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소설

제3화 여자라서(가칭) 양장을 곱게 맞춘 영임은 낮은 구두의 뒷굽을 살짝 들어올리며 전신거울 속 맵시를 보았다. 흡족했다. 한창 성숙한 여성미가 돋보이는 24살, 영임은 밝은 얼굴로 양장점을 나섰다. 친구들과 한강 근처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집간 친구들까지 모이는 뜻깊은 날이었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은 혼기가 차면서 하나둘씩 시집을 가고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영임과 경자를 위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시집 간 순자의 주선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24살이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혼기를 놓친 나이에 속했다. 그래도 시집 갈 생각을 깊이 하지 않은 영임으로서는 그 나이가 혼기 꽉 찬 노처녀라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붉은색 글자로 된 마포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친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친구들의 시.. 더보기
제2화 여자라서(가칭) "동서~" "동서~ 정헌이엄마~ 나 왔어. 안에 있어?' 삐걱거리는 미닫이 문을 두 번에 걸쳐 힘을 주어 여니 냉기가 훅 하고 들어왔다. 영하의 날씨인 밖보다 더 차가운 한기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야? 동서, 동서 괜찮아?" 신발을 내팽개치다시피하고 들어가 정신을 잃은 영임을 흔들어 깨운다. "세상에, 세상에! 동서! 눈 떠봐! 눈 좀 떠봐! 어머어머~ 어떡해~ 이게 무슨 일이야! 혼자 애 낳은거야?" 겹겹이 쌓은 이불 아래로 손을 넣으니 과연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영임의 큰동서는 아기를 쳐다볼 새도 없이 그 길로 나가 연탄과 신문지와 성냥을 들고 와 불을 지피고 미역을 물에 불렸다.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고이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곤로에 성냥불을 붙여 씻은 쌀을 앉혔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 더보기
제1화 여자라서(가칭) 칠흑같이 까만 새벽, 끼이익 노 젓는 소리가 까만 새벽을 가른다. 일정하지 않은 물 소리가 끼이익 거리는 소리에 묻힌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둔탁한 물소리가 풍덩하고 까만 새벽을 깨운다.  "영임아~ 영임아!"열려있는 나무 대문을 지나 버선발로 달려 온 경자가 마당 한가운데에 철푸덕하고 넘어진다. 마당에 들러붙어있던 흙들이 흩어지며 뿌옇게 날아오른다.  "조심해라~" 영임이 마루로 나서며 퍼뜩 일어나 다시 달려오는 경자를 안쓰럽게 쳐다본다."야야~ 호근오빠야가~ 호근오빠야가~" "왜? 뭔데?""호근오빠야가 새벽에 죽었다안하냐~ 한강에 나룻배 끌고 가가~" 순간 머리가 띵해져왔다. 왜? 라는 의문도 생기지 않았다. 호근오빠가 죽었...다?  영임이는 유난히 날씬해보이는 전신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맵시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