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시흥아카데미 브랜드전문가학교에서 시흥바라지투어를 한 적이 있었다. 두 개 팀으로 나뉘어 버스에 오를 때 처음 박종남문화관광해설사를 보았다. 귀에 쏙 들어오는 해설에 창 밖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거두고 그에게 집중했다. ‘공부를 많이 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뢰가 갈만큼 인상깊은 해설이었고, 해설사로서의 능력치에 최고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YOU’ 인터뷰로 1년 3개월여만에 영모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겨울 초입이었지만 영모재 대청마루 가득 퍼진 눈부신 햇살이 따스했다. 대화나누듯 진행 된 인터뷰는 점점 달아오르는 구들장의 열기만큼 깊어갔다. 박종남씨는 시흥문화관광해설사이자 시흥문화유산해설사이다. 무슨 차이일까?
문화관광해설사는 지역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해당 장소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을 제공한다. 기존에 있던 문화관광해설사나 시흥문화원에서 문화유산해설사 과정을 수료 또는 생금집을 관리하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 발굴한 것이 문화유산해설사다. 그렇다고 하는 일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다만, 관리주체가 다를 뿐이다. 문화예술과에서는 영모재와 생금집을 전담 메뉴로 하고, 문화유적 해설에서 문화관광해설의 일정이 여의치 않으면 융통성을 발휘해주는 정도의 유연함을 공유하고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현재(2018년 기준) 12명이고, 문화유산해설사는 11명이다. 중복된 해설사를 포함하면 교집합 8명이다.
동절기와 하절기에 따라 돌아가는 활동은 문화탐방이라고 하는 창의체험학교 일정과 갑자기 들어오는 일정이 포함되어 개인적인 일정의 자유 여건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매일이 아니고 해설사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일정 조율이 가능하므로 융통성은 있다.
배치근무의 경우 갯골생태공원이나 오이도선사유적공원 같은 곳은 주로 단체에서 경험있는 이들의 요청이 많은데 제도를 잘 알고 모르고의 차이에서 해설사들의 필요를 좌우한다. 갯골생태공원의 경우 2년 동절기 빼고 2017년 3월부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해설사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다. 갯골은 365일 매일 다른 얼굴, 다른 바람의 냄새가 난다. 시흥의 관광지중 매일 가도 질리지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 갯골생태공원이다.
해설할 때 편한 대상은 성인들로 구성된 공부모임이다. 예를들면 시흥아카데미나 학습동아리처럼 답사나 탐방으로 오는 이들이 공부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있고 알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가 크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학생들 중에서는 유치원생이다. 7세반 유치원생들은 즉각 반응이다. 수업하기 가장 좋은 연령층이라면 초등학교 5.6학년과 고등학생이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미안한걸 알기에 적어도 앞에서 얘기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인식이 있다. 초등은 담임교사의 통제로 가능하다. 중학생들은.... 힘들다. 모처럼 밖으로 나오니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욕구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 “우리가 제일 무서워하는게 중학생이에요.” 허허거리고 웃지만 웃음 뒤의 한숨은 길고 길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학교 밖에서 하루 놀다 가는 정도의 학습시간으로 그친다. 그래서 동상이몽이다. 공부를 시켜야하는 자와 재미있게 놀다 가려는 자와의 밀당. 그래도 그냥 재미있게 놀면서 하나라도 기억 속에 담아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체험이 아닌 이상 말로 풀어내는 것들은 사실상 재미 있을 수 없다. 사진자료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기 때문에 듣는 이들이 어려워하거나 재미없어하면 서로가 힘들어진다. 그것이 해설사들의 한계점이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학습하러 오는 학생들에게만은 직접 뭔가를 하게 해주어야 지루해하지 않는데 연관된 체험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늘 숙제다. 단 하나라도 기억하고 가는 것이 목표인데 체험의 제약이 너무 많아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실현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영모재는 민속놀이나 만들기 체험이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관광지나 유적지는 많지 않다. 자연에서 하는 간단한 놀이 활용만 가능할 뿐이다. 아이들은 몸쓰는 놀이를 좋아한다. 생태놀이나 문화유적지에도 적용가능한 놀이나 체험들을 테마별로 구현해낸다면 좋을 것 같은데 번번이 예산에서 막힌다. 좋은 아이디어들은 사장되고 10년 넘는 노하우는 고작 값싼 부직포로 만들어 낸 원시인 복장 정도다.
박종남씨는 언제부터 시흥관광해설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2005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흥문화원에서 문화유산해설사 양성초급과정 1년, 중급과정 1년, 고급과정 1년을 거쳐-3,4개월 단위다-스터디를 계속 하다가 2009년도에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교육 인증을 받아 문화관광해설사의 시초를 생산해 내었고, 문화유산해설사는 2005년도부터, 2004년에 먼저 시작한 선생님과 함께 스터디를 해 나갔다.
