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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마을이야기/소래산첫마을

액자에 불어넣은 생명과 더불어 사는 삶-시흥액자

 

상호명 시흥액자

액자가게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할까...? 풀어낼 이야기가 있을까? 액자 짜는 가게인데... 무작정 돌파했다. 가게 안을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검은 앞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사장님이 미소를 띠며 '나 바뻐~' 하며 맞이한다.  아는가! 앞치마가 주는 압박감을!  오만가지 생각이 뒤섞인다. 주어진 시간내에 원하는 이야기, 책에 담을만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일단 주저앉아 무작정 가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허걱! 웬걸...

액자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을 줄이야... 지면이 허락되지않아 짧게 간추려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바쁘시...다.. 면서요... 하하^^;;   

 

액자라는 이름의 프레임 속에는 인생이 담겨있었다.

 

시흥이 좋아 시흥액자라고 이름 지은 원영관사장님. 액자에 담은 타인의 인생만 37년이다. "여기는요? 지나다 들어와 편한 마음으로 머물러 있는 곳이예요.” 시흥액자가게가 그렇단다.

 

 

원영관사장님도 피해가지 못했던 IMF! 당시 개발이 덜 된 신천리로 오게 되었는데, 이 동네가 마음에 쏙 들어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물건 도매 차 방문했던 시흥. 액자가게 하기에 적당하고 동네 분위기가 좋은 곳이 있느냐며 지인 찬스를 쓰니 다 좋다고 했단다. 뭐가 그리도 좋았을까? 그때 그 곳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사람사는동네'를 우선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땅한 것이 없을까... 우연히 골목에 들어서니 '임대' 라고 쓰여있는 가게 유리문을 보았다. 한 눈에 맘에 들었다. 그냥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 전해져왔다. 바로 임대를 얻었다. 무엇보다 좋았던건 소래산이 앞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보, 계약하러 갑시다!” 그렇게 얻게 된 전세임대에서 액자가게는 시흥액자라는 간판을 달고 21년을 보내고 있다.

 

나도 어려울 때가 있었지만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와서 이 얘기 저 얘기하면 나도 같이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이 수필을 써와서 액자에 짜달라고 하면 읽으면서 내 맘과 같은 것에 공감하고, 그 사람이 가면 그 마음을 잘 갖고 있다가 다른 사람한테 또 전달해주고...” 울림을 주는 말이지 않은가.

 

액자에 얽힌 에피소드

 

예나 지금이나,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액자 안의 삶은 그대로 그 사람의 인생을 담는다. 잘사는 사람은 외국의 멋진 풍경이 담긴 사진을 사 가지고 와 액자를 만들고, 못사는 사람은 소품을 액자에 담는다. 가지고 오는 내용물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발견하게 된다.

 

집안 보물을 적당한 금액대로 짜달라고 하면 유리까지 끼워 더 예쁘게 짜 준다. 넉넉하지 못한 형폄임을 알기에 소리없이 알아서 짜 준다. 이익은 뒷전이다. 유리가 깨진 액자를 아주머니가 가지고 온다. 깨진 모양을 보면 술 먹고 휘둘렀구나 하는 걸 추리하게 된다. 바깥양반이 가게 앞을 지나가면 슬그머니 불러 찬 한잔하면서 맺힌 것을 쏟아내게 한다.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은 안정된다. 다음날이면 아주머니가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한다. 마을에서 오래 산 덕분의 눈치다.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의 그림 취향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애착이 있던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처리해야 할 폐기물이 될 수도 있다. 버려진 그림의 가치를 알아 다시 가지고 왔을 때 그 그림의 가치를 안 누군가에 의해 그림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이삿짐이 들고 나던 어느 집에서 젋은 사람이 그림을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옛 그림이었다. 소위 옛날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보면 귀한 그림일법한 그림이었다. 그대로 들고 와 새로 액자를 끼워 걸었다. 멋져보였다. 어느 날 그림을 본 이가 제시한 금액대로 팔길 바랐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그림은 누군가에게 가치를 인정받아 귀한 몸값을 치르고 모셔졌다. 그림을 아는 사람들은 가치를 안다. 

 

액자 외에 독거노인들 사는 집에 가서 덜렁거리는 싱크대 문짝도 고쳐준다. 그러면 까만콩이나 고구마가 가게로 온다. 돈 버는 것보다 그렇게 나누는 정이 좋다. 이익보다 도움을 주는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  같은 동네 사람이니까... 

“이제 여기는 제 삶의 터전이 되었고 앞으로 뭐 10년 더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그림을 정성껏 액자에 담아 멋진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한 삶을 살려고 해요.”

 

 

또 하나의 위기, 백혈병

IMF가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게 했다면 건강은 또 다른 시련을 안겨 주었다. 인생사 굴곡이 없겠냐만 아내와 원영관사장님의 건강은 또 하나의 위기였다. “집사람이 28살에 유방암 수술을 했어요. 여자로서 크나큰 상처를 받고 살게 된거죠. 자기자신이 힘을 많이 잃었지요.” 아내의 시련에 이어 원사장님도 백혈병을 앓았다. 2013년도다.

 

어느날, 몸에 이상을 느껴 진단을 했다. 위험수위가 넘었다 해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혈액암에 처방되는 약이 4가지가 있는데 그 중 맞는 한가지의 약을 선택해서 치료를 시작했다. 투병생활은 몹시도 힘들었다. 항암제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심하다. , 신부전, 늑막염을 동반했다. 누워서 잘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했다.

 

수개월동안 약을 복용하면서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했다. 자녀들을 불러들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고통은 점점 심해졌고 병원 가는 날, 병원에 가지 않았다. 먹던 약도 끊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강행했다. 그랬더니 나아졌다.

 

완치는 되지않았지만 늑막도 괜찮아졌고 백혈구 수치도 괜찮아졌다. 지금도 3개월에 한번씩 검사를 받는다. 아직까지 큰 이상은 없다.  신앙의 힘도 컸다아내에게 가장 감사하다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소소하지만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주어진 인생 안에서. 전세를 얻었던 가게는 이제 건물주가 되어 딸가족과 같이 한 건물에서 살고 있다. 딸 둘은 모두 결혼했다. 어찌보면 평범하지 않은 인생이지만 평범함이라 생각하며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액자에 사람들의 인생을 담고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검은 앞치마를 툭툭 털고 작업장으로 돌아간다.

 

[시흥액자 ]

 

 ‘소래산 첫 마을 솔내거리’ 첫 발간을 맞아 호현로(구39번국도) 일대에서 선정된 노포, 신포 상가를 취재하여, 가게의 역사를 기록하고 신포의 홍보를 위한 인터뷰 글을 올린 내용이다. 이 사업은 소래산 첫 마을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주민공모사업 문화 예술 활상화분과에서 기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