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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메모/농장일기

[농장일기] 꽃밭에 이름 붙이기

 

농장의 아침은 새벽이슬을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꽃잎에 방울 머금은 이슬은 언제나 영롱하다. 영롱한 그 세계에 빠져있다보면 나는 자연인이 된다. 자연의 요정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면 뭇매 맞을거 같아서 입을 다물기로 한다.

천방지축 랑이와 산책을 하고오면 1차 체력이 바닥난다. 힘 좋은 진도견 랑이는 호기심도 많고, 동네 떠돌이 개 친구들과 놀고싶기도 하여 보호자를 힘들게 한다. 힘들어 주저앉으면 슥- 보고 옆에 와서 찰싹 붙어 앉는다.  차가 오면 알아서 피한다. 옆집 강아지가 심장사상충 걸려 근처에도 못가게 한다. 치료비가 4백만원이 든단다. 반려견 의료비도 보험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 유기견 발생률도 줄어들 것 같다.

 

아침을 먹고 하우스 정리를 하니 어느새 햇살이 퍼진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음악삼아 커피를 내린다. 한방울한방울 떨어지는 커피를 보고싶어 유리잔을 찾으니 맥주잔만 있다. 그립감 좋은 클라우드 잔....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드립커피의 신기함에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커피향이 농장 가득 퍼진다. 오늘 농장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집 창고에 처박혀있던 지질구레한 오브제들이 농장에서는 빛을 발할까? 오늘은 농장 한켠 내 꽃밭 꾸미기 하는 날이다. 

 

볼수록 신기한 금낭화-소녀의 얼굴

농장은 할 일이 정말 많다. 해도해도 끝이 나지않는 농장일. 철창에 갇혀 놀고 싶어 바라만보고 있는 랑이를 밖으로 나오게 하여 함께 움직였다. 아빠바라기 랑이는 아빠 가는 곳마다 졸졸졸~ 

 

이십년 넘게 간직해온 아이들 백일, 돌사진 액자가 삭아 만지기만해도  부서져 틀어진 틀만 남겨놓았다. 꽃이 피어있는 곳에 놓으니 자연을 소재로한 작품전시장이 되었다. 

 

철쭉꽃이 활짝 피면 입체적인 작품이 되겠지?

비스듬하게 걸어놓으니 그대로도 작품이 되는듯하다.

랑이도 좋단다~

 

체력이 약해 중간중간 체력보충을 하려면 쉬어야하는데 종아리가 너무 당겨 랑이 등에 두 다리를 얹었다. 가만히 있는 랑이. 내 다리 무게를 견디는 자, 너란 개! 랑이라는 우리집 막내다!

 

 

더덕잎이 타고 올라가기 좋게 지지대를 만들어주는데 죽은 나뭇가지를 이용했다. 농장과 잘 어울리고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곳에 마가레트를 죽- 심으려고 했다. 막히는 도로에 잠시 눈을 돌려 꽃을 바라보며 안구 힐링하라고... 그런데 민들레가 장악을 했다.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민들레꽃도 예쁜데... 그냥 민들레길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꽃과나무들의 영양을 헤치는 민들레는 캐내야겠지만 이 곳은 그냥 존중해주기로했다. 민들레는 역시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있다. 이 척박한 땅에 뿌리내려 무성하게 자라는 것 보면.

 

 

질서없이 여기저기 솟아나는 꽃들이지만 그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남편의 즐거움을 위해 잔소리하거나 정돈하지않기로 했다. 질서와 군락을 좋아하는 나와는 다른 남편의 농장철학이기에 그저 살짝 양념만 치기로 했다. 바람따라 피어나는 꽃처럼 남편의 생각을 존중하며...

 

 

꽃밭과 나무에 이름을 지어 표식을 하기위해 인두질을 했다. 남편이 크기별로 자르고 구멍 뚫어주고 못을 박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비에 젖어도 썩지않게 락카칠을 했다. 앞뒤로 세번씩.

 

 

그리고 꽃밭에 팻말을 박았다. 우리 다섯식구 이름 한자씩 따서. 화단이 좋은 작은 딸 이름자 하나... 보이쉬한 매력의 재재는 하늘색으로..

 

 

코스모스 좋아하는 내 이름자 하나...

정열의 빨강색으로...

 

 

마가레트와 패랭이꽃이 만발할 이곳은 사위의 이름자 하나.. 밝고 착한 초록색으로...

 

 

핑크핑크한 꽃밭은 큰 딸 이름자 하나...

귀엽고 사랑스런 핑크색으로..

 

 

이것저것 마구 심어버리는 자연인 남편의 이름자 하나.. 우리가족을 품어주는 파랑색으로... 이 꽃밭에는 메리골드 싹이 겁나 올라왔다. 제멋대로 내려진 씨로 올해는 뒤섞인 꽃들로 만발할 것 같다.

 

내 꽃밭은 내 휴식처다.

앞으로도 꾸준히 꾸며 안정화시켜야지^^

그리고 나무들에게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체리나무, 감나무, 블루베리, 감나무 이름표도 제작하여 걸어야한다. 농장에 나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감자싹과 더덕잎이 스물스물 올라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쑥쑥 자라난 쪽파를 다듬어 쪽파김치 담그고 락엔락에 넣고 썰어서 냉동실에 넣고...

오늘도 수고한 우리는 취나물과 당귀잎을 뜯어 대패삼겹살과 목살참숯구이를 해먹는다.

술한잔 걸친 남편이 뻥과자를 하우스 기둥에 걸친다. 이유가 뭐게? 하는데 답이 웃긴다. 첫째는 쥐 못먹게 하려고.. 두번째는 인간쥐 못먹게 하려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