또 그 이전에는 무엇을 했을까? “제가 애가 셋이예요. 사회활동을 해야지 하는 시점에 셋째를 임신해서 2002년도부터 다시 컴퓨터 배우고, 2003년도에 뷰티플시흥 시민기자로 활동했지요.” 그리고 다음 해까지 생태공부를 병행했다. 여기저기에서 생태안내자양성과정, 생태강사양성과정등이 있어 교육을 받고 마침 시흥문화원에서 역사관련 프로그램이 있어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한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어릴적 고전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흥미를 발견했고, 길을 다니며 알아내는 과정이 좋아 알아 낸 것들을 블로그에 옮기는 작업도 하였다. 한때는 시흥의 김정호가 되고 싶었던 꿈으로, 시흥에 있는 모든 산, 모든 고개, 모든 마을을 안 가본데 없이 다니기도 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길은 다 다녔는데 아마도 저보다 더 많이 마을을 다녀본 사람은 없을거예요.”한다. 지명유래집에 나오는 모든 포인트마다 다니며, 사라졌지만 그 장소가 있는 곳, 누군가 알고 있는 것은 찾아가 기록으로 남겼다
“어쨌든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힘에 부쳐도 하는 거지요.” 숲 해설사 자격증까지 갖춘 그는 문화해설사의 일정등으로 병행 할 수가 없어 아쉽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봉사직이라는 규정이 앞에 붙어있어서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만큼 성취감이나 자기 만족도가 높아야 하는데 때론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고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사람인지라 마냥 밝은 날만 기대할 수는 없지 않나.
지금의 선택이 좋은 이유는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고 박종남씨는 말한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과 쌓은 세월이 준 친밀도는 열악한 환경에 고마운 도움이 되고 있다. 수업 과정에서의 공유는 공감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어 그것만으로도 보람이 느껴진다. 그 세월만 10년이다. 10년 세월을 흘러 환경 여건의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연륜들이 있으니 해설사로서의 경험치로는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세월로 다져온 상황 대처 능력은 여유로움으로 탑재되어 있다.
시흥은 자연환경 자체가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남편이 그러데요. 시흥 떠나면 죽을 사람처럼 왜 시흥에 목숨을 걸고 있냐고...” 다녔던 걸음만큼 애정의 깊이가 더해지는 시흥, 그래서 좋은 시흥은 시골의 정서와 산과 바다를 볼 수 있고 갈대울음소리 들으며 갯골을 걸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이 마음을 시흥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어요.” 마을단위로 애향심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보장된다면 유아기를 거쳐 청소년기, 성인에 이르기까지 공동체를 만들어 소통의 창구와 연결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성인이 된 이들에게 마을 공동체를 가지고 뭐 좀 해보자 하면 뭐가 뭔지도 모를뿐더러 합치기가 쉽지 않다. 말인즉, 토박이가 가지는 마을에 대한 애정과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과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제 시흥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아이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속 뜻일게다. 적어도 시흥을 떠나지않는다는 전제하에.
정왕본동은 그래서 가능성을 찾아도 좋을만한 동네다. 군자염전 관련 책을 만들 때 오동마을부터 시작해서 답사를 다녔고, 봉우재와 높은 우물등을 다녔다. 마을이었던 곳은 봉우재만이 남아있고 군서초 뒤에서 생금집으로 이어지는 라인과 예전의 군서초가 어디에 있었고 등교할 때 가장 많이 다니던 고갯길 등등의 스토리로 다닌다면 마을투어에 좀 더 재미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염전이야기는 당연히 빠질 수 없는 소재다. 정왕역이 군자역이었으니 당시 일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토박이로 남아있을 것이다.
“전에 정왕본동에서 자연마을 이름찾기를 한적이 있었어요. 희망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였는데, 어드바이스 차원에서 제가 가서 다솜마을을 만들고 또 무슨 마을을 만들자하는 회의에 참석했었지요. 그런데 동네를 알아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시흥에 대해서도 좀 알아야 애정이 생기는거잖아요. 마을의 역사는 필수 베이스예요. 그냥 마을알기 정도로는 마을을 이해하거나 애정이 생기지는 않아요.” 오랜 시간 동안 마을을 다니며 얻어 낸 박종남씨의 마을이해도는 연륜을 떠나 속속들이 깊은 애정으로 뭉쳐있음이 보여진다. 마을을 모르면 시흥을 말할 수 없고 시흥을 모르면 마을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박종남씨는 마을로 나간다. 그리고 마을을 품고 있는 시흥을 만나러 간다.
*이 사업은 삼성꿈장학재단 지원으로 (사)더불어함께에서 진행하는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지역자원조사차원에서 제작되는 인물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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