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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청소미화원 지신규씨는 ‘나홀로 쓰레기와의 전쟁’ 中



때로는 소신과 신념이 독이 되어 힘든 상황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한 품 더들여 해낸다면 본인은 고난할지 모르나 누군가에게는 큰 편안함이 된다. 고난한 활동을 알아주는 이 없을 때는 속상하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니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시흥시청 소속 청소행정과 직원 지신규씨 이야기다



맞손동네관리소에 들어서는 그는 말끔한 차림의 잘생긴 중년의 모습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논리적인 설명은 내내 흥미로웠다. 그는 15년여간 있어왔던 본동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해왔다. 때론 유쾌하게 때론 치열하게 또 때론 처절하게. 그 긴 세월 동안의 일들을 쏟아내니 오후에 시작된 인터뷰는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되었다.

 

버려지고 방치된 본동의 쓰레기 문제는 암울한 먹구름으로 짙게 드리워져있다. 그래도 지신규씨의 소신은 매일 한시간 더 관리구역에 머물러있다. 그리고 홀로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른다.



어스름한 정왕역 주변 화단에는 고장난 바이올린이 버려져 있었다. 나무로 깍은 빨래판이 널부러져 있고 찌든 담배꽁초 가득 담긴 음료수병이 낮게 서 있다. 나름 잘 버리려고 꽁꽁 싸맨 투명한 봉투에는 이것저것 재활용과 소각용 쓰레기들이 뒤섞여 서로를 지탱하고 악취 폴폴 나는 음식물쓰레기는 도로를 물들인다.

 

깊어가는 가을만큼 짙은 단풍들이 나무들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데 그 아래로 수북이 쌓인 낙엽들은 환경미화원들의 몫이 되고, 상가마다 주택마다 눈쌀 찌푸려지는 쓰레기들은 무심히 내던지는 이들로 도로는 몸살을 앓는다.


지신규씨는 그런 행위들을 무의식이라고 표현했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서 포장을 뜯고 싸여있는 은박을 버리는 그 모습은 무의식 속 행위였다. 아무리 강조해도 개선되지 않는건 종량제봉투를 사야 하는 비용이 아까워서이고 분리수거의 귀찮음으로 단속을 피하는 방법을 서로 머리 맞대고 공유하기 때문이기도하다.


의식의 변화. 그는 의식의 변화가 답이라고 강조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의식이 뿌리 박히지 않는 한 개선은 되지 않거나 또는 매우 강력하고 치열한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신규씨가 관리하는 구역은 정왕역 주변이다. 본동에 들어올 때 수북히 쌓인 낙엽의 방치를 염려했고 화단에서 흘러내려오는 토사를 걱정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정신없을 정도로 쌓여있는 온갖 쓰레기들을 처리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해결해야겠는데 시간이 없으니 정해진 시간 외에 토사를 하나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만나며 계도를 시도했다. 미친짓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정왕역 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을 집중관리하기로 마음 먹고 계도와 함께 정리를 해나갔다. 그러기를 10개월. 오랜 시간 끝에 뭔가가 보였다.

 

적어도 바닥에 수북이 쌓이는 쓰레기를 눈에 보일 정도로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상가나 주민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주변환경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주변 상가 부동산 및 상인들에 의해 인정되었다.

    

고마움에 커피 한잔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다는 지신규씨(하중동, 55)는 충북 괴산이 고향이며, 은행동 웃터골에 살다 하중동으로 이사를 와 청소미화원으로 일한지 15년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진공차를 타기도 하고, 무단투기 단속도 했었는데, 지금은 정왕1, 2, 본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처음 본동으로 들어올 때는 건물이 없고 나대지가 많았다. 나대지는 쓰레기를 버리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매일매일 지나다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건물주가 방치하고 쌓아두면 그것은 경관은 물론, 악취가 심하여 민원이 발생한다. 그러면 치울 수밖에 없다. 1년에 두어번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때는 전체 인원이 투입된다. 상식을 초월하는 일들이 쓰레기무단투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쓰레기를 파봉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나타난다고 한다. 자세히 서술할 수 없으나 과연 그러하다. ‘쓰레기그 사람의 삶자체다.

    


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이 집단을 이루는 곳, 악취 가득한 본동에 표가 나오지 않으니 선거의 영향권에서도 외면당하는 곳이 정왕본동이다.

