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기 까탈스런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별 재미도 없을 것 같았다. 정왕마을교육자치회에서 본 노준철선생님은 그 흔한 미소조차 아꼈다. 늘 진지했기에... 인터뷰 자리는 마련됐지만 걱정이 앞섰다. 과묵형? 단답형? 무뚝뚝? 하아... 이 난관을 어찌 헤쳐가나...
그런데 웬걸! 노준철 군서고 3학년 담임교사는 ‘자유로운영혼’이었다. 또한 책임감 있는 ‘한량’이었다. 상큼한 매력을 뿜어내는 청년선생님! 장난끼 가득한 눈, 해맑은 표정, 그리고 만개한 잇몸 웃음! 모든게 매력덩어리였다.
“워낙 기본적인 성향이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활동적인거 새로운거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런가, 남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들이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어요.” 에너지가 넘치는 선생님이다.
시흥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특이했던 건 어느 순간 논이 있고 어느 순간 아파트가 있고 어느 순간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어울리면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도시와 농촌의 중간지대에 있는 시흥이 특이해보였다.
시흥의 넓직한 자연의 매력에 빠져 머물고 싶은 시흥이지 않았을까하는 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도시지향형 인간이라 백화점이 근처에 있는 학교로 가고 싶다고 한다. 참 솔직한 사람이다.
첫 발령지가 연성지구에 속한 곳이었으니, 그 주변 연꽃테마파크, 강희맹묘, 갯골생태공원등을 기억에 담았고, 정왕동으로 와서는 오이도포구, 옥구공원등에 추억을 남겼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들
초등교사, 중등교사, 고등교사가 접하는 교육의 색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온도차가 있음이 느껴진다. 고교 담임으로서의 본분은 ‘진로’다. 처음 군서고로 왔을때 시흥시청과의 연계활동을 했다. 환경보전교육센터나 시에서 하는 국제교류업무에 아이들을 참가시키는 등의 교육은 시흥이라는 지역에 관심을 확장시켰다. 그것은 곧 정왕마을교육자치회까지 들어가게 되는 흐름을 타게 하였다.
2015년 당시, 3학년 부장선생님이 만들어놓은 활동들을 인계받으면서 시흥시청과의 글로벌 멘토링 첫 활동을 했다. 시흥지역 중·고등학생과 초등학교 다문화 아이들을 연계해서 멘토링하는 것인데 일몰됐다. 그래서 직접 해버렸다. 군서초학생 22명, 군서고학생 34명이 A조, B조로 나누어 한 학기동안 총 15주를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 수업인데 학교에 설치된 세콤 장치로 장소 마련이 쉽지 않았다. 그때 만난 것이 경기꿈의학교 거점센터 아시아스쿨이다. 군서고 학생들이 초등학교 학생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이런 연계 프로그램을 위해 지역 사회에서 시설과 여건을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교육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아이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을 만나고보니 ‘내 말을 경청해주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소감을 밝힌다. ‘정이있는 마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정을 주고 또 받으며 친해져갔다. 당연 교사로서 보람은 가슴찡함으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더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얻어가는 뭔가가 있었으면 했다.
동아리활동으로 사회적기업가아카데미를 따복공동체와 연계해서 실시한 것은 자랑거리가 되었다. 사회적기업가아카데미를 수강한 학생들이 9월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소셜벤쳐경연전국대회에서 소셜벤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우수상을 받았다. 나름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이니 뿌듯했다. 자기들이 원하는 친구들끼리 손발을 맞추니 좋은 결과를 얻어낸듯하다.
노준철교사는 내년이면 시흥을 떠난다. 교사가 한 지역에 머무는 10년이란 기간이 2019년으로 마감됐기 때문이다. 시흥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아쉽다고 전한다. “활동은 제 시야도 폭 넓게 해주지만, 아이들한테도 진로 탐색의 기회를 많이 주게되어 좋았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활동을 많이 시켜가며 아이들을 역동적으로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지요. 그런데 제 수업에 대한 모자람이 느껴져서 최근에 비교과활동으로 제 수업의 역량을 높이고 동시에 다양한 수업을 모색했습니다.”
고3 담임이기에 아무래도 가장 신경쓰는 교육의 방향은 ‘진로’다. 아이들도 진로와 연계된 수업을 선호한다. “내 교육 때문에 꿈을 이뤘다는건 없지만 같이 활동하면서 화학공학과가 꿈인 학생이 과학교육과로 약간의 방향을 틀어 과학교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처럼 저랑 활동을 많이 했던 학생들이 교사라는 것에 생각을 많이 해보는 것 같아요.” 그 학생은 원래 꿈이 아니라도 노준철이라는 교사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새로워 보였을 것 같다. 새로운, 약간 못 본 선생님의 유형이라고나 할까.. 어떻든 좋은 쪽의 자극을 준 것이니 젊은 교사는 신났으리라.
시흥에 떨구고 갈 말한마디
노준철교사는 시흥을 떠날 즈음에서 한마디 내려놓았다. 시흥이 여러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지만 조금 생각해야 할 부분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교육의 ‘본질’이다. 특정한 지구 위주로 지원되는 혁신교육사업이 막상 교육을 받았던 친구들에게 학교를 졸업한 후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단다. “여러 활동이 있었지만 그게 저한테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요?” 하는 물음표는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학업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것에 있지않았을까..
“일반화 하는건 잘못된 것이지만 교사들이나 학생들간에도 혁신교육의 정의에 대해 정답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또 “프로그램 만들 때도 10년 전에 혁신교육을 시작한 교사들 위주로 혁신교육협의회가 돌아가는데, 경험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람, 젊은 사람이 많은데 그 분들 목소리는 어떤 요구로 나타내야 할까요?” 현장에서 들리는 또다른 소리라고 이해하면 될까?
교사라는 집단은 근본적으로 학구열이 높다. 뭔가를 배우려하고 교육적 목표가 있다. 추구하는 이상이나 내 목소리가 투입된다고 생각하면 한번 쯤은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교사로 있는 동안, 아이들의 떨어지는 ‘자존감’을 지켜주고 싶었고. ‘시흥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원하던대로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자들과의 술한잔에서 헛되이 10년을 보낸건 아닌 것같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학교안, 마을, 학교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어른으로 성장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젊은교사 노준철은 오늘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경청해라!”
그리고 또 바란다.
“너무 무엇을 하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돈을 버는 인생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치 돈이 전부인양 돈 많이 버는 직업, 안정된 직업을 원하는데, 저도 그렇게 살아서 그러지말자, 반성하고 있거든요. 무엇이 될지보다는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고, 내 삶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이상적인걸까, 현실적인걸까, 낭만적인걸까.
“저는 자유인이 되고싶어요. 한량이 되고 싶어요.”
부모님이 안정적인 직업을 원해서 선택한 교사이지만 학교에 있을 때 마음이 안정이 된다. 교사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더러 듣곤 하지만, 막상 놀고 있으면 불안하다. 자유를 추구하지만 한번도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보지는 못했다. 자유를 추구하면서 자유로움이 불안한 노준철. 어쨌든 시흥을 떠난다하니 시흥에서 가져가는 기억을 붙잡지않고, 2020년 시흥에 없는 노준철의 흔적은 좀 남겨두어야겠다.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사)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는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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