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장을 곱게 맞춘 영임은 낮은 구두의 뒷굽을 살짝 들어올리며 전신거울 속 맵시를 보았다. 흡족했다. 한창 성숙한 여성미가 돋보이는 24살, 영임은 밝은 얼굴로 양장점을 나섰다. 친구들과 한강 근처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집간 친구들까지 모이는 뜻깊은 날이었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은 혼기가 차면서 하나둘씩 시집을 가고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영임과 경자를 위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시집 간 순자의 주선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24살이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혼기를 놓친 나이에 속했다. 그래도 시집 갈 생각을 깊이 하지 않은 영임으로서는 그 나이가 혼기 꽉 찬 노처녀라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붉은색 글자로 된 마포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친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영임에게로 몰렸다.
"저 기집애. 옷 봐라, 옷이 날개다~ "
"잘 맞췄네, 이쁘다~“
“난 1년에 한 번 맞출까말까 하는데 쟨 사시사철 맞춰 입잖아, 부러운 년”
순자의 푸념섞인 목소리에 모두들 까르르하고 웃어제낀다.
영임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야아~ 순자, 영자, 명자! 너무 오랜만이다. 잘들 살고 있었어? 이게 얼마만이야~ 결혼 생활은 좋아? 애들 많이 컸겠다. 애들이랑 서방님들은 어떻게 하고 나왔어? 시댁에서 외출 허락해준거야? 너네 남편들이 흔쾌히 보내줘?"
“하나씩 물어 이년아. 숨 넘어 가”
“그래 일단 커피부터 시켜”
머쓱해신 영임은 다가오는 다방레지에게 커피를 시키고 다시 친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쏟아지는 근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회포를 푸는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결혼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시집살이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어릴적 친구들과의 재미있던 에피소드들도 추억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즈음 영자가 친구들의 시선을 모은다.
"다들 주목! 내가 말야~ 우리 아직 혼자인 영임이랑 경자 맞선을 보게 해 줄건데..."
으잉? 하는 놀라운 표정으로 금새 수다가 멈추고 영자의 다음 말을 채근하는 눈빛을 보낸다.
"아! 나는 있어!"
다시 경자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뭐야? 너 있어?"
영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날카롭게 지른다.
"근데 없는 척 한거야?"
웅성거리는 친구들에게 손사레를 치며 경자가 말한다.
"아직 결혼까지 생각하지 않아서 말 안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남자를 소개받기에는 또 깊게 사귀는 사이라서~"
오~~ 하며 경자의 팔과 등을 툭툭 치는 친구들이다.
"근데 나이가 많아."
"몇 살 차인데?"
"8살"
"그 정도야 뭐, 사랑받고 살겠네"
"그럼 그쪽에서 얼른 결혼하자고 서두르겠네?"
"서두르기는 한데 좀 가난해. 돈이 없어. 엄마가 가면 고생한다고 만나지 말라고 그래서 생각중이야."
"너만 아껴주면 되지, 가난하면 같이 돈 벌면 되고. 마누라가 밖에 나가 돈 버는건 싫어하려나?"
"야,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러냐? 잘 사는 집안에 시집 보내고 싶어하지? 내 남편, 안정적인 회사에 월급쟁이인데도 쪼들려 산다고 얼마나 구박하는데, 우리 엄마가"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는데 구박한다고?"
"그러다 딸내미한테 해코지하면 어쩌려고"
일제히 까르르거리며 웃는다.
"그럼 영임이 너만 해줘야겠다."
"나? 됐어. 아직 생각없어."
“이제부터 생각해! 니가 뭐가 모자라서 아직도 애인이 없냐? 얼굴이 빠지냐! 돈이 없냐~”
"맞아. 뭐가 부족해서~ 어차피 연애는 못 할거 같으니까 이 언니가 아주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주려는거지“
영자가 자신하듯 어깨를 들썩이며 거들먹거린다.
"사실 이따가 오빠들 올거야."
뭐? 다들 놀란 기색이다.
"누가? 오늘 선 볼 사람들? 영임이 짝이랑 경자 짝이랑 해 줄 사람들?"
"응"
"야~ 나 일어날래."
일어나려는 영임의 팔을 붙잡아 앉힌건 경자였다.
"앉아봐라. 내 짝으로 올 사람 얼굴도 보고 니짝도 보게"
오~~ 하며 박수 친다. 그때 마포다방의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일제히 유리문에 시선이 쏠렸다. 영임은 순간 심장이 멎는듯했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만 정적을 울리는 가운데 멀쑥한 차림의 두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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