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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공부와 함께 인생2막-조경수씨의 뜨거운 눈물

 

[(우)조경수씨]


인터뷰를 하면서 두번째로 눈물짓게 만든 인터뷰이다. 한맺힌 공부에의 갈망이 육십 중반에 이르러서 이루어지며, 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조경수어르신. 어르신이라 칭하기에는 젊어보이는 얼굴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휴지로 찍어내고 그러면서 또 웃음짓는 것은 평생의 한이 되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 행복해서다. ‘달맞이학교는 조경수씨에게 있어 인생2막을 열어준 고마운 학교다.

 

조경수씨는 20188, 중학과정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현재 고등과정을 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대학이다. 대학을 다니며 대학원까지도 노리고 있다. 대단한 열정이다.

 

정왕동 이마트 뒤 로데오거리에 위치해있는 조경수씨의 일터인 미용실은 48년 미용인생의 공간이며 또한 틈틈이 공부를 하는 도서관이기도 하다. 18살부터 시작한 미용과 결혼으로 그리고 네 아이의 엄마로 사는 동안 가슴에만 품어두었던 공부에 대한 꿈은 눈물로 시작하여 점점 기쁨과 감사와 환희의 눈물로 바뀌어가고 있다.

 

원래 선생님이 꿈이었거든요.” 그러나 한창 공부할 나이인 18살의 어린 조경수는 미용사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미용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오너가 되면 공부할 시간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내 시간을 빼서 공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미용밖에 없더라고요.” 또 학력이 없어도 자본금이 없어도 내 사업체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미용이 유일했다. 다행히 머리 만지고 화장하는 손끝이 야무져 배우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미용을 배우고 일을 하면서 뒤로 월급도 더 받았다. 뭐든 열심히 하고 또 잘해서다. 조경수씨가 가진 미용기술은 지금의 기술과 다른 무엇이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화장이나 미용, 피부관리까지 밑에서부터 모든 것을 차근차근 다 배워야했던 때였고, 손끝으로 하는 기술은 지금 시대보다 더 앞선다고 자부한다. 6년 걸려 일류미용사 대열에 낀 그녀는 머리를 만지는 기술 뿐 아니라 손님을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먹고 살기 위해, 미용으로 최고의 위치에 서기 위해 놓친 공부할 기회는 결혼으로 한번 더 좌절됐다. 공부에 대한 꿈은 버리지않은 채 딸만 내리 넷을 낳아 키우며 하염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강원도 골짜기에서 6남매의 둘째로 살며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중단해야 했던 것은 가슴 부여잡고 우는 세월을 만들어냈고, 취업을 하기 위한 이력서 작성에도 많은 제재를 받았다. 강원도는 수해가 나면 복구가 되지않을 정도로 집을 휩쓸어 버린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됐다.

 

초등학교때는 공부를 잘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 선배들이 1등을 하면 상으로 두꺼운 사전을 받았다. 그 사전이 그렇게 갖고 싶었다. 6년 우등을 해서 꼭 타야지하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즈음 수해를 입어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때는 중학교도 시험을 보고 가던 시대였기에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던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은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만 집중하여 가르쳤다.


왕따 아닌 왕따를 일찍 경험하며 뼈저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이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어린 마음에 6년 우등해서 사전을 꼭 타고 싶었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다. 친구들을 불러 진도를 물어보고 선생님 눈치를 봐가며 몰래 공부하며 나름 고군분투했지만, 결국은 전과는 받지 못했고, 그래도 2등은 했다.


중학교 진학은 끝내 하지 못하고 먼산을 바라보았다. 시골에 그냥 있으면 그냥저냥 살다 시집이나 가고 말텐데 그러긴 싫었다. 인생을 설계해야했다. 공부를 다시 할 생각에 6학년 책을 모두 책보에 쌌다.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집에 놀러가서 농사를 도와드리는데 외삼촌이 불러도 듣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가는 귀가 먹은 것이다. 공부에 신경 쓰느라 가는 귀 먹은 것도 몰랐던거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생각을 했죠.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외삼촌이 이사하는 서울로 쫓아올라갔어요. 그리고 가까운 친척 중에 잘 사는 집이 있었는데 그 곳에 계시는 할머니가 학교를 보내준다고해서 그 집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할머니가 중풍에 걸렸다.


