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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카메라 둘러 멘 보헤미안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사진은 기다림과 찰나의 미학이다. 잠시 정체 된 차 안에서 지나가는 전철 위에 걸친 저녁 해는 셋팅 되어있는 조수석의 카메라를 들게 했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것은 작품이 되었다. 사진작가는 그럴 때 희열을 느낀다. 화려한 도시가 들어선 배곧이 허허벌판 대지에 화약시험장으로 쓰여졌던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자연적으로 자라난 버드나무가 바닷바람을 받으면서 자라던 곳. 배곧처녀지로 이름 지어진 한 장의 사진은 김종환의 사진기획전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카메라 둘러 멘 보헤미안


서걱거리는 마른 풀숲 헤치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가 조용한 산 속을 깨운다. 닳고 닳은 등산화를 끌고 군자봉을 오르는 그는 때 이른 개나리를 찍고 아직 해동 되지 않은 땅을 뚫고 삐죽 올라 온 연한 풀을 찍는다. 천년 세월 군자봉 정상에 위용을 자랑하는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한껏 기를 받는다. 그리고 산 아래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흥을 카메라에 담는다. 3~5테라 외장하드 15개를 보유하고 있는 시흥시기록사진작가. 김종환! 시흥시마을기록가들이 지어준 그의 타이틀이다.

 

김종환작가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손때 묻은 카메라 둘러메고 시흥 한복판으로 나선다. 연꽃테마파크로 갯골생태공원으로 오이도로 산으로 개발지역으로 또 골목으로... 장소, 시간, 주제등은 애초에 정하지않는 보헤미안이다.

 

시흥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다. 하루가 다르고 한달이 다르고 1년이 다른 도시다. 어제의 역사를 남기기 위해 기록가들은 어제를 기록하고 또 사진을 남긴다. 외롭기는 하나 그런 기록가들이 시흥에는 몇 있다. 그 중에 김종환작가가 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 기록사진 찍기는 누구 말처럼 좋아서하는 것이다. 김종환작가는 그런 이들에게 미쳤다고 표현한다. 미치지않으면 할 수 없는 일, 기록이다. 그러나 그 귀한 기록, 사진 한 장의 가치를 낮게 치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외부의 사진은 수백만원을 들여 구입하면서 정작 시흥의 값진 사진들은 무료로 달라고 한다.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었으면 하는 사진이라면 기꺼이 내주기도 하지만 사진 한 장을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쓰리다. 나름 기록작가라고 하는 시흥의 어느 기록가는 기록사진을 찍는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사진 한 장 찍어봐스냅사진을 원한다면 고성능의 핸드폰으로도 가능한데 기록사진을 찍고 있는 작가에게 너무도 가벼운 말로 툭 치며 사진 한 장 찍어봐 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다.

 

사진에도 예의가 있는데 그런 것까지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시흥문화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김종환의 사진교실이다. 각각의 사연들을 안고 모집 된 사진교실 수강생들은 열정적인 김종환작가의 지역사랑 사진사랑의 진정성을 알고 팬이 되었다고 한다. 무료했던 삶에 빛이 비쳐지고, 사진교실이 열리는 날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1차 사진교실 수업이 끝나고 심화과정을 하고 있는데 이론과 병행한 실습은 수강생들에게 배움보다는 설렘을 안겨준다. 사진이 주는 희열감은 흥분지수를 높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굴 가득 굵은 주름인 칠십대 노익장 김종환작가는 나이에 맞지않게 아직도 강철같은 체력을 자랑한다. 김종환작가는 카메라에 비치는 아름다운 세상처럼 맑고 순수하다. 아낌없이 주는 50년 노하우로 기록사진 찍는 법을 가르치면서 그는 한가지 숙고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사진 자료들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이다. 훗날 운명을 다할 때 누가 이것을 받아 귀하게 관리하고 자료의 활용을 적절하게 할지, 무엇보다 그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세상을 뜨고 나서 남는 사진들이 지하창고에 방치되지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아마도 기록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1순위가 되지않을까 싶다. 시의 기증은 현재도 방대하게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도 정리되지않은 상태에서 과연 그의 사진들이 올바르게 관리가 이루어질까? 답은 아니다그래서 시에는 기증하고 싶지 않다.



좋은 작품은 발에서 나온다고 한다. 많이 다녀야 좋은 작품을 건질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김종환작가는 사라져가는 마을을 발로 찾아다니며 참으로 귀한 사진들을 많이도 남겼다. 기록사진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찍어야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로 하여금 큰 울림이 되게 하는지등의 가르침을 하면서 그도 함께 카메라를 둘러멘다.

 

때론 배가 고파 노동판에 가서 등짐을 지기도 하지만 그런것들은 사진을 찍기 위한 수단일 뿐이므로 개의치 않는다. "누가 돈 줘? 노동이라도 해야지? 사진 찍으려면!" 한마디로 미쳤다그 미친 짓은 한 기록가를 만나면서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덮어진 산의 우물을 낫과 카메라 들고 파헤친 것이다.

 

2018년. 군자동에서는 군자동 사람들의 옛이야기를 담은 소담소담군자옛이야기책을 출간했다. 의뢰가 들어왔다. 지역의 오래 된 사진을 사고 싶다는 것과 풍경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이었는데 의뢰한 이가 대뜸 작가님! 우물 파러 안가실래요?” 하는거다. 바로 차를 몰고 그 곳으로 갔다. 그 곳은 군자동의 스토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난곡재였다.

 

시흥시 군자동에는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해서 붙여진 구준물이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다. 개발로 모두 사라지고 복원된 하나는 관리가 되지않고 있지만 하나, 군자봉 줄기를 따라 흘러내려오는 물이 우물이 되어 1년 내내 마르지않고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물이 있는 산의 주인은 따로 있었지만 일단 파보기로 하고 후의 일은 후에 해결하자 했다. 의뢰자와 함께 덮어진 우물을 파기 위해 낫 하나와 카메라 한 대 들고 올라갔다. 그리고 파헤쳤다. 무성하게 뒤엉킨 나뭇가지들을 낫으로 베어 걷어내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참을 파 내려가는데 드디어 우물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 드러났다. 낫을 던지고 손으로 덮어진 뚜껑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않았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덮어져 있던데다 너무나 두툼한 시멘트 뚜껑이었다. 장비로 깨지않는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어보였다. 한참을 야속한 시멘트 뚜껑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망연자실. 난곡재 아래 다섯 개의 초가집을 먹여 살렸던 마르지않는 우물이 바로 코 앞에 있는데도 뚜껑 안에 흐르고 있을 샘을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난곡재에서는 흐르는 물줄기를 파이프로 연결하여 연못으로 만들었다. 상징적인 사연으로 기록해야만 했던 에피소드다.

    



들여다보면 기록으로 대상 아닌 것들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과 카메라에 담기는 것들은 의미 자체가 다르다. 한 장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기록작가들이 눌러야하는 셔터는 무수하고 또 신발은 닳고 닳게 된다.

 

사진한장에 들어있는 스토리는 풍경이 됐든 사람이 됐든 자체가 삶이며 작품이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마을을 돌아다닌다고 다 마을활동가가 아니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적어도 마을의 변화를 선도하는 사람들이니 자신들의 활동이 곧 마을의 역사임을 인지하고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하며 또 사진으로 남기기를 바란다. 기록사진 찍는 법이나 기록사진을 찍어야하는 이유를 알고 싶으면 시흥문화원으로 찾아오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일침을 가한다. “미친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된다. 무엇을 하든지간에 미쳐야 한다.” 그래서 시흥의 마을 기록가들은 미쳐가고 있다.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