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호(외국인휴대폰전문할인매장대표, 46세)씨는 중국 심양 출신이다. 친할아버지가 한국분이다. 그는 재중동포다. 경북 성주가 고향인 할아버지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아버지가 태어나고 오성호씨가 재중동포 3세가 된 것이다. 한국에 온지는 20년이 되었고, 시흥 정왕본동에 자리를 잡은지는 10여년이 되었다. 오성호씨에게 시흥은 제2의 고향이다.
하는 일이 많은 이유
그는 타이틀이 많다. 외국인자율방범대대장, 법무부법사랑특별위원, 시흥시한중동포연합회장, 한국다문화연맹부총재, 한국신문방송언론인협회이사, KC동반성장기획단 시흥지회장등등... 왜 이렇게 하는 일이 많냐고 물어보았다. “봉사를 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봉사를 왜 하느냐고 물었다.
봉사에 한번 동참을 하게 되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된다.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의 어울림은 사실상 힘들다. 관계기관에서의 시도도 어렵다. 동포들이나 다문화인들이 단체를 만들어 단체별 통합을 통해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나라별로 생활패턴이 다르기에 관리를 하면서 단체로 움직여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챙길 수가 있다.
제3회 갯골김장축제에 외국인자율방범대와 다문화인들이 김장봉사를 나간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단체가 있다는걸 알려야할 필요성에서다. 행사가 축제가 될 수 있게 즐기는 하루가 된다면 서로가 기억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본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목표가 없어야한다. 그런 가운데 웃고 즐기면 서로의 멀어져있는 간격이 좁혀지게 되어있다. 그것이 봉사를 하는 이유다.
외국인자율방범대를 하면서 변화된 것은....
외국인자율방범대를 만들고 올해까지 7년째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지구대대장의 제의로 하게 된 자율방범대는 그의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다. 방범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봉사를 통해서 배우게 된 것도 많았다.
처음에는 중국동포로만 결성했었다. 그러나 활동을 거듭하면서 굳이 중국동포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도 동참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 둘 참여한 나라들이 지금은 중국,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몽골, 이렇게 7개 나라가 되었다.
24명으로 시작한 외국인자율방범대는 현재 60여명이 되었고, 7년여간 거치고 나간 사람들까지 합하면 200여명이 된다.
방범활동을 통해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었다. 왜 지역에서 봉사를 해야하는지 알게 되었고, 낯선 땅에 와서 상대적 소외감을 갖고 있는 이들을 지역으로 끌어내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하고 또 시흥사람들과 소통하며 이웃이 되게 하는 간격을 좁히게 되었다. 그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것이 순찰 외 자율방범대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매장에 유독 활동사진이 많다... 이유는?
아직도 외국인자율방범대를 왜 하는것인지 그 의미를, 아니 봉사라는 의미 자체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핸드폰 매장 안의 각종 위촉장과 감사패 및 공로패, 그리고 다양한 활동사진들은 홍보를 위한 전시품이다. 전시되어있는 것들을 통해 ‘봉사의 의미’와 사회적 고립에 갇혀있는 있는 이들을 지역사회로 끌어내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모두 홍보 대상이다.
구체적인 홍보내용은?
한국에 대한 법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터득하며 또 그것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 인식의 변화와 주위 사람들의 호응 면에서 방범활동은 중요한 계기가 된다. 10년, 20년 전에 한국에 왔던 외국인들하고 현재 한국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방향은 많이 바뀌었다. 단순히 돈만 벌고 나가는게 아니라 장기 체류가 가능한 현 시대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정이 들고 고향이 될 수 있으니 그들이 체류하는 동안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이웃을 알고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 정착하여 산 사람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길 바란다. 오성호씨는 아무도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혼자 개척해 나갔지만, 누군가 발 벗고 나서 도와주어야 한다면 후배들이 정착할 수 있게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일, 그 역할을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정착하게 된 과정을 알려주면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힘 안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금의 오성호도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활력이 없으면 사고를 치게 되어있다. 한국에서 법을 어겼을 때 외국인의 입장에서 어떤 처벌을 받고 있는지도 알고 있어야 조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통해 법률상담이나 다양한 방면의 안내라인을 가동시켜준다. 정보의 중요성인데, 때로는 정부에서 만든 복지보다 민간에서 만든 복지가 더 유용할 때가 있다. 정부는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것에 손을 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간단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디테일하다.
