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선어린이집 원장은, 23년간 시흥에서 살았다. 대야, 신천, 정왕.. 시흥을 가로지르며 이쪽 저쪽 영역표시를 하며 생활권을 나누어 살았다.
최미선원장의 23년
중학교 1학년 작은 소녀 최미선은 일찍이 서울로 유학했다. 결혼하면서 서울 아닌 곳으로 안착한 곳이 안산이다. 큰 아이 5살 무렵, 시화지구가 개발되면서 분양을 받아 이주했다. 시화는 교통이 좋았다. 사통팔달이었다. 살기에 좋았다. 집이 생기고 공원이 조성됐다. 그러나 당시 시화이마트 인근에 상가와 모텔이 들어서있어 주거지역으로 부적합해 보였다. 바람이 불면 공단에서 넘어 오는 악취로 생활불편이 심각했다. 아파트 집성촌도 아니었고 시화호도 썩어있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시화에서 빠져나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사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냥 머물렀다. 내 자식을 뱀의 머리로 만들지 못할 바에는 용의 꼬리라도 만들자하는 생각으로 있었다.
시화에는 당초 어떤 계획을 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분양을 받은 후 일을 한번 해볼까 한 것이 민간 가정어린이집 운영이었다. 큰아이 5살, 작은아이 3살 무렵이었다. 10년이란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후 시립으로 들어갔다. 2006년도 였던걸로 기억한다. 1년을 준비해서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요구조건이 분명했다. 원장의 경력, 나이 40세이상, 전문가적 자질, 재산 커트라인 충족등이 조건이었다. 그렇게 12년간을 헌신을 다해 일했다.
아픈 대야시립어린이집, 힘든 민간어린이집
국·공립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국·공립 원장님하면 어느 정도 인지도도 괜찮았다. 프라이드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많아져서 그저 그렇게 변해버렸다. 9개 정도의 수는 50여개로 늘어났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국책사업으로는 많은게 좋으니. 그러나 개인적으로 들어가보면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 집단이란 것이 조금 있을 때와 많아질 때가 다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것은 회의를 할 때도 나타난다. 숫자가 많아질수록 단합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언젠가 시흥시 어린이집의 위상에 대해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아직도 아물지않은 상처에 대한 대화였다. 시책으로 조례를 만들면서 공무원들과 의회에서는 시립어린이집 원장직을 10년이상 하지 못하게 했다. 교육이라함은 백년지대계다. 10년마다 이동을 하면 그동안 이어져온 것들이 망가지는건데 누가 그 뒤를 이어서 할까...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교육사업이나 특색사업을 요청하면 안되는거다. 그래서 따져물었다. “원장이 바뀌면 교사들이 과연 원장 말을 들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자리에 있으면 고인물이 썩는다’로 돌아왔다고 한다. 분개하고 따져도 결국 몇몇 사람들뢰 인해 조례개정이 됐다.
소식을 접한 원아 어머니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등원거부등이 행동을 취했다. ‘최미선원장 아니면 시립대야어린이집에 다닐 의미가 없다’는 내용의 서명운동도 했다. 날씨도 추운 12월 엄동설한이었다. 학부모들의 고생이 안쓰러워 하지 말라고 했다. 행정싸움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지치기도하고 또 마음의 상처가 깊어 포기하고 짐을 싸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안되겠다. 떠나겠다.”라고. 당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최미선 원장이 시켜서’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사실은 대야동을 떠나고 싶지않았다. 오랫동안 머물러 있고 싶었다. 대야동에서의 기억은 마을의 정서가 좋았던 것에 멈춰있다. 오래된 시설이었지만 정감이 있었다. 마을 노인정에서는 할머니가 상추며 고구마며 농사 지은 것들을 삶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오고가는 인사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사랑방같은 어린이집을 만들고 싶었기에 다른 곳은 생각지도 않았었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학생이 찾아오는 것이 좋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정말 12년동안 시흥시립어린이집을 위해서 헌신을 다해 일을 했다. 외부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시흥에서만 인정을 안했다. 퇴직할 때까지 계속 근무하면서 아이의 성장을 보고 더 크게 성장했을 때의 모습을 두고두고 보기를 바랬다. 하지만 대야동에서는 아쉬움과 상처만을 간직한 채 떠나야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민간에서 2년. 목감동도 대야동처럼 좋은 정서였다. 구도심의 정서는 원주민이어야만 가능한 듯하다. 그러나 내 만족의 정서로는 좋았으나 민간에서의 운영은 또 다른 문제로 힘들게 했다. 교사들의 높은 이직률이다. ‘내 직장이다’ 라는 것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인듯 마음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했다. 교사들의 복리나 복지가 개선되지 않으면 반복될 일이었다. 힘들면 그냥 털고 나가는 세상... 줄을 섰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교사 뽑는게 힘들다. 그만큼 일이 힘들다는 것인데. 민간이나 국.공립이나 일하는 것은 똑같다. 다만 급여 문제가 다르다. 민간은 호봉제가 아니어서 고용의 안정이 중요하다. 또 교사들이 케어할 아이들의 수가 많다.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행복한 교육의 현장을 원한다면 교사가 행복해야한다. 그러나 교사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사명감을 원하나 사명감만을 강요하기에는 어린이집 교육 현장은 실로 열악하다. 교사의 처우개선이 우선된다면 교사나 어린이나 어린이집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사실 어린이집 운영은 극한직업이다.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나 소명감이 없으면 아이들을 교육할 수가 없다. 이 자리는 정말 버티기 힘든 자리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교실에 갔을 때 아이들이 “원장님!” 하고 매달려 줬을 때의 벅참이다. 그 마음이 교실을 다 돌고나면 해소가 된다.