 

심각했던 쓰레기장터 나대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이 들어서고 당시의 거주민들과 지금의 거주민들이 상당 부분 바뀌었지만 종량제봉투의 사용과 미사용으로 말미암은 쓰레기와의 전쟁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왕동만의 특징 중에 하나가 명함인데 불법 전단지와 함께 뿌려지는 명함은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많았다. 하루종일 쓸어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10년 전 쯤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명함을 가지고 딱지치기를 했다. 그럴 정도로 심했다. 그들은 매일 뿌려대고 미화원들은 매일 수거한다. 그들에게 양심은 기대할 수 없으며 꽤 노골적이다. 그것은 이득을 취하기 위한 행위이므로 용서의 가치가 없다. 그러나 단속은 쉽지 않다. 버리면 쓸고 또 버리면 쓸고 하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이 될 뿐이다.


그나마 파지 값이 상승할 때는 파지를 줍는 노인들에 의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파지 값이 곤두박질 칠 때면 엉망이 된 상태로 작업은 배가 된다.

 

주민들의 재활용 분리가 잘 되어야 수거가 용이하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내 집앞의 쓰레기 처리를 잘 해야 깨끗한 거리를 기대할 수 있다. 누가 버리니까 나도...가 아니라 나 하나만이라도 기초질서를 지켜야 거리환경이나 골목환경이 쾌적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행정기관에서는 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현장의 소리도 듣고 현장에서 얻어진 제안과 해결책으로 어느 것이 좋은지 도입, 시도를 해본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환경을 기대할 수 있지않을까,



계도 10개월만의 효과. 밥을 먹다가도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음식물이 섞인 봉투를 투기하는 이를 보면 사진을 찍고 다가가 그러면 안된다고 설명한다. 과정에서 멱살도 잡혀보고 욕을 먹고 함부로 하는 이들도 많이 접해 보았다. 쉬운 길을 마다하고 험한 길을 선택한 지신규씨는 단 한사람이라도, 단 한 상가라도 계도가 된다면 그만큼의 쓰레기양이나 수거에서 자리가 잡힐거라 생각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상가 앞, 유난히 쓰레기가 심각한 곳에 파란색 종량제봉투를 매달아놓았다. 유일하게 그곳에만 놓은 것은 달리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효과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좋았다. 아직 지나는 이들에 의해 바닥에 팽개쳐지는 쓰레기들은 옆 상가에서 끊임없이 계도를 한다. 의식의 개선이란 참 길고도 험한 여정이다.

    



지신규씨는 잠깐 보여줄 곳이 있다며 손을 잡아끈다. 주차된 차량 아래의 맨홀이었다.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토사물과 기타 이물질들로 3개층을 이룬 모습이었다. 이상기후에 의한 집중호우로 피해가 속출하는 요즘의 강수량을 감당하지 못하여 흘러가지 못하고 역류한다면 그 끔찍함은 모두 주민의 불편함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행정의 잘못이 아닌 주민들이 만든 주민들의 예고된 재앙이다. 의식구조가 없음은 이렇듯 한발 걸으면 발 아래에서 바로 나타난다. 불법주,정차 차량만 없으면 더욱 깨끗하게 처리했을텐데 아직 남아있는 토사가 있음에 아쉬워한다.

 

그래서 의식구조 변화를 외치고 종량제봉투와 재활용 분리수거의 습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0개월만의 변화. 되었지않은가! 시화병원 앞에서의 변화된 결과에 이어 두번째 성과이니 주장할만도 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담배를 버리는 유형을 보면 외국인인지 내국인인지 안다는 것이다. 외국인은 불도 끄지 않고 휙 버린다. 내국인은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벼끈다. 쓰레기를 버릴 때 외국인은 대낮에도 그냥 버린다. 그나마 어두운 곳 깊이 박아 놓으면 그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편이다. 어두운 곳, 땅에 묻는다는 것은 그것이 잘못인 줄은 아는 것이니까. 그러나 박혀있는 쓰레기들을 파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제는 외국인, 내국인의 경계가 사라져버렸다. 같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학력수준,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쓰레기가 점점 쌓여진다는 것을 현장에서 보았다. 비용때문에 분리의 애매함과 음식물 양의 모호함으로 투기되는 것을 보았다. 알지만 하지 않는것. 나쁜 것이지만 하고 마는 나쁜 짓을 그는 나름의 계도의 효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식 수준을 바꾸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걸려 맨손으로 거둬내는 모습에서 이 사람이야말로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정왕본동의 귀한 보석같은 존재로 주민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지선생님이 오신 후로 많이 변했죠. 정왕역 주변에 이렇게 깨끗했던적 없어요, 처음이예요.”

상가 사람들의 반응이다. 누구 한사람의 사명감과 고난함이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할 때 그것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되며 그것이 바람직하다면 도입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타인의 불편함 따위는 아랑곳 않고 나만 깨끗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은 현란한 네온싸인 아래서 쓰레기와 함께 오늘도 거리를 뒹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