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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제5화 여자라서(가칭)

엄마는 아빠 뭘 보고 결혼했어? 그렇게 싫다는 형제들 줄줄이 다 있고 지지리도 못사는 집의 망나니 막내아들인데?”

“...”

 

한숨만 내 쉬는 영임이다. 영임은 정희가 좋아하는 수제비를 떼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대답을 않고 있다.

 

잘 생겨서 생긴 거 하나 보고 결혼한거지?”

 

“...그 땐 그냥 해야하니까 한거지..”

 

정희는 아빠와 어떻게 결혼했냐고 왜 했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않고 입을 함구해버리는 엄마가 답답했다. 내 나이도 이제 50 중반에 들어서는데 할말 못 할 말이 어딨다고. 정희는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아빠의 성정을 미루어볼 때 적어도 정상적인 결혼은 아니었겠다 싶은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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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아픈데 잠깐 쉬었다 갈까?”

여기서요?”

사방이 깜깜한데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던 탓도 있었다.
여기 어딘지 몰라? 효창공원이잖아.”

아는데... 사람들도 없고...”

사람들이 있으면 더 곤란하지. 젊은 남녀가 그것도 너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집 딸이잖아. 다 큰 처녀가 외간남자랑 술 마시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닌다는 거 알아봐. 당장 소문나버리지.”

맞는 말이었다. 술이라도 얼른 깨고 들어가야 하나? 하며 순간 망설였다. 어둠 속에서 찾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술 깨면 일어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정적이 싫지만은 않았다.

동만이 고개를 살포시 숙이고 있는 영임의 옆얼굴을 슥 보더니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손을 포개 잡았다. 흠칫 놀란 영임이 손을 빼려고 했으나 더 세게 쥔 동만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귀에 들려올 정도였다. 동만이 그런 영임을 흡족한 표정으로 보았다. 사랑스런 눈길로. 동만이 살살 영임의 얼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영임의 볼에 살짝 입술을 갖다댔다. 영임은 움찔했지만 썩 싫지만은 않았다. 동만의 입술이 영임의 입술 가까이로 갔다. 영임은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동만의 저돌적인 힘이 영임의 몸에 밀착했다. 순간 동만이 우왁스럽게 영임을 꽉 끌어안았다. 영임은 반사적으로 동만의 가슴을 밀었다. 그러나 동만의 힘은 전혀 밀리는 걸 허락하지않았다. 동만의 손이 영임의 치마속으로 찾아들어갔다. 영임은 움찍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적극적 저항은 아니었다. 이런 순간에도 안되는데... 라는 마음과 쿵쾅거리는 심장만큼이나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얽히고 설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동만의 나머지 한 쪽 손이 영임의 하얀 블라우스 앞섶을 거칠게 뜯어냈다. .... 영임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어둠 속에서도 영임의 풍만한 젓무덤이 봉긋 나타났다. 동만은 우왁스럽게 영임의 젖가슴을 움켜쥐며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춤을 풀어 급히 바지를 벗었다. ...! 영임은 찢어질 듯 아픈 고통을 입술에 물었다. 사람하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공원이라해도 누가 볼세라 누가 들을세라 순간 주위를 살피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앙물었다. 24. 영임의 처녀성은 처음 만난 날, 그렇게 동만에 의해 무너졌다.

 

영임은 주섬주섬 앞섶을 여미며 흐느꼈다.

처녀성이 찢겼다는 아픔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뺏긴 처녀성을, 아니 기를 쓰고 거부하지않은 자신이 음탕하다 여겨 자괴감이 든 흐느낌이었다. 이렇게 어이없게.

울지마. 너도 좋았잖아.”

울지마. 너도 좋았잖아.’ 동만의 이 말이 매우 잔인하게 들렸다. 좋았을까? 사실 좋았다. 비록 상상했던 정상적인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저돌적인 남성다움은 처음 겪어보는 황홀을 느끼게 했다. 동만은 눈물을 훔치고 블라우스 단추를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채우는 영임을 도와 옷매무새를 단정히 챙겨주었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정돈해주었다. 이어 영임을 일으켜 세웠다. 이끌리는대로 일어나다 휘청거리는 영임을 동만이 부축했다. 동만은 아무말 없이 영임의 치마를 바르게 펴주며 전체적인 매무새를 점검했다. 그리고 살포시 안았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임은 또다시 울컥하며 눈물을 보였다.

죄 지은 느낌이예요.. 이래도 되는건지...”

오늘 처음 만났지만 사실 나는 널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어릴적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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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과 주택들 사이에 굴곡진 도로 위로 10대 소년 소녀들이 왁자지껄 놀고 있다. 남자아이들은 각각 칼싸움, 자치기, 땅따먹기, 무등타기를 하고 있고 소녀들은 고무줄 놀이, 인형놀이를 하고 있다. 어린동생을 포대기에 감싸 업은 영임은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운 듯 구경하고 있다.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소녀들 속에 영임의 바로 아래 동생이 있다. 어린 영자가 영임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영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등에 업힌 동생을 가리킨다. 영자가 내려놓으라고 손짓을 한다. 영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여 니들끼리 놀으라고 손짓을 한다. 경자가 뛰며 다가온다.

기집애야. 잠깐 내려놔! 복희한테 보면서 놀으라고 하면 되잖아.”

안돼.”

