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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제7화 여자라서(가칭)

 

 

승화의 장례는 인철의 장례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마당이 넓은 세련된 2층 양옥이 아닌 좁을 골목에 있는 방 두칸짜리 단독주택에 방과 방을 연결하는 마루와 신발을 벗고 우측으로 가면 좁은 주방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모여있는 이곳은 하늘과 가까운 동네, 달동네다. 인철이 남긴 그 많은 재산, 승화가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들은 다 어디가고 불과 몇십년 사이 달동네로 이전을 하게 되었을까? 승화의 인순의 8명의 자식 중 일곱 번 째 아들 영칠은 날때부터 소아마비를 앓고 태어났다. 인순은 그야말로 돈을 방석 아래 깔아놓고 필요할때마다 꺼내 쓰는 부를 즐기고 있었다. 씀씀이가 헤프니 당연히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약이 없어 약을 사지못하는 사람에게는 약을 사주고, 쌀이 없어 밥을 굶는 집이 있으면 쌀을 팔아주었다. 돈이 필요하면 돌려받지못하는 돈을 빌려주었고 바람잘날없는 여덟자식의 입성은 남부럽지않게 꾸며주었다. 그럼에도 재산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미신이 문제였던가. 어느 지나가는 장돌뱅이의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전재산을 잃게, 아니 탕진하게 될지 누가 알았던가! 여덟 자식 중 인물이 가장 좋으면서 손재주까지 있는 일곱째, 아들로서는 세 번째 아들 영칠의 소아마비를 고쳐주기위해 사방팔장 안 간곳, 안 부른 곳없이 굿을 한 터에 재산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급기야는 집까지 저당잡혀 더 이상 굿을 하지 못하게 될 때에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인순은 오르고올라 달동네로 밀려가게 된 것이다. 물론 영칠의 소아마비는 고쳐지지 않았다. 자식들의 원망에도 아랑곳않고 여전시 인순은 돈만 생기면 무당집을 찾아다녔다. 무당의 효험이란 없다라는 것이 가족들간에 결론이었는데 그렇게 찾아헤메던 아버지 승화가 무당에 의해 어디에 있는지 실마리를 찾게되니 미련이 남을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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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니 할머니가 영칠이 굿만 하지않았어도 그렇게 살진않았겠지.”

아빠도 마찬가지지 뭐, 한창 돈 잘벌 때, 사우디가서 돈 벌어올 때 빚이나 남 좋은 일만 시키지 않았다면 강남에서 떵떵거리며 살았겠지.”

일을 하는 성실함은 있으나 자산관리를 잘 하지못하면 평생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영임의 평생을 보면 좋은 예가 된다. 한 번의 만남에 결혼을 하게 된 영임과 동만은 마을에서 매우 화려한 혼례를 치렀다. 영임은 비단으로 만든 장미꽃을 곱게 올린 머리에 장식으로 꽂고 고급스러운 한복으로 단아한 신부의 모습을 보였다. 동만 또한 포마다 바른 단정한 머리과 잘 빠진 양복을 하고 그야말로 선남선녀의 한 쌍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16살에 서울로 상경해 홀로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며를 하다 특유의 활달함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먹고자는 것은 물론 기술까지 전수해주는 이발소에서 정착해 살면서 영임을 만나 항간에서는 가진 것 없는 시골 촌뜨기가 서울 양반집 맏딸하고 혼인했다, 재주좋다, 라는 말들을 해댔다. 이에 동만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빴다. 여자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가 비관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영임을 굴복시키려했고 더 큰 제스춰를 취했다. 승화는 금이야옥이야 키운 큰 딸이 아무것도 가진것도 배운것도 없는 소위 불한당 같은 놈에게 시집보내는 게 영 내키지않았지만 딸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혼례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왕 시키는 결혼, 부족함없이 서운함없이 치러주고 싶어 세심하게 보살폈다. 동네사람들 모두 불러 잔치를 치르는데 3일을 소비했다. 그리고 읍내에 둘이 살기 좋은 평수의 전셋집을 구해주고 손재주 좋은 영임이 집에서 소일거리라고 할 수 있도록 가장 좋은 미싱을 선물로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이 미싱은 신혼집에서 3일만 머물다 떠나야했다. 남편 동만은 신혼첫날밤을 치르고 다음날부터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고 찾아나설 곳도 몰랐다. 하염없이 기다리며 걱정만하고 있는데 신혼집으로 들어온지 3일만에 동만은 친정아버지가 해 준 미싱을 들고 나가버렸다. 외출했다 돌아 온 영임은 사라진 미싱을 보고 도둑이 든 줄 알고 놀랐다. 당장 친정집으로 달려갔다 무서워서다. 신혼집이라 도둑이 든 것 같다고 무서워서 집에 못있겠다고. 하지만 동만이 이틀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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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결혼하자마자 그랬구나. 속이 탔겠네.”

