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사실 아까 어르신이 동사무소에 다녀오셨어요.”
해남댁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동사무소? 거긴 왜?”
“그건 잘 모르겠고요. 다녀오시면서 엄청 분해하셨어요. 몹시 흥분하셔가지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리셔서...”
해남댁은 덜덜 떨리는 손을 맞잡으며 울먹이며 말끝을 흐렸다.
승화는 바로 동사무소로 달려갔다.
동사무소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승화를 맞이한다. 동장도 맨발로 뛰어나왔다.
“사장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급한 용무 있으세요?”
승화의 상기된 표정에 모두가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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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실 밖에서 쨍그랑하며 컵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승화와 동장이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 동장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직원이 놀란 표정이 되어 굳어있었다.
“왜 그러나? 괜찮나?”
“저기... 저...”
직원은 떨리는 음성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승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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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르는 상갓집이 분주하다. 마당 한 켠에 있는 마굿간에서 번지르르한 나무색 말이 푸르르 소리를 내며 이 상황이 무엇이지? 하는 눈으로 집 안마당의 분주함을 탐색하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여인들의 분주함, 문상객들의 끊임없는 발걸음, 술 한잔하며 왁자하게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동네사람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홧김에 목 매달았대요.”
“확김에? 왜?”
“집을 하나 지으려고 하셨나봐. 저기 언덕에다가. 근데 동사무소 직원이 안된다고 절대 안된다고 허가를 안내줬다나봐.”
“허! 그렇다고 죽어?”
“어르신 성정이 워낙 불같잖어”
“근데 뭔 집을 또 지으려고 하셨대?”
“거기가 원래 집을 지으면 안되는 곳인가봐. 좀 가파른 곳이잖어. 동사무소에서 너무 완강하게 안된다고 하니까 어르신 성정으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
“거기다 지으면 돈이 되나? 자기 집 지으려고 한건 아닐거 아냐”
“그니깐 그러지! 지어서 팔려고 했으니까.”
“허허~ 참말로 이게 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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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뚜껑에 지글거리며 지짐이들이 익어가고 있다. 해남댁이 훌쩍거리며 전을 뒤집는다. “너무도 황망하게 돌아가셔서...”
상주차림의 승화는 여전히 믿기지않는지 혼이 반은 나간 모습이다. 문상객을 맞이해도 곡은커녕 눈물조차 나지않아 마주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하나같이 의아해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도 죽음이지만 그 이유가 너무도 기가차서다. 언제나 화가 가득한 아버지이지만 집을 짓는 건축주로서의 아버지는 사업 수완은 물론 일을 해나가는 배포가 사나이다워 늘 든든한 배경이었다. 아버지는 못하는게 없었고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없었다. 돈이 되는 일에는 촉이 누구보다 강했다. 늘 감탄했고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때로 당신이 하고자하는 일이 원만하게 풀리지않으면 갖고있는 화는 강한 폭발력을 발휘했고 그럴때면 갖족들은 숨죽여 화가 풀릴때까지 있어야했다. 그래도 싫거나 두렵거나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지는 않았다. 그 화는 일에 있어서만 발휘되는 것이고 가족들이나 부리는 식솔들, 그리고 이웃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물질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퍼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웃의 배곯는 이들을 보면 쌀을 퍼주었고 돈이 없어 약을 살 수 없는 이웃에게는 약값을 주었다. 심지어 다 쓰러져가는 하꼬방 한 칸에 병든 시부모를 모시며 사는 젊은 부부와 그 어린 아이들을 위해 번듯한 집 한 칸 마련해주는 씀씀이도 보였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그대로 답습한 것이 공교롭게도 승화가 아닌 며느리 인순이었다. 승화는 아버지를 닮아 사업에만 전념했다. 다른 것은 그저 일만 할 뿐,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와 아내가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승화의 씀씀이는 그저 가족들에게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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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는 무거운 눈꺼풀에서 사람들의 발들이 바닥을 오가는 것이 보였다. 그 발들이 점점 희미해져간다. 여긴 어디지? 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몸이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있음이 느껴질 뿐이다. 무거운 눈꺼풀은 까맣게 닫혔고 승화는 더 이상 움직이지않았다. 입에서 나오는 입김마저 나오지 않았다. 뇌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 순간도 잠시 정적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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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향이 가득하다. 빨간 색 투성이인 점 집이다. 한복을 곱게 입고 쪽 진 머리가 한 올의 머리카락도 허락하지 않는 듯 빽빽하게 잡혀있다. 무당은 눈을 감고 방울소리를 내다 앞에 탁자에 쌀을 힘차게 던진다. 펼쳐진 쌀알들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흐음..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다시 눈을 감는다. 앞에는 인순과 영임, 복희가 앉아있다.