중풍에 좋은 음식으로만 식단을 짜서 3년을 뒷바라지했다. 그런데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병이 나아야 학교에 갈 수 있는데 그래서 열심히 간호를 하고 밥을 해드렸는데 돌아가시는 바람에 공부의 기회가 사라져버렸다. 그때가 15살 무렵이었다. “할머니의 유언이끝까지 나 뒷바라지 하고 가르쳐라였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끝이죠, .” 어떻게보면 그런 상황들이 공부에 더 애착을 갖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하고 말거야!’라는 오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학생 선생님이 준 손편지]


아이들이 모두 성장한 어느날, 공부의 꿈을 내려놓은적이 한번 있었다. 둘째가 서해고등학교 다닐 때 전교1등으로 졸업을 했다. 1201로 한양대를 수시로 입학했는데, 원서를 가지러 가야했다. 원서를 가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울컥거리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여기가 대학교구나. 영영 못들어갈 줄 알았는데 대학이란 곳을 밟아봤으니 그것으로 됐다하는 생각이 들며 평생에 걸쳐 열망한 공부에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대학 생활을 위해서만 집중하자 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 다시 공부에의 꿈을 잡은 계기가 있었다. 큰 아이가 중매를 보게 되었는데, 단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 남자가 선을 보지 않겠다고 나온 것이다. 아이가 충격을 받을까봐 말은 하지못했다. 여상을 나왔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하라고 했다. 대학을 들어가니 시야가 넓어짐이 보였다. 그리고 생각하는게 달라짐이 느껴졌다. 대학생활을 시작한 큰 아이를 보며 ,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대학 1년생인 늦둥이 막내가 정왕1동 주민센터 앞에 걸려있는 플랜카드를 보고 추천해준 것이 야학이었다.

 

바로 전화를 했다. “박옥이사무국장이 지금까지 저를 믿고 지지해주고 있어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감사하죠. 공부하면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저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됐어요.” 20175, 그렇게 조경수씨의 두번 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 용기를 내어 배움의 길로 들어서고자 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야학이 사라질 위기에 섰다. 당시 주영경대표를 비롯해서 민간에서 많은 이들이 야학에 나온 만학도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는데 야학 프로그램이 폐지가 된 것이다. 늦은 나이에 배우는 공부의 어려움과 운영의 어려움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이고 또 공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이대로 잃을 수는 없었다.

 

흐지부지 하려면 시작도 하지말아야하는데... 공부를 하다보면 포기해야 할 것도 생길텐데... 하는 마음 속에서의 갈등으로 3일을 앓아누우며 다짐한 공부였기에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주영경대표에게 무작정 매달렸다. 공부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봐달라고. 달맞이학교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20184, ‘달맞이학교는 사단법인 더불어함께사무실로 옮겨져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달맞이학교에 큰 변화가 왔다. 정왕고등학교 정종윤교장선생이 달맞이학교 교장을 맡아주면서 전폭적 지원을 해주었다. 과목별 현직 교사가 꾸려졌고, 교사의 꿈을 갖고 있는 정왕고 학생들이 달맞이학교의 일원이 되었다. 달맞이학교 학생은 현재 3명이다.

    

[조경수씨가 직접 만든 책상]


과목별로 오시는 선생님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주세요.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되나 할 정도로... 학생 수도 적은데 말이예요. 하지만 저는 너무 행복해요. 정말 잘 가르쳐주시고 진심으로 가르쳐주시니 그저 감사하죠.”