전세금 뺀 것도 몰랐지. 산지 한 1년 쯤 됐나. 갑자기 집주인이 오더니 집 나가라고. 새신랑이 전세금 가져갔다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

니 아빠가 저녁에 들어와서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더니 남자가 하는 일에 여편네가 뭔 말이 많냐고 소리치더니 지갑에 있던 돈을 들고 휙 나가버리더라고. 그래서 뒤를 밟았지.”

엄마가? 아빠 뒤를 밟았다고? 대단한 용기였네.”

어느 술집으로 들어가더라고. 술집에서 술마시고 여자 끼고 노느라 여자들한테 돈을 주나 했는데...”

에이 설마. 그래도 명색이 갓 결혼한 신혼인데..”

화투를 치고 있더라고.”

그랬다. 동만은 도박을 하고 있었다. 비록 판이 겉잡을 수 없이 큰 판은 아니었지만 아니, 전세금까지 거둬가는 판이면 큰 판이라고 해야할까?

아빤 도박을 하고 수틀리면 나한테 주먹질은 해도 여자는 없었어. 바람피고 그런건 없었어.”

아빤 도박을 하고 수틀리면 나한테 주먹질은 해도 여자는 없었어. 바람피고 그런건 없었어.’ 엄마 영임의 이 말에 정희의 가슴에는 한없이 깊은 한을 심어주었다. 여자는 없었어.. 바람피고 그런건 없었어... 하아... 영임에게 들리지않을 정도의 작은 한숨이지만 정희는 몹시도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또다시 보이지않는 눈물이 솟구쳤다.

동만이 바람피는 대상인 여자가 아닌 딸 정희, 어린 딸에게 손을 댄 것은 정희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3학년 무렵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달동네 좁은 단칸방에 누워 자고 있던 정희의 아랫도리에 슬그머니 손이 들어갔다. 정희는 깜짝 놀라 깨 일어났다. 옆에 태산같이 커 보이는 아빠 동만이 입술에 손을 갖다대며 하는 제스춰를 취하고 있다. 정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몸도 움직이지않았고 눈만 말똥말똥 아빠 동만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다.

! 엄마 알면 안돼! 이리 와봐.”

