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로 가니 담임선생님이 책상 앞 의자에 몸을 삐딱하게 하고 앉아 모나미 볼펜을 딸깍거리고 있었다. 정희는 두 손을 허리 뒤로 포개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너. 학교 왜 나오냐?”
“.....”
“등록금이 이렇게 밀려서 졸업이나 하겠냐?”
그때 전 학년 담임선생님이 고개를 돌려 정희를 쳐다보았다. 정희는 한껏 부끄럽고 수치스웠다. 모든 학과 선생님 중 유일하게 정희를 감싸주던 선생님이 전 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엄마를 모시고 오던지 등록금을 내던지! 어? 학교를 그만두던지! 가 봐!”
정희는 뒤돌아서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빚쟁이가 따로 없네.’
정희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연락도 없었다. 이딴 학교 따위. 하며 집안에 틀어박혔다. 딸이 학교에 가지 않고 허구헌날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도 엄마 영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틀어박혀 있은지 열흘 쯤 되었을까. 정희와 한 반인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담임선생님이 보냈다고 했다. 제적 절차를 밟으려고 하니 마지막으로 엄마가 학교에 왔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에 다녀온 영임은 정희를 앉혀놓고 말했다.
“어떡할래? 학교 계속 다닐래, 아니면 그만둘래?”
“.....”
“응?”
“.... 학교에선 뭐라 그러는데?”
“사실대로 다 말했지 뭐. 아빠가 사기를 당해서 친구 대신 교도소 갔고 도시락 쌀 형편도 못되고 학교도 걸어다닌다고. 그래서 등록금 낼 형편이 못되었다고.”
“그랬더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대. 점수가 90점 이상이어야 한 대. 너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형편이란게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해보겠대. 학교에서는 너가 등록금 받아서 불량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쓰고 다닌 줄 알았대. 그런데 엄마가 직접 와서 형편 얘기를 하니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전혀 몰랐대. 너네 담임선생님도 그런줄 몰랐대.”
“오빠는?”
“오빠는 일단 반 애들이 돈을 걷어서 등록금을 냈대. 오빠 담임선생님이 너무 좋은 분이셔서 나서서 점수가 좀 모자라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한 모양이야. 오빠는 공부 잘하니까.”
“그래서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니가 알아서 해야지.”
“솔직히 엄마는 내가 학교 나가는 것보다 돈 벌어오는걸 더 원하지?”
영임은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정희는 빈말이래도 ‘무슨 그런 말을 해? 학생이 학교를 가야지.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이런 말을 기대했다. 그러나 영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빠가 어릴때부터 추행을 했다고 했을 때도, 술집에 나가 일할까? 라고 했을 때도, 방 따로 안주면 집 나가버릴거야! 라고 했을때도 엄마 영임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정희는 무언의 대답이라고 판단했다. 이번에도 학교보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생활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언제부터였던가. 지금의 엄마가 친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게. 유독 두 살 터울의 오빠와의 차별이 심했던 엄마였다. 아무리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모든 차별의 중심에는 오빠가 있었고 정희는 늘 뒷전이었다. 외출을 할때도 오빠만 데리고 다녔고, 길을 걸을때도 오빠는 등에 업고 어린 정희는 걷게 했다. 달동네 허름한 골목길은 어두워지면 유독 깜깜해 골목을 돌면 길고양이가 습격할 것 같았고 나쁜 사람이 덮칠 것 같을 공포가 있었다. 바람이 불라치면 거대한 버드나무의 잎에 마치 머리풀어헤친 처녀귀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겁을 먹으면 쓰레기더미가 마치 쫓겨 숨어다니는 범죄자인 것 마냥 착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어둡고 무서운 깜깜한 밤에 엄마의 심부름은 정희가 도맡아했다. 싫은 내색은 해도 반발은 하지않았다. 착한 심성을 가진 정희였으니까. 그러다 어느날은 볼멘 소리로 한마디 했다. 왜 오빠는 안시키고 나만 시켜? 원망섞인 표정으로 오빠를 보면 오빠는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고 엄마 영임은 그저 갔다와라.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없는 살림에 쌀이 떨어지면 늘 외상 구걸은 정희가 했고, 돈이 없어 꿀라치면 늘 정희가 가서 아쉬원 소리를 했다. 그것을 엄마 영임이 어린 정희에게 시켰다. 정희는 너무도 익숙한 심부름에 엄마가요, 내일 드린다고 쌀 한되만 달래요. 엄마가요. 내일 드린다고 막걸리 한되 달래요. 엄마가요, 내일 드린다고 이천원만 빌려달래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너네 엄마는 직접 오지, 왜 어린것한테 이런거 시킨다니? 하면서 주었고, 돈 맡겨났냐? 내일 준다고 한게 벌써 몇 번째야? 하는 역정을 감당해야했다. 왜 엄마는 이런 심부름을 나에게 시킬까? 그런 의문을 품은적은 없었다. 그저 엄마가 시킨 심부름이니까 말을 잘 듣는 착한딸이었을 뿐이었다. 싫었지만 싫은티를 대놓고 하지는 않았다. 그 부당하고 서러운 감정을 몰래 울거나 아니면 허름한 달농네 굽이굽이 깜깜한 골목을 지나갈 때 부르는 노래로 달랠 뿐이었다.
“왜 엄마는 맨날 심부름도 나만 시키고 어디 가면 오빠만 데리고 갔어? 난 그게 정말 궁금했어. 나도 엄마랑 같이 손잡고 놀러가고 싶고 밤에 심부름하는것도 얼마나 무서웠는데.”
