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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제11화 여자라서(가칭)

장례식장을 정하고 장례치를 준비를 했다. 눈물이 날까 싶었다. 그래도 아비인지라 눈물은 났다. 살아있는동안 좋은건 없이 고통받았던 기억밖에 없던 것들을 회상하며 그것과는 다른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목을 놓아 울었다. 살려내지 못해서 미안해~ 하며 통곡은 왜 했을까?미련인가? 애증인가? 수많은 세월에 걸친 친아빠로부터의 성추행이 끔찍한 증오로 폭발한 통곡이었을까? 아니면 미우나 고우나 한 인간이 겪는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 안쓰러웠을까? 그럿도 아니면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죽음을 바라고 죽음을 종용한 것이 못내 양심에 걸려서였을까? 복잡한 심경을 알리없는 문상객들은 딸의 통곡에 덩달아 눈시울을 적셨다. 엄마 영임은 장례 내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고 입관도 보지 않았다. 화장터에서도 멀찍이 있었다. 그저 빨리 이 장례라는 절차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릴적 한동네에서 살던 소꿉친구들이 왔다. 영자가 영임의 손을 잡고 손등을 사뭇 쓸어내린다. 처음 만남을 주선했던 때의 싱그러운 젊은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모두 주름 하나씩은 갖고 있을 나이에 이르러 만난 자리였다. 영자가 잔뜩 울음 머금은 음성으로 힘겹게 입을 연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야. 평생 너한테 죄인처럼 살고 있어. 그런 사람인줄 진짜 몰랐어. 알았다면 너 소개 안할건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꺼이꺼이 우는 영자를 보며 영임은 네 탓이 아니야. 내가 좋아서 결혼한건데 뭐. 이제와 어쩔거냐-” 혼기가 다 차도록 결혼에 별 관심을 보이지않던 영임을 꼬여 동만을 소개시켜주고 둘이 결혼까지 한다고 했을 때 영임은 양장 한 벌을 얻어 입었다. 그러나 신혼 첫날밤부터 외박을 하고 신혼 다음날에 손찌검을 했다는 말에 기겁을 한 영자는 당장 헤어지라고 펄펄 뛰었더랬다. 동만은 다시는 그런 일 없을거라고 빌었고 영임도 한번은 봐줘야지 했다. 그러나 한 번 올린 손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평생이 되었다. 소식을 들은 친정식구들이나 친구들은 그때마다 헤어지라고 성화를 부렸다. 친정아버지는 맏사위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살림에 보탬이 될만한 것들을 아낌없이 들여놔 주었다. 어린자식들 두고 어찌 애들 아빠와 헤어질거냐, 뭐하고 벌어먹고 살거냐 라면서. 하나 맏사위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맏사위로서 장인, 장모에게는 극진했다는 사실이다. 특유의 발랄함으로 살갑게 굴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가족의 분위기를 살리는 존재로 각인했다. 살림을 때려부수고 귀한 딸에게 손찌검하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이내 살갑게 굴며 정신차리겠노라 하면 또 그렇게 넘어갔다. 매번. 때리고 욕하고 살림을 부수고 빌고 눈물로 호소하고 그렇게 반복된 삶이 40년을 훌쩍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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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벌 받은 건가 봐.”

그냥 그 사람한테 시집가지, 그랬어. 그랬으면 평생 고생은 안 했을거 아냐.”

그럼 니네는 없었겠지. 너나 정헌이나.”

없으면 어때? 엄마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빈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정희도 그렇게 편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기에 뱉어낼 수 있는 말이었다. 차마 입밖에 꺼내놓을 수 없는 끔찍하고 수치스러웠던, 친아빠로부터의 지속적인 성추행. 허구헌날 엄마, 아빠는 싸우고, 아빠의 일방적인 구타와 욕지거리였지만 하루하루 조용히 넘어갈 날이 없던 매일. 힘겹게 오르내려야했던 달동네의 허름한 판잣집. 그마저도 누울 공간이 없어 더 깊게 더 구석으로 옮겨다녀야 했던 집. 집세를 내지 못해 주인집 아들에게마저도 온갖 수치스런 욕설을 들어야했고 아빠의 도박빚과 살림에 쓰인 사채빚을 감당하지 못해 어린 정헌과 정희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고난했던 삶. 가정을 꾸렸으나 가정을 지키지못한 무책임한 부모가 어린 자녀의 인생까지 힘겹게 만들었던 것이다.

