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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제13화 여자라서(가칭)

정희는 타고난 적극적인 성격과 활달함으로 학교가 아닌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을 잘 했고 얼마 되지않은 월급으로 가계에 보탬을 주었다. 작은 공장이었지만 그곳에는 정희와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많았다. 공장에서 제공한 동굴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녔다. 공장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일머리를 발휘한 정희에게 관리자의 직함을 주고 정희는 공장에서 주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공장은 오래 가지 못하고 자금난에 문을 닫아버렸고 어느덧 교도소에 있던 아빠 동만이 출소를 했다. 어린 딸자식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을 다녔다고해도 아빠 동만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그 분풀이를 온갖 트집을 잡아 영임에게 손찌검을 해댔다. 한 때 집에서 말을 키울 정도로 동네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를 자랑하던 정희의 외갓집도 할머니의 씀씀이에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달동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판잣집 4평 정도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4평 짜리의 집에 어린 손자까지 여섯식구가 끼어살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근근한 살림에 비빌 구석이 없던 그 시절. 정희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빚잔치까지 떠안아 일을 계속해야했다. 검정고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매일이었다. 공기업 매점에서 차 심부름하는 아르바이트에, 이모가 미싱사로 있는 작은 인형봉제공장 시다에, 쌀포대를 가방으로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 가방을 접는 일로 시작해 우연히 밟게 된 미싱에 손이 빨라 미싱사로 일하게 된 과정까지 정희의 십대 초반과 이십대 초반까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일을 해야했다. 어두운 동굴같던 근 십년을 벗어나게 된 건 아빠 동만의 손에 이끌려 유명 만화가 문하생으로 가게 된 날이었다. 어릴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그림 그리는 것을 본 아빠 동만은 그런 정희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러나 유명만화가의 문하생이 되는건, 그래서 그것으로 돈을 번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십년은 수입없이 선만 그어야하는 일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 일이 급한 처지로서 가당치않은 호사였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 너무도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정희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반나절만에 나와버렸다. 그리고 간 곳이 만화학원이었다. 만화로 먹고 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림의 세계는 생각처럼 먹고사는 것을 보장해주지않아보였다. 그냥 호사였다. 그럴 주제의 형편이 안된 탓에 정희는 한달만에 그만두고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던 차에 학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광고회사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구한다고했다. 그림실력은 뛰어나지않아도 된다고 했다. 학력도 불필요하다고 했다. 충무로 작은 광고회사 대표는 만화가 출신이라 더욱 정희를 반겼다. 정희는 지난 십년간 어두운 동굴같은 직장에서 밝고 환한 직장으로 나온 것 같아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뛰어난 그림 실력이 아니기에 다른것에서 대표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정희는 타고난 심성과 적극적인 성격, 활달함에 더해 남들과 다른 창의성으로 빠른 시간안에 대표의 마음에 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친분도 쌓았다. 한창 외국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던 시대에 충무로는 그야말로 영화인들의 성지였고 모든 광고들이 성황을 이룰때였다. 충무로는 11초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신 또한 발견했다. 정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에게 있는 재능이란 이런게 아닐까? 하는. 정희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무직보다 현장에 나가 일하는게 더 적성에 맞았다. 