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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마을이야기/소래산첫마을

[대야동 유치원] 호현로, 지켜준 21년 지켜낼 21년 "아이들이 지식만을 쫒아가기보다는 동네에서 친구들과의 어울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야동의 아이들은 착하고 순박하다. 오랜동안 대야동을 벗어나지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 사는 맛이랄까... 동네에 정도 들고 좋아서... 우리 아이들도 모두 이 지역에서 학교를 나왔어요.” 동네가 정이 있다는 것은 이웃 간의 배려가 있다는 것일게다. 아이들의 순박함은 결국 부모들의 정서에서 비롯되는 것. 유치원교사에서 기관을 운영하며 정착하게 된 ‘소망유치원’은 2000년도에 개원했다. 윤영순원장은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건강, 다도예절, 숲해설, 학굥운영위원, 마을학교참여등.., 이유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지금 키우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어머니들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를 위해서다. .. 더보기
[대야동 법무소] 내 역할은 주민들에게 법률상담 잘 해주는 것 이군성법무사. ‘새말’을 기억하고 ‘새말’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지역 토박이다. 새말을 고향으로 둔 그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비 오는날 들리는 개구리 소리가 좋았다. 지금은 연립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게 떠올려진다. 어린시절 자주 갔던 ‘뱀내장터’의 우시장과 해장국집, 설렁탕집을 또한 기억한다. 많은 변화와 더딘 변화 그리고 구도심이 된 호현로와 아파트가 들어선 곳을 보면서 대야동이란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둘러본다. 이군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법무사를 차린건 정치를 하고 있는 중학 동기동창의 적극적인 권유에 의해서다. 개업 후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무던한 세월을 주민과 함께 보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던한 세월을 주민과 함께 보낼 것이.. 더보기
[대야동 부동산] 대야동 역사와 함께 한 경인부동산 기다란 호현로 끝자락. 비스듬한 인도에 볼라드가 촘촘히 박혀있다. 미관상 참 미워 보인다. 안전을 위한 설치였겠으나... 2002년 월드컵에 열광하던 해부터 경인부동산은 근 20년간 대야 주민들과 함께 대야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대야동(大也洞)은 경기도 시흥시의 법정동이자 행정동이다. 동쪽으로는 과림동, 서쪽으로는 신천동, 남쪽으로는 은행동, 북쪽으로는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야동은 택지개발사업으로 도농복합의 전형을 띠며 균형발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래산이 있어 산 밑의 큰 마을이라 하여 대야리(大也里)라 칭하다가 1989년 시흥시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대야동으로 개칭되었다. 대야라는 도심은 1980년도서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40년이 흘렀다. 연식이 된 건물들은 재개발을 해도 되는.. 더보기
[대야동 앵글] 지역에서 느끼는 ‘정’ 앵글에 담아내어 지역에서 느끼는 ‘정’ 앵글에 담아내어 고향을 잊지않기위해 지었다는 상호 ‘충남앵글’ 샤프한 이미지의 유상준사장님은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저희는 주로 진열대를 판매하는 업체입니다.” 가정집 베란다 수납공간을 꾸미고 수납장을 만든다. 공장 안 수납공간의 수납장도 만든다. 충남앵글은 특수기술을 가지고 있다. 슬럼화되어가는 상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성실함이며 지역에서 느끼는 ‘정’이다. 예전에는 4개 업체가 있었는데 모두 폐업한 상태고 지금은 혼자 남았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름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라고 한다. “같은 업체라도 저만이 할 수 있는 종목이 조금 있어요. 프로파일이라는 알루미늄 고가의 진열대가 있어요. 그게 생존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전문기술을 익혀야하는 건 기본이고 습득하.. 더보기
[대야동인쇄] 이제는 놓을 때를 위하여... 이제는 놓을 때를 위하여 구 시청자리에서 개업을 했으니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여느 인쇄소처럼 정돈되지않은 내부이지만 흔히 말하듯 무질서 속에 질서가 김정섭사장님 머릿속에는 들어있다. 신영인쇄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명함, 도장, 소량의 책자 제작이다. 인쇄소가 하향세에 접어들면서 폐업을 한 곳이 많아졌다. 시청이 이전한 후 당연히 영향은 컸지만, 그렇다고 크게 축소된 것도 아니다. 그저 놀지 않고 꾸준히 할 정도의 일은 유지되고 있다. 치열하게 일을 해왔지만 이제는 쉬엄쉬엄해도 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게 오히려 좋다는 김정섭사장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매형이 하는 인쇄소에서 인쇄기술을 익혀 하게 된 것이 지금의 신영인쇄가 되었다. 처음 접하는 인쇄소에서의 일은 고되기보다 재미가 .. 더보기
액자에 불어넣은 생명과 더불어 사는 삶-시흥액자 상호명 시흥액자 액자가게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할까...? 풀어낼 이야기가 있을까? 액자 짜는 가게인데... 무작정 돌파했다. 가게 안을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검은 앞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사장님이 미소를 띠며 '나 바뻐~' 하며 맞이한다. 아는가! 앞치마가 주는 압박감을! 오만가지 생각이 뒤섞인다. 주어진 시간내에 원하는 이야기, 책에 담을만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일단 주저앉아 무작정 가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허걱! 웬걸... 액자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을 줄이야... 지면이 허락되지않아 짧게 간추려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바쁘시...다.. 면서요... 하하^^;; 액자라는 이름의 프레임 속에는 인생이 담겨있었다.. 더보기
[대야동농자재] 시 쓰는 하나로농자재 이희교사장님 https://youtu.be/RD9X_DzqtOE 좋아요 구독 눌러주세요^^ 농약회사에 다니면서 IMF로 명예퇴직을 강요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회사에서 제시한 건 퇴직금이었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회사에 있던 영업사원이 제안했다. 시흥이 면적이 넓고 사업을 해도 괜찮겠다며. 시장조사를 해보니 과연 시흥은 넓었다. 온갖 곳이 다 논이고 밭이었다. 내가 차리는 가게는 하나! 라고 생각해서 ‘하나로’ 라는 이름을 짓고 사업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문화의거리’ 에서였다. 지금의 자리로 온 것은 7,8년 정도 되었다. 처음엔 당연히 어려웠다. 각 동별로 이름을 알리느라 발품을 팔고, 인지도를 넓히느라 2, 3년간은 고생을 많이 했다. 1년에 명절 두 번만 쉬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를 쓰는 문인으로 사업.. 더보기
[대야동카페] 달다란오늘, 달콤한 하루 코로나에 더위에 마스크에... 인간의 인내를 시험하려는 듯 자연은 무자비한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소래산첫마을 신포, 노포 인터뷰 일정을 시작하면서 즉석에서 하게 된 인터뷰. 더위도 식힐겸 아이스아메리카노의 휴식을 위해 들어간 달다란오늘 카페 사장님과 이 인터뷰 기획의 실무자인 전영준님은 이미 친해보였습니다. 몇마디 주고 받더니 오케이 사인이 납니다. "자. 인터뷰하세요!" "허걱" 그렇게 짧고 굵은 인터뷰가 시작되었지요, 달다란오늘, 달콤한 지연 모든 여자들의 로망, ‘아... 작은 카페 하나 차려서 커피 내리면서 글이나 쓰고 그림이나 그렸으면 좋겠다... 지인들과 수다나 떨면서..." 여자라면 한번쯤은 먼 산 바라보며 읊조렸을 독백. ‘달다란오늘’카페가 그러했습니다. 커다란 눈을 한 바리스타가 환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