어린이집 교사의 멘탈
“그래서 구인광고를 낼 때 교사로써의 소신과 사명감을 가진 선생님만 지원해 달라”고 적시한다. 어머님들의 민원도 상당하고 요구사항도 옛날 같지 않다.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을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가차없이 민원을 넣는다. 내 아이의 상처는 크고 남의 아이 상처는 작다. 내 아이에게만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된다라는 주의다. 교사의 멘탈이 강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학기초에 유아교사가 세 명이나 바뀐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꾸준히 대화와 소통으로 교사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감시를 당하고 있고, 또 어느날 갑자기 들어오는 민원에 비상이 걸린다.” 신도시 아파트의 신설 어린이집이기에 더욱 신뢰가 가지않고 지켜보는 단계이기에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로 일부 학부모들이 대놓고 말했다. 안믿는다고. 그래서 답했다. 어디까지 옷을 벗어야 어머님들이 믿어줄지를...이제는 믿어준단다. 진심으로 대하니 진심이 통한 것 같다.
신뢰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매스컴에서 나오는 극히 일부의 사건.사고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기사가 나가고 전체가 그런것인양 매도될 때는 속상하다. 엄마들을 대응해야하는 현장은 시간이 지나도 힘들다. 젊은 엄마들의 교육관이나 지향하는 교육등이 맞아야 트러블이 생기지 않으므로 교사들도 공부와 소통의 필요성을 갖고 있다.
사랑나눔 이웃공동체-예쁜 아이들의 마음나눔
원을 운영하면서 이웃과 나눔교육을 실천하는 공동체 교육을 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지역사회 연계를 하라고 한다. 행사장에 초대되어 가보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대상들이다. 원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서는 방법을 찾아본다. 어르신 잔치를 할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재롱잔치를 한다든가 원예수업을 하며 할머니들과 놀아주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아나바다를 통해서 모아진 수익금을 취약계층에 의료비로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또 청소년 소년.소녀가장에게 반찬 지원을 해준다. 그렇게 지역사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역량으로 벌써 10년 이상을 해왔다. 아이들의 고사리같은 작은 사랑이 지역사회에 큰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원장으로서 바라는 건 한가지다. 교사에게 잘하는건 기본이고,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빨리 가고 싶은 어린이집, 우리 선생님이 보고 싶은 어린이집, 가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어린이집’ 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잠시 기웃거렸던 정치의 길
“외부사람들이 봤을 때, 나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친절하고 베푸는 사람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일처리를 할 때도 가능한 공정하게, 사익보다는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그래서 어린이집 연합회에서 회장직을 맡고, 국.공립에서 회장직을 맡아 일을 추진했고, 회장이라는 직급을 이용해서 회원들의 공익을 위한 일을 먼저 했다. 그런 것들이 좋게 보여졌었나보다. 잠시 정치의 길을 기웃거린적이 있었다. 주위의 권유였다. 정치에 사명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의원들보다는 조금 더 공정하게 일처리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가장 큰 마음은 어린이집의 위상을 위함이었다. 그런데 발을 들이면 들일수록 “나는 그릇이 아니구나” 였다. 정치를 할 정신적인 멘탈도 준비가 되어있지않은 탓도 있었다. 그렇다고 정치에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아직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스스로 생각했을 때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그러면서 외친다. “난 자유한국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보육당이다.”
기왕 정치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해 둔 정책제안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교사대 아동 비율이 바뀌어야 된다고 한다. 교사 1명에게 주어지는 아동 수가 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사도 교육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산의 적정성도 있다. 소신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은 보육료는 오르지않고 인건비만 오르는 상황이며 예산의 부실은 원의 운영 부실로 이어지게 할 뿐이다.
주위에서 이상적인 교육론을 지향하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직선적인 훈육이 아닌 기다리고 이해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나보다.
“적어도 나하고 있는 만큼은 아이들이 나의 말 한마디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고, 시흥시도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하는 최미선원장은 잠시 보인 눈물을 훔치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사)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는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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