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회사에 다니면서 IMF로 명예퇴직을 강요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회사에서 제시한 건 퇴직금이었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회사에 있던 영업사원이 제안했다. 시흥이 면적이 넓고 사업을 해도 괜찮겠다며. 시장조사를 해보니 과연 시흥은 넓었다. 온갖 곳이 다 논이고 밭이었다. 내가 차리는 가게는 하나! 라고 생각해서 ‘하나로’ 라는 이름을 짓고 사업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문화의거리’ 에서였다. 지금의 자리로 온 것은 7,8년 정도 되었다.
처음엔 당연히 어려웠다. 각 동별로 이름을 알리느라 발품을 팔고, 인지도를 넓히느라 2, 3년간은 고생을 많이 했다. 1년에 명절 두 번만 쉬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를 쓰는 문인으로 사업 외의 교양을 나누고 있다.
대야동 사람들은 서민적이고 따뜻하다. 논이 많은 탓인가 아니면 구도심인 탓인가... 마을에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이웃이 되어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에 변화가 생겼다. 농사도 오래 지으면 그만큼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나이를 먹게 되니 논밭도 사라진다.
논과 밭이 많았을 때는 씨앗이나 자재, 비료, 퇴비, 살충제, 농약 등이 판매량이 좋았다. 농지가 사라지니 대신 주말농장이 인기다. 복합비료와 씨앗은 꾸준하다. 이 또한 변화의 한 모습이다. 흐름에 따라 사는 인생이려니...
농자재는 대야, 신천에 세군데가 있다. 농자재는 특정 사업이라 아무나 할 수 없다. 특히 농약이 위험성이 있어서 1년에 한번씩은 교육을 받아야한다. 신제품이 나오면 교육을 받고 위험한 물건이니 구매자의 신상명세를 적어놓아야 한다.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사업이기에 찾아오는 손님 한분한분 소홀할 수가 없다.
예전보다 못한 상가의 경기는 개발에 따른 구도심 상권의 비활성화도 있지만, 상권을 활성화 하려는 관계기관이나 지역 주민들, 그리고 상인들의 일체하는 적극성 없이는 좋아질리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서 상권활성화에 대해서는 점포 주인들도 신경 써야겠지만 시에서도 상권이 활성화 될 수 있게 노력해줘야한다는 뜻이다. 상권이 활성화되려면 이용하려는 손님들을 오게 해야 하는데 일단 중요한 첫 번째 과제가 주차문제다. 상권을 살리려면 상가들이 어디가 불편하고 어디가 가려운지를 긁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권을 살려야한다고 한다. 그 막연한 희망고문을 벌써 몇 년째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봉사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 본인에게 불리하면 빠지려고 한다.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에 의해 자리잡고 살았으니 조금의 희생과 봉사는 감수해야한다.
하지만 혼자 가게를 운영해야하는 현실에서는 가게 문을 열고 닫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 마음과 달리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름의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적극적이면 좋겠다.
이희교사장님은 하나로농자재 대표이기도 하지만, 시향문학 회장으로서 삶의 부분들을 시적으로 표현하며 더불어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처음 시향문학에 들어가서 지은 시, 아내에게 바치는 시를 소개한다.
아내밖에 없네/이희교
안에서도 아내밖에 없네
밖에서도 아내밖에 없네
항상 아내 얼굴
내 안에 있네
뒤를 돌아봐도
아내밖에 없네
남편 바라지에
거칠어진 손
호호 불며 웃으며
촉촉한 눈동자에 노을이 흐르네
노을 속에도 아내밖에 없네
내가 삐져도
비위를 맞춰주는
천사같이 친절한 아내
달콤한 사랑을 떠 먹여주며
오렌지같이 활짝 웃는 아내
남편 바라지에
거칠어진 손
호호 불며 웃으며
촉촉한 눈동자에 노을이 흐르네
노을 속에도 아내밖에 없네
이 시는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부동산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데, 1차 붙고 2차를 공부할 무렵 매일 데리러 오는 아내에게 미안하여 자격증을 따면 노래를 만들어주겠다 약속한 것을 실천한 것이다. 약속을 지키기위해 당시 작곡료 백만원을 주고 강남에 있는 녹음실로 가서 직접 노래를 불러 녹음을 하고 CD를 만들었다. "그런데 제발 부르지말래요. 민망한건지... 허허허" 내심 좋지만 쑥스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시는 시향문학에 들어가서 활동하던 중에 완성되었다. 2009년도에 시향문학에 들어갔고 등단은 2016년도에 했다. 자질보다 의욕이나 집중력등이 인정되어 시향문학에 오랫동안 있게 되면서 회장을 맡고 있다. 쓰고 싶고 내 작품 만들고 싶어 써 놓은 것들이 이,삼백편 정도 된다고하니 시집 한 권 낼 계획을 세우는 건 당연하겠다.
"시라는 건 내 마음을 보여주는 거라 신중해야합니다."
주로 쓰는 시는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을 끄적이는 것이다. 어디가서 뭘 보고 왔다 하면 본 것에 대해서 관찰력있게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쓰는 것이다. 사위와 함께 운영하니 시간적 융통성이 조금은 있겠으나 시 쓰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문제에서는 힘든 건 사실이다. “시에 대해서 많이 관심 가져야겠죠. 누가 보더라도 '왜 이렇게 썼어?' 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잠시 노후를 그려본다. "집사람과 같이 여행을 다니는겁니다. 제 직업이 다른 사람들이 한창 많이 놀러갈 때 일하는거잖아요. 농번기때니까. 평생을 놀지 못했으니 그 황금같은 시기에 남들처럼 좋은데 여행가면서 여행에서 느끼고 보고 하는 것들을 시로 표현하고... 그렇게 살고 싶은게 제 꿈입니다."
한곳에서 오랜동안 일했던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보상으로 고생한 배우자와 함께 여행을 꿈꾸고 전원주택 지어 텃밭을 가꾸는 꿈을 꾸는 것 같다. 나이들어 자연스럽게 생기는 노후의 그림인가, 아니면 각박한 세상,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들 사이로부터의 탈출인건가. 암튼, 젊은 날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 한다면 당당하게 주어지는 노후의 삶인 것 같다. 그런 꿈을 꿀 수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다.
시향문학:시흥문학회(창림1995)+고향생각문학회(창립1997)통합 문학회
2020년 11월 28일 [시향문학 제20집] 출판기념회
이희교 프로필
계간) 한국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숭실사이버대 문창과 졸업
현재) 시향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 부지부장
한국문학예술 운영이사
* ‘소래산 첫 마을 솔내거리’ 첫 발간을 맞아 호현로(구39번국도) 일대에서 선정된 노포, 신포 상가를 취재하여, 가게의 역사를 기록하고 신포의 홍보를 위한 인터뷰 글을 올린 내용이다. 이 사업은 소래산 첫 마을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주민공모사업 문화 예술 활상화분과에서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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