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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을 기록하다/걸뚝4집

[걸뚝4집 인물편] 스스로 찾는 CEO, 삼호정밀 박주선대표

 

누구보다 일찍 아침을 여는 박주선대표는 한창 빗자루질에 몰두해있었다. 그런데 빗자루질이 회사 안을 향하고 있다. 아하! 복을 쓸어담고 있는 중이란다.

 

여성 CEO이면서 지역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소개는 호기심을 갖게 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배려와 감사를 안다는 것이다. 더불어 봉사하며 긍정적으로 사는 삶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마을기록가지만 아직은 낯선 대야, 신천의 골목. 그 골목에 위치한 삼호정밀은 번듯한 건물에 깔끔하고 정돈된 내부시설을 자랑했다. 점점 다가갈수록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의 소리다.

 

 

26년 이끌어 온 삼호정밀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다루고 있다. 1차 가공이라 눈에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품을 생산한다. 입바람으로 후 불면 날아갈 정도의 작디작은 부품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반해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자식처럼 예뻐요. 작아도 나름대로 모양이 다 다르거든요.” 350가지가 넘는 종류의 부품을 모두 외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온도차에 따라 까탈스러워지는 이 녀석(부품)들이 차에는 매우 민감한 역할을 한단다. 너무 작아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큰 코 다친단다.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사람 하나의 목숨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깍아낸다. 하자 없이 납품하는 삼호정밀은 이미 업계에서는 인정받고 있는 업체다.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작업에 임하기 때문이다. 삼호정밀은 5명의 직원을 둔 소공인 업체로 최근 시흥에서 5개 업체를 선정한 중에 들어가 있다. 이로 인해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기업벤처부 장관상이다.

 

늦둥이 막내딸

박주선대표는 늦둥이 막내딸이다. 전북 전주에서 대형 젓갈 판매상회를 운영하던 부모님은 막내딸 시집보내는 일이 급하셨나보다. 철부지 22살 아가씨는 부모님의 손에 등떠밀려 시집을 가버렸다. 남편과의 나이차는 7년이다. 슬하에 딸 둘이 있는데 모두 출가했다. 손주도 있다. 64살에 10살짜리 손자가 있다. 식구들에게 손 가는 때가 지나 이제 일에만 몰두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다.

 

 

기계를 전공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순탄한 꽃길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사업체가 화재로 전소되면서 다시 일어설 여력이 없던 남편은 훌쩍 외국으로 떠났고 아이 둘을 데리고 홀로 키워야했다. 식당에서 서빙 일을 5년간 했다. 외국에서 돌아온 남편은 다시 사업을 재개했다. 그때 공장이란 곳에 처음 발을 딛었고 기계도 처음 만져보게 되었다. 막 돌아가는 기계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무서워서 울기도 했다. 마치 기계가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해도 손을 대면 다칠 것만 같았다. 기계를 믿어야하는데 믿지못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지금은 자연스러워졌다.

남편은 일이 지겨워서인지 손을 뗐다. 지금 남편은? 취미 생활하면서 혼자 논다. 정말 잘 논다. 그렇다면 박주선대표는? 일 하는 것이 좋단다. 어쩜 이리도 천생연분일까...? 박주선대표 혼자 회사를 운영한지는 11년째다. 밤을 새워 납품을 모두 끝내고 새벽 하늘을 쳐다보면 온 세상이 다 내 것인 것 마냥 좋다.

 

위기

1995년에 시작한 회사는 외환위기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협력업체의 부도로 인한 연쇄 부도위기는 투자자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장부를 공개하며 말했다. ‘매달 돈을 갚아 나갈 수 없지만 두 달에 한 번은 꼭 드리겠다, 싫다면 기계 다 처분하고, 아니면 기회를 달라’ 고 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가공기술과 성실성, 그간 보여준 신뢰성으로 투자자들은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회사는 잘 운영되고 있다. 수 년간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밤낮없이 일한 탓이다. “사실 직원들의 힘이 가장 컸거거든요. 공장에 살림에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가며 힘겹게 일을 하면서도 신뢰를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온 데는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던 장기근속자들의 공이 크게 작용했지요.”

 

 

자원봉사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니 평소 마음에 두었던 일을 하고 싶었다. 봉사활동이었다. 박주선대표의 봉사활동은 찾아가는 봉사에 있었다. 버스정거장에 붙어있던 건강 마을학교 교육 홍보물을 보고 직접 전화를 했다. 이를 계기로 신천행복건강센터 운영위원회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후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시민협의체, 색채활동가등등... 스스로 찾아가는 봉사활동에서 즐거움의 맛을 본 박주선대표는 2018년 신천동주민자치회에서 회장을 맡아 소래산 효거리 문화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 활동을 추진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예전처럼 활발하게 하지 못하고 있지만 건강도시시민협의체와 건강행복센터는 처음 발 디딘 곳이라 계속 유지하고 있고 대야복지관에는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목표

열심히 일하고 지켜야 할 건 지켜가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상도 받고 주변에서 인정도 받아왔는데 지금은 회사를 조금 더 성장시켜서 함께 고생해온 직원들과 더 나누고 싶어요. 또 우리만의 기술개발로 제품을 만들어 그걸 토대로 해외 수출도 하면서 회사가 좀 더 성장하게 된다면 내가 은퇴를 해도 함께 해 온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예요.” 20년 이상 장기 근속한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이 있다는 것일게다.

 

 

걸걸한 음색의 박주선대표. 그렇지만 누구보다 여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바라보는 두 눈에는 사랑이 가득 들어있다.

 

*이 기록은 문화예술과 문화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으며 걸뚝 제4집에 담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