외국인이라서 힘든 점은?
사실 가장 힘든 것은 편견이다. 좋은 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또 받아들이는 자세가 요구된다.
유독 정왕본동이 외국인이 많은 이유는?
오성호씨는 안산 원곡동에 처음 정착을 했다. 그곳에서 식당을 하면서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 통신업으로 전환하면서 시흥 정왕본동 정왕시장 내, 지금의 핸드폰대리점을 오픈했다.
당시 정왕시장에는 식당이 한,두개 정도에 불과했다. 시장에서의 개척은 매우 힘든 일이다. 봉사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5년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졌고 또 상가도 많아졌다.
서울 대림동이나 수원, 안산은 이미 더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다. 경기권에서 시흥만큼 좋은 입지조건도 없다. 우선 공항이 가깝고 조용하고 정왕과 안산에 공단이 있기 때문도 큰 이유다. 여러나라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충돌 없이 조용하게 살고 싶은 이유도 있다. 정왕본동에 원룸단지가 많은데 오랜기간 동안 사는 사람들이 사실 많지 않다. 정착해 사는 이들 가운데서는 가족을 이루어 살다보니까 돈을 벌어 좀 더 나은 조건의 다른 동으로 넓혀 가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더욱 정왕본동이 지역을 배려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든 것이다.
생활문화의 적응, 그리고 효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러 나가면 공원에서는 노인들이 끼리끼리 또는 홀로 앉아있다. 그들은 쉽게 이웃과 친구 할 수가 없다. 이 또한 사각지대다. 중국에서 몇 십년간 살다 온 노인들의 경우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적응이 빠르니까 괜찮다. 문화지식이 없고 교류가 되지 않은 탓에 대화가 없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한다. 오성호씨는 소통의 기회나 공간이 ‘행사’라고 말한다. 행사를 통해 봉사를 하면서 서로 챙겨줄 수 있고 같이 어울렸을 때 식사라도 맛있게 하면 금새 가까워진다고 한다.
시에서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여 홍보를 통해 지속적으로 외국인들을 지역으로 끌어내는 것이아말로 편견 없이 서로가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군서초등학교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50%정도가 있다. 내국인들처럼 봉사를 하는데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 예로, 군서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동포어르신들에게 ‘3多봉사단’을 만들어주었다. 등교시간인 오전 8시 30분에서 9시까지 교통을 서는데 이는 일자리창출에도 일조했다. 집에 계신 어르신들을 밖으로 나오게 함과 동시에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챙겨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우를 받으려말고 뭘 만들고 나서 받아라’라는 것이다.
시흥사람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배우고 서로 다른 음식을 해 먹으면서 서로 격려하고 다독인다면 더 가까운 사이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다문화인들이나 동포들은 자기네 나라에 가서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홍보하게 된다.
문화교류가 가지고 오는 효과는?
한중동포연합회에서 한국 전체의 외국인들이 친목으로 다져서 나아가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교류를 하고 정보를 전달한다. 한중문화교류행사가 전년도에 안산과 서울에서 있었다. 시흥시와 안산시에서는 해마다 문화행사를 갖는다. 국제행사를 유치하며 얻는 효과는 정보와 친목이다. 그리고 문화로 마음이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야...
명품은 누가 만들어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앞에서 먼저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뒤에서 오는 사람들이 따라간다. 변화가 있어야 사람이 변하고 가족이 변하고 자녀들이 변한다. 남들보다 생각이 앞섰기 때문에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은 놀기 위해 시간이 없는 것이고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이 없다.
여러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누구든 접촉하면 배우게 된다. 부딪혀보지도 않고 무조건 못한다, 모른다, 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도 않으면서 후회하는 것처럼 큰 아쉬움은 없다.
정왕봉동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가면 좋은가?
정왕시장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에 정왕시장을 세계화 시장을 만들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나라들이 유입해 들어올 것이다. 부산의 국제시장처럼 하나의 시장으로 전국 각지, 나아가 세계에서, 대한민국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의 정왕시장으로 들어와 하나의 관광형 시장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시흥시 정왕본동에 오면 뭐든지 체험할 수 있고 예술은 물론이고 문화나 언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에게는 풍부한 자원이 있다. 그래서 세계인이 서로 친구가 되는 공간, 그런 시장을 만들고 싶다. 이미 SNS를 통해 오성호씨는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다.
내국인들에게 한마디.
내국인은 다문화인들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배려하여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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