자원해서 스텝이 되었고 물론 그림 그리는 일도 병행했다. 그리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어도 표현과 아이디어 연출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정희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새삼 깨달았다. 작은 회사는 조금 더 발전하여 강남으로 진출했다. 광고회사들이 점점 강남으로 진출하고, 광고대행사 또한 강남으로 몰릴때였다. 시류에 맞춰 이 작은 광고회사도 강남으로 이전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정희네 집도 이사를 했다. 나아진거 하나 없는 월세집이었지만 방 세 개 딸린 기와집이었고 처음으로 온전하게 정희의 방이 생긴 집이었다. 친아빠의 추행은 그곳에서 멈췄다. 방이 따로 있던 탓이기도 했다. 여전히 수틀리면 가해지는 엄마를 향한 아빠의 손찌검은 지속되었지만 성인이 된 오빠와 딸은 더 이상 일방적인 아빠의 폭력을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아빠보다 키도 커지고 힘도 세진 정헌이는 옹골진 아빠 동만의 엄마를 향한 주먹질을 막으며 죽여버린다고 밀쳤고, 정희 또한 평생을 두고 엄마를 때리냐! 오죽 못났으면 약한 마누라를 때리냐! 차라리 이럴거면 이혼해라! 라며 고함을 쳤다. 힘이 세진 자식들의 반격에 움찔했는지 아빠 동만은 그때부터 폭력의 횟수와 강도가 현저히 나아졌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삐걱거리는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집 아들과 주인집 아들의 아버지, 아빠 동만과 엄마 영임이 마당에 서 있었다. 엄마 영임의 어깨에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빠 동남의 손에 피묻은 칼이 들려있었고 주인집아들과 아버지는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예요? 엄마, 거기... ...”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당에 서 있는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데 주인집 아들이 말을 더듬으며 아무튼! 말일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집 빼요! 아주머니를 봐서 말미 주는거니까!” 하고는 대문을 향해 바삐 사라진다. 주인집 아저씨는 연신 허허, . 하며 대문을 나서는 아들에게 경찰에 신고해야하는거 아니냐? 하며 사라진다. 동만은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마당에 내동댕이치고는 나가버린다. 엄마 영임의 어깨에는 길이 2cm 정도의 상흔이 있었다. 다행히 깊지도 않았고 많은 양의 피가 솟구친것도 아니었다. 지혈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어떻게 된거야영임은 아무말이 없었다. 숨죽여 우는 듯 했다. 힘겹게 입을 연 엄마 영임의 한마디는 나 너네 아빠랑 못살겠다. 무서워서 못살겠어. 이러다 언젠가는 아빠손에 죽을 것 같아.”였다. 흐느끼는 엄마의 앞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저 사람들을 뭐고 왜 아빠가 엄마한테 칼을 휘두른거야?” 전말은 이랬다. 방이 3개 딸린 기와집 독채는 허름해도 달동네 입구에 있다는 조건으로 월세가 비쌌다. 물론 월세를 감당할 정도의 벌이를 동만은 했다. 그러나 그 벌이는 오직 본인과 지인들에게만 쓰이고 집에는 먹는 거 외에는 일절 쓰이지 않았다. 어쩌다 주는 용돈 정도의 수준으로 모으며 충분히 월세를 감당하고도 남는다는 것이 동만의 계산이었고 거기에는 아들과 딸의 수입도 일정 부분 보탬이 되고 있을거라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다. 여섯달이 밀려있는 월세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있었고 참다못한 아들이 내려와 월세를 내놓던지 집을 빼던지 하라며 패악을 부리고 있던 차에 반박은커녕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던 동만이 그 화를 영임에게 돌려 왜 월세가 그렇게 많이 밀렸냐며 분풀이를 영임에게 한 것이다. 주인아저씨와 아들에게 받은 수모를 아내 영임에게 칼을 휘두르며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으로 일단락된 것은 사실이니 놀란 주인집 아저씨와 아들은 영임에게 안쓰런 눈빛을 보이며 물러난 것이고 보면 의도했든 안했든 동만의 칼부림은 성공을 이룬 모양새가 되었다. 영임은 한숨을 쉬며 영임에게 말했다. “오빠가 주는 돈, 내가 주는 돈은 어떻게 하고 월세가 그렇게 많이 밀렸어?” 우문이었다. 우문인줄은 정희도 잘 알았다. 이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얼마나 답답한 비수로 영임의 가슴에 박힐지 너무도 잘 아는 정희였다. 끝나지않는 사채빚으로 벌어다주는 족족이 사채업자들에게 빼앗기는데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때 되면 먹어야하는 밥을 지어내는 것만도 쥐어짜는 형편임을 알고 있었다. 영임은 방문을 걸어잠그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정헌의 방으로 갔다.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다. 정헌은 버럭 역정부터 냈다. “그동안 보증금 올려달라고 해서 그동안 조금씩 모은거랑 가불해서 해주고 지금은 나 쓸 돈도 없이 필요할 때마다 엄마 주고 있어. 뭘 더 하라는거야? 씨발 차라리 이혼이나 하던지. 지긋지긋하게 왜 사나 몰라!” 영임은 다시 방으로 와 밤새 생각에 몸을 뒤척였다.

