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정서가 있다. 지금도 그러하나 경제가 워낙 어렵다보니 마음만 담긴 안타까움이 허공을 떠다닌다. 작은 손이라도 내밀어 작은 나눔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정왕본동 이주민단지 안, 작은 교회마당과 작은 식당 안은 이른 아침부터 동네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이것도 부지런해야 해. 늦게 오면 못들어가.” 가장 나이가 많다는 93세 홍서심 어르신의 말이다. 무슨 뜻일까? 자유 노래 시간과 식사 시간 한 시간 전, 노래강사와의 노래교실 때문이란다.
아침 8시부터 삼삼오오 몰려드는 어르신들은 며칠간의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노래방 기기와 마이크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들만의 노래잔치를 벌인다.
늦게 오는 이들은 마당에 마련된 자리나 예배당 한켠에 자리잡고 앉아 안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담소를 나눈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낮 12시가 되면 지역의 봉사자들은 한 끼에 15킬로 분량의 쌀로 밥을 짓고 대여섯가지의 반찬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무료급식을 한다. 이 곳에 터를 잡고 4년간 꾸준히 해오고 있는 나눔이다.
공병철목사는, 4년 전 안산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무료독서실과 무료헬스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곳은 공간이 없는데다 지역적 특성상 무료급식이 더 중요한 듯 해보여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왕본동이 워낙 낙후된 지역인데다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어르신 90%이상이 교포들인 탓에 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기왕 먹는 한 끼, 제대로 잘 먹이고 싶은 마음이 우선 앞서 정성을 넣는다.
62세 되었다는 한 어르신이 본 기자의 손을 잡고 말 끝에 눈물을 보인다. “이렇게 해주는 곳 없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죠. 저는 이 날만 기다려요.”
무료급식이 있는 날이면 최대 190명까지 다녀간다고 하니 그 쌀 값만 해도 어마어마하겠다. 어려운 경제시대, 지역사회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않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는 공병철목사는, “교회가 힘들다고 그동안 드리던걸 안주면 우리 어르신들 어떡해요. 힘들어도 어찌어찌 해드리는거지요.” 한 끼 먹자고 아침 일찍부터 와서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거기다 노래까지 부르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늘 즐겁고 활기차다.
그러나 그런만큼 공병철목사의 깊게 패인 주름은 행복함 반, 걱정 반으로 굵어져 간다. 100여명의 신도로는 재정의 열악함을 막을 수는 없으나 배고픈 시절이 있었기에, 그 배고팠던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중단할 수 없다.
3월 6일 수요일. 이날은 110여명 정도가 다녀갔다. 미세먼지의 탓인데다 겨울이어서다. 날이 따뜻해지면 더 많은 이들이 나와 빈 공간 없이 가득 메운다고 한다.
“교포들을 위한 경로당이 얼마 전에 생겼거든요. 그런데 취지와 달리 싸움도 많고 어울리지도 못하더라고요. 날이 추우니 공원에 나가 계시지도 못하고.. 그래서 제가 새벽 4시부터 문을 열어 놓으니까 와서 TV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놀라고 해도 미안하다고 안해요.”
정왕본동에서 자력으로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곳은 이 곳 낙원교회, 한 곳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만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런데 공목사는 왜 이런 열악한 곳에 와서 애써 고단한 일을 하는 것일까? 정왕본동이라는 낙후된 지역에서의 무료급식이 그에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흐름대로, 이끄는대로 발길을 걷다보니 정왕본동이라는 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지역을 보게 되었고, 지역의 어르신들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해주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분이 혼자서 10인분을 먹는거야. 주면서도 놀라는거지. 근데 자꾸 더 주세요, 하니까.... 그게 어떻게 다 들어가나 몰라. 지금 안먹으면 못먹는다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급식을 제공하는 노동은 힘들지 않으나 대략난감한 경우는 있다. “가끔 냄새나는 사람이 있어요. 교회 안에 씻을 공간도 마련해 놓았고, 옷도 준비해서 갈아입으라고 하는데도 안씻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냄새 나면 밥을 어떻게 먹어. 그렇다고 냄새난다고 말하면 자존심 상해할거 아냐? 그래서 말도 못해.” 밥 한끼 먹으러 왔다가 자존심 상해하고 가면 안된다라는 공목사의 애타는 속내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하고 싶은 소원을 말한다. 그러나 이내 탄식을 한다. 하고 싶으나 현실상 할 수 없는 것. 쌀포대를 문 밖에 두고 필요한 사람들이 퍼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있었다.
“언젠가 말끔히 생긴 신사분이 찾아와서 쌀 한 됫박만 꾸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봐요, 멀쩡한 사람이 쌀을 꾸러 여기까지 왔을 때는 그 마음이 마음이었겠어요? 드리면서 언제든 또 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이후로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갚지 않아도 되니 언제든지 와서 더 가져가라고 하고 싶고, 또 안 갚아도 된다고 하고 싶은데 아마 미안해서 못오는 것 같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어르신들은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한편으로의 우려는 절실하지않은 이들이 욕심에 마구잡이로 퍼 갈까봐 선뜻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한달에 8번 무료급식을 실행한다는건 쉽지않은 일일 터. 거기에 더해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이면 어르신 미용봉사도 하고 있다.
배곧에 사는 50대 미용봉사자는 미용 기술을 배운지 얼마 되지않아 속도는 느리지만 혼자서 열 댓명의 어르신들 머리를 봐주고 있다. 아침 11시에 시작하는 미용은 오후 3시에 끝나는 강행군이다. 그러나 지치지않고 재미있어 한다. 오히려 미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해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 배고플까봐 공목사는 컵라면과 국수를 준비해둔다. 그런데 드시지않는다. 미안해서...
이날은 청주에 있는 떡공장까지 가서 가지고 온 떡을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씩 손에 쥐어주었다. 다양한 모양의 유모차 및 운반수단에 이것저것 싣고 골목을 질러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래도 밥심으로 조금은 활기차 보인다.
공병철목사는 모두를 보낸 뒤, 깊이 패인 주름만큼의 깊은 숨을 몰아쉰다. 현실의 절실함으로 한계를 느낄 때면 드는 ‘후원’이라는 단어. 몸을 좀 더 움직여 더 많은 어르신들에게 한 끼 식사 드리는 것은 일이 아니나 나라 경제의 희박함 속에서 손을 내민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본다. 그리고 나직하게 읊조린다. “한 끼 주는건데 밥을 줘야지, 노인들은 그저 밥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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