바로 아랫동생 복남은 구슬치기에 한창이다. 영임은 동시에 세명의 동생을 보고 있었다. 집에는 갓난아기가 있다. 엄마의 뱃속에 여섯 번째 아기가 들어서있다. 영임은 노상 배가 불러있고 자고 일어나면 동생이 자꾸 생기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터였다. 그때의 감정때문이었을까? 영임은 혼기가 차서도 결혼할 생각따위 하지않았다. 북적거리는 집이 싫었고 동생을 줄줄이 봐야하는 맏딸 노릇도 싫었다. 하지만 동생들 보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영임의 아버지와 엄마는 그런 영임의 노고를 치하하듯, 아니 첫딸을 품에 안은 그 날의 감격이 줄줄이 일곱을 더 나아도 남아있어 무엇이든 원하는건 물질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재래시장에서 파는 리어카 의류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벨벳소재로 만든 원피스를 맞추고 검정색 구두안에 하얀 레이스달린 양말을 장착한 채 도화동 시장통을 걸어가고 있는 영임을 보고 첫눈에 반한건 입성 허름한 어린 동만이었다. 깔끔하게 빗어 양갈래로 땋은 머리가 어깨 아래로 내려오고 피부톤은 맑았으며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귀티나는 입성이 주위를 물리치게 만들었다. 반면 동만은 꾀죄죄한 입성에 신발 또한 낡은 고무신이었다. 옆구리에는 아이스케키 통이 매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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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임을 다시 본 건 용산시장 떡볶이 매대였다. 처음 보았던 어린 영임은 그때 모습 그대로 단정히 땋은 양갈래 머리를 하고 리본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치마, 검정 구두안에 하얀색 커버양말을 신고 있었다. 영임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예쁘다.’

동만은 국민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된 영임은 성숙한 숙녀가 되어있었다. 동만은 더욱 영임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뺨이라도 후려칠 쌀쌀함이 있을까봐서다.

 

백동만!!”

멀리서 누군가 동만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몇몇의 사람들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과 동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영임과 일행들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동만아! 손님들 왔다. 빨리 와!”

, 가요!”

 

이발소로 들어가는 동만이다. 동만은 하얀 가운을 걸쳐입고 이발하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발을 끝낸 손님들에게 면도를 해주고 머리를 감겨주었다. 바쁜 손님맞이가 끝나고 이발소 안 침상에 비스듬이 누워 한자로 된 명심보감을 읽고 있는 동만이다. 동만은 일찍부터 고향인 벌교에서 올라와 할 수 있는 흐드렛일을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고 어린 나이에 열심히 사는 어린 동만을 눈여겨 본 시장통 사람이 이 곳 이발소를 소개해주었다. 붙임성도 좋고 뛰어나진 않지만 언변도 그만하면 손색이 없는데다 앞장서 일하는 성실함을 인정해서다. 동만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발소 안에 몸을 의지할 공간도 있는데다 삼시세끼 제공되고 월급까지 준다하니. 게다가 이발 기술까지 전수해준다고 하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먹고 살 기술을 익혀야 노년이 편안하거여

이발소 주인 김씨는 동만의 성실성을 인정해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었다. 동만의 과감한 손짓은 손님들의 면도 서비스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발 씌운 마네킹 이발 연습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썩썩 가위질을 하는데 삼베옷차림의 백발 할아버지가 들어온다.

험험! 주인장 계신가?”

아이고 어르신! 어서오세요. 이발하시게요?”

그래. 점잖게 부탁험세.”

. 여기 앉으세요.”

가운을 두르고 동만에게 오라는 눈짓을 한다.

인사드려라 동만아. 이 분은 백자 인자 철자 어르신이다. 저기 효창동 지역유지분이시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꾸벅 90도로 허리를 꺽어 인사를 하니 인철이 껄껄거리며 웃는다.

그녀석 아주 씩씩하구나

제가 키우고 있는 녀석입니다. 몸도 재고 성격도 좋고 손끝도 아주 야무집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괜찮은 녀석인가보군. 제자 키울 생각 없는 자네이지 않았는가.”

제 마음에 드는 놈들이 없어서 그렇지. 내 뒤를 이어 이 이발소를 꾸려 나갈 사람은 늘 찾고 있었지요.”

동만은 순간 깜짝놀랐다. 그렇다면 나를?

동만은 순간 울컥했다. 그냥 허드렛일하며 장래를 위한 기술 연마가 전부일거라는 생각만 해오던 터였다. 인철은 동만의 울컥한 표정의 의미를 알아챈 듯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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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동, 허름한 집들 사이에 번듯한 2층 양옥집 마당이 발칵 뒤집어졌다.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뒤섞여 영임의 아버지, 엄마, 그리고 집안을 돌봐주는 사람들, 동네사람들 모두가 2층 양옥집 마당과 대문 밖에 몰려들었다.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님

아이고 할아버지

아이고 어르신

각자 부르는 호칭들이 곡소리와 함께 뒤엉켰다. 깔끔하게 이발을 하고 삼베옷 차림인 인철이 목을 매달고 죽은 것이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매달려있는 인철을 발견한 것은 가정부 해남댁이었다. 급히 시신을 내려 집안으로 들여 눕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영임의 아버지 승화는 아버지 인철이 왜 목을 매달아 죽었는지 자결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감이 오지않았다. 도대체 왜!

 

 

《5화 끝 》 연재:매주 금요일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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