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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쌀이 천대받은 이야기

 

아이들이 크니 쌀소비가 줄었다.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는다. 외식도 자주 한다. 큰딸은 시집을 갔고 작은딸은 아침을 거른 채 출근을 한다. 남편은 농장에서 먹고 자고 하며 2주에 한, 두 번 들어온다. 쌀 소비는 거의 없다. 그래도 언제 차리게 될지 모르는 밥상을 대비해 갓 지은 밥을 소분하여 냉동실에 쟁여놓는다. 보리, 현미, 옥수수알갱이, 콩등을 섞으니 쌀은 더욱 소비가 더디다. 김치냉장고 가득 차지한 쌀은 우리가 지은 논농사의 결과물이다. 소비되지않는 쌀은 명절이 되면 방앗간으로 간다. 두 말 정도해서 떡국떡을 만들어 친정에, 시댁에, 시집간 딸에게, 농장에, 그리고 우리집에 나눈다. 중간 정도 크기의 지퍼백에 담아 각 냉동실로 향한다.

 

잘 안 먹는 탓에 넘쳐나는 쌀은 몹시도 더웠던 올 여름 더위에 기어코 쌀벌레를 생산해냈다. 쌀포대 안에서 쌀벌레들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삼색이와 턱시도 고양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카톡! 하고 폰이 울린다.

“엄마! 쌀벌레가 엄청 많이 생겼어! 너무 징그러! 어떡해?”

20kg짜리 한 포대를 뜯으니 시커먼 쌀벌레들이 득시글거린다며 기겁에 떤 목소리가 카톡 문자에서 음성지원되듯한다. 소형 쌀항아리에 들어있던 쌀들에서도 쌀벌레가 득실거려 1차 가지고 왔던 터였다. 일단 가지고 오라고 했다. 큰딸이 가지고 온 쌀벌레 가득한 쌀을 놓고 보니 30kg은 족히 넘는다. 씻으면 위로 둥둥 떠 쓸려내려가니 심각한 건 아닌데 문제는 30kg의 쌀을 언제 다 소진하느냐는 것이다.

 

해결방법은 역시 떡이다. 농사를 짓는 덕에 쌀이 풍부하다. 쌀이 풍부한 덕에 아무렇지않게 떡을 해댄다. 친정에, 시댁에, 농장에, 출가외인 큰딸에게, 그리고 우리집 냉동고에 모두 쟁여놓게한다.

 

떡이란걸 하면서부터 단골이 된 우리동네 떡집은 세 개 있는 가운데 가장 쫄깃하고 간간하게 떡을 잘 뽑기로 이름 난 곳이다. 20여년 거래 기간 중 가장 빈번한 거래 시기는 논농사를 짓기 시작한 최근 5년간이다. 한 해 두 번 떡을 뽑는다. 딸아이가 가져온 벌레먹은 쌀 30kg을 트렁크에 싣고 떡집으로 갔다. 실명 표기하면 안되기에 나권떡집이라고 해야겠다. 쌀을 싣고가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점점 짙어져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또 그러겠지?’ 친절한 아주머니와 달리 그 아들은 다소 까칠하다. 쌀을 가지고 가면 영락없이 “참드림이예요?” 이런다. 그러면 나는 또 같은 답을 한다. “우리가 농사지은 쌀이예요.”

정색을 하며 손사레를 친다. 이번에는 아예 쌀포대에 참드림이라고 써있어서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햇수로 5년째 1년에 두 번 여기서만 떡을 하는데 그때마다 맛있게 뽑아주셨어요.”해도 못한다며 성을 낸다. ‘참드림이라는 쌀에 된통 당하긴 했나보다’ 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지고 온 쌀마다 이거라고 그때마다 잘 나왔다고 아무리 반복해서 얘기해도 요지부동이다.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참드림 제가 해봐서 아는데 이거 떡이 안돼요. 될 수가 없어요!” “아니, 해마다 같은 쌀이었고 잘 나왔다니까요?” 내 목소리도 격앙됐다. “아! 못해요! 못한다니까요? 난 못해! 못하니까 엄마가 하던지 말던지!” 아주머니가 나직이 내게 속사이듯 말한다. “내가 할게. 내가 해줄게요.” 하며 시커먼 쌀벌레와 함께 쌀을 한웅큼 잡더니 아들에게 들이민다. “냄새 안 나~ 괜찮아” 하는데도 “아~ 안해! 나 안해! 엄마가 해!”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나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를 않으니 “안할게요. 그냥 가져갈게요.” 했다. “내가 해줄게. 내가 할게. 놓고 가요.” 사실 아주머니는 매우 착하다. 친하게 주저리주저리 일상의 수다를 떠는 관계는 아니지만 오랜동안 이 동네에서 방앗간을 하고 20여년 단골이기에 냉정하게 돌아설 수 없는 탓도 있었다. 아들이 개입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주소와 핸드폰번호를 달라는 통에 10kg은 가래떡을, 10kg은 떡볶이떡을, 10kg은 떡국떡을 하되 썰어달라고 했다. 공임비까지 총 14만원이 들었다.

 

당일 가래떡과 떡볶이떡이 배달되어왔다. 전화 너머 아주머니의 화색 돈 음성이 들려왔다. “아주 맛있게 잘 나왔어요” “거봐요. 잘 나올거라고 했잖아요” 하고 바로 계좌이체를 시켰다. 떡국떡은 식히는데 3일 정도 걸린다해서 후에 받기로 했다. 그런데 미리 결제한 걸 후회하는데 하루가 걸렸다. 아들한테서 문자가 와서다.

 

'참드림'은 떡이 안되고 우리 쌀은 참드림 품종이 아니라서 떡이 된거라며. 추가 설명도 이어진다. 참드림, 맛드림, 가와지, 수향미, 백진주, 알찬미, 진상미 품종은 떡 자체가 안된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도 세 번째 듣는다. 포장지가 참드림이라고 되어있어서 말한거라며. 나도 문자에 답을 했다. 알아보니 봉투에 참드림이라고 써있는거고 다른 품종이다. 늘 같은 쌀이었는데 너무 격하게 반응하니까 기분이 상했다. 5년째 이 쌀로 했었다고 말했고 내 말을 믿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더니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안그랬단다. 똑같은 말을 또 반복했다. 우리가 농사지은거고 5년째 나권떡집에서 같은 쌀로 1년에 두 번 떡을 해왔었다고. 그것까지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두사람 상대하는게 아니니 쌀포대 품종 보고 말하는건 당연한거라며. ‘사과는 안하시네요?’ 했더니 문자가 끊겼다.

 

말마따나 마트나 쌀집서 사와서 떡을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면 직접 농사지은 쌀을 5년째 1년에 두 번 두말, 서말 씩 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건데 아무리 상대하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니라해도 기억을 못 하는게 정상인가싶다. 도돌이표 문자는 더이상 이어지지않았고 나는 아직 떡국떡을 받지 못했다. 배달을 분명 아들이 할텐데 얼굴 보는 것도 불편한 지경이다.

 

다소 간이 싱겁더라도 다른 방앗간으로 옮겨갈 결심을 했다. 하필 나권떡집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맛있을게 뭐람. 더 맛있게 뽑는 방앗간이 옆동네에 있긴 한데 굳이 거기까지 가야하나 하는 한 숨 섞인 허탈감이 뿜어져나온다.

 

그리고 

여기에 반전이 있었다.

우리 논을 관리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우리쌀은 '참드림'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