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느끼는 ‘정’ 앵글에 담아내어
고향을 잊지않기위해 지었다는 상호 ‘충남앵글’ 샤프한 이미지의 유상준사장님은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저희는 주로 진열대를 판매하는 업체입니다.” 가정집 베란다 수납공간을 꾸미고 수납장을 만든다. 공장 안 수납공간의 수납장도 만든다. 충남앵글은 특수기술을 가지고 있다. 슬럼화되어가는 상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성실함이며 지역에서 느끼는 ‘정’이다.
예전에는 4개 업체가 있었는데 모두 폐업한 상태고 지금은 혼자 남았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름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라고 한다. “같은 업체라도 저만이 할 수 있는 종목이 조금 있어요. 프로파일이라는 알루미늄 고가의 진열대가 있어요. 그게 생존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전문기술을 익혀야하는 건 기본이고 습득하기에 세밀한 부분이 있어서다. 기계 자체의 위험 요소는 가격대를 높혔다. 그만큼 자재는 고급스럽다. 우월함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여기서 일을 배우고 여기서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25년 되었네요.”
25년이 된 만큼 고객의 90%는 단골이다. 지금은 SNS로 광고효과를 많이 볼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던 시절에는 지면이나 지인 소개가 대부분이었다. 단골이 많다는 것은 기술력을 인정받아서라는 이유도 있을거다.
“자부심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거겠죠? 안그랬으면 저도 이 일 오래 못했죠. 적어도 누구보다 진실하게 하지 않았나... 그게 오래가는 길이었던 것 같아요.” 25년을 버틸 수 있는 힘. 신념이었을 것이다.
깔끔한 성격이 엿보인다. 앞뒤 없이 휘말리는 성격이 아니라고 하니, 본인에 대한 색깔이 진하다고 해야 하나.. 신념에 색깔을 더한다.
에피소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어요. 상가 시설을 많이 하다보면 그 가게가 잘 될지 안될지 보는 눈썰미가 생기거든요.”
젊은 사람이었는데 부모에게 도움받고 빚을 얻어 점포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점포의 승산이 없어 보였다. 틀림없이 망할 것 같았다. 수천명을 상대하다보니 오히려 부동산보다 더 예민한 부분이 생긴다. 그래서 젊은 사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계약을 포기해라!’ 그리고 지인을 통해서 안양으로 소개를 해주었다. 성공했다. 빚을 얻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점포는 애착심이 없다. 직접 벌어서 차리는 건 애착심이 생기는데 다급한 상태에서의 한번의 오픈이 유지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젊은 사장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와서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가게를 하지말라는 말을 전달할 때는 위험성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내가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얘기했지? 그 분은 어떻게 따라줬지? 이상한 인연이다.. 생각이 드는거예요. 상당히 좋았어요. 가게도 아웃시키고 설치도 아웃시키고. 추천해준 다른 곳에서 성공하고.”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오픈은 평생 후회할게 뻔했고 자본주의 사회는 냉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현실과 미래, 그리고 대야의 꿈
통장을 맡으면서 30년을 살았다. 여기 올 때 시흥으로 올까, 다른데로 갈까 선택을 해야했다. 젊었을 적의 선택인데 사실 대야동이란 동네는 너무나 촌스러웠다. 하지만 당시 시청이 있었기에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개업한지 2,3년 있으니 시청이 옮겨졌다. 시흥의 최대 핵심지는 가면 갈수록 삭막한 도시로 변해갔다. 관공서 하나가 움직임으로 인해서 그 여파는 하나의 도시를 완전히 뭉개버렸다. 들어올 때 가졌던 꿈은 점점 포기가 되었다.
왜 시흥시는 특별히 다른 시에 비해서 집중도시가 안되고 전체적으로 분산도시가 되는가? 왜 모든 시설이 시흥시가 중심이 아닌 타 시의 경계라인을 중심으로 대형마트, 백화점등이 있는지... 집중도시와 분산도시의 차이점은 뭘까? 무수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섞였다. 시흥시 도시 계획은 빵점이다라는...
"호현로 입구가 시흥시의 입구거든요. 그런데도 시에서는 투자를 일체 하지 않아요. 말로는 원도심을 살리겠다, 도시재생을 하겠다 하는데, 투자의 적재적소를 꼬집어야 발전의 시작이 되지않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야동이 좋다고 한다.
앞날은 모르겠으나 이 지역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를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유상준사장님. 발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가득하다. 사람이 즐겁게 살 수 있고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방법, 신도시를 만들어 인구유입에만 신경쓸게 아니라 오랫동안 살고있는 시흥시민들이 밖으로 나가지않게 하는 방법이 강구되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남들은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야동은 살만한 동네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런 곳이 있으니까 여기 맞춰서 사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없으면 어디가서 살까요? 적어도 사람이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같이 정을 쌓아가며 사는건데...”
*‘소래산 첫 마을 솔내거리’ 첫 발간을 맞아 호현로(구39번국도) 일대에서 선정된 노포, 신포 상가를 취재하여, 가게의 역사를 기록하고 신포의 홍보를 위한 인터뷰 글을 올린 내용이다. 이 사업은 소래산 첫 마을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주민공모사업 문화 예술 활상화분과에서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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