에서 제작되는 인물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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