“살아있네”
“아이고 정말요?”
“살아계세요?”
“혹시 어디쯤에 계시는지도 보이시나요?”
인순과 영임 그리고 복희는 숨도 쉬지않고 무당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다급해하며 울먹이며 몹시도 긴장한 그들은 살아있다는 무당의 말에 안도하면서도 애가 타 있다.
“물 건너 갔어. 사방이 막혀있네.”
또 한참을 눈을 감고 방울을 흔들더니 다시 눈을 뜬다. 그 입에 비통함이 서려 나온다.
“허허.. 이런... 살아도 산 게 아니네. 죽은 것 같이 누워있어.”
물을 건넜다면 한강 너머였다. 마포대교 건너 어딘가에 있는 아버지. 사방이 막혀있다는 곳에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있다는 것!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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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을 필두로 일곱남매들이 모두 한 자리에 마주했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영칠만 빼고 모두 강 건너로 가서 찾기로 했다. 어느 날, 일을 하러 나갔던 승화가 돌아오지않자 가족들은 걱정을 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바로 귀가를 해 하루도 거르지않고 저녁식사를 집에서 하는 양반이라 늦도록 들어오지않는 승화에게 혹시나 무슨 일이 난건 아닌지 인순은 바짝 긴장을 했다. 영임도 전화 한 통도 없고 어떤 전갈도 받지못한 터라 동네 앞까지 나가 아버지 승화를 기다렸다. 새벽이 되어도 들어오지않자 해가 뜨자마자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의 일터로 아버지가 가실만한 곳으로 찾아나섰다. 가장 어린 막내 영진이 울며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막내 영진은 늦둥이로 얻은 자식이라 승화에게는 더없이 귀여운 막내였다. 물고빨며 집에 있을적엔 품에서 떼어놓지않을 정도로 귀하게 대했다. 일곱 자식 중에 가장 잘생긴 얼굴 탓만은 아니었다. 막내임에도 철이 없지않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귀하게 여겼으며 부모나 위 형제들에게도 살뜰히 대하며 매우 착한 심성을 타고 난 아이였다. 영진은 안다닌데 없이 죄다 찾아다녔다. 울며 하루하루를 다니니 발이 부르트고 눈가도 부르텄다. 그러긴 보름. 답답하던 차에 점집을 다녀온 엄마 인순의 말을 듣고 영진은 바로 다음날부터 마포대교를 건너 병원이란 병원은 죄다 뒤지고 다녔다. 영진의 머릿속에는 하나밖에 없었다. 사방이 막힌 곳,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상태. 그렇다면 혹시 병원은 아닐까? 만약 병실 어딘가에 기력도 없이 누워있는거면? 그 예상은 적중했다. 강 건너 영등포에 있는 병원을 찾아다니던 중 사연을 들은 병원 관계자가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를 지하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갔다. 영진은 지하 어두운 어느 방으로 안내되어 가는 길 내내 먹먹함이 가슴을 옥죄어 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웬지 이번에는 아버지가 있을 것 같다는 마음과 왜 이런 후미지고 어두운곳에 나를 안내하는거지? 하는 불안감에 심경은 복잡해졌다.
끼이익 하는 문소리게 유난히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곰팡네와 함께 욕지기가 올라왔다. 손과 발이 덜덜 떨려왔다. 차가운 방기운만은 아니었다. 어둡고 차가운 병실 구석에 홀로 죽은 듯이 누워있는 노인. 얼굴빛은 검게 변해있었다.
“아버지..”
“아! 맞으세요? 아버님 맞으세요?
영진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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