 

허름한 달동네,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잣집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릴정도로 방음이 취약했다. 텔레비전 소리가 크면 줄여!”라고 외치면 그대로 소리를 줄이는 그런 방음상태였다. 새벽에 투닥거리며 주먹질을 난타하는 소리는 고스란히 옆집, 뒷집으로 전파되어갔고 해가 밝아지면 어김없이 밤잠 설친 이웃 아주머니들이 영임의 방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영임의 피투성이, 멍투성이 얼굴을 보며 분개를 하고 같이 눈물을 훔치며 어린 정헌과 정희의 밥을 챙겨주었다. 4인 가족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에는 사채업자들은 물론 도박빚 갚으라는 사람들로 연신 북적거렸다. 영임은 드러누워버렸다. 어린 정헌과 정희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심각한 상황이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채로 아빠 동만은 집에 들어오지않고 도망다니고 온갖 시달림만 받고 있는 영임 또한 어떤 해결책도 내놓을 수 없는채로 그렇게 하루하루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헌이나 정희의 학교 생활도 원만하지 못했다. 회수권이 없어 다섯 정거장을 걸어서 등하교를 해야했다. 도시락을 싸지 못해 친구한테 얻어먹거나 굶거나 수돗물을 틀어 입 안으로 들이부어야했다. 어린 정헌이와 정희는 단칸방에 늘 살다시피하는 빚쟁이들에 둘러싸여 매캐한 담배연기에 찌들어 살아야했고 아빠의 행방을 모른 채 그저 시달림을 받아내고 있는 영임이 고단한 얼굴을 보아야했다. 그러다 한번은 영임의 큰소리를 들었다. 정희는 영임이 그렇게 큰소리로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엄마도 큰소리로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영임은 정희를 뒤 품으로 가리고 빚쟁이들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나도 애들 아빠 어디있는지 모르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당장 나가요! 차라리 날 죽이던가! 서슬퍼런 영임의 분노에 빚쟁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더니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는 갔다.

 

엄마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는 다음날 알았다. 바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주인집 방울이엄마와의 대화에서 엿들었던 탓이다. “어머어머 미친놈이네 미친놈! 어쩜 그래? 그걸 그냥 보냈어? 그냥 반 죽여버리지! 어디 애 있는데서 애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래? 나같았으면 아주 요절을 내버렸을텐데!”

겁이 덜컥 나더라. 나 혼자 힘이 있어 뭐가 있어. 눈 앞에 깜깜한데 서럽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도 분하고 그런데 그런 말까지 하니 눈이 뒤집히더라고.”

에효~ 중학생이래도 아직 어린앤데...”

방울이엄마는 한쪽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정희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도박으로 진 빚은 오백만원 정도라고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영임의 형편에 돈 오백만원은 먹고 죽을래도 없을뿐더러 얻을데도 없던 터였다. 매일 동만을 찾으려고 출근하다시피 하는 빚쟁이들이 허연얼굴의 정희를 보더니 술집에 팔아넘기면 오백은 족히 받을 수 있지않을까? 하는 말을 영임의 앞에서 한 것이었다. 아직 미성년인 정희를 도박빚을 갚기위해 술집에 팔겠다는 그 말에 영임의 참고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서슬퍼렇게 질어대는 통에 놀란 빚쟁이들도 아차 싶었던지 한발씩 뒤로 물러서며 방을 나선 것이다.

아무리 지들이 받아낼 돈이 있다고해도 정헌이 아빠한테 받아내야지, 지들도 자식 키울텐데 어떻게 저렇게 어린 애를 술집에 팔아넘긴다는 말을 해? 사람이야? 천벌받을거야 나쁜놈들!”

그 사람들 탓 해 뭐해. 애들 아빠가 잘못한걸.”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지만 쏙 빠지면 다냐고! 이참에 아예 도망가버려! 내가 여비 장만해줄테니까 애들 데리고 떠나. 아저씨 오면 내가 알아서 잘 둘러대고 정헌엄마 못참게 뒷수습 잘 할테니가 어디 멀리 지방에 내려가서 살아.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나도 그러고싶은데 아무리 멀리 가도 금방 찾아낼거야. 그러면 난 끝장이야. 죽을지도 몰라.”

