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도에 시흥에 왔으니 꽤나 오래 산 셈이다. 토박이는 아니어도 텃세 정도는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시화공단 따라 정착하게 되면서 나름 동네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을활동가다!”
16년간 다니던 회사는 이제 먼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20대 청춘은 40대의 불혹이 되었다. 세월이 흐른만큼 먹어버린 나이는 마을에 녹아들었다.
서울에서 처음 내려올 때의 공단은 허허벌판이었다. 거주지는 아주아파트 뿐이었고, 이주민단지라 불리우는 곳에는 집이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안산 와동에 사택을 지정해주었다. 아가씨에게 당시의 시흥은 무서움을 탈만한 곳이었던 것 같다. 벌판이던 정왕동은 점점 아파트로 채워져갔고 채워져가는 만큼 머무는 시간도 많아졌다.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시흥으로 오게 되고 시흥에 짐을 꾸리니 떠나지 않게 되었다. 시흥은 그런 곳인가보다.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으나 이내 정착하게 되는. 정이 들어서인가보다. 그러고보면 정이란 건 참 무서운 존재다. 또 한 이유... 아이가 태어난 고향이니 더욱 머물게 되는 것 같다.
정왕본동, 정왕1동은 한 동네같다. 행정구역으로 분리시켰으나 하나로 묶게 된다. 아이도 군서초를 다니고 있다. 본동 주소에서 한걸음 앞에 나서면 나오는 정왕1동에 작은 슈퍼를 하고 있다. 친정엄마가 주로 가게를 보고 있다. “나는 바빠서...”
정왕동은 분명 살만한 동네인데 자꾸 열악한 동네라고 한다. 겉으로만 보지말고 안으로 들어와 더 깊숙한 시선으로 보라고 하고 싶다. 물리적인 것은 예산이 투입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을 안에 머물러 산다는 것은 이웃간의 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왕동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을의 관심 & 성장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마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2019년 마을활동가 2기 교육을 받았다. 적성에 잘 맞았다. 교육을 받으면서 시야를 넓히니 마을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먼 거리에서 보던 정도와 많이 달랐다.
교육 내용은 다섯가지였다. 본동생각 소식지, 버스킹, 마을공동체, 공정여행, 마을생태등이다. 교육을 받고 나서 바로 나가게 된 것이 ‘마을생태’ 관련한 프로그램이었다. 먼저 활동하고 있는 마을활동가들을 따라다니면서 참관수업을 하고 공정여행에도 동행했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니 익숙한 얼굴들이 되고 그러다보니 수업이 한결 편해졌다. 비록 지금은 보조활동가로 있지만 ‘내가 원하던 것’이어서 늘 즐겁다.
본동여행과 버스킹은 마을활동가 주도 하에 지난해 5월부터 진행했다. 신청을 받아 하는 것이기에 아마추어도 있고 프로도 있다. 정왕역 주변에서 하는 버스킹은 오며가며 주민들의 시선이 머문다. 연주를 하면 그 자리가 곧 무대다. 지나던 길 멈추고 서서 공연을 보면 그 자리가 곧 객석이다. 이것이 버스킹의 매력이다. 날 것 그대로의 연주는 기계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음악적 자극을 준다. 사람들은 뭐지? 하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지나간다. 그러나 차츰 호응을 많이 해준다.
마을활동의 중심에 서서..
주현숙씨는 소속이 많다. 정왕본동 2기 마을활동가, 직업은 슈퍼아줌마, 군서초학부모회 4학년 부대표, 청소년연맹 컵스카우트 후원회장. 그래서 눈에 많이 띄는가보다.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서 중심 역할을 하기에 신뢰도가 높다.
본동에서 추진하는 마을활동은 연결되는 고리가 많다. 맡고 있는 직함들도 마을활동에서 무관하지않다. 들어가면 갈수록 연결되는 고리들을 따라 가는 것도 재미있다. 정왕본동 소식지는 경기꿈의학교 거점센터 아시아스쿨에서 원고를 주면 본동생각 편집장이 처리하고, (사)더불어함께는 공정여행의 한 꼭지로 들어간다. 마을활동기록 및 교육 그리고 영상 콘텐츠를 다루는 ‘위퍼’는 글을 배우기 위해 들어갔다. 글도 영상도 함께 배울 수 있으니 더 좋았다. 2년 전에는 정왕역 주변 나무들에게 ‘손뜨개 나무입히기’를 했다. 그렇게 알음알음 하게 된 것이 지금의 마을활동에 발판이 되었다.
“나 스스로 컸다는 느낌이 든다. 역량이 강화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말 많은 교육을 받았다.” 주현숙씨는 인터뷰 하는 날도 자격증 시험을 본다고 했다. 학교에서 후원하는 동화구연인데 3급이다. 학부모 활동의 일환이지만 교육을 통한 성장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당연히 달라졌다. 그 전에는 그냥 ‘동네아줌마’였다. 먹고 살기에만 바빴던 일상이었다. 마을교육을 받으니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의 폭도 깊어졌다. 이제는 마을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성장했다. 우리 아이들이 자랄 마을이니 아이들에게 이로운 것들 위주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곧 실행으로 옮겨진다. 추진력과 실행력까지 성장했다. “내가 제안한 건 본동아카데미 교육의 지속성이다.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게 하는 이유는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거라는 생각에서다.” 지금은 1기와 2기 활동가들 10여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마을 어딘가에 있는 3기를 만나고 싶다.
주현숙씨는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으로 교육을 택했다. 지식을 쌓는 자기 성장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처음 마을로 나왔을 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이내 ‘할 수 있다!’ 로 바뀌었다. 2020년에는 보다 발전 된 모습으로 마을로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잘 키우면 아이들 앞에 더 당당하게 설 수 있기에 벌써부터 설레인다.
주현숙씨는 교육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인터뷰 내내 느꼈다. 사랑스러운 욕심이고 또 대견한 욕심이다. 바람직하고 소중한 욕심이다. 그렇게 본동의 보물은 빛이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마을활동이란 것이 볼 것도 할 일도 많다. 봉사이기에 더욱 바쁘다. 원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도 엄마의 활동을 자랑스러워하고 남편도 보기 좋았던지 응원해준다. 늘 밝고 긍정적인 친정엄마는 가게를 잘 봐주신다. 실제로 가게를 가보니 매우 친절한 어머니가 카운터를 보고 계셨다. 말을 거니 웃음지으며 답해주신다.
주현숙씨의 바람 하나는, 떠나지않고 정 붙여 사는 동네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적응해서 살 수 있는 동네이기를 바란다. 그 동네가 푸근하고 따뜻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사람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 아이를 마을에서 잘 키우면 이사를 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가 원하면 이사를 가지 않는 것이 부모이지 않느냐면서. 아이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친구들과 계속 만나게 해주면 어른들보다 더 깊은 정이 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시흥에는 교육이 많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내가 먼저 교육받고 커야 우리 애도 혜택 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 교육을 많이 받으러 다녔다. 그것이 마을로 연결된 것이다.” 어쩌면 이런 부모교육이 아이와의 동반 성장으로도 묶여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더 큰 성장을 그린다. 정왕본동을 시작으로 정왕동 전체가 같이 발전할 수 있는 동네로 만드는 것이다. 주현숙씨는 오늘도 정왕동을 누비며 분주한 발걸음을 잰다.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사)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는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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