 

정희는 대표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놀란 대표가 이게 뭐냐고 했다. 돈이 필요해요. 가불정도로는 안되고 퇴직금이 필요해요. 그랬다. 당장 밀린 월세를 내고 한동안, 이질할동안 버틸 돈을 마련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수표로 받아든 수백만원을 고스란히 영임의 손으로 들어갔고 그것은 월세를 받으로 다시 온 주인집 아들의 손으로 들어갔다. 주인집 아저씨는 아들의 손에 쥐어진 수표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아주머니 때문에 봐드리는거예요. 이 집 바깥양반같으면 당장이라도 내쫓고 싶은데.”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거기에 빚까지 있으면 그것은 오랜 세월, 아니 어쩌면 평생 해결하지 못하고 따라다니는 암덩어리처럼 고질이 되고 더욱 깊어지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계산이 안되는건지 동만을 그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았다. 정희는 그런 아빠 동만이 이해가 되지않았지만 엄마 영임에게도 답답함을 갖고 있었다. 영임은 무슨 일이 있건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무슨 자존심인지는 몰라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어도 처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곪고곪고 너무곪아 터져버릴 때 그때서야 일이 벌어지면 비로소 알게 하는 답답함이었다. 그것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제발 미리, 일이 터지기전에 말을 해달라고 해도 영임은 혼자 해결해보려고 했지 라는 말만 했다. “해결하는게 뭐가 있어! 늘 일이 터져야 그때서야 해결하는걸! 결국 해결하는 사람이 누구야! 오빠는 무슨 죄고 난 무슨 죄야! 그러니까 엄마, 제발 일 터지고 난 다음에 말하지 말고 미리 말하라고!” 정희는 평생을 반복해도 고쳐지지 않는 엄마 영임으로 인해 정희의 육십평생을 그렇게 살게 될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 되물림이 정헌에게도 오빠인 정헌으로 인해 정희에게로 나이 육십이 될 때까지도 이어지게 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영임은 동만과 결혼한 후 처음으로 거금을 만져본거라고 했다. 그것들이 가족을 위해 쓰여지는 것도 아니고 밀린 월세와 사채빚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피눈물이 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이 마음이 편해야살지, 그동안 마음고생한거 생각하면 엄마도 참 답답해 라고 했다. 알면서도, 그 심정이 어떨지 뻔히 알면서도 한마디라도 위로가 되거나 예쁘게 말할 것이지 왜 꼭 그렇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만 해대는지. 정희는 스스로도 못됐다고 생각했다. 이직한 회사는 전에 다니던 곳과 회사의 규모는 작았으나 일은 더 많았고 월급은 전에 다닌던 곳보다 정확히 두배는 많았다. 이직을 하고 보니 전에 다니던 곳에서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정희는 정확히 두배 많아진 월급의 절반을 떼서 엄마 영임에게 주었다. 나머지 전에 다니던 곳에서 받았던 월급만큼의 돈을 모아두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금전적인 문제로 일이 터졌을 때 해결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발버둥치며 모아도 한번에 사라지는 돈이었다. 돈이라는 존재에 무상함을 느낄 때 정희는 돌파구를 찾았다. 아무리 착하고 적극적이고 활달함을 갖고 있다고해도 썩어문드러지는 자신을 해소할 돌파구. 충무로에 있을 때 수입영화사에서 근무하던 네 살 위 언니의 추천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목적지가 딱히 있는 것이 아닌 발길 닿는대로 가는 그런 여행길. 걷다보면 보이는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없고 하물며 작은 들꽃마저도 눈에 밟히는 발길이었다. 걷다보면 지칠때도 있고 또 더 나아가고 싶을때도 있는데 그러다보면 발에 물집이 잡히고 허리는 끊어질듯하기도 했다. 둘이 다니다 셋이 다니고 셋이 다니다 또 넷이 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두서없는 이야기를 지껄이는 것도 재미나고 걷는게 지쳐 말할 힘이 없어 입을 다물고 걸어도 좋은 그런 여행. 어쩔땐 혼자 걷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무념무상으로 걸을때도 있고 머리가 복잡해 이생각저생각하며 걸을 때도 있다. 속상하거나 슬픈 일이 있을때는 걸으면서 울기도 하고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때는 히죽거리며 걸을때도 있다. 그럴 때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에게 느자구없이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산들바람이 뒷목 머리칼을 날리고 쏟아지는 봄햇살에 눈이 부실때면 온세상 따스한 기운이 온 몸으로 들어가 활력을 느끼기도 한다. 걸으면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느끼는 듯 해 인생의 여정길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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