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벤 말투에 귀여운 투정을 담아낸다. “제가 뭔 잘난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한다요~ 뭔~ 말을 해야쓰까요~” 그러나 작은 얼굴에 앙증맞은 입모양은 쉴새없이 움직이며 이야기를 쏟아낸다. 최근 그녀는 시흥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었다. 마을기록과 마을사람들을 만나면서 갖게 된 올해의 도전이다. 최진숙씨를 처음 알게 된건 정왕동에 있는 ‘기억창고’에서였다. 기억창고에서 ‘기록’을 알게 됐고, 오이도 빨강등대 아래 홍보관에서 ‘오이도마을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라지상회라 이름하는 곳에서의 근무는 오이도를 대내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지난 여름, ‘네모기행 뷰’팀들에게 오이도를 안내하면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에 불을 지폈다.
시흥의 마을로 나온건 불과 5년 전이다. 월곶문화센터에 있는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게 된 것이 지금의 그녀가 있게 된 시작점이었다. 낯선 시흥으로 왔을 때 주위에 어울릴 사람도 말할 사람도 없었다. 유일하게 하게 된 것이 텃밭가꾸기와 가족봉사였다. 시흥시 가족봉사4기로 능곡복지관에서 매월 넷째 주에 한번씩 노인들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봉사와 여성회관에서 빵을 만들어 소외계층에 전달하는 빵만드는 ‘금사랑회’봉사를 하였다. 시공무원들로 구성된 봉사단에 낀 최초의 민간이다. 덕분에 시흥에서 지금까지 살며 정착하게 되었다. 그때 맺은 인연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있다.
그녀의 꿈은 ‘가정주부 최진숙’이었다. 주부로만 살고 싶은데 아이들도 모두 컸고 남편과도 주말부부라 집에서 주부로 할 일이 딱히 없었다.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선뜻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두려워서다. 그때 남편이 봉사를 늘려보라고 했다. 봉사할 때 즐거워하더라면서. 그때 소개받은 곳이 월곶도서관 희망씨였다. 도서관에서의 시간은 봉사를 넘어 미치도록 빠지게 한 ‘애정’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주민들과 함께 할 프로그램을 짜내는 것도 좋았고 사람들이 도서관을 사랑방처럼 드나드는 것도 좋았다. 시민이 지켜 낸 도서관, 시민이 운영하게 되었다고 하니 기쁜 소식이다.
이렇듯 봉사로 시작한 일련의 꺼리들을 겪으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지않을까?’ 하는 스스로의 희망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다 기웃거리게 된 것이 시흥아카데미 마을기록학교 출신 기록가들의 활동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기억창고에서 일하게 되는 연결망이 되었고, 한 가지 꿈을 꾸게 되었다. 시흥에 관련된 모든 서적이 ‘기억창고’ 안에 다 들어오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것이었다. 시흥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기억창고로 와서 관련 책들을 보고 시흥을 알아간다면... 도서관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들어오는 책마다 일련번호를 붙이고 나름대로 찾아보기 쉽게 시스템을 갖춰나갔다. 좀 더 유용한 기억창고가 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던 중, 오이도에 홍보관을 준비하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의 최진숙을 있게 한 오이도와의 인연의 첫걸음은 버스로 시작했다. 오이도포구에 있는 빨강등대에 내리니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파고 들었다. 어느 시골 어촌마을에 온 기분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잘 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시흥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했던 마음이 든것이 기억창고에서 5개월, 오이도에서 17개월, 그 짧기도 길기도 한 시간동안 개인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고 자부한다.
“너무 놀랬던게 난 아무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었더라고요.” 장사하시는 분들, 어촌계에 계시는 분들, 슈퍼에 계시는 분들, 관광객들의 시선이 멈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의 행동하나 나의 말 한마디가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했어야 했어요.” 그리고 점점 오이도를 알아가면서 원주민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홍보관을 홍보하고 시흥을 알리고 오이도를 알리기위해 공부하며, 어촌계부터 오이도 사람들을 만났다. 빨강등대를 중심으로 좌,우 칼국수와 낙지를 가게별로 먹고 다니며 홍보의 타켓층을 구분했다. 시흥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지못하고 정착해 사는 사람들의 삶을 깊이있게 봐야겠다는 생각은 오이도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오이도에서 자랑하고 싶은 뷰는 다 꿰차고 있다. 그래서 마구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지도 안다. 오이도 어디에서 무슨 음식을 먹었을때 맛있고 또 자연산인지 양식인지도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다. 낙지한사라에, 해질녘 사진 한 장에 감동을 받아 매번 오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홍보관 안으로 들어오게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대로가 하나의 역사였다. 당시에는 기록의 방법을 몰라 무수히 많은 귀한 이야기들을 기록해놓지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오이도가 좋아서 살기보다 나갈 수 없어서 그냥 눌러 산다는 말을 들을 때는 왠지 아픈 손가락이 되더라구요.” 갯벌에 들어갔다나오는 어부들이 있으면 뒷정리도 도와주었다. 빨강등대를 중심으로 주변환경을 깨끗이 하려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움직였다. 주어진 일 이외의 것들이지만 늘 존중하고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었기에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사실 기간제 2년 근무하고 밖에 나오니까 할게 정말 없었어요. 갈곳도 없고 능력도 안되니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있더라구요. 봉사나 다시 시작할까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기회가 온거죠.”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은 3주간의 합숙 교육과 105시간의 현장실습을 마친 후에 받을 수 있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되기 위한 도전에 망설임은 없었다. 무엇보다 해설사로서 여유로운 노후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것, 경험했던 것, 아름다운 시흥의 모습, 시민들에게 알려지지않은 시흥의 참 모습들을 알리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기수중에 제일 약한 역량이지만 열정만큼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같은 기수 해설사보다 시흥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눈에 넣지않았을까, 원주민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하는 자부심이 있다.
오이도선사유적공원, 함상공원, 갯골생태공원등에서 근무하게 될 예정인데 문화관광해설사로서 갖추어야 할 준비를 완료해놓은 상태다.
어떤 해설사가 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시흥에 최진숙이라는 사람이 해설을 해. 근데 그 사람 해설을 들으니 시흥에 또 가고 싶더라. 이 말을 듣고싶어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다닐 생각이다. 시흥은 산업단지로 대변되는 곳이 아니다. 시흥은 살기 좋은 도시고, 들어오면 떠나고 싶은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심어주고 싶다.
늘 밝은 얼굴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자 그것을 일상의 버릇처럼 들이고 있다. 감정이 표정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그닥 좋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많이 변화됐음을 느낀다. 그것도 내면의 성장이라면 성장일까.
“미래의 저의 모습이요? 오이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제 모습이 그려지네요.” 오이도에 제대로 된 관광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최진숙 시흥문화관광해설사. 그녀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사업은 삼성꿈장학재단 지원으로 (사)더불어함께에서 진행하는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지역자원조사차원에서 제작되는 인물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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