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시흥아카데미 마을기록학교 마지막 날. 수강생들이 웅성거린다. ‘걸뚝’이라는 마을기록동아리를 만들고 회장을 정해야 하는데 유일한 후보자가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이를 어찌해야하나... 한가지 우스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자리를 뜬 그는 분명 본인이 될 것 같아 회피(?)한 거였으니 이를 자연스럽게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전영준님을 회장으로 모시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만장일치였다. 그런데 자리에 없으니 어떻게 한담? 우리에게는 영상통화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운전 중인 그와 연결했다. “회장님으로 선출되셨습니다.” 고개를 돌려 묻는다.“그렇죠, 여러분?”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박수는 만장일치의 의미이며 아울러 ‘걸뚝’ 마을기록가 동아리 초대 회장 되심의 축하였다. 그렇게 전영준회장은 마을기록가들과 함께 시흥과 인근 도시를 다니며 기록하고 소통하고 또 ‘걸뚝’ 마을기록집 제4권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록물을 남겼다. 그 외에도 마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마을의 유래와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마을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앞장섰다. 누가 시켰으면 못할 일, 토박이는 역시 다르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 그다.
그는 참으로 유쾌하다. 목청이 커서 시끄럽긴 하지만 속 시원할 때도 많다. 큰 것은 목소리 뿐 아니라 얼굴도, 키도, 코도 크다. 밥심으로 살아가며 그 밥심이 지금의 건강을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기록가들과 동행을 해도 하루 일정을 계획한 대로 움직이며, 매일 지치지않고 어디든 가는 기록가. 장소마다 포인트만 찍어 사진으로 남기고, 본인은 글 쓰는 걸 싫어해 다른 사람을 시킨다. 계획대로 움직여 하루를 정리하는 그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은 ‘좋지? 이야~ 좋다~ 너무 좋지 않아?’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나는데 있다. 카페를 좋아하는 한 가지만으로도 사실은 마음에 든다. 홍길동처럼 어제는 저기 오늘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SNS에 올리며 여기저기 발자국을 잘도 찍고 다닌다. 늘 긍정적이고 마을을 애정하는 마음이 커 마을이 변형되면 무척이나 속상해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를 ‘주니오빠’라고 부른다.
전영준의 역사
시인이면서 합창단원이면서 시보당 대표이기도 한 전영준회장의 서재에 가면 공간 전체가 빼곡하다. 상장, 위촉장, 감사패, 공로패, 또 각종 서적들... 빈틈없이 바닥까지 쌓여있는 책들이지만 질서가 있다. 흐트러짐없이 정리정돈이 잘되어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전영준의 역사’다. 지역에서 안해 본 일 없이 다 해본 또 하고 있는 그이지만 필자는 주니오빠가 불러주는 가곡이 좋다.
시흥에서 나고 자란 전영준회장은 호현로에 자리 잡은지 40년이 되었다. 토박이들은 시보당과 시보당 안경원을 기억한다. 마을 역사의 도서관 역할을 하는 8, 90대 어르신들이 하나 둘씩 돌아가시고 이제 6, 70대 어르신들이 남았다. 겪은 세대라기보다 들은 세대로서 그래도 남겨놓을 역사들이 많다.
시보당은 금은, 보석, 시계, 안경, 카메라 등 다양한 물건을 다루고 있다. 정체가 뭐야? 하겠지만, 시계 기술을 배우고 사진기 대여를 하고 사진 현상 인화 확대와 삼성 미놀타 카메라 판매점을 하면서 한때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화의 발달로 금은, 보석, 시계, 안경, 카메라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안경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안경원까지 하게 된 것은 또 다른 그의 도전이었다.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그의 열정은 아내와 함께하며 가게 이상의 가게로 그 의미를 깊게 새겼다. 바로 호현로에...
1979년. 인천 독쟁이 고개에서 보금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사업은 시흥 대야동에서 시보당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 6월 지금의 자리에서 개업했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운영하면서 아이들 모두 출가시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의 재롱을 보며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의 가장,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살면서 여러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젊은 시절 젊음 하나만 믿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니 하나에서 아홉이 되었다.
호현로의 길, 전영준의 길
온갖 군데를 다 다니고 온갖 것을 다 하면서도 그의 애정 그래프 상위에는 늘 의용소방대, 대야동 통장, 마을기록가, 새마을문고 이사가 있다. 물론 비슷비슷한 그래프 선상이겠지만 굳이 따진다면 말이다. 노래를 좋아하고 마을을 지키려 뛰어다는 것을 좋아하고, 공연을 좋아하고 전시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도저히 매길 수 없는 그래프일 것이나 덧붙인다면, 시흥문인협회, 시흥문화원, 건강도시 시민협의체, 소래산 첫마을 주민협의체 등등도 그래프에 나타나 있다.
2021년 상권지도와 오래된 가게들의 현판 제작, 그리고 ‘소래초 백년사’에 이어 소래산 첫 마을 솔내거리‘ 노포 신포 인터뷰 책자 작업까지 지역에서 오래 산 그의 안내가 큰 보탬이 되었다. 노포의 기록, 신포의 기대, 상권 활성화를 위한 노포와 신포의 역할은 각기 다를텐데 그 다른 역할을 간파한 그의 의지가 5명의 작가를 움직여 기록으로 남기게 했다. 상권을 활성화시켜 사람이 오가는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 개발이라는 명명하에 많은 것들이 달라질테지만 적어도 놓고 싶지 않은 사람 사는 마을 구도심. 정이 물씬한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어서다.
마지막으로 맡은 직에서 그는 일년을 기약한다. 우여곡절을 겪고 맡게 된 새마을문고 회장 자리에서 적극적인 그의 행보를 감당하기는 버겁지만 코로나로 위축된 상황에서 대처하는 지혜로움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못해낼 것이 어딨어? 하면 되지. 이게 안돼?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그것은 어쩌면 지역 안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그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얼굴도, 키도, 코도 큰 사람이 큰 목청으로 “우리 대야동은...”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가 바로 ‘전영준’이다.
*이 기록은 문화예술과 문화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으며 걸뚝 제4집에 담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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