엄마 영임이 말했다. “너는 씩씩했으니까. 너는 어디 내놔도 기죽지않고 잘 지내니까. 오빠는 마음이 약해서 엄마가 조금이라고 안보이면 막 울었거든.” “나도 무서웠어.” “그래도 너는 군소리않고 든든했거든.” 엄마의 변명아닌 이유에 후회를 했다. 나도 대놓고 무서워할걸. 엄마의 관심을 갖기위해 아픈척도 해보고 운동회날이면 죽어라고 달려 1등 도장을 손목에 찍어 와 자랑을 하고 부상으로 얻은 학용품을 오빠에게 뺏겨도 그때만큼은 엄마의 칭찬과 관심이 쏟아져 좋았다. 그래도 엄마가 오빠와 둘이 동등하게 대하는 거는 깨끗이 씻겨 내복을 입히고 스뎅대접에 주먹만한 감자 한 알씩 담아 먹일때와 명절 때 시장에 나가 리어카에 소복히 쌓인 옷들 중 가장 예쁜 것을 골라 입힌때였다. 엄마 영임은 옷을 보는 감각이 있었다. 어릴때부터 옷을 맞춰 입었던 탓이었던지 옷을 고르는 감각이 뛰어났다. 옷과 신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않을 정도로 잘 해 입혔다. 겉으로보면 근심걱정없이 사랑만 받고 사는 부잣집 딸이었다.
학교에 나가지 않은지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마지막, 학교를 눈에 담아내기 위해 등교를 했다. 전 학년 담임선생님이 출석부를 부르다 정희를 바라보았다.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예쁘고 다정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어린 눈에도 참 천사 같다고 느낀 유일한 학교 선생님이었다. 사실 정희에게 초등학교, 중학교때 만난 선생님들이 다 형편없었다는 기억만 갖고 있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아니 공부를 잘하면 관심의 가산점이 있겠지만 촌지로 좌우되는 학교생활이 당연시 되던 때라 촌지는커녕 박카스 한 박스도 안겨줄 형편이 못되다보니 선생님들의 정희에 대한 대우는 무시,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매 교시마다 ‘등교정지’라고 빨간 도장이 한정희 이름 옆에 있는걸 보고 선생님들은 한정희가 누구냐? 이 출석부 더럽혀진 것 좀 봐라. 등록금 안냈냐? 심지어 늙은 수학선생님은 수업때마다 칠판에 잔뜩 써 갈긴 문제풀이에 정희를 늘 불러 세웠다. 그러나 전 학년 담임선생님만은 그러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호명을 하거나 유별나게 챙기지도 않았다. 정희는 전 학년 담임이었던 천사같은 선생님에게 인사하기 위해 교무실로 갔다. 현 담임선생님을 흘깃 쳐다보고 지나쳐 갔다. 전 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살짝 현 담임선생님을 보다 이내 정희를 맞이했다. 선생님이 끌어당겨준 의자에 앉아 힘겹게 그러나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오늘 저 학교 그만두려고 나왔어요. 사물함 정리도 할겸 선생님한테 인사도 할겸.”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거야?”
“...네. 엄마도 제가 일을 했으면 하세요. 집에 돈 벌 사람이 없어요. 아빠는 사기죄를 뒤집어써서 깜방 들어가있고 엄마는 혈압이 너무 높아서 일을 못하세요. 오빠라도 고등학교라도 마치게 해야잖아요. 전 어차피 여자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말끝을 흐리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전 학년 담임선생님은 정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등록금이 문제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그리고 장학금 신청하면 돼. 일단 졸업은 하자. 그리고 야간고등학교 다니면서 낮에 일할 수 있어. 그런 애들 많아. 우리 방법을 찾아보자. 너네 담임선생님하고도 의논해볼게.”
“아니예요, 선생님. 당장 우리 식구,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해요. 할아버지가 근근이 벌어다주시는 돈으로 그 많은 식구 중 우리까지 얻어먹고 있는데 하루 두끼 먹는 것도 힘들때가 많아요. 그리고 우리 담임선생님도 저 학교 그만두기를 바라세요. 그만두라고 저 출석부로, 청소시간에, 아이들 다 보는 앞에서... 머리를 계속 때리면서... 매일... 때리면서.. 큰소리로... 등록금 왜 안내냐고, 학교에 왜 나오나고....흑” 정희는 어깨를 들썩이며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 일이 있었어?”
“저런 선생님과 졸업할때까지 시달리면서 지낼 자신이 없어요. 등하교때 다섯정거장을 매일 걸어다닐 자신도 없어요. 저 돈 벌어야해요. 그래도 선생님은 유일하게 저를 생각해주시는 분이니까 인사라도 드리고 가려고... 나중에 검정고시 볼거예요.”
정희는 담임선생님에게 오늘부로 학교를 그만둔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물함을 비우고 친구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학교를 나섰다. 미련이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학생을 보호해야하는 학교가 학생을 버리는데 학생이 학교를 버리는 것 쯤이야. 학교는, 담임선생님은, 친구들은 정희를 찾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오랜 결석으로 자동 제적되었고 전 학년 담임선생님은 다른 학교고 전근갔다고 했다. 매 교시마다 ‘등교정지’를 상기시켜준 학과 선생님들도 더이상 ‘한정희’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전 학년담임선생님의 편지였다. 편지에는 정희가 그런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고 그 학교에 더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 정희의 담임선생님에게 따졌다가 밉보였다는 것, 담임이 아닌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게 없어 미안한 마음,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 그래서 전근 신청을 하고 지방의 어느 작은 학교로 발령받아 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반드시 꼭 검정고시를 봐서 성공해서 보란 듯이 잘 살라는 내용이 덧붙여 있었다. 정희는 정성스럽게 온 마음을 다해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편지를 고이 접어 애정하는 노란 상자에 넣었다. 정희는 그때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만해도 혈압이 높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공장들이 밀집되어있는 낡은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공장. 그 앞에 서 있는 정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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