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정(중국국제결혼상담사, 35살)씨는 눈웃음이 사랑스러운 중국여인이다. 가녀린 목소리는 애교가 가득했고 말에는 여유가 있어보였다. 정왕역 맞은편 건물 중국국제결혼 ‘신데렐라’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정씨의 첫인상이다.
이동정씨는 국제결혼상담사다. 이사로 근무하면서 1년에 30쌍 정도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있는 베테랑이다. 2005년도에 정왕동으로 들어와 살면서 시어머니 주변 분들의 요청으로 소개팅을 주선하면서 시작하게 된 국제결혼사업은 친구와 함께 4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녀도 국제결혼으로 한국남자와 결혼했다.
초혼이었던 동정씨에게는 9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다. 재혼인 남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큰아들은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고 딸은 중국 친정집에 기거하며 북경으로 유학 가있다. 딸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큰아들과 딸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어린 동생을 참 많이 예뻐한다.
시흥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통역사로 일하다 계약이 끝나 쉬면서 하게 된 국제결혼사업은 남편의 전폭적인 외조로 즐겁게 하고 있다. 또한 정왕본동에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외국인자율방범대 순찰과 사무업무, 정왕지구대, 어르신 한방진료, 어르신 미용, 시화병원과 센트럴병원에서 통역, 한중동포연합회에서의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시흥 갯골김장축제에도 참가했다.
시대가 바뀌어 국제결혼의 모습이 많이 바뀐 것도 다문화 결혼의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젊은 신부들은 한국에 와서 정착을 하면 봉사활동을 한다. 지역 행사에 참여하고, 취미생활을 한다.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온 다문화인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역문화에 다가서고 있다. 또한 친목관계를 유지하며 정보를 공유하며 적응하여 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로 나온 다문화인들은 늘 밝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인 2014년도에 국제결혼법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조건 없이 결혼이 이루어졌는데 그래서 파탄된 가정이 많았다. 지금은 남성의 직업이나 재산이 일정부분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연령대는 30대부터 40대가 가장 많다. 한국남자는 나이가 많고 중국아가씨는 나이가 적다. 한국남자는 늦게 결혼하는 시대의 흐름을 갖고 있으면서 초혼이다. 중국의 아가씨는 나이가 어릴 때 결혼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20대 초반을 넘어서면 재혼이다. 그래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것에 개의치 않다.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한국남자와 달리 성숙해 보이는 중국아가씨들이 커플이 되었을 때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 시어머니들은 외국인 며느리를 아기 대하듯 하나하나 가르친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고 살아 온 문화가 다르니 자칫 오해가 되는 일도 발생한다. 그럴 때는 중간역할을 해준다. 전화로 어떤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오면 동정씨는 양측 모두에게 뜻을 전달하여 오해를 풀어준다. 결혼생활의 불행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살면서 불만이 있거나 오해가 쌓이면 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정씨는 단순히 결혼을 성사시키고 마는 타 업체와 달리 꾸준한 관리를 통해 신뢰를 얻고 있다. 20년, 30년을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나 평생을 사는 것이니만큼 각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여자들의 산후조리 문화만 하더라도 한국은 미역국을 먹지만 중국에서는 좁쌀죽과 계란을 먹는다. 그런 생활 속의 사소한 문화충돌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국제결혼이란 것이 결혼을 전제로 소개를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결혼을 하고 그 다음 연애를 하게 된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살다가 성격차이로 이혼하기도 한다.
신부들이 들어오면 6개월이 가장 고비다. 음식이나 환경이 모두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6개월만 잘 견디면 거의 익숙해진다. 정왕본동이 중국인이 많기에 제2의 고향이 될 수 있다.
동정씨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결혼시킨 커플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결혼을 할 때는 성격도 보아야 하는데 얼굴만 보게 되면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남자는 첫 번째 만난 아가씨를 좋아했고 결혼을 했다. 결국은 한국에 와서 며칠 살지 못하고 이혼했다. 당시 아가씨는 22살이었고, 남자는 36살이었다. 남자는 아가씨를 좋아했지만 아가씨는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서로 좋아해야 잘 사는데 남자만 일방적으로 좋아하다보니 지친 것이다. 여자가 무뚝뚝하고 잘 살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니 싸움만 나고 결국은 합의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아가씨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지금의 신부를 만나고서는 잘 살고 있다. 첫 번째 결혼의 실패를 교훈삼아 신중하게 맞이한 두 번째 신부와의 사이에서 백일 된 아기가 있는데, 얼마전에 둘째를 임신했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시어머니도 무척 잘해주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 구미에 살고 있다.
커플을 맺어주고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 살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결혼 후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사무실을 차릴 당시에는 배우면서 하다보니까 어려운 점은 많았지만 이제는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 소문 듣고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비용을 받고 일하고 있지만 성사시킨 커플들에게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를 들으면 좋고 뿌듯하다”라고 말하는 동정씨 특유의 반달 눈웃음이 참 아름답게 보여졌다.
최근에 재미있는 사례가 있었다. 중국아가씨와 한국남자의 영상통화 후 서로 맘에 들어서 남자가 바로 중국으로 갔다. 갯골김장축제에 참가했던 아가씨라며 사진을 보여준다. 남자는 정왕동에 살고 있으며 결혼 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아가씨를 만나고 온 남자는 귀국 후 ‘와이프 고생시키면 안된다’며 전셋집을 얻어서 분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커플은, 멀미가 심해 한국에 들어 올 수 없는 중국아가씨의 어머니를 배려하여 결혼식을 생략하고 대신 프랑스 파리로 여행간다고 한다.
동정씨는 시흥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사람들은 인심이 좋아요”라고 말한다. 시흥은 공항이 가까이 있고, 바다와 자연환경이 좋아 외국인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중국음식점이 많고, 마트에도 중국인이 많으니 다른 나라라는 이질감은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안산 원곡동과 비교하면 원곡동은 불안하며, 여러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고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왕본동은 깨끗하다. 그리고 정왕동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고향 같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하는 동정씨는 이제 시흥, 정왕본동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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