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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거리기

같이 나이 먹은 전자 제품

 

 

연식이 된 것들은 노후화 현상을 일으키고 잦은 고장에 이어 완전 고장이 나 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전자제품도 마찬가지다. 2000년도에 우리집에 들어왔으니 24년을 함께 했다. 6,7년 전. 1차 세탁기를 보냈다. 남편이 총각 시절부터 쓰던 통돌이 세탁기가 제 할일을 다하고 가버렸다. 이어 드럼세탁기를 썼는데 매우 약한 녀석이다. 6,7년 간 그래 다시 통돌이로 바꿨다. 몸을 세탁조 안으로 구겨 넣어 빨랫감들을 꺼내야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튼튼하기로는 통돌이만한게 없다. 이 집으로 이사온 다음 해에 들어 온 전자렌지의 작동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마치 병을 앓던 노인이 밤에 잠자듯 운명을 달리한 것처럼.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서비스센터에 접수를 했다. 수리기사는 수리 불가라며 그냥 보내라고 한다. 24년 후, 지금 나오는 전자렌지는 다양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었다. 복잡해보이는 건 둘째치고 과연 내가 그 기능들을 다 이용할 수 있을까? 해동과 데우기 기능밖에 쓰지 않기 때문에 딱 그만큼의 전자렌지를 구매했다. 얼마후...

 

 

 

전자렌지와 같은 해에 들어왔던 냉장고마저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였다. 깊은 새벽에 갑자기 굉음을 내는 것이다. 모터에서 나는 소리같았다. 문을 열어도 닫아도 같은 소리가 났다. 그러다 그쳤다. 그러다 말겠지 하고 다시 잠들었는데 또 굉음을 냈다. 마치 냉장고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무서워서 얼른 코드를 빼고 안에 있는 음식물들은 다른 냉장고에 욱여넣었다. 새벽에 이 무슨 난리람! 하며 시린 손 사릴 틈도 없이 욱여넣었다. 다행히 우리집에는 뚜껑을 들어올리는 김치냉장고, 스탠드형김치냉장고, 냉동고가 더 있었다. 뚜껑을 들어올리는 김치냉장고 오른쪽을 냉동기능으로 바꾸고 스탠드형 냉동고에 나누어 저장했다. 뚜껑을 들어올리는 김치냉장고 왼쪽에 냉동 기능을 하고 사용했었는데 김치 저장용 오른쪽까지 냉동이 되어버려서 이것도 이제 서서히 연식이 다함을 드러내기 시작하는구나. 했다. 뚜껑을 들어올리는 김치냉장고는 기억에 2001년도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사온 다음 해에 근처 밭에서 수확한 김치들을 저장할 냉장고가 필요해서 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벽의 번잡함을 보내고 서비스센터에 접수했다. 방문 가능날짜가 일주일 후다. 다른 냉장고에 욱여넣은 음식물들 때문에 그마저도 고장날까 우려되었는데 다행이 접수 다음 날 기사님으로부터 지금 바로 방문해도 되냐는 전화가 왔다. 당연히 되며 감사하다고했다. 새벽 우렁차게 울부짖던 냉장고 소리를 녹음한 것을 기사님에게 들려주었다. 코드를 꽂으니 바로 굉음이 났다. 일단 부속품이 없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부품만 있다면 교체는 가능한데 너무 오래되서 새로 구입하시죠. 한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던터라 한숨은 나오지않았는데 너무 서운했다. 너마저 가는구나... 하는 마음에. 뚀니와 삼성전자대리점에 갔다. 퇴근길 정왕 시화점으로. 매장에 진열되어있는 냉장고들이 멋져보였다. 요즘은 무조건 큰 것들만 찾는단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냉동고가 세트로 되어있고 안에 어떤 음식물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보이는 AI기능도 있고 유튜브를 볼 수 있는 모니터도 있고. 그러나 내게 필요한건 투도어 일반냉장고다. 투도어 일반냉장고를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당장 배달은 될 수 없고 보름 정도 기다려야한단다. 이럴수가! 빌트인이라 사이즈를 재고 맞는 냉장고를 찾으니 하나가 있다. 담당팀장님이 계속 재촉을 해서 주문한지 열흘만에 들어왔다. 전 냉장고보다 용량이 더 큰데 사이즈가 딱이다. 넓은 공간이 실용적이다. 욱여 들어갔던 음식들을 다시 투도어냉장고에 정리하니 숨들을 내쉰다. 요즘은 김치냉장고 수명이 그리 길지않다고 한다. 평균 7년 정도면 교체 시기가 도래한거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우리집에서 또 오래된건 가구다. 심플한 원목 보루네오 장롱과 화장대는 아직도 멀쩡하다. 아마도 내 살아생전 다른 가구는 들여지지않을지도 모른다. 함께 나이를 먹어간 것들이 고장 나는 것을 보면서 고장 난 내 몸뚱아리들을 대입해본다. 가구는 새로 교체하면 되지만 사람은 버리거나 교체할 수 없으니 더없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