 

달맞이 학교에는 7과목, 14명의 선생님과 정왕고의 우수한 학생선생님들이 보조교사로 일대일 공부를 봐주고 있다. 교사가 꿈인 20명의 학생들이 자원하여 동참한 것이다. “훌륭하고 아까운 인력이 우리 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주시고 가르침을 주시는데 열심히 해야죠. 이렇게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 없어요. 우리 세명만 배우기에는 인력이 너무 아까워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배웠으면 좋겠어요.”

 

조경수씨와 함께 배우는 이들은 2019년도 4월에 고등시험을 볼 예정이다. 최종목표는 물론 대학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서비스직에 근무하면서 연계된 직업을 선택할지 아니면 미용일을 심심풀이로 유지하면서 대학원까지 가볼까도 고민 중에 있지만 나이가 더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부동산학과에 관심이 좀 더 가고 있다.

 

제가 미용일만 하다보니 잘하는 게 없어요. 가장 잘하는게 공부인거 같아요.” 공부를 즐기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눈물과 행복해하는 미소를 인터뷰 내내 교차로 보여준다. 함께 울고 웃으며 그렇게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한글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글이예요. 만약 제가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훌륭한 글을 몰랐을거예요.” 배움을 통해서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아름답게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않게 말하는 법을 알게 되고, 표현의 방법이 달라졌다고 한다.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나이 먹어 무슨 배움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등따시고 배만 부르면 그것이 과연 성공한 인생일까 싶다. 배만 부르는게 아니라 지식도 살찌워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대학생활의 꿈은 열망으로 박혀있다. “나이만 먹었다고 놀고 먹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아요.” 뭔가를 할 때 높아지는 자존감을 공부로 충족시키고 싶은 것이다.

 

모르는걸 알 때면 첫사랑의 설레임처럼 두근거림을 느낀다는 조경수씨. 지식을 쌓을수록 그 드넓은 세상에 빠져들며 황홀감에 어쩔줄을 몰라한다.

 

그녀는 미용실에서 일하는 틈틈이 공부를 하기 위해 직접 책상을 짰다. 공부를 하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물어볼 곳이 없어 힘들기도 하지만 유투브 영상을 뒤져가며 스스로 공부를 해 나간다.

 

세상에 나 하나라는 절대적인 존재는 없다. 겸손하고 깊은 시선을 간직한 향기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도 놀란다.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다고. 그리고 대화 속에서, 얻어낸 지식을 이야기하면 엄마의 깊은 지식에 아이들도 존경해한다. 이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대화의 질도 달라짐을 느낀다. 공부하는 재미가 일상에서 발휘되는 순간들이다.

 

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해요."

 

사실 늦깍이 공부라는건 대단한 용기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감정의 유지도 필요하고 함께 독려하는 이들의 힘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피치 못할 환경에 의해서, 우리네 부모님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격동의 시절 속에서 살아왔다. 그들의 배움에 대한 한맺힘을 지금이라도 풀어내어 배움 속으로 모두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번의 용기와 힘들어도 중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만 있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야학에 동참하는 훌륭한 현직 교사들과 또 우수한 학생들의 일대일 교육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으니.“배우면 잊어버리지요. 머리가 굳었으니. 지금까지 그럭저럭 살았는데 그냥 살다말지 그렇게 생각하지말고, 또 부끄럽다 생각하지말고 용기를 내서 무조건 나와 배우라고 하고 싶어요.” 모른다고, 배운것을 잊어버렸다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는 말이다. “지금 배워서 내일 까먹어도 3개월 후에 다시 생각나요. 배운건 어디 안가거든요.” 훌륭한 인력들의 든든함을 배움에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조경수씨는 공부를 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또 진정으로 성숙해진 자신, 진정한 어른으로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전한다.

 

그녀가 흘린 눈물은 배우지못한 서러움의 눈물이 아닌 배워서 행복한 기쁨의 눈물로 바뀌어갈 것이다. 그리고 빼곡히 체크해 놓은 공부의 흔적으로 곧 대학생 조경수를 보게 될 날을 상상해본다.


*이 사업은 삼성꿈장학재단 지원으로 ()더불어함께에서 진행하는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지역자원조사차원에서 제작되는 인물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