꼼짝을 않고 있는 정희의 몸을 쓰다듬는 동만의 얼굴이 끔찍해보이기 시작했다. 그 행위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건 본능이었고 그렇다고 뿌리칠 용기나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동만의 추행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동만은 딸의 몸을 만지기위해 영임을 심부름 보내거나 외출을 하게되거나 친척집에서 자게 될 경우 항상 옆에 끼고 잤다. 추행은 갈수록 대범해져 영임과의 잠자리 도중에도 바로 옆에 누워있는 정희의 아랫도리와 가슴을 만졌다. 일부러 끄응- 하며 몸을 뒤척이니 동만이 정희의 사타구니를 꼬집었다.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를뻔했다. 하지만 엄마 영임이 무안해하거나 딸을 만지는 남편의 끔찍함을 혐오하는 엄마를 상상할 수 없어 이를 앙다물고 참았다.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몸이 영글지 않았던 지난 3년간은 그냥 만지는 정도에서, 정희의 손을 자신의 사타구니로 가져가 만지게 하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딸을 만지기 시작한건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였다. 친척집에서 아빠와 딸이 같이 자게 됐을때는 딸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아랫도리를 벗기고 자신의 그것을 딸의 거기에 갖다댔다. 그러면 귓속말로 이게 이 안으로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져.” 정희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대로 일어나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밖이 너무 어둡고 인적이 없어 무서웠다. 동만은 영글지않은 딸의 어린 속살로 자신의 것을 밀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너무 작고 여린 어린 딸의 것에 동만을 자신의 것을 넣을 수 없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동만은 에이씨! 하며 외마디 불평으로 딸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 대신 딸의 쌀짝 솟은 가슴을 격하게 빨아댔다. 그리고 정희의 여리고 작은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으로 것을 잡고 흔들며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친족간 성추행이며 범죄라는 사실은 훗날 커서야 알았다.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고 특히 엄마나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로움으로 간직하며, 그렇게 당하며 살아야했다. 태산같이 큰 아빠, 자신이 말을 안들으면 그 화가 다 엄마에게 돌아가 엄마를 주먹으로 패는 아빠 때문에 정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단 둘이 있는 기회를 만들지않거나 비좁은 다락방이라도 따로 자는 것이다. 하지만 문고리마저도 젓가락으로 들어올려 열어 자고있는 딸의 몸을 만지는 동만이다. 그때 정희의 나이는 19세였다. 스마트폰도 이런 류의 사례의 표본도 없던 시절, 무엇보다 아빠를 피해 가출을 하고 싶어도 세상에 대한 무서움이 커서 마음의 상처만 안고 살아야했던 정희가 고민 끝에 편지를 썼다. 어느 잡지에서 본 홀트아동복지회에 보내는 편지였다. 내용은 그동안 살면서 친아빠에게 당한 추행의 전말을 모두 보낸 내용이며 홀트아동복지회에 들어가 먹고 자게만 해주면 아이들을 돌보면서 살겠다고,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써 내려간 편지였다. 하얀 편지봉투를 우체통에 넣으면서 과연 답장이 올까? 싶었다. 며칠 후 답장이 왔다. 내용은 믿을 수 없다는 것과 오고싶으면 보호자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친족간의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많아 사건 접수도 많고 드러나 실제 사례도 많지만 그때는 자칫 어린 딸의 일방적 주장이라도 해도 무방할정도의 파격적인 내용임에는 틀림없었으니 관계기관의 반응이 적극적이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거지도 몰랐다. 현재같으면 당장 격리조치이거나 고발조치가 됐을 일을. 이 일을 계기로 기분이 나빠진 아빠 동만은 생트집을 잡아 엄마 영임을 잡기 시작했고 소식을 들은 외할머니 인순이 그런 아빠를 달래고 있었다. 정희는 생각했다. 이대로 두 사람 이혼했으면 좋겠다하고. 그리고 외할머니 인순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사실은 그동안 아빠가 몇 년동안 내 몸을 만졌다고. 인순은 그런 일이 있었어? 못쓰겠네. 했다. 정희는 집 안에서 가장 윗사람이니까 어떤식으로든 해결을 해줄줄 알았다. 그런데 외할머니 인순은 정희를 따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엄마한텐 말하지말어. 정희는 절망했다. 그때부터였다. 정희는 웬만하면 집에 붙어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툭하면 야근한다 하며 늦게 들어갔다. 주말이면 산이나 봉사활동을 한다며 집에 머무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고쳐지지않는 도박중독으로 전세금이며 월세보증금이며 돈이 될만한 것들은 죄다 털어 가져가고 값나가는 세간살이나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으니 영임은 어린 연년생 남매를 데리고 달동네를 전전하는 평생을 보내야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던가. 전혀 나아지지않는 살림살이는 인순의 나이 칠순이 되어도 벗어나지 못했고 다만 벗어난 것은 일찍 병을 얻어 죽은 나편의 매질뿐이었다. 병으로 고통받으며 병원 신세를 지던 동만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섬뜩한 눈빛을 쏘아대며 옹골진 주먹을 허공에 휘둘러댔더랬다. 순간 영임과 정희는 이대로 눈을 감고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서워서다. 병원에서는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하고 있었고 동만은 코에 꽂은 줄을 빼라는 손짓을 했다. 정희는 집 근처로 동만을 옮기기로 했다. 정희와 달리 첫 아들이면서 유약한 심성인 정헌은 앰블런스에 오르는 아빠와 동생을 멀리서 보고 있었고 정희만 혼자 앰블런스를 타고 아빠를 모시고 정희가 사는 집 근처 작은 병원으로 갔다. 그렇지않으면 의미없는 연명을 할 것 같아서다. 입원해있던 대학병원의 의료비용도 비용이지만 당장 무슨 일이 있을 때 당장 달려올 만한 거리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간병하는 엄마 영임의 상태가 더 위험해보이기도 해서다. 정희는 앰블런스를 타고 가면서 연신 손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있는 젊은 의사선생의 손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냥 눈이 거기에 멈춰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다. “환자분이 따님을 찾는 거 같은데요?” 의사가 정적을 깼다. 의사를 흘깃하며 보다 아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동만은 산소를 불어넣는 의사의 손을 치다 허공에 대고 휘이휘이 저었다. 산소공급을 중단하라는 신호같았다. 정희는 무심히 의사에게 말했다. “빼라는데요?” 지독히도 차가운 말투에 의사가 정희를 한참 쳐다보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된다고 한다. “안된대요.” 동만은 지친 듯 팔을 툭 내려놓았고 눈을 감았다. 숨이 몹시도 가빠보였다. 병원에 도착하고 입원 수속을 했다. 병원에서는 3일을 내다봤다. 치료목적보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기간이라도 보는게 맞다고 했다. “알고 있어요. 문제 생기면 연락주세요.”하고는 하루에 한번 허락되는 면회를 한 번만 갔다. 영임은 그 면회조차 오지않았다. 의사의 말대로 과연 3일이 되는 날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벨소리에 놀라깬 것도 있지만 왠지 가슴이 울컥했다. 수화기 너머 숨 넘어가는 간호사의 날카운 음성이 넘어온다. “여보세요? 백동만씨 보호자 되시죠? 할아버지가 이상해요.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정희는 짧고 차분하게 하고는 주섬주섬 일어나 병원으로 갔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빠의 침대 주변에 둘러싸고 있었다. 의사가 따님이 오셨네요 하니 정희를 힘겹게 쳐다본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숨이 쌕쌕거린다. “그렇게 가족들을 힘들게 했으니 더 이상 힘들게 하지말고 눈 감으세요. 아빠도 이제 편히 눈 감으세요. 어쨌든 아팠으니까동만의 눈가를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동만의 임종을 지킨 정희. 정희에게 아빠 동만은 감히 어찌해볼 수 없는 무서운 존재였던가 아니면 애증의 관계였던가... 하지만 아빠의 임종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라 친아빠로부터 당했던 수년간의 성추행은 나이 오십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해소되지않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7화 끝》 연재: 매주 금요일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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