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동서~ 정헌이엄마~ 나 왔어. 안에 있어?'
삐걱거리는 미닫이 문을 두 번에 걸쳐 힘을 주어 여니 냉기가 훅 하고 들어왔다. 영하의 날씨인 밖보다 더 차가운 한기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야? 동서, 동서 괜찮아?"
신발을 내팽개치다시피하고 들어가 정신을 잃은 영임을 흔들어 깨운다.
"세상에, 세상에! 동서! 눈 떠봐! 눈 좀 떠봐! 어머어머~ 어떡해~ 이게 무슨 일이야! 혼자 애 낳은거야?"
겹겹이 쌓은 이불 아래로 손을 넣으니 과연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영임의 큰동서는 아기를 쳐다볼 새도 없이 그 길로 나가 연탄과 신문지와 성냥을 들고 와 불을 지피고 미역을 물에 불렸다.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고이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곤로에 성냥불을 붙여 씻은 쌀을 앉혔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과 발을 연신 주물렀다. 온기라도 얼른 돌게 해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큰동서의 손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아기는 배가 고픈지 조그만 입을 달싹이고 있었다. 그러나 울거나 떼쓰지 않았다. 아마도 허기에, 추위에 지쳐서일지도 모르겠다. 아기의 손과 배도 연신 쓰다듬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방님 안 들어왔어? 혼자 애 낳았어? 미련하게... 연락을 하지 나한테라도..." 목이 메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자세히 보니 오른쪽 눈두덩이가 시커멓게 물들어있었다. 팔과 다리, 옆구리에도 온통 멍투성이에 손등과 다리에 생채기가 있었다. "또 손찌검했구나"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다시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온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큰 형님은 다시 나가 연탄불을 확인하고 물에 불린 미역을 솥에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거리며 달싹이는 냄비뚜껑을 열었다 다시 닫으며 불을 줄이고 뜸을 들였다. 벽에 붙은 찬장 안에서 먹다 남은 김치를 꺼냈다. 얼음이 배겨 서걱거리는 김치를 물에 씻었다. 금방 지은 하얀 쌀밥에 미역국, 씻은 김치가 전부인 밥상이 안으로 들어갔다.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거렸다. 물을 한 컵 따라 입김으로 휘이 불며 한 수저 떠서 영임의 입에 흘려넣어준다.
끄응-
의식이 돌아왔는지 참았던 아픔의 고통들이 한꺼번에 물밀듯 당겨왔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큰동서였다.
"형.. 형님"
"이 미련한 것아~ 어떡할려고 혼자 애를 낳아? 죽을려고 환장했니? 이 냉골에서 어떻게.. 너 몸 삭어~ 서방님도 안부른거야?" 고개를 돌리니 참아왔던 눈물이 입에 물다 터져 나왔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미역국에 밥 한술 말아먹으니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서너수저 먹다 기운없이 수저 쥔 손을 툭 놓았다.
“좀 더 떠 봐”
고개를 가로저으며 상을 물리고 아기를 안아 젖을 물렸다. 젖이 나오지 않았다. 두 팔이 아기와 함께 떨어졌다. 온 몸이 욱씬거렸다.
"형님, 죄송한데 미음 좀 끓여주실 수 있으세요? 아기 먹이게요."
"에효~ 그래. 산모가 잘 먹어야 젖이 나올텐데.. 이건 뭐.. 당최"
큰형님은 영임의 얼굴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부엌으로 나가 갓 지은 밥을 찌그러진 작은 양은 냄비에 덜고 물을 부었다. 휘이휘이 저으며 미음을 끓인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미음을 쑤고 있는 큰형님이다.
"정헌엄마야. 야속하다 생각지말고 들어라. 내 볼 때 서방님 그 버릇 못 고친다. 이혼해라. 애들 아직 어릴 때. 니 친정 잘 살잖아. 애들 데리고 친정으로 가라. 아무렴 지금보다 못하겠냐?" 살짝 열려있는 미닫이 문 사이로 영임의 초점없는 눈이 천정 어느쯤에 고정된다.
"어떻게 그래요."
"착해빠져서는. 동서가 살아야 애도 사는거지. 여자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살아봐야 주색잡기있는 서방 못 견딘다. 평생 고생이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엄마~ 정헌이 왔어요~"
순간 큰동서와 영임이 놀란 얼굴로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영임은 얼른 몸을 일으켜 매무새를 고쳤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제발 용서해줘. 내가 이렇게 싹싹 빌게."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동만이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싹싹 빌고 있다. 앞에는 당장이라도 때려죽일듯이 도끼눈을 뜬 사내가 무릎 꿇고 앉아 빌고 있는 동만의 멱살을 잡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든다. 혀를 차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나직이 욕하는 소리, 손가락질하는 사람,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도 있다. 멀리 있던 개도 컹! 하고 짖어댔다.
"이 개새끼야! 니가 뭔데 우리 누나를 때려? 어? 누나가 뭘 잘못했어? 왜 허구헌날 패는건데! 오죽 못났으면 사내새끼가 힘없는 여자를 패? 이 개 잡놈의 새끼야! 너 오늘 나한테 죽자! 너 죽고 나 감방가면 돼!" 흠씬 두들겨 패고 있을 때 주먹질이 멈춘 것은 동만의 비는 태도에 얼핏 진심이 보여서다. '이 자식, 진짜 잘못했다고 비는건가?' 하지만 벌써 몇 번 째던가. 또 이대로 봐줘야 하는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더 한심하게 느껴지는 복남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운 큰딸이 사위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둘째까지 냉방에서 혼자 낳았다는 말을 들은 영임의 친정엄마 인순은 그래도 이혼은 안된다며 큰동서를 흘깃 쳐다보았다. 큰동서는 좌절하듯 주섬주섬 일어나 고개만 까딱하고 조심스럽게 부엌을 나섰다. 동서의 친정엄마가 할 다음 말이 싫은 탓도 있었다. 듣다 보면 저게 무슨 엄마냐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 되었다.