정희는 엄마 영임과 주인아주머니가 나눈 대화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 영임의 분노 섞인 울부짖음이 무엇때문이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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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진로를 선택하는 것도 형편에 맞게 고민을 해야했던 정헌과 정희의 사춘기 시절. 사춘기가 전혀 없었다고 말한건 먹고사는 문제에 고립되어 사춘기를 겪을 틈이 생기지않아서다. 정헌이는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취업을 할 수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고, 여자인 정희는 오빠의 학업을 위해 학교를 중단하고 공장에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학교야 검정고시를 봐도 되는 터. 하지만 검정고시를 보고 학교를 다시 다니고 대학에 가서 국어국문과를 전공하겠다는 꿈은 영원히 이루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은 돈을 벌기위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오빠가 학교를 마치고 오빠가 지원해주는 비용으로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게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활은 그렇게 생각한대로 꾸려지지 않았다. 생활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나아지지않고 더욱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들게 할 뿐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인 맑디맑은 열일곱의 나이에 정희는 많은 일들을 했다. 승용차 부품 만드는 회사부터 시작해서 인형봉제공장, 가방공장, 매점알바 등을 전전하며 오빠의 학업 뒷바라지와 생활에 보탬을 주었다. 벌어도벌어도 줄어들지 않는 빚에 월세는 늘 밀려있었고 여전히 아빠 동만은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녔다. 동만을 노가다판에서 십장을 맡아하며 솔찮히 수입을 챙겼다. 그러나 버는 족족이 지인들과 술판을 벌이거나 노름을 했다. 그러다 한 숨 돌린 때가 있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간 동만은 5년간 집을 비우게 된 것이다. 빚쟁이들로부터 도망을 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우디에서 번 돈은 모두 영임에게로 들어왔지만, 이를 두고 아빠 동만은 후에 두고두고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때 아빠가 사우디에 5년동안 있으면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아냐? 그거 모았으면 집 한 채 사고도 남았을거야. 그런데 니 엄마가 그 돈 다 날려먹었어

허구헌날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몇날 며칠 단칸방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베겨낼 재간이 있나. 사우디에 가서 돈 많이 벌었지. 그런데 빚이 한두푼이야? 하나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나타나고 또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데서 툭 터져나오고. 월세며 공과금이며 생활이며 뭐 그런거는 안하나? 학교는 안다니나? 무슨 돈을 한 푼도 안쓰고 모으길 바란거야? 니네 아빠 교소에 있을 때...” 흠칫하고 급히 입을 다물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여는 영임이다.

이렇게 된거 다 말할란다.”

 

사실 빚쟁이들이 달동네 허름한 판잣집 단칸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여러날을 밥해와라, 잘거다 하며 드러눕는 사태까지 이르렀을 때 아빠 동만이 교도소에 있었다고 했다. 공사대금으로 받은 돈을 친구의 꼬임에 빠져 한탕주의에 투자하다 걸려 사기죄로 들어간 것이다. 친구는 동만의 공사대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돈까지 받아 챙겨 도주했고 중간에서 소개한 동만을 사기죄로 고소하여 대신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설상가상 도박빚에, 도박으로 얻은 사채까지 한꺼번에 터져 영임은 삼십대의 젊은 나이에 고혈압이라는 병을 얻어 거기에 더해 홧병까지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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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과 정희는 학교에서도 등교정지라는 딱지를 얻었고 매 수업이 끝날때마다 행정실에 불려가 등록금 애 안갖고 오냐는 행정실장의 고함을 들어야했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길고 큰 출석부로 머리를 후려쳤다. 등록금 낼 돈도 없으면서 왜 학교를 다니는거야! 라면서. 정희는 수업에 들어가지않고 운동자에 스탠드에 벌렁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었다. 구름 위로 올라가고 싶다.... 하늘로 꺼지고 싶다... 눈을 감고 있는데 투닥투닥 발소리가 들렸다. “정희야, 정희야!! 선생님이 너 찾아오래! 얼른 교무실로 가 봐! 수업에는 안들어와도 된대

무거운 몸을 일으키니 어깨위로 솜털 보송보송한 송충이가 기어가고 있었다. 사방군데가 온통 송충이로 떼를 이루었다. 어깨에 기어가는 송충이를 손으로 툭 치고 송충이들을 피해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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