인순은 그저 옛날 사람이다. 옛날 여인이다. 여자가 한 번 결혼하면 어찌됐든 새끼 데리고 참고 살아야하는 것이 여자의 숙명임을 신념으로 알고 사는 양반이었다. 그저 딸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물질적인 도움이 전부인 것처럼 그리 살고 있는 친정엄마였다. '다 너 하기 나름이지. 남자가 도박 좀 하기로서니, 손찌검 좀 하기로서니, 바람 좀 피웠기로서니 어찌됐든 니 서방이고 애들 아빠 아니니. 이혼해봐야 이혼녀 딱지밖에 더 붙니? 혼자 애 데리고 어찌 살거니? 못난 서방이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사실 이혼은 생각하지 않았다. 막 걸음마 뗀 큰 애와 갓 낳은 핏덩이를 데리고 친정에 들어가 산다는 건 줄줄이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 보기에도 민망한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혼자 두 애들을 데리고 살 용기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돈을 벌어본 적도 없어 뭘 해서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할지도 막막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애비없는 자식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친정아버지가 연탄을 실어날랐다. 집주인의 광에까지 쌓인 연탄은 천장이나 되었다. 장독대에 쌀이 가득 부어지고 미역이며 부식거리들이 부엌 벽에 딸린 찬장에 들어찼다. 방 한쪽에 맏아들인 영만이 영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다. 흘깃 아기를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진짜 계속 살거야, 누이?"
"...."
"다신 안그러겠다고 했다며."
"믿을수가 있어야지! 이혼해라! 내 조카들은 내가 어떻게든 키워줄테니까~!"
"술 안마시면 잘 해."
"으이그, 미치겠다, 진짜!"
벌떡 일어나며 문을 박차고 나간다.
"나도 모르겠다. 누이 맘대로 하소! 앞으로 신경 안 쓸테니까!"
친정엄마 인순이 미역국을 한솥 끓여놓고 밥을 새로 지은 밥을 뚜껑있는 도자기 밥공기에 덜어 아랫목에 덮었다.
"니 맏동서가 영 이상해서 여기 안들렀으면 너랑 얘는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 너 한서방이랑 살 수 있겠어?"
"피이.. 살라며~"
"말이 그렇지. 이렇게 맞아가면서 어찌 사누~"
눈물을 훔치는 인순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 있었다. 어느 친정엄마가 고이 키운 딸자식이 시집 가 서방한테 허구헌날 맞으며 사는데 가만 두고 볼 수 있겠나. 다만 시대가 그랬다. 여자가 어린 자식 둘이나 데리고 산다는건 영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을뿐더러 이혼녀라는 딱지는 시대가 용납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큰딸의 심성이 세상에 홀로 설 수 있을만큼 강단지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과 달리 이혼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이거 몸 추스리면 부업이라도 해서 가계에 보태라."
언제나 말없이 도움을 주는 친정아버지는 어떤 일이든 나서는 사람도,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천직으로만 아는 양반이었다. 친정아버지가 가지고 온 것은 미싱이었다. 이미 혼수 때 가지고 온 미싱은 동만이 내다 팔아서 도박에 탕진했다. 친정아버지가 얻어준 전셋집의 전세금도 빼서 도박에 썼다. 처음 달동네라는 곳에 들어가 월셋방을 살게 됐는데 그 월세보증금마저 빼서 더 높은 달동네로 올라가 월세 보증금이 가장 싼 이 집에 살게 된 것이다.
한바탕 다녀갈 사람들이 다녀가고 애 낳던 날 새벽에 잠깐 들렀던 남편 동만은 3일만에 집에 들어왔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동만을 올려다보고 있는 영임을 보고 동만은 난데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영임은 순간 아기를 품에 안고 웅크렸다.
"이 쌍년아! 내가! 이 한동만이! 니 동생한테 맞아죽을뻔했다! 알아? 동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나를 아주 죽일듯이 때리더라? 니가 얼마나 남편을 우습게 여겼으면 니 동생이 매형 알기를 개 좆만도 못하게 패냐고! 엉?"
옆에서 자고 있던 정헌이 깨서 울어댔다.
"시끄러!"
영임은 동만의 발길질이 정헌이에게로 향할까봐 한 팔로는 갓난아기를, 다른 한 팔로는 정헌이를 끌어당겨 동만의 발길질을 그대로 받아냈다.
'이혼을 해야할까?'
'이대로 그냥 애들 데리고 죽어버릴까?'
그때 동만의 눈에 안보이던 미싱이 들어왔다. 동만의 눈빛이 반짝였다. 멈춘 발길질에 곁눈으로 동만을 바라 본 영임은 그의 시선이 머문 끝을 보았다. 순간 아차 했다.
"안돼! 아버지가 새로 사 온거야! 이것만은 안돼! 제발 정헌아빠!"
"이거 안 놔? 확 그냥!"
순간 움찔거리는 사이 동만은 미싱을 품에 안고 나가버렸다.
망연자실, 울어대는 아이들과